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프트웨어는 조연이 아니라 주연이다 - SW 인력 시리즈 1

IT와 세상 2009.11.09 12:01

우리 나라 IT에서 가장 심각한 문제는 소프트웨어가 제 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는 점이다. 특히 소프트웨어 인력은 적지 않은 숫자임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인정을 못 받고 있는 가슴 아픈 현실이다.  물론 근본적으로는 전반적인 이공계 기피현상에 기인한 것이지만 이를 여기서 논한다면 너무 큰 주제로 확대되므로 일단 소프트웨어에 국한해서 논의를 전개해 보기로 한다.

 

첫째, 소프트웨어가 단순한 기능으로서 조연 혹은 단역의 역할에 머물고 있다.

 

2000년도 가트너(Gartner Conference)에서 썬 마이크로시스템즈(Sun Microsystems)의 창업자인 스콧 맥닐리 회장이 소프트웨어는 기능이지 산업이 아니다(Software is a feature, not an industry)라는 말을 해서 크게 화제가 되었다. 평소 맥닐리 회장을 존경했던 나는 현장에서 그 말을 듣고서 깜짝 놀랐다.

스콧 맥닐리와 스티브 발머 (마이크로소프트 홈페이지)


아니, JAVA라는 혁신적인 방향성을 제창한 회사의 CEO가 저런 말을 하다니?” 도대체 믿어지지가 않았다. 아니나 다를까 다음날 마이크로소프트의 스티브 발머 (Steve Balmer) 회장이 내 생애에 그런 바보같은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the most absurd thing I’ve heard in my life). 비즈니스의 모든 업무는 소프트웨어다. ERP, 데이터베이스, 워드프로세서 등 모두가 소프트웨어 아닌가? 소프트웨어는 미래다(Software is the future)!!라며 큰 소리로 반박하던 광경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결국 썬 마이크로시스템즈는 소프트웨어 기업인 오라클에 인수되는 운명이 되었다. 당시 썬 마이크로시스템즈가 마이크로소프트의 독점 행위를 놓고 선봉에 서서 싸우던 입장이었기에, 다소 감정적인 어조로 튀어나온 발언이라고 생각은 든다. 그래도 너무 지나쳤다는 생각이 들었다.

 

컴퓨터를 만들어 보던 학부 시절

 

전자공학을 전공하던 학부 시절에 컴퓨터를 만드는 실험을 한 적이 있다. 지금부터 약 25년 전이니 지금의 시대에서 바라보면 영락없는 구석기 시대다. 여러 명이 씨름해서 마이크로프로세서, 메모리, I/O를 여러 개의 보드로 구성해 봐야 겨우 286보다도 못한 성능의 컴퓨터를 만들 수 있었다. 당시 키보드를 누르면 모니터에 글자가 나오는 것을 보고 신기해 했던 기억이 난다.

 

컴퓨터 내부

그런데, 과제로 주어진 어떤 기능을 보여주려고 하니 도저히 하드웨어만으로는 안 되었다. 그래서, 조교에게 하드웨어 스펙을 아무리 봐도 그대로는 잘 안 되는데 어떻게 할까요?” 하고 물었다.

그러자 그 조교는 소프트웨어로 처리해도 통과시켜 주겠다라며 인정해 준 적이 있다. 구태여 오래 전 얘기를 꺼내는 이유는 하드웨어를 만드는 사람의 눈에는 소프트웨어가 이렇게 보조적 요소로 보인다는 점을 설명하기 위해서다.

그 당시는 소프트웨어를 제대로 돌릴 만한 하드웨어가 절대적으로 함량 미달이었다
. CPU 파워로 보나 메모리 용량, 각종 부품의 가격을 봐서 컴퓨터를 일반인이 만든다는 것은 언감생심이다. 그러니 일단 가동할 수 있는 하드웨어를 만드는 게 최우선 목표였다.

그에 비하면 지금은 하드웨어만 보면 가히 자유로움(freedom)을 만끽하는 세상이다. 무어(Moore)의 법칙은 메모리에만 적용되는 게 아니다. 하드웨어의 성능, 용량은 급증한 반면 가격은 급속도로 떨어졌다. 하드웨어의 걱정을 덜게 되니 소프트웨어로 무엇을 만들어야 좋을까하는 관점으로 중심이 이동했다. 이제 하드웨어는 소프트웨어를 실현시켜주는 가능자 정도가 되었다. 한 마디로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의 위상이 뒤바뀐 것이다.

 

아이폰의 꿈과 사상은 소프트웨어로 이루어져..

 

애플(Apple)의 아이폰(iPhone)이 좋은 예다. 아이폰은 플랫폼이다. 3G, 웹브라우징, 이메일, MP3, PDA에 이르기까지 사용자에게 필요한 기능을 총집결했다. 한편 사용자가 원하는 것을 쉽게 달성할 수 있도록 세밀하게 아이디어를 결집했다. 사용자가 사용할 소프트웨어가 정의되었고 그에 맞추어 하드웨어가 준비되었다.

이를테면 사용자의 검색을 돕기 위해 이중 터치 스크린이 도입되었고, 어느 장소를 찾아가기 위한 구글 맵스(Google Maps)를 모바일 환경에서 바로 구현할 수 있도록 3G GPS를 결합했다. 그 외에 통신, 저장 기기 등 각종 하드웨어 구성 요소가 이를 따랐다.

아이폰의 사업 모델

 

무엇보다 아이폰은 아이튠스(iTunes)라는 플랫폼을 통해 풍부한 콘텐츠와 애플리케이션이 공급되는 아이팟의 고유 사상에 충실하다. 지금 우리 나라 대기업들이 흉내내는 앱스토어(AppStore)를 창시해낸 것이다. 여기에서 사용자와 하드웨어, 인터넷, 콘텐츠가 일체감 있게 운영되는 대동맥 같은 역할은 소프트웨어가 담당한다. 아이폰에서 누가 주연인지는 명약관화하다.

 

하드웨어를 만들고 나서 소프트웨어를 조연으로 활용하던 시대는 끝났다. 이렇게 주연과 조연이 바뀐 상황에서 우리는 아직도 소프트웨어가 조연, 아니 그것도 안 되는 단역의 역할에 머무르고 있다. 그러니, 소프트웨어가 비전이 없다고 하는 것이다. 이는 소프트웨어가 제품의 원가를 잡아먹는 비용(cost)이 아니라 제품의 사상과 개념을 결정하는 가치(value)의 실현자(enabler)로 변한 현 상황과는 동떨어진, 시대 착오적인 발상이 아닐 수 없다.


(아이뉴스 칼럼 기고문 중에서 보완해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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