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폰 vs 안드로이드, 스마트폰 전쟁 시작됐다

IT와 세상 2009/11/27 06:01

PC 전쟁이 재현되는 스마트폰 경쟁의 감상 포인트

벌써
20년이 다 되어가는 이야기다. 삼성전자에서 워크스테이션을 만드는 사업을 과감하게 추진하고 있었다. HP에서 기술을 사오는 조건으로 제휴가 이루어졌고 연구소에서는 고급 컴퓨터에 들어가는 기술 개발에 매진했다. PC 개발과는 차원이 달라서 도전 의식으로 하루 하루를 보냈던 기억이 난다.

 

ISV의 어플리케이션

아쉽게도 R&D(연구개발)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이 사업은 제대로 진행되지 않았다. 소프트웨어 때문이다. 컴퓨터 플랫폼에서 동작하는 수많은 애플리케이션을 개발하는 업체를 ISV(Independent Software Vendor)라고 한다. 하드웨어 성능이나 기능보다 중요한 것이 하나라도 더 ISV 를 유치해야 한다. 썬(Sun)이나 HP같이 잘 알려진 플랫폼이라면 모를까 알려지지 않은 플랫폼에 대해서는 ISV가 배짱으로 나온다. 웃돈을 얹어 주고라도 애플리케이션을 유치해야 하는 설움(?)을 톡톡하게 느낄 수 밖에 없다.

반도체 같은 부품 소재나 TV, VCR 같은 독립 완성품만 사업하던 입장에서는 엄청난 진입 장벽을 체험하는 계기가 되었다. PC는 호환 기종이라 소프트웨어를 걱정할 필요가 없었지만 (결국 그 수익의 대부분은 OS를 제공하는 마이크로소프트가 차지하지만), 신규 컴퓨터 사업은 소프트웨어 플랫폼에 대한 투자가 상상을 초월하게 된다.


스마트폰에서 벌어지는 애플리케이션 전쟁
 

그런데, 스마트폰 시장에서 비슷한 조짐을 보이고 있다. 애플의 아이폰(iPhone)을 시작으로 구글이 안드로이드(Android)로 모바일 플랫폼 시장을 정조준하고 있다. 모바일 통신 기기를 소프트웨어 산업으로 바꾸어 놓고 있다.

 

현재의 스마트폰 시장은 유럽을 중심으로 노키아(Nokia)가 주도하는 심비안(Symbian), 기업용에 주력하는 블랙베리(BlackBerry)가 선두층을 형성한다. 최근 아이폰(iPhone)이 무서운 기세로 성장해 윈도우모바일(WM)을 앞질렀다. (아래 그림 참조)


스마트폰 시장 점유율


불행히도 시장 점유율
1-3위 제품, 무려 80% 이상의 시장 점유율을 이루는 제품이 한국에서는 찾기가 어렵다. 최근 블랙베리가 서비스를 하고 있지만 사용자는 극히 드물다. 한국에 없다는 것은 사업 측면에서는 여러 모로 장애가 된다.

이를 테면 안철수연구소의 모바일 백신은 심비안, 윈도우모바일에 이어 블랙베리를 지원하고 있다. 해외 고객을 위해서다
한국에서 사용되지 않는 환경에서 제대로 검증하고 테스트하기가 어려움은 불 보듯 뻔하다. 기능 테스트만으로는 한계가 뚜렷하다. 사용자가 어떻게 사용하는지에 대한 세밀한 이해와 문화를 이해해야 한다. IT 강국을 자랑하는 한국에서 모바일 인터넷이 세계의 흐름과 거꾸로 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현장이다.

아이폰과 안드로이드의 양대 산맥으로 재편될 스마트폰

 

향후 스마트폰은 아이폰과 안드로이드폰의 양대 산맥으로 편성될 것으로 예측한다. 그렇게 판단하는 근거는 크게 두 가지다. 우선 안드로이드 속에 내장한 여러 기능의 잠재력이 놀랍고 참신하며, 최근 안드로이드를 채택하는 기업들이 급증하고 있기 때문이다. 윈도우모바일 진영에서는 반박을 하겠지만 '아이폰 vs 안드로이드'가 보편적으로 예상하는 시나리오다.

