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가 '먼나라 이웃나라 일본편'을 권하는 이유
‘책으로 보는 세상’ 섹션을 분류해 놓고서 정작 하나도 글을 올리지 못했다. 어떤 책을 첫 번째로 소개할까 망설여서였다.
수많은 의사 결정(decision-making)을 해야 하는 CEO를 하다 보면 많은 책을 탐독하게 된다. 작년에 방영했던 TV 드라마 ‘세종대왕’에서 세종대왕이 왕위에 오르자마자 어려운 결정을 해야만 하는 상황에 직면해서 고민하는 장면이 나온다.
고민의 실마리를 찾고자 그는 과거 역사에서 비슷한 경우가 있는지 밤새 서적을 뒤적인다. 결국 그는 해답을 찾지 못하고 스스로 결정을 할 수 밖에 없게 된다. 그 장면을 보면서 나도 그런 기대 심리 속에 책을 찾아보았던 시절이 떠올랐다.
독서는 과거의 성공과 실패의 과정을 간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게 하며, 세상의 흐름을 깨닫게 해 준다. 내가 처음으로 소개하고자 하는 책은 만화인 이원복 교수의 ‘먼나라 이웃나라 일본편’이다. 이미 베스트셀러라서 많은 분들이 읽어 보았을 것으로 생각하는데, 나에게는 의미가 남다른 책이다.
1권 일본인 2권 역사
나는 개인적으로 일본 사업에 대해 관심이 많았다. 단순한 호기심이 아니라 우리 나라와 서로간에 보완(complementary)할 수 있는 요소가 많다는 생각에서다. 서로 간에 주고 받을게 많으면 많을수록 비즈니스와 교류는 활발해지기 마련이다. 일본인에 대해 좋고 나쁘고의 선입견은 없다. 단지, 차이가 있다는 자체가 흥미로울뿐더러 시너지를 이루면 잠재적인 가치가 높다고 생각할 뿐이다.
그래서, 일본에 대한 궁금증에 무수히 많은 책을 읽었다. 기억나는 것만 해도 족히 2-30권은 되는 것 같다. 특파원이 쓴 현장 리포트, 일본 문화에 대해 분석한 글, 상거래 관행, 역사와 의식 구조, 언어의 형성 등등. 그런데, 이 모든 것을 하나의 통일된 개념으로 요약해서 정립해 준 책이 이원복 교수의 ‘먼나라 이웃나라’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일본에 대한 인식의 틀(framework)이 잡히게 해 준 고마운 책이다.
이원복 씨의 ‘먼나라 이웃나라’ 시리즈는 어린 아이부터 어른까지 오랜 기간 애독되어 온 책이다. 네덜란드, 이탈리아, 영국 등 유럽 각 국가의 역사를 한 권씩 정리한 책의 내용은 아주 유익해서 만화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고 할 수 있다. 이원복 교수가 독일에서 공부했으니 유럽에서의 체험을 바탕으로 이런 책을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그 후 이원복 교수는 21세기 문명, 한국인, 경제, 산업과 같은 다양한 시대적 개념들을 만화로 정리해 우리의 이해를 도왔다. 그런데, 그가 일본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내용을 소개한 것은 다소 의외였다. 그는 서문에서도 “10년 가까이 살았던 유럽과 달리 살아본 경험이 없는 일본에 대해 쓴다는 것은 너무 무모한 짓이었다”고 솔직하게 소회를 적고 있다.
그러나, 일본에서 살아보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일본인에 대해 분석한 1편은 내용 전개가 아주 명쾌하다. 우리와 겉으로는 비슷해 보이지만 전혀 다른 의식 구조를 가지고 있는 일본인을 이해한다는 것은 단순하지가 않은데, 이 책은 체계적으로 특성(characteristics)과 근본적 원인을 잘 설명하고 있다.
