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 박사와 10년전 만남을 생각하니

경영 이야기 2009.06.19 16:03

"나는 술 잘 마셨었는데 억울해요"

무릎팍 도사에서 술 얘기가 나오면서 안철수 박사가 한 얘기다. 회사 CEO를 하는 과정에서 크게 아프게 되었고, 그래서 술을 완전히 끊게 되었된 과정을 설명하면서였다. 그래서, 자신은 본래 전혀 술을 안 하는 줄로 사람들이 인식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말은 맞다. 나는 안철수 박사와 술을 해 본 증인(?)이다. 초창기에 내가 운영하던 회사와 안철수연구소는 공동 제품을 만들었다. 우리의 네트워크 보안 기술과 안철수연구소의 백신을 결합한 'V3 바이러스월'이었다. 이 제품은 새로운 개념을 열었고, 장영실상도 받는 영광을 차지했다.

▲안철수 박사와 공동으로 장영실상을 수상한 후 기념사진


공동 개발을 마치고 성공을 기원하는 회식 자리에서였다. 10년도 넘는 일이라 기억은 희미하지만, 근처 통닭집에서 생맥주를 같이 한 적이 있다. 그리고 안철수 박사가 "나는 술을 먹으면 더 또렷해지는 스타일이다. 술을 밤새워 마시고 나서 항상 내가 모든 사람 택시태워 보내고 멀쩡하게 집으로 들어간다"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 다른 이들에게도 같은 증언을 들은 바 있다.

그런데, 어느날 갑자기 안철수 박사가 과로로 인한 간염으로 병원에 입원했다는 얘기를 접하고 삼성의료원에 급히 달려갔다. 하긴 7년 동안 4~5시간밖에 안 자고 백신을 만들고, CEO가 된 후에는 유학(이때가 1차 유학으로 펜실베이니아대학 공대 공학석사를 받았다.)을 가서 공부와 경영을 병행하느라 이틀에 한 번 꼴로 밤을 새웠으니, 체력이 어떻게 버티겠는가. 그 이후로 안 박사는 술을 완전히 끊었다. 

안철수연구소의 건물에 관한 스토리

다음은 회사 사무실의 역사에 관해서다. 회사 행사에서 직원들 대상으로 퀴즈 프로그램을 진행한 적이 있다
. 문제 중의 하나가 안철수연구소가 창업부터 몇 번 이사를 다녔느냐였다. 최근에 들어온 직원들이 많아서인지 잘 맞추지 못했다. 나는 지금이 6번째인 것을 아는데..

 

첫 사무실이 있던 한판빌딩

그제서야 안철수 박사를 만난 지 벌써 10년이 넘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바뀐 건물에 적어도 한 번 이상은 가 보았으니 정확히 기억할 수밖에 없다. 체험을 통한 기억이 오래 간다는 진리를 다시 한번 느끼는 계기가 되었다. 한편 시간이 정말 빨리 지났구나하는 생각에 내 나이를 돌아보게 된다. 안철수 박사와 같은 시점에 정보 보안 사업에 뛰어든 지 어느덧 올해로 14년째가 된다.


안철수연구소의 실질적 초석이 된 오영 빌딩

내가 안철수 박사를 처음 만났던
2번째 위치는 남부 터미널 근처 건물이었다. 지금도 그 위치를 정확히 기억하는 이유는 건물 주위가 온통 모텔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서울 시내에 모텔이 그렇게 밀집해있는 지역을 처음보았다. 지금도 모텔이 상당히 많은 타운이라고 알고 있다. 우리 나라에서 모텔이라면 생각나는 부정적 인식, 그리고 그와 연관된 어두운 서비스 간판들이 많이 눈에 띄었다. 도저히 사무실이 있는 곳 같지가 않았다.

