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 사생활 유출로 본 정보보안의 문제는?

보안 이야기 2009.05.11 10:50

발단(Trigger) IV-(1): 정보의 디지털화와 정보 보안

로맨틱 코미디 영화 ‘노팅힐
(Notting Hill)’에서 나온 장면이다. 유명한 영화배우인 애나 스콧 (Anna Scott, 줄리아 로버츠)이 젊은 시절 찍었던 누드 사진이 언론에 공개되어 무명의 연인인 윌리엄 대커(William Thacker, 휴 그랜트)의 집으로 몰래 피신한다.

노팅힐 (www.cinecine.co.kr)

그런데, 기자들에게 들키게 되어 둘의 사이마저 공개되는 상황으로 일은 커지게 된다.

그 때 두 사람은 당혹감 속에 이런 대화를 나눈다. 윌리엄이 “단지 하루야. 오늘 신문은 내일 쓰레기통에 들어갈 뿐이야”라고 위로하자 애나는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이 스토리는 파일로 저장될 거야. 나에 대한 기사를 쓸 때마다 내 사진을 끄집어낼 거다. 신문은 영원한 거야”라고 화를 내며 떠나간다.

애나(Anna)는 정보가 축적되어 잊혀지지 않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지를 알고 있었던 것이다
. 국내에서도 신정아 씨 사건을 비롯해 유명인과 스타들의 개인 사진이나 사생활 정보 유출이 문제가 되는 일이 자주 발생하고 있다. 그 만큼 개인정보를 포함한 정보 보안의 중요성도 크게 대두되고 있는 것이다.

기록 문화의 발전 과정

마틴 루터의 종교 개혁이 성공한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인쇄술의 발명으로 다량의 선언문을 손쉽게 배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인쇄술 덕택에 교황청의 카톨릭 사제들에 의해서 독점되던 정보가 지식인들에 의해 읽혀 질 수 있는 계기도 되었다. 자크 아탈리는 '미래의 물결'에서 역사의 교훈을 지적하고 있다.

"권력의 중앙집권을 용이하게 하리라고 믿는 새로운 통신기술이 실상은 그와 반대로 기존 권력을 분산시키는 막강한 적이다"

세종대왕의 한글 창제는 수많은 일반 백성들이 문화의 혜택을 누릴 수 있게 했다
. 지식을 독점해서 권력을 영위하려는 사대부들의 집요한 반대를 물리치기 위해 극비리에 진행된 훈민정음 창제는 백성들의 계층간 소통을 원활하게 해야 한다는 집념을 보여 준다. 

유교와 중국화에 비중을 둔 당시의 시대적 상황은 지도층의 반발이 거셌음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활자와 한글의 발명은 향후 500년 조선을 받쳐주는 국가적 업그레이드의 계기였다. 우리 나라의 가장 위대한 왕으로 존경받는 근본적 이유가 여기에 있다.

마틴 루터

세종대왕



이처럼 기록 문화는 기술의 발달에 힘입어 지속적으로 발전해 왔다. 기록 기술은 정보의 독점력을 제거함으로써 권력의 중심축을 옮기는 역사적 마일스톤이 되어 왔다.

역사적 사건 - 컴퓨터의 등장과 정보의 디지털화

무엇보다 획기적으로 패러다임을 바꾼 파격적인 기술(Disruptive Technology)은 컴퓨터의 등장과 정보의 디지털화를 들지 않을 수 없다. 디지털화로 정보는 영구적인 저장이 가능해졌고 실시간 검색이 가능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컴퓨터는 본래 연산 처리를 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 주판이나 암산으로 하는 것과는 상대가 되지 않는 수치 연산 능력은 수작업에 들어가는 많은 시간을 줄여 주었다. 컴퓨터가 나온 초반기에 메인 프레임을 도입한 목적은 방대한 연산 처리를 컴퓨터로 함으로써 시간을 줄이고 자동화하기 위함이었다. 그래서 70-80년대에는 ‘데이터 프로세싱(Data Processing, 약칭 DP)’이 각광을 받았다.

