창업자 안철수가 안랩을 떠나던 날

CEO 칼럼 2012.10.12 07:00

자기가 만든 회사를 17년만에 떠나는 창업자

 

9월 20일 오후 안철수 창업자가 안랩과 작별을 고하기 위해 회사를 찾았다. 바로 그 전날 그는 18대 대통령 선거 출마’라는 어려운 결정을 발표했다. 오랜 기간 그를 알고 지냈던 사람의 하나로서 기자회견 광경을 지켜 보면서 “참으로 많은 고민을 하셨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 분의 손때가 묻어있는 이 회사의 직원들과 의미있는 마지막 만남을 주선하는 일이었다.

그가 어떤 과정을 거쳐 창업했는지, 어떤 꿈과 생각으로 이 회사를 일구어 왔는지 잘 알고 있다. “원칙대로 사업을 해서 성공을 할 수 있다는 것과 소프트웨어를 해서 이익을 남길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는 그의 도전은 성공으로 입증되었다. ‘영혼이 있는 기업’을 만들고자 했던 그의 의지는 안랩의 기업 문화 속에 스며들어 있다. 이제 그가 없이 우리 직원들이 그 목표를 이루어 내야 한다는 막중한 책임감을 느꼈다.

 

직원들의 환호 속에 나타난 안철수 창업자는 안랩과의 인연을 결연하게 끊었다. 자신이 창업해서 열정을 불살랐던 회사였다. 자기 인생의 줄기라고 할 수 있는 이 회사에 왜 애착이 없겠는가? 그러나, 그는 “이제 안랩은 제가 알고 있는 우리 나라의 수많은 좋은 회사 중의 하나일 뿐”이라며 스스로 선을 그었다. 그를 가까이서 본 사람들은 그가 냉정하게 결단을 내리는 성격이라는 것을 잘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작 그런 그의 행동을 보면서 아쉬움은 피할 길이 없다.

직원들과 작별 인사하며 초창기 직원과 포옹하며

전 직원의 환호와 박수 속에 간략한 환송연이 있었고, 안철수 박사는 회사를 모두 돌면서 직원 하나하나 악수하고, 포옹하고, 사진을 찍었다. 오늘만은 회사에서 마음껏 시간을 보내고 싶다며 다음 스케줄은 아예 잡지도 않았다. 환송연에서의 다채로운 풍경은 이미 안랩 블로그 (http://blog.ahnlab.com/ahnlab/1608)에 자세히 소개되어 있다.

 

친구와 같았던 나의 보스

 

개인적으로 안철수 박사를 15년 이상 알고 지냈다. 아무도 정보 보안에 관심이 없을 때 정보 보안의 중요성을 알리기 위해 같이 동분서주했다. 벤처, 소프트웨어, 정보 보안. 이 모두가 사회적으로 따돌림을 받던 시절이었기에, 서로를 격려해 가면서 미래의 비전과 당위성을 알리는 데 힘을 같이 했다. 당시 젊은 벤처 기업가와 기술자들은 동료 의식이 강했는데그 중심에는 안철수 박사의 존재감이 컸다. 탄탄하고 투명한 경영으로 기업을 성장시켜 가는 그의 모습을 보면서경영인으로서 존경심과 더불어 부러움을 느꼈었다.

 

내가 했던 사업을 안랩이 인수하면서, 우리 두 사람은 한 조직 내의 관계가 되었다. 그러나, 그와 경영 회의를 할 때 그가 하던 말이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나를 세상에서 생각하듯이 윗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그냥 경영적으로 같이 상의하는 사이로 생각해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서로가 다른 관점에서 봐야 회사를 위해 올바른 방향을 잡을 수 있겠지요.

 

그는 조직상 보스다. 그럼에도 그는 항상 이렇게 나를 대해 주었기에 마치 친구처럼 여러 아이디어를 폭넓게 상의할 수 있었다. 수평적 리더쉽이자 파트너쉽 경영이다.  (그는 본래 창업을 혼자보다 2-3명이 같이 하는 게 좋다는 지론을 가지고 있다. 위험을 줄이고 다양성을 추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안랩의 역사를 돌아보며..

우리는 경영적으로 많은 생각을 나누었다. 회사의 문화, 조직, 전략, 마케팅 등. 다행히 통하는 게 많았다. 현장에서 뛰는 사람을 좋아했고, 과감히 도전하는 것을 장려했고, R&D를 통한 원천 기술의 힘을 믿었다. 관료화를 혐오했고, 조직보다 사람을 우선시했다. 다양성이 있어야 창의력이 싹튼다는 그의 경영 철학은 회사 전반에 스며들어 있었기에 나는 일하기가 아주 편했다.  

