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BM 애플 MS의 PC 전쟁과 국산의 반격

보안 이야기 2009/04/09 13:53

 발단(Trigger) I: 인터넷 보급, 그것이 시작이다 (2)

 

PC가 필수품이 되기 까지


1980
년대 개인용 컴퓨터인 PC를 산업으로 형성한 것은 IBM과 애플(Apple)이었다. 그러나, 시장을 바라보는 인식은 시각 차이가 뚜렷했다. 업무용 컴퓨터(Business Computer)에 주력해 온 IBM개인용 컴퓨터 시장을 하나의 옵션 정도로 생각했다. 기업에서 사용되는 컴퓨터가 일반 가정에서 사용되리라고 상상하기가 어려웠던 것이다. 그러나, 벤처 정신 투철한 애플은 특정 시장을 공략하는 집중력이 돋보였. 그러한 차이는 제품의 개념에 반영되어 있다.


애플 매킨토시 컴퓨터

IBM호환 PC


 

오픈 플랫폼의 IBM, 고객 지향의 애플

IBM
은 사용자가 알아서 필요한 소프트웨어나 하드웨어를 관리하는 오픈 플랫폼을 지향했고, 제품 제작도 누구든지 호환 기종을 제작할 수 있도록 허락했다. IBM이 컴퓨터에 관한 기술에 가장 앞서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소극적 정책을 사용한 것은 그만큼 PC 산업에 대한 확신이 없었음을 보여준다. 심지어는 IBM의 운영 체제(OS) 개발 요청을 받은 마이크로소프트도 처음에는 다른 회사를 소개해 줄 정도였으니 PC에 대한 불확실성이 그만큼 컸음을 알 수 있다. (결국 이 기회를 통해 마이크로소프트는 최대의 소프트웨어 업체가 되었다).


반면 애플은 PC를 개인사용자들에게 보다 유용하고 매력적인 기기로 개발하는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특히 컴퓨터를 잘 모르는 사람들도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수직적 통합에 집중했다. 예를 들어, 마우스를 동원한 그래픽 인터페이스(GUI), 손쉽게 주변 기기를 부착하는 기능(Plug-and-Play), 탁월한 인쇄 능력의 레이저 프린터(Laser Printer)에 이르기까지 세세한 부분까지 신경을 썼다. 그 결과 교육용 시장과 디지털 인쇄 시장을 장악했고, 애플 매니아(Apple Mania)라는 충성 계층을 만들어 내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 애플이폐쇄적 플랫폼을 고수한 오류를 범하는 사이오픈 플랫폼을 지향한 IBM PC는 많은 소프트웨어 개발 업체와 하드웨어 생산 업체를 껴안으면서 저변을 확대해 나갔다. 많은 이들이 값싼 PC를 여러 경로로 구매하였고 심지어는 직접 조립해서 사용했다. 다소 불편하더라도 DOS 환경에서 정보 처리와 문서 관리를 하기 시작했다. 결국 마이크로소프트와 인텔 연합 전선인 윈텔(Win-Tel: Windows Intel을 줄인 말)은 핵심 기술인 운영 체제와 CPU를 장악함으로써 PC 산업의 절대적 주도자가 되었다.

 

PC 시장에 새로운 바람을 몰고 온 윈도우

 

마이크로소프트가 애플과 비슷한 수준의 사용자환경(GUI)를 가지게 된 윈도우95(Windows 95)의 출시를 기점으로 PC 산업은 또 한번 도약의 계기를 마련한다. PC TV처럼 가정과 각 개인의 필수품으로 바뀌면서 PC는 엄청난 속도로 보급되기 시작한 것이다. PC가 컴퓨터를 잘 모르는 일반인들에게 퍼져 가면서 기술적 기능보다 브랜드, 마케팅, 조직적 관리에 의해 시장의 순위는 요동쳤다. 컴팩(Compaq), (Dell)과 같은 브랜드가 선두로 도약했고, PC와 관련된 유통과 서비스 시장도 발전을 거듭했다.

 

1994년도 PC 광고 김중태문화원 (http://www.dal.kr/blog/archives/)

우리 나라의 PC 산업도 예외가 아니었다. 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국내에서 PC 업계의 1위는 삼보컴퓨터였다. 삼성, LG, 현대 같은 대기업도 모두 PC를 생산하고 있었지만 그룹에서 사용하는 물량을 제외하면 일반인들에게는 삼보가 PC의 대명사였다. 삼보는 PC 산업을 일으킨 벤처의 상징이었다.

 

그렇지만 PC가 기술 제품에서 일반 상품(commodity)으로 인식이 바뀌는 전환점을 만년 2위인 삼성전자가 놓치지 않았다. 필자의 기억으로는 컴퓨터 업계 최초로 유명 탤런트를 광고에 등장시키며 전문 잡지가 아닌 일간지에서 전면 광고로 마케팅에 박차를 가했다. 물론 조직적인 품질 관리와 비용 절감의 노력도 뒷받침되었지만그린 컴퓨터와 같은 마케팅 용어를 선점해 가면서 당시 유명했던 '채시라'라는 탤런트를 앞세워 대성공을 거두었다.

삼성전자는 확고
부동의 1위 자리를 차지하면서 수년간 적자를 면치 못하던 PC 사업의 누적 적자를 만회하고도 남을 정도로 이익을 달성했다. 그만큼 당시의 PC의 보급률은 가파르게 상승했고 시장은 역동적으로 성장했다. (다음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