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학자가 쓴 세계화 재해석 '제국의 미래'와 민주주의는 관용에 달렸다

책으로 보는 세상 2009.06.06 12:17
관용의 정신으로 세계화 역사를 해석한 '제국의 미래'

두꺼운 책을 선택하기가 쉽지 않은 시대다. 인터넷을 통해 정보가 빠르게 소통되다 보니 지식의 깊이보다 폭이 선호되는 느낌이다. 그러나, 어떤 주제를 중심으로 많은 자료를 통해 이를 입증하는데 충실하다보면 두껍게 될 수 밖에 없다. 이런 책은 저자의 오랜 고민이 반영되어 있어 사고의 틀을 형성하는데 좋다. 그 관점에 동의하든지 안 하는 것은 각 개인의 문제일 뿐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법학자가 쓴 역사서, 제국의 미래

 

솔직히 제국의 미래(Day of Empire)’라는 책에 눈이 간 것은 ‘CEO가 휴가 때 읽을 책!’이라는 선전 문구였다. 그런 점에서 보면 이 책을 출판한 회사의 마케팅 효과는 적어도 나에게는 먹힌 셈이다. 또한 저자인 에이미 추아(Amy Chua)가 국제법 박사 학위 소지자라는 점도 호기심을 불러 일으켰다. 법학자가 역사서로 보이는 책을 저술했다고 하는데 어떤 시각으로 바라 보았을까? 저자가 내가 공부했던 대학 도시에서 자라났다는 것도 개인적으로 친밀감을 느끼는데 한몫 했다.

 

"제국의 미래" 책 표지

에이미 추아 (예일대 법대 교수)

책의 내용은 마침 내가 궁금했던 '제국이 형성되고 몰락되는 과정'을 저자의 시각으로 기술하고 있다. 중국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중국계 2세라는 점이 서양과 동양의 역사를 균형있게 바라 보는 관점을 형성하는데 도움이 된 것 같다. 미국인이 저술한 책 중에 당(), 몽고, () 등의 중국 국가를 로마, 영국, 미국 등과 동일한 잣대로, 또한 풍부한 사료(史料)를 바탕으로 설명한 책을 보기 힘들었다.

 

이 책의 키워드는 관용(寬容)’이다. 어떤 제국이든 관용을 보일 때 가장 융성했고, 관용이 사라질 때 몰락되어 갔다는 주장이다. 자체적으로 허물어지든지, 아니면 외부의 침입에 속절없이 무너지든지.. 이 책이 부시 대통령이 이라크 침공을 한 이후 미국이 늪에 빠져 헤메는 시점에 출간되어서인지, ‘관용이라는 단어는 미국의 권력 교체 시점과도 맞아 떨어졌다. 어쨌든, 저자는 관용이라는 공통 키워드를 추출해 내기까지 꽤 오랜 기간 동안 자료 수집과 분석을 수행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어린 시절부터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했었다는 저자의 사견도 적혀있다.

 

관용의 제국을 연 페르시아

 

보통 이런 종류의 역사서는 그리스 로마 시대로 시작한다. 왜냐 하면, 그리스 로마의 정신이 서구 문화의 뿌리이기 때문에, 서구 문명 중심으로 역사를 설명할 때 그 이전의 국가는 별로 도움이 안 된다. 그러나, 이 책은 페르시아를 첫 제국의 모델로 선정한다. 당시 페르시아의 지역적 팽창이나 영향력으로 볼 때에 페르시아가 패권 국가라는 사실은 명약관화하다.

 

어떤 이들은 페르시아는 실제로 지배를 했다기 보다 영향력을 통해 그 지역 주민을 그냥 놓아 두었기 때문에, 이들을 직접 통치한 제국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얘기하기도 한다. 페르시아는 그 지역의 종교, 습속, 문화를 그대로 유지할 것을 존중했다. 구약에서도 페르시아의 키루스 왕(성경에서는 고레스왕으로 번역됨)은 이스라엘 백성을 바벨로니아 유수로부터 돌아오게 한 중요한 역사적 터닝 포인트를 만들었다. 저자는 이러한 다양성의 인정, 즉 관용의 철학이 페르시아를 제국의 위상으로 끌어 올렸으며, 그것이 사라지고 독선이 자리잡으면서 제국이 무너지게 되었다고 설명하고 있다.