 

그는 매사에 신중하지만 결정에 있어서는 아주 과단성이 있다. 내가 특정 사업에 대해 애착을 가지자, 그는 “김 사장님, 사업이 잘 안 될 때는 무언가 문제가 있는 겁니다. 경영자는 냉정해야 합니다. 특히 자기가 일군 것일수록 과감히 포기할 줄 알아야 합니다. 이를테면 V3 사업, 제가 직접 만든 것이지만, 만일 사업에 문제가 생긴다면 저는 접을 수 있습니다.”라고 조언했다. 실제로 그는 조용한 행동주의자다

 

진정성의 모습

 

나는 7월 초, 부친상을 치르게 되었다. 많은 조문객들이 다녀갔다. 안철수 박사도 첫날 저녁에 찾아왔다. 이미 언론에서 주목을 받는 분이어서 기자들도 많이 왔고, 그 날 아버님 조문을 온 것은 언론을 통해 알려졌다.

 

그러나, 그가 발인식에까지 왔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는 크리스찬도 아니다. 그럼에도 교회식으로 치러진 발인 예배에 참석해서, 뒷 자리에 조용히 앉아서 예배를 드리고 갔다. 당시 책을 집필하던 시기라 무척 바쁜 시기였던 것을 잘 알고 있다. 얼굴이 많이 푸석해 보였다. 그럼에도 우리 가족을 위로하기 위해, 아버님 발인에 참여하기 위해, 아무도 보지 않는 가운데 그는 조용히 다녀갔다. 그의 진정성을 보여주는 한 예다. 누구에게 보이기 위한 것이 아닌, 그의 진정한 모습에 우리 가족은 큰 위로를 받았다.

 

CLO(Chief Learning Officer)로서 안랩 직원과 간부들을 위한 그의 교육은 큰 자취를 남겼다. ‘전략’과 ‘마케팅’ 강의는 2년에 걸쳐 안랩에 스며들었다. 나도 사업을 17년 가까이 하다보니 많은 경영 서적을 읽으면서 공부를 했고, 실전에서 경험했다그러나, 그의 ‘전략’과 ‘마케팅’ 강의는 너무나도 쉽게 핵심을 파고들었다진정한 프로일수록 쉽게 설명하기 마련이다. 그의 실전 경험과 미국에서 철저하게 공부한 것이 결합되어 나온 노하우다.

직원들의 메모를 보며 직원들과 담소하는 안철수

 

미국에서 MBA를 받고 온 어느 임원은, “이렇게 쉽게 전략과 마케팅을 설명하는 것을 처음 보았다. 내가 몇 과목 들은 것보다 훨씬 실용적이다.”고 감탄했다. 지금 우리 회사의 제품 및 사업 기획은 모두 그가 만들어준 전략과 마케팅의 틀에서 운용된다. 특히 안철수 박사는 재무나 회계의 탄탄한 기반 위에 모든 경영적 요소를 설명한다. 엔지니어 출신 경영인인 나로서는 큰 도움을 받았다. 그야말로 나의 보스라기보다는 경영 멘토이자 동료로서 의미있는 시간을 함께 했다.

 

포스트 안철수 시대의 안랩

 

 “그 때 큰 소명, 우리나라에서 컴퓨터 바이러스를 퇴치하는 기술을 가지고 계속하는 사람이 저밖에 없었잖아요? 그래서 저에게는 정말로 맞는 직업을 버리고, 소명을 따라서 만든 회사가 안랩이구요. 그런데 지금 아이러니하게도 소명 때문에 안랩을 떠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이제 안철수 창업자는 뜻한 바가 있어 다른 길로 간다. 진정성과 문제의 본질에 충실하는 그의 자세는 어느 길로 가든지 변하지 않을 것이다. 또한 그는 회사와 명확한 선을 그어 나갈 것을 잘 안다.

직원들의 박수 속에 안랩을 떠나며 차에 타기 전에 마지막 인사


이제 이사회 의장뿐만 아니라 제가 가졌던 모든 마음과 추억까지도 모두 정리해야 할 것 같습니다.”

 

창업자는 떠났어도 안랩은 그가 직원들과 같이 만든 핵심가치의 기업 정신을 이어나갈 것이다. 이 사회에 도움이 되는, 좋은 기업이 되고자 하는 그의 철학은 안랩 속에 영원히 남아있을 것이다.

 

동영상 참조: http://www.youtube.com/watch?v=rZ-0LWnC9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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