결국 애플은 자신들의 독보적 플랫폼과 자신들의 앱스토어로, 안드로이드는 오픈 플랫폼(다양한 단말기)과 다양한 어플리케이션 시장으로 승부할 것이다. 마치 80년대 PC 시장에서 매킨토시(Mac)와 윈텔(Win-Tel) 기반의 IBM 호환 기종 싸움의 재판(再版)을 보는 느낌이다.

스마트폰의 Application 경쟁 (http://www.billshrink.com/blog/)


PC
시장에서는 애플이 실패했다. 폐쇄적 정책을 고집했던 경영진의 실책과 변화에 게을렀던 애플의 기업 문화가 문제로 지적된다. 맥 운영 체제(Mac OS)는 정체되었고 개발자들의 사기는 저하되고 신제품은 본연의 혁신 정신을 상실했다.

그러나, 스티브 잡스가 컴백하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그가 애플에서 쫓겨나서 도전했던 넥스트(NeXT)의 기술을 접목해서 소프트웨어는 다시 힘을 얻었다. 오히려 엔터테인먼트라는 전혀 새로운 영역을 가져 와서 훌륭하게 접목했다. 애플은 구태여 시장 점유율 1위를 노릴 필요가 없다. 오히려 자신의 플랫폼 기반으로 충성도 높은 고객층을 구축하고 그곳에서 높은 수익률을 가져간다. 예를 들어 출판, 교육 시장에서 애플에 대한 충성도는 아주 높다.

IBM
기반의 제품을 취급하는 업체들은 낮은 마진을 울며 겨자 먹기로 나누어 가져야만 했다. 마이크로소프트를 제외하고는. 오픈성을 보이는 안드로이드도 IBM 호환 기종과 비슷한 형태로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 차이점은 구글이 안드로이드 자체에서 수익을 찾지 않는 개방적 사고를 유지하고 있어 마이크로소프트와는 다른 모습을 보일 것으로 생각한다.

IBM 호환기종

애플 매킨토시


IT의 표준 장악은 목숨을 건 전쟁


IT
는 고상한 전문직으로 비추어지지만 경쟁의 현장은 결코 그렇지 않다. IT의 발전사는 무협지를 방불케 하는 전쟁의 역사다. 시장에서 실질적 표준(De Factor Standard) 위치를 장악하기 위해 어떻게든 상대방을 죽이려고 혈안이 된다.  피아(彼我)가 뚜렷하며 우군을 확보하기 위해 돈을 쏟아붓는다.

PC
에서의 마이크로소프트와 애플, CPU에서 인텔과 모토롤라, 브라우저에서 넷스케이프와 익스플로러, 워크스테이션에서 Sun HP의 전쟁이 그러했다. 때로는 적과의 동침도 마다하지 않는다. 시장에서 점유율을 높이기 위한 전쟁과 더불어, 기술자들은 각종 표준 위원회와 컨퍼런스에서 회사를 대표해서 싸운다. 겉으로는 웃으면서 평화로운 것처럼 보이지만 틈만 나면 대놓고 상대방을 비난하곤 한다. 그렇기 때문에 회사에서 조직적으로 지원하는 것이다.

스마트폰의 플랫폼 전쟁은 이미 시작되었다. 기업들이 어디에 자원을 집중할까 하고 고민을 해야 하는 시점이다. 단지 이번 게임의 특징은 소프트웨어 업계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이다. 휴대폰 제조업체, 통신사업자, 소프트웨어 기업, 콘텐츠 제작 업체, 인터넷 서비스 기업이 한데 엉켜서 돌아가고 있다. 5-10년 뒤에 어떤 형태로 시장이 전개되어 있을까? 과연 독보적인 승자가 나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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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가 아이폰 출시를 환영하는 3가지 이유

CEO 칼럼 2009/11/25 11:47

미국 출장 중 비행기 옆 좌석에 앉은 미국인이 아이폰을 가지고 있었다.아이폰 사용하기 괜찮습니까?”고 묻자 모바일 기기로서 더 이상 바랄게 없다. 웹 검색, e-메일은 물론 이동 중에 구글맵을 활용하면 아주 편리하다. 모바일 환경에서 내가 원하는 것은 다 있다. 게다가 애플리케이션이 많아서 필요한 건 언제든지 구할 수 있다라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애플 제품과 아마존 킨들


마침 근처에 있는 외국인이 아마존의 킨들(Kindle)로 책을 보고 있어서 그 옆 자리에 있던 다른 분이 킨들이 어떠냐고 물으니, “책을 가지고 다닐 필요가 없어서 너무 좋다. 신문도 여기에서 볼 수 있다라며 킨들 예찬론을 편다.