당태종 이세민

 

세계화된 중국의 모습 당()나라

 

중국에서는 당나라가 중국 역사상 가장 화려한 국제적 위상을 갖추었음은 자명하다. 우리 나라 역사에서는 당나라가 그다지 좋은 이미지로 설명되지 않는 느낌이다. 요동 정벌로 고구려를 침공하고 신라와 손잡고 고구려를 멸망시킨 역사가 우리 피부에 와 닿기 때문일까? 그러나, 신라방의 예에서 본 것처럼 당나라는 국제적으로 가장 개방적인 시대를 열었다. 모든 길은 장안(長安)’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말은 결코 허세가 아니었다.

 

중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왕으로 불리우는 당태종 이세민은 그 유명한 정관지치(貞觀之治)의 시대를 열었다. 비록 자기 형과 동생을 죽이고 쿠데타를 일으킨 잔인한 권력 찬탈의 과정을 겪었지만, 이러한 콤플렉스를 이기기 위해서인지 황제로서 보여 준 그의 정치력은 놀라웠다. 무엇보다 인내를 가지고 반대파의 핵심인 위징을 포함한 많은 인물들을 정치의 현장으로 끌어들였다. 반대 의견을 귀담아 듣고 반영해서 백성 중심의 정치를 편 것은 모든 정치 지도자가 본받아야 할 정신이다. 백성들을 위하는 긍휼한 마음보다 권력 쟁취와 자기들만의 세계를 만든 뒤, 그에 따른 이익만을 추구하는 사악한 정치인들의 모습이 한심할 뿐이다.

 

당현종

암흑 시대인 측천무후 시대를 거쳐 정관지치의 국가적 틀을 국제적 개방화로 이끌어 낸 당 현종 시대(개원의치)의 당나라는 단연 세계의 중심이었다. 한국은 물론 아라비아, 유럽의 상품이 활발히 거래되고, 각종 종교와 문화가 받아들여졌다. 수천 년 중국 시사(詩史)에 있어서 가장 돋보인 당시(唐詩)의 대표격인 이백, 두보, 왕유가 모두 이 시대에 출현한 것은 문화적으로 융성했음을 보여준다.

 

반면에 명나라는 정화(鄭和)라는 인물을 통해 대형 선박 군단을 이끌고 아프리카까지 세계적 위상을 보여주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이후 철저하게 폐쇄적으로 바뀐다. 결국 만주족에 의해 멸망당한 후, 제국주의 시대에 속절없이 무너진 중국의 모습을 관용이 사라진 탓이라고 저자는 설명하고 있다.

 

비즈니스 마인드로 강대국이 된 네덜란드

 

네덜란드 동인도회사 (reciculous.textcube.com)

서구 국가 중에서는 네덜란드가 눈길을 끌었다. 암스테르담을 방문했을 때 개방적인 사고를 지닌 네덜란드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흔히 동성애와 개방적인 성문화로 표현된 네덜란드의 모습은 그 일편일 뿐이다. 그만큼 네덜란드는 개인주의가 당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문화를 가지고 있다. 특정 종교를 강요하는 국가로부터 도피한 사람들로 구성된 네덜란드는 비즈니스 마인드로 세계적으로 팽창한 독특한 케이스다. 바로 이런 점이 폐쇄적 국가 일본의 문을 열고 들어간 비결이기도 하다. 또한 미국이라는 신천지를 연 청교도 정신, 국제화 도시 뉴욕을 만들어 낸 원천이기도 하다.

