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이 원하는 엔지니어는 현장의 터치 감각

IT와 세상 2009.04.06 00:06

미국 유학 시절에 미국 친구들을 보면 기계를 만지고 조작하는데 있어서, 무언가 우리보다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원인이 무엇일까 하고 고민하던 차에, 어떤 선배가 미국에서는 어린 시절부터 집에서 아버지와 같이 자동차를 만지면서 자란 것이 원인인 것 같다는 얘기를 해 주었다. 그 순간 나도 손뼉을 치며 바로 그거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집에서 차를 수리하는 모습 (www.marketingconcepts.org)

미국에서는 자동차 서비스를 받는 비용이 엄청 비싸다. 자동차 수리점에 가기만 해도 일단 2-30불을 지불해야 한다. 단지 엔지니어가 점검(inspection)하는 비용이다. 여기에 수리를 맡기면 시간당 붙는 비용(labor charge)이 부과된다. 당연히 부품비는 별도다. 땅덩어리가 넓으니 자동차 없이는 살 수 없고, 돈을 절약하기 위해 집에서 직접 수선할 수밖에 없다.

 

주말에 미국 주택가를 지나다 보면 여기 저기서 차를 손 보거나, 심지어는 오일 교환을 직접 하거나, 온 가족이 세차를 하는 모습을 흔히 본다. 우리 나라처럼 카센터에서 원스톱(one-stop)으로 서비스를 받으면 시간도 많이 걸리고 돈도 많이 지불해야 한다. 한술 더떠 어떤 친구들은 1950년 대 구형 모델의 차에 최신 엔진과 오디오 시스템을 설치하는 실험도 해 본다.

 

집 안의 크고 작은 수리도 마찬가지다. 전국 체인을 가지고 있는 홈 디포(Home Depot)라는 대형 마켙에 가 보면 스스로 집안 일을 하는 이들을 위해 수많은 부품과 도구들이 진열되어 있다. 목재, 정원 도구, 전기 시설, 부엌 싱크대 등 분야별로 잘 정돈되어 있다. 이 상점의 키워드는 'self-improvement'다. 워낙 초기 개척 시대부터 스스로 A부터 Z까지 해결해야 하다 보니 셀프엔지니어링(self-engineering)이 미국의 문화로 자리 잡았다.

홈 디포((Home Depot)의 내부모습

 

유학생들은 바쁜 시간 속에서도 이러한 생활 속의 엔지니어링에 부딪치게 된다. 게다가 돈이 없어 오래 된 중고차를 사다 보니 운이 나쁘면 내내 골치 아프다. 한국에서 변변히 만져 본 기계가 없었던 이들도 꼼짝없이 기계와 씨름을 해야 했다. 오죽하면 박사를 받는 순간 자동차 전문 수리 자격증도 받는다는 조크가 나올 정도다. 공대를 나온 이들도 고등학교까지는 책으로만 공부한 경우가 태반이었기에 우리가 진짜 공대 출신 맞아?’하며 한심해 했던 기억이 있다.

 

현장과의 터치(touch)가 엔지니어의 참모습

 

이런 생활 속의 터치와 경험이 기술(technology)을 개발하는 엔지니어의 기본 자세다. 생활 속에서 호기심이 싹트고, 호기심이 집중력으로 연결되면 위대한 기술도 탄생하게 된다. 토머스 에디슨은 공부를 많이 한 사람이 아니다. 그러나, 호기심과 노력으로 우리 생활 속에 유용한 발명품들을 아주 많이 만들어냈다. 그가 한 평생 연구원들과 각종 아이디어를 실험한 그의 연구소는 이런 터치(touch)의 협력 시스템이다. 피뢰침과 다초점렌즈(bifocals)를 발명한 벤자민 프랭클린은 계몽사상가이면서도 과학적 아이디어를 생활 속에 접목한 엔지니어이기도 하다. 현장과의 터치(touch)가 엔지니어의 참모습이다.

벤자민 프랭클린(좌)과 토머스 에디슨

 


우리는 책을 통해서 이론과 개념을 터득하고 깨우칠 수 있다
. 그러나, 엔지니어는 자신에게 필요한 것을 더 빠르게 배우는 비결이 있다. 목적을 위해서 집중적으로 파고드는 호기심, 그리고 다양한 경로를 통해 주위 친구나 동료, 온라인에서 만난 커뮤니티를 통해 배우는 것이다. 책을 통해 깨닫는 것보다 몇 배, 몇 십 배 빨리 깨닫게 된다.