모텔 타운 한복판에 있던 오영빌딩

그런데, 이 건물은 안철수연구소의 중요한 초석이 된다. 안철수 사장이 미국 유학을 마치고 복귀한 시점이었다. 또한 대주주인 한글과컴퓨터에 마케팅을 의존하고 있던 사업 모델에서 탈피해서, 비로소 안철수연구소 (당시 이름으로 안철수컴퓨터바이러스연구소)가 독자적으로 영업 조직을 갖추고 회사의 모양을 갖추었다. 현재 안철수연구소의 권영찬 차장이 1호 영업 사원이었다. 비록 직원들 월급주기 빠듯한 상황이었지만

 

규모가 20명도 채 안 되었던 것 같다. 내가 하던 회사도 20명 내외였으니까 비슷한 규모여서 동병상련의 처지를 얘기했던 기억이 난다. 정보 보안사업을 한다고 하면 돈이 되겠느냐?’며 주위에서 한심하다는 눈길을 받을 정도였으니.. 벤처 기업이라는 개념도 없었고, 중소기업은 대기업 계열사의 하청업체 정도로 받아들여지는 분위기였다. 게다가 소프트웨어 산업에 대한 인식은 지금보다도 훨씬 열악했다. 그 곳에서 안철수연구소의 주춧돌이 탄탄하게 놓여진다.


미국 기업의 거액 인수 제안을 거절한 시점이 이때이며, 인간 안철수가 TV를 타게 된 계기인 '성공시대'가 바로 여기에서 촬영된다. (나도 동종업계 기업인으로 인터뷰를 하면서 TV에 최초로 출연하는 영광을 얻었다)

도약의 발판 우영 벤처 타워

CIH 바이러스 대란을 통해 도약한 우영 벤처 타워

그 다음 옮긴 곳이 강남역에서 양재역 쪽으로 내려가다 보면 우성아파트 근처에 있던 건물이었다. 내가 찾아가려고 하니까 안 사장이 찾기 쉬울 거예요. 바나나클럽이라고 하면 모르는 사람 없대요.”라며 설명해주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 건물은 술집 네온사인이 휘황찬란한 그 가운데 있었다. 지나쳐 보기는 한 지역인데 정말 부근에서 바나나클럽을 물어보니 바로 가르쳐 준다.

그 건물이 안철수연구소가 본격적으로 도약하는 공간이 된다. CIH 바이러스가 터지고 망가진 PC를 들고서 번호표 들고 기다리던 곳이 바로 그 곳이다. 마침 나도 길 건너편에 있었기에 같이 만나서 식사를 한 적이 있는데, 과거보다 훨씬 여유가 생기고 CEO다운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이와 같이 모텔 타운에서 기초를 만든 2번째 건물을 거쳐 술집 한가운데 있는 우영 벤처 타워에서 보안 업계 처음으로 매출(수주액) 100억원을 돌파했.


그 후에서야
IT 기업들이 주로 있던 강남 테헤란로 부근과 수서 시대를 거쳐 지금 여의도에 위치하게 되었다. 모텔 타운에서 초석을 다지고, 술집 타운에서 도약의 발판을 마련한 후, 벤처 타운에서 코스닥 상장을 이루었다. 그리고 나서 지금은 순복음교회 부근의 교회 타운이다.

이 곳을 우리가 글로벌하게 도약하는 계기로 삼고 싶은게 안철수연구소 CEO인 나의 꿈이다. 2년 뒤에는 판교 사옥으로 들어가게 된다. 그 때에는 세계에서 인정받는, 세계 각지의 파트너와 고객을 상대로 하는 진정한 글로벌 기업의 위상으로 입주하고 싶다. 그래서, 영혼이 있는 기업, 정직하고 투명한 기업의 철학을 이어 갈 것이다.


무릎팍 도사에서 안철수연구소의 역사를 설명하는 녹화 과정에서 건물 얘기가 있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최종 방영에서는 제외되었던 것 같다. 그래서, 안철수연구소의 역사에 대해
 몇 자 적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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