 

물론 이 책에서는 로마, 대영제국, 몽고 등 대표적 제국들을 많은 비중을 가지고 분석하고 있다. 또한 진정한 제국으로 위상을 끌어올리지 못한 오스만, , 무굴, 또한 그릇된 편견과 착각으로 역사상 최악의 국가가 된 히틀러 시대의 독일과 2차 세계 대전의 원흉인 일본도 언급되어 있다. 저자는 관용이라는 잣대로 역사의 전반을 훑고 있으며, 세계화의 과정도 이를 통해 설명한다.

 

훌륭한 인재를 포용할 수 있는 환경이 강()함의 비결


훌륭한 인재가 중요시되는 세상이 강대국이 되는 덕목이라고 설명하는 저자의 관점에 나는 전적으로 동의한다
 

부를 창조하는 가장 큰 동력은 약탈과 몰수가 아니라 교역과 혁신이라는 것은 이미 입증된 사실이다. 또한 한 사회가 세계적으로 우수하고 똑똑한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정복이 아니라 이민으로 대체되면서, 전략적인 관용의 양상 역시 달라지고 있다. (책에서 인용)

 

알버트 아인슈타인

이를 가장 잘 실현한 예가 '이민자의 국가'인 미국이다. 미국이 지역 강국에서 세계적 강국으로 성장한 배경에는 첨단 기술과 과학이 자리잡고 있다. 과학의 비약적 발전은 아인슈타인과 같은 망명한 물리학자, 나치를 피해 미국으로 건너온 유진 클라이너가 건설한 실리콘밸리의 벤처자본주의가 자리잡고 있다. 그 외에도 헝가리 출신으로 인텔을 이끈 앤디 그로브, 러시아 출신으로 구글의 공동 창업자 세르게이 브린과 같은 이민자들이 수많은 미국인들과의 합력으로 정보 기술은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개인이 국가를 선정할 수 있는 시대에 있어서 좋은 인재를 확보하고 양성하는 것은 국가의 최우선과제다. 우물 안 개구리의 좁은 국가 의식으로는 강대국으로의 길은 꿈도 꿀 수가 없다. 기업이든 국가든 열린 마음으로 인재를 확보하고 좋은 조직을 만드는데 심혈을 기울여야 한다는 게 역사가 가르쳐주는 교훈이다.

 

법학자가 이렇게 역사서를 저술할 수 있는 자유로운 학문적 분위기도 인상적이다. 국제법이라는 전공을 확대해서 세계화의 과정을 조명할 수 있는 지적 포용성이 부럽다. 법학과 역사의 전문성이 결합되어 더욱 빛이 나는 느낌이다. 이 책에 대해 일부 비판적인 평가도 있지만 적어도 나에게는 역사적 사실을 통해 하나의 중요한 틀을 형성하게 해 주었다.

 

다양성과 창의력을 존중하는 기업을 구상하며...

 

이 책을 읽으면서 CEO로서 회사의 바람직한 모습을 여러 모로 생각해 보았다. 평소에 내가 생각하는 회사의 중요한 키워드는 다양성이다.

다양성은 창의력의 산실이다. 다양성이 없을 경우 그 회사는 윗사람의 지시에 따라 움직이는 단순한 조직이 될 뿐이다. 이런 조직은 규율과 통제, 분업과 숙련화와 같은 속성에 기인한 산업 시대의 산물이다. 그러나, 네트워크 경제에서는 개인의 공헌 가치가 극대화해야 하고, 창의력에 따라 가치의 척도가 달라진다. 농업이나 제조업이든 서비스업을 막론하고 현대 산업의 시대 정신이다.

 

그런 점에서, 자신의 잠재된 가치를 발휘할 수 있는 조직 문화가 필수적이다. 그러려면 다양성이 포용되고 존중되어야 한다. 다양한 의견이 활발히 제시될 수 있고 토론에 의해 합의점을 도달할 수 있는 문화가 성공하는 기업의 필요 조건이라고 생각한다. 국가나 사회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진정한 민주주의와 공정한 경쟁이 승리하는 것이 아닐까? 다양성이 인정되고 관용이 중심이 되는 공동체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경쟁력있다는 사실을 이 책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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