안타깝게도 아이폰과 킨들
, 이 두 가지 모두 한국에서는 서비스가 되지 않는다. 적어도 현재로서는.. 아마존에서 킨들의 무선 인터넷 서비스를 전세계 고객을 대상으로 서비스한다고 10월에 발표했다. 그런데, Korea를 선택하면 죄송합니다. 킨들 콘텐츠를 한국에는 배달할 수 없습니”라고 나온다. 물론 안 되는 국가가 꽤 있다. 그렇지만 중국은 그렇다 치고 몽고, 베트남에서도 되는 서비스가 왜 한국에서는 안 될까?


아이폰의 출시를 환영하는 이유는
?

 

아이폰(iPhone)이 출시된다고 한다. 소프트웨어 업계의 CEO로서 적극 환영한다. 만시지탄(晩時之歎)이라고나 표현해야 할까? 왜 세계 곳곳에서 화제를 일으키면서 사용되는 제품을 우리 나라에서는 구경도 할 수 없는가? 나의 개인적 기호 때문이 아니다. IT에 종사하는 사람으로서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제품을 한국에서 사용해 볼 수도 없다는 상황이 가슴 아프다.

 

IT의 키워드는 개방과 글로벌성이다. 그런데, 많은 블로그에서 지적되고 있듯이 한국은 IT의 갈라파고스가 되고 있다. 이웃 나라 중국의 경우와 비교하는 것은 적합하지 않다. 중국은 미국과 여러 면에서 힘겨루기를 하고 있고 정치적 문제 때문에 개방에 한계가 있다.

 

반면에 우리는 자원이 부족한 탓에 수출을 해야 하는 작은 나라다. 산업의 기반은 하드웨어지만 IT를 접목해서 부가 가치를 창출해야 한다. IT 강국이라고 스스로 자처하는 나라는 우리 밖에 없다. 그런데, 문을 걸어 잠그고 우리끼리만 잘 하자는 것은 우리에게 적합한 방향이 아니다.

 

아이폰이 우리 나라 문화와 맞지 않다느니, 소비자들이 익숙하지 않다느니 하며 부정적 목소리가 크다. 그러나, 그것은 소비자가 선택할 문제이지 업계나 언론, 정부가 결정할 문제가 아니다. 일단 선택권이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가 중요하다.

 

아이폰의 사업 구조


현재 IT 업계에서 탁월한 리더로서 가장 존경받고 있는 CEO는 스티브 잡스(Steve Jobs). 그가 만든 아이팟(iPod)은 음악 분야의 콘텐츠 플랫폼을 장악했으며, 더 나아가 아이폰은 스마트폰 산업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그런 선구자적 마인드와 도전 정신 때문에 찬사를 받고 있는 것이다.

아이폰의 사용 편의성과 새로운 패러다임의 변화

아이폰은 손 끝 하나로 인터넷의 콘텐츠와 서비스를 바로 접속하는 개념을 구현했다. 이러한 독창적 포지셔닝으로 이동통신사가 영향력을 좌우하는 휴대폰 시장의 권력 구도를 바꾸어 놓았다
. 어느 통신사가 전화가 잘 터지느냐보다 내가 원하는 서비스와 콘텐츠를 이용할 수 있는 사용 편의성이 더 중요하다는 얘기다. 아이폰은 최초로 휴대폰 회사가 이통사로부터 돈을 받는 사업 모델을 만들었다.
 
아이폰을 휴대폰에 단순히 부가 기능이 더해진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면 새로운 패러다임 변화의 핵심을 놓치고 있는 것이다. 아이폰의 사상(philosophy)은 다양한 애플리케이션(Application)과 콘텐츠가 공급될 수 있는 플랫폼이다. 오히려 모바일 통신은 소프트웨어의 부가 기능으로 활용될 뿐이다. 이를 바탕으로 기하급수적으로 급증하는 어플리케이션과 콘텐츠는 실시간으로 전세계 사용자들에게 선보이고 있다.