워드 프로세싱(Word Processing)이 문서를 작업하는 것을 의미하듯, 데이터 프로세싱은 방대한 회계나 관리용 데이터 처리를 자동화하는 데 초점을 맞추었다. 그 작업은 많은 인력이 데이터를 입력하고 프린트해 출력물을 보는 과정으로 되어 있었다. 메인 프레임이 연산 처리와 I/O 입출력 역량, 프린팅(인쇄)에 강한 기능을 보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메일 프레임을 도입하는 목적 자체에 충실하기 위함이었다.

이렇게 등장한 컴퓨터가 점차 정보를 활용하는 도구로 포지셔닝(positioning)하기 시작했다. 그 과정을 제프리 무어는 'Living on the fault line'에서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1970년대에 데이터 프로세싱은 공장 같은 작업 환경에서 허름한 작업복을 입은 직원들이 처리했다. 보통 지하에 위치한 이 작업장은 데이터 프로세싱 관리자가 통솔했다.

1980
년대에 들면서 정보를 활용하고자 하는 노력이 시도되었고, 이 때 등장한 학문이 바로 MIS(Management Information System)이다. MIS 부서를 이끄는 이들의 복장은 하얀 드레스 셔츠 정장(화이트 칼라)이었. 점진적으로 비즈니스에서 정보의 비중은 커졌고, IT 부서의 장은 CIO라는 경영자 레벨로 승격되었다. 현재는 정보가 업무를 도와주는 기능이 아니라, 정보 자체가 돈이다.

입체적으로 증대하는 디지털 정보의 활용

이와 같이 디지털 정보의 저장과 활용 측면이 부각되자 기술 혁신도 속도를 더했다. 하드 디스크(HDD), CD, DVD, 플래시카드, USB 등 다양한 저장 매체가 등장했다. 또한 경량화에 따라 휴대하기 편한 형태(portable)로 되었고, 가격은 지속적으로 하락했다. PC만 해도 연산 처리 능력을 필요로 하는 연구 목적으로 활용되다가 일반에 보급된 동기는 정보의 저장과 활용 때문이었다.

1990년대 초반에 ‘멀티미디어(Multimedia)’라는 말이 유행했다. 지금도 자주 사용되는 용어이지만 그 당시는 강력한 시대적 메시지였다. IT를 하는 사람치고 멀티미디어를 얘기하지 않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그 이유는 1980년대에 PC의 보급으로 문서가 디지털 형태로 PC에 저장되었고, 여기서 더 나아가 일반 텍스트보다 훨씬 많은 데이터를 저장하는 CD-ROM이 등장했다. 저장 용량이 커지자 드디어 텍스트가 아닌 영상이나 음성도 디지털 형태로 저장하고 처리할 수 있게 되었다. 이는 디지털 정보 처리의 외연을 입체적으로 확장하는 계기가 되었다. 당시 빌 게이츠가 아직 앳된 모습으로 수줍어하며 발표한 CD-ROM 컨퍼런스는 멀티미디어 컨퍼런스와 동의어였다.

그로부터 15년쯤 지난 지금에 이르러 멀티미디어는 MP3 플레이어, 디카(디지털 카메라), PDA, 포토샾, 유튜브(YouTube) 등의 형태로 우리 생활 속에 깊숙하게 자리잡고 있다. 한 마디로 컴퓨터 보급의 확대로 정보의 디지털화는 급속도로 진행되었다. 저장 기술도 혁신적으로 발전되어 무어의 법칙에 따라 디지털 저장 기기를 길거리에서도 살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그만큼 일반인의 생활 속에 디지털 정보는 빠른 속도로 다가왔다. 이렇게 무한한 혜택의 세상을 가져다 주는 화신과 같은 디지털 정보는 아날로그 시대와는 차원이 다른 문화적 변화를 야기시켰을 뿐만 아니라, 한편으로 정보 관리의 새로운 문제점도 드러내는 계기가 되었다.


  (다음 회에 계속)

신고


티스토리 툴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