과거에 일본이 성공한 7가지 이유와 그것 때문에 현재와 미래에 고전하게 되는 7가지 고민은 평소 생각했던 시각과 거의 같아서인지 책을 읽으면서 강한 공명감(共鳴感)을 느낄 수 있었다. 그 중에서도 인상 깊었던 2가지만 소개한다.
첫째, 최고 품질의 상품을 만드는 일본인의 정신이다. 노동을 신성시하게 된 정신이 탄생하게 된 배경으로 '이시다 바이간(石田梅岩)'을 지적한다. 그는 가난한 집안 출신으로 스스로 터득한 진리를 통해 세키몬(石門) 학파를 이루어 ‘일 자체가 수양’이라는 철학을 설파하였다. 이것이 장인 정신으로 발전해서 노동에 숭고한 가치를 두는, 그래서 최선을 다해 최고의 품질을 만들어 내는 장인 정신의 바탕이 되었다.
쇼토쿠태자
둘째, 좋은 것은 기꺼이 취한다 (이이토코토리, 良いとこ取り). 우리에게도 친숙한 쇼토쿠태자(聖德太子)는 이 사상을 적극적으로 정착시킨 인물로 평가받는다. 그는 종교, 정치, 문화, 사회 등 전반에 걸쳐서 자신에게 이로운 것은 자유롭게 받아들이라는 실리의 정책을 펴 나간다. 배워서 내 것으로 만드는 습합사상(習合思想)이 태어나게 된 배경이다.
www.mrbaseball.com
‘미스터 베이스볼(Mr. Baseball)’이라는 영화가 있다. 메이저리그에서 뛰던 잭 엘리어트(Jack Eliot)는 방출되어 일본 프로야구팀으로 옮긴다. 그의 홍보 담당인 히로코는 어느 날 그를 프랑스 식당으로 초대해서 그 유명한 코베 소고기로 만든 스테이크를 대접한다.
잭은 일본 음식을 잘 안 먹는다고 하면서 이 스테이크는 미국에서 먹었던 것보다 더 낫다고 하자, 그녀는 “이 요리는 완전한 일본 요리다. 일본은 세상에서 가장 좋은 것을 취해서 자신의 것으로 만든다 (Japan takes the best from all over the world and makes it her own)”라고 설명한다. 1990년대 초반에 이 영화를 보았을 때는 일본에 가 보기 전이라 그 의미를 몰랐는데, 그 후 ‘이이토코토리’의 정신은 일본 곳곳에 배어있음을 발견할 수 있었다.
2권인 ‘역사’ 편은 약간 지루한 편이지만, 평소 궁금했던 덴노(天皇)의 의미와 내력을 이해할 수 있다. 의외로 일본인들은 천황의 역사에 대해 관심이 적다. 초창기 형성 과정에 대한 신빙성이 적어서 그런 것 같다. ‘태정태세문단세’로 계보를 외우는데 익숙한 우리로서는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이다.
그렇지만 오다 노부나가, 도요토미 히데요시, 도쿠가와 히데요시가 등장하는 부분은 책, 영화, 만화로 다양하게 나오고 있다. 역사적으로 중요한 전환기였을 뿐만 아니라 이 세 사람의 성격이 대비를 이루기 때문이다. 워낙 전개 과정이 극적이고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라는 고민의 즐거움을 더해 준다.
만일 일본에 대해 이해하기 위해 단 한 권의 책을 봐야 한다면 '먼나라 이웃나라 일본편'을 강하게 추천한다. 특히 일본 사업을 하려면 적어도 이 내용을 잘 알고 있어야 한다. 혼네(本音)와 다테마에(立前)를 모르면 일본인과의 비즈니스에 있어서 첫 단추가 깨진다.
혹 일본 문화에 대해 더 이해를 하고자 하면 김지룡 씨의 “나는 일본 문화가 재미있다”를 권한다. 지금도 이 책들은 내 곁에 놓아 두고 수시로 들여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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