앱스토어(AppStore)가 출시되면서 아이폰 단말기가 급증하는 통계는 아이폰의 개념이 통하고 있음을 입증하고 있다 (그림 참조). 기존에 휴대 전화와 통신 서비스만이 주연으로 간주되던 통신 사업이었다. 이를 소프트웨어 플랫폼으로 관통해서 중심축을 옮긴 것이 아이폰의 핵심이다. 이러한 통찰력은 스마트폰 산업에 불을 당겼다.

출처:산은경제연구소

출처:LG경제연구소

 

아이폰이 스마트폰 시장에서 독보적이 될지, 단지 한 시대를 풍미한 히트 상품에 머무를지는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 그러나, 이미 아이폰의 혁신성과 창의력, 그리고 통찰력은 충분히 가치를 인정 받을 만하다. 국내에서 출시되고 있는 휴대폰들이 터치 스크린, 아이콘 레이아웃(lay out), 스크린 키 입력방식에서 아이폰을 모방하고 있다. MP3 음악을 취급하는 서비스도 아이튠스(iTunes)와 흡사하다. 이는 누가 창조하고 누가 모방하는지, 누가 이 시대의 리더 역할을 하고 있는지를 극명하게 보여 준다. 매년 스티브 잡스의 메시지에 귀를 기울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소프트웨어 산업으로 변모하는 이동 전화 시장

스마트폰의 핵심은 소프트웨어다. 아이폰의 영향으로 스마트폰 관련 기업들이 앱스토어(AppStore)를 통해 소프트웨어와 콘텐츠가 소통되는 플랫폼을 구성하기 시작했다. 이는 소프트웨어 인력들에게는 희소식이 아닐 수 없다.

왜나 하면, 창의적인 아이디어와 기술력만 갖추면 전세계를 상대로 비즈니스를 할 기회가 생기기 때문이다
. 별도의 유통 채널도 필요 없다. 앱스토어(AppStore)에서 사용자의 눈길을 사로 잡으면 된다. 패기에 찬 젊은 소프트웨어 인력들이 해외에서 많은 기회를 창출할 수 있는 기회다. 대기업의 눈치를 볼 필요도 없고 정부 정책을 기다려야 할 이유도 없다.

 

그래서, 나는 아이폰의 도입을 환영한다. 우리 소프트웨어와 콘텐츠 인력들이 자신의 아이디어를 접목해 갈 수 있도록 많은 글로벌 환경과 플랫폼이 제공되어야 한다. 직접 만져보고 체험해 보아야 아이디어가 나올 것 아닌가? 해외에서 나온 서비스나 제품을 베껴서 한국에 장사하기 보다 한국적인 서비스를 창출해 내어야 한다. 그런 소프트웨어를 가지고 세계로 뻗어가야 한다.

일부 대기업이 정보와 자원을 독점해서 해외 사업을 주도하던 시대는 끝나고 있다. 이와 같이 개방적이고 세계인들과 호흡하는 비즈니스 플랫폼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진정한 일자리는 창의력과 기술력으로 창출된다. 진취적인 아이디어로 세계에서 인정받는 소프트웨어가 많이 나오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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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랩 CEO로서 신사옥 착공이 갖는 의미는?

CEO 칼럼 2009/11/22 07:14

안철수연구소의 CEO가 되고 나서 크고 작은 각종 프로젝트와 사업에 관여하게 되었다. 그 중에서 전혀 다른 분야가 있었으니 판교에 사옥을 만드는 프로젝트다. 한평생 IT에 종사했던 나로서는 모든 내용이 생소했다. 건설업계는 IT와는 분야도 완전히 다르지 않은가? 게다가 IT 기업으로서 거래되던 규모와는 차원이 다른 자금이 동원된다.

 

공사장 전경 (1)

공사장 전경 (2)

이미 부지 선정에서 기초 작업들은 잘 준비되어 있었다. 그렇다 하더라도 나의 CEO 임기 중에 조감도 확정, 시공사 선정, 착공에서 실제 건설이 모두 이루어져야 한다. 건물을 완공하고 들어섰을 때에 이 건물에 입주하는 직원은 물론 방문하는 분들이 이 건물에 대해 어떤 인상을 가지게 될까 하는 생각을 하면 많은 부담과 책임감을 가지게 된다. 나의 인생에 있어 예상하지 않았던 작품 중의 하나가 되는 것이다.