 

주워듣는게 책보다 빠르다

예를 들어
, 소프트웨어를 잘 만들려면 도서관에서 책에 파묻히는 것이 정도(
正道)가 아니다. 물론 기본적인 틀은 터득해야 하지만, 기술을 더 잘 아는 친구들로부터 주워 듣고, 서로 상의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다. 게다가 기술의 발전 속도를 책은 따라 가지 못한다. 때로는 일단 현장에서 여러가지를 정신없이 깨우치고, 후에 책으로 전체적인 틀을 정리하는게 효과적일 수 있다.
 

그래서, 전문가들이 모이면 짧은 시간에 많은 기술과 정보를 파악할 수 있다. 나는 보안 전문가이기는 했지만 안철수연구소에 들어오기 전까지 PC와 악성코드에 대한 지식은 깊지가 않았다. 그러나, 1년도 채 안 되어서 누구보다 자신있게 PC 보안에 대해 얘기할 수 있을 정도로 지식과 경험을 얻게 되었다. 내가 능력이 뛰어나서가 아니다. 이 분야의 전문가들이 같은 공간에 있기 때문에, 그들과 커피 마시면서, 식사하면서, 중요한 개념과 트렌드를 깨우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원하면 얼마든지 깊이있는 부분까지 들어갈 수도 있다.

이것이 전문 기업의 무서운 경쟁력이다. 그 기반은 현장에 중심을 둔 엔지니어들의 실용적인 경험과 네트워크다. 반드시 같은 조직에 있을 필요도 없다. 오늘날 실력있는 엔지니어는 세계 어느 곳에 있더라도 파악할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이런 현장 속에서의 터치(Touch)와 협업(Collaboration) 문화가 오픈 소스, 인터넷, IT의 급격한 기술 발전의 원동력이다.

 

직접 해 보지 않으면 자격증도 필요 없다

 

신입 사원을 면접하다 보면 성적도 좋고 여러 자격증을 가지고 있음에도 기본 개념이 흔들리는 이들을 보게 된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직접 해 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손수 PC를 뜯어 고칠 수 있는지, 이런 저런 장비를 직접 연결해서 OS를 다시 설치할 수 있는지, 리눅스의 소스를 변형해서 다른 하드웨어에 올릴 수 있는지...  여러 환경에서 PC 하나라도 자유자재로 가지고 놀 수 있어야 기본적인 자격을 갖추었다고 할 수 있다.

 

기업이 선호하는 특정 대학들이 있다. 기숙사에 거주하는 이들 학교의 학생들은, 시간의 제약 없이 하고 싶은 개발과 경험을 마음껏 하는 편이다. 커뮤니티를 통해서, 선배를 통해서, 또는 Lab의 프로젝트를 통해서.. 이런 환경에서 지낸 이들은 빠른 속도로 업무에 적응할 수 있다.  자유로운 소통의 환경 속에서 스스로 깨우치게 함으로써, 엔지니어의 꿈틀거리는 끼와 호기심을 살려내게 된.

 

교수의 강의와 성적표만으로 대학 생활이 구성되는게 아니다. 이런 hands-on skill과 실험 정신이 훨씬 소중한 자산이다. 또한 나의 채용 기준이기도 하다.


이 사회를 이끄는 지도자들은 이런 엔지니어의 속성을 이해해야 한다. 그런데, 기술(Technology), 특히 IT의 경우 직접 사용해 보지 않으면 감을 잡기 어렵다. 컴퓨터나 인터넷을 접하면서, 블로그를 직접 해 보고, 온라인으로 물건을 사 보고, 전자결재를 손수 하면서, 손 끝의 느낌이 오고 몸 전체로 느낄 수 있다. 끊임없이 체험하는 터치(touch)를 경험하지 않고 이해할 수 없는 것이 하이테크의 세계다.

 

인력 양성이라면 의례 석박사에만 초점을 기울인다. 물론 고급 인력과 장기적 R&D는 필요하다. 그러나, 기업이 절실하게 바라는 인력은 현장 감각을 지닌 엔지니어고, 이들이 이 사회의 모든 실질적 문제의 해결사다. 엔지니어로서의 능력은 현장의 터치(touch)에서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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