사옥 내역을 설명하는 장면

현관의 대리석, 천장 및 바닥재, 레이아웃 등 크고 작은 결정을 앞에 놓고서 아무래도 공부를 해야 하겠다는 생각에 아예 날을 잡아서 벤치마킹할만한 건물들을 돌아다녀 보았다. 평소에 많은 건물을 드나들었지만 사옥을 짓는다는 생각에서 전혀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니 각 건물들의 철학과 가치를 느낄 수 있었다.

여러 건물을 돌아 다니다 보니 의외로 서울 시내에 진정한 사옥으로 설계한 건물이 별로 없다는 실상을 깨달았다
. 부동산이나 임대 수입에 목적을 둔 건물은 사옥과 판이하게 달랐다. 우리의 사옥은 직원들이 사용할 공간이다. 또한 우리 회사는 연구소가 주축이고 24시간 깨어 있어야 하는 장소다. 그래서 직원들이 일하기 좋은 환경, 안철수연구소가 오랜 기간 자리 잡을 장소를 만드는 것이 최우선 목표가 되었다. 일단 그렇게 원칙을 세우고 나니 의외로 많은 결정들은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공정성과 투명성에 원칙을 둔 선정 과정

안철수 의장과 쏠리테크 사장과의 환담

7.7
디도스 대란으로 정신 없이 바쁘게 뛰던 7월 달에 최종 시공자를 결정했다. 건설 규모가 대형빌딩에 비해 그다지 크지 않다고 스스로 생각하고 있었음에도 의외로 많은 건설사가 적극적으로 참여해서 치열한 경쟁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안철수연구소의 브랜드 가치와 현금 안정성 때문에 수익을 떠나서 의미가 크다는 얘기를 공공연하게 한다.

어떻게 보면 영업적 멘트일 수도 있고 경제가 안 좋은 상황이라 더 그럴 수도 있다. 어쨌든 수주전이 치열하다 보니 부담도 되었고 또다른 시험이라는 판단에서 중심을 잡아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일단 최우선 원칙을
투명하고 공정한 선정 과정에 두었다. 안철수연구소의 이름을 걸고 깨끗한 선례를 만들겠다는 목표를 설정했다.

어느 탈락한 기업으로부터
떨어지기는 했지만 과정이 워낙 깨끗해서 기분이 찝찝하지 않다라는 얘기를 전해 듣고 나서, 소기의 목적은 이루었다고 자부심을 가진다. 영업을 위해 여러 채널을 동원해서 우리 회사에 접근하다가 오히려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는 얘기가 공공연하게 건설업계에 떠돌았다고 한다. 그래서, 선정 과정이 투명하고 공정해야 실력에 초점을 맞출 수가 있었다. 시작이 깨끗해야 그 다음에 후탈이 없게 된다.

 

안철수연구소 신사옥을 짓는 첫 삽을 뜨면서

드디어 지난 주에 착공식이 있었다
. 땅을 둘러보면서 아 이 곳에 우리의 둥지를 트겠구나하는 생각에 가슴이 벅차 올랐다. 착공식이라는 행사에 처음 간 나로서는 모든 것이 생소했다. 테이프 커팅, 시삽을 하면서 바로 옆에 서 계신 안철수 의장이 많은 행사에 가 보았지만 우리가 주인인 것은 처음이네요라며 감회에 젖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테이프커팅

시삽


‘벤처 기업이라는 말이 나오기도 전인 시절, 서초의 작은 사무실에서의 3명의 출발은 무모한 도전이었습니다. 당시 외부 환경은 마치 지금 이곳처럼 춥고 메마른 바람이 부는 황량한 벌판과도 같았습니다. 그렇게 불모지와 다른 없는 척박한 환경에서 불확실한 미래의 위험을 안고 첫 발을 내딛은 안철수연구소가 성공과 도약을 거듭해 오늘 자신의 사옥을 짓게 되었습니다고 과거를 잠시 회상한 뒤 이 사옥은 글로벌 기업으로서 도약하는 안철수연구소의 모태가 될 것이라는 의지를 천명하면서 연설을 마쳤다.
(연설 전문 http://blog.ahnlab.com/ahnlab/736)

마침 추운 날씨에도 많은 직원들이 참석해서 높은 관심을 나타냈다. 사실 여의도에서 판교로 움직이게 되면 삶의 공간을 옮겨야 할 직원들이 많다. 그런 점에서 단순히 사무실을 이동하는 그런 단순한 문제가 아니라 임직원의 가족까지 관련된 2년 프로젝트다.


판교 테크노밸리의 랜드마크가 되기를 기대하며

많은 기업들이 사옥에 입주하면서 운명이 두 갈래로 바뀐다고 한다. 도약의 발판을 마련해서 비상(飛上)하거나 무리한 자금 동원과 초점을 잃은 사업으로 추락한다고 한다. 안철수연구소는 부동산이나 원칙에 어긋는 사업은 아예 고려하지 않을 것이므로 후자가 될 가능성은 적다. 그러나, 신사옥에 둥지를 틀어서 도약하기 위해서는 더욱 각고(刻苦)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직원들과 함께


작년에 CEO가 되고 나서 금년도에 많은 씨를 뿌리기 시작했다. 앞으로 3-5년 내에 많은 신사업과 프로젝트의 결실을 기대하고 있다. 신사옥에 입주하는 2년 뒤에는 가시적인 부분이 구체화된다. 그런 점에서 판교 신사옥은 안철수연구소의 성장 발판을 다지는 시점과 같은 시대를 걷게 된다. 다시 한번 경영에 대한 의지를 불태우게 된다.

이 건물이 안철수연구소의 마지막 건물이 아닌 첫 건물이 되었으면 좋겠네요”라는 설립자 안철수 박사의 기대감은 CEO인 나의 목표이자 우리 임직원들의 목표이기도 하다. 안철수연구소의 새로운 모멘텀인 판교 신사옥의 주춧돌을 놓는 소임을 담당하게 된 것도 나에게는 큰 행운이다. 이 사옥이 판교 테크노밸리의 랜드마크가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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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대학도서관 개방시간이 줄어든 까닭?

Global View 2009/11/18 06:43

캘리포니아에서 어떤 이와 환담을 하던 중 들은 얘기다. 캘리포니아 주정부가 비용을 줄이기 위한 방안 중의 하나로 주립대학의 도서관 시간을 제한하기로 했다고 한다. 전기 요금을 절약하기 위해 24시간 개방하던 도서관을 밤 시간에는 문을 닫는다고 한다. 순간 도서관은 대학의 심장과 같은 곳인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 대학도서관 전경 (pusannews.ac.kr)

대학 캠퍼스에서 도서관은 꽃이며 등불이다. 불야성을 이룬 도서관은 진리 탐구가 이루어지고 미래의 꿈을 키워가는 산실이다. 대학은 24시간 개방되어야 하며 그 중심에는 도서관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도서관이 지나치게 시험 공부나 고시 준비에 치우친 감도 없지 않다. 세계 어느 대학이고 시험 때가 되면 도서관이 가장 붐비기 마련이다. 아무리 그렇다 하더라도 도서관만큼 공부와 학문이라는 대학 본연의 모습을 가장 잘 나타내고 있는 장소는 없다.

 

대학 시절 새벽같이 가서 도서관 문을 열기 전에 가방을 쭉 세워놓고 기다렸던 기억이 난다. 도서관이 아침 6시에 열기 때문에 벌어진 진풍경이다. 좋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더 나아가 친구들을 위한 근처 자리를 확보하기 위해 경쟁은 치열했다. 도서관 문이 열리자 말자 가방과 책 몇 개를 들고 뛰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책을 여기 저기 던져서 자리를 일단 맡고 보자는 좌석 쟁탈전은 지나치기까지 했다.

 

당시 도서관은 책을 빌리는 곳이 아니라 조용히 공부를 할 수 있는 독서실의 성격이 더 강했다. 정작 책을 신청하려면 카드를 작성해서 오래 기다려야만 했다. 요즈음은 대학 도서관이 어떤지 잘 모르겠지만 예전보다 훨씬 자유로운 분위기가 아닐까 생각한다. (내가 대학 시절에는 도서관이 데모의 무대로 사용되곤 해서 제약을 받기도 했다).


책 냄새 속에서 삶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도서관


미국에 유학을 가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곳이 도서관이었다
. 도서관이 여러 개가 있을 뿐더러 서고의 틈에 여기 저기 놓여진 테이블에서 책냄새를 맡으면서 공부하는 것은 색다른 맛이 있었다. 원하는 책을 언제든지 찾아 볼 수 있는 즐거움은 학문의 자유로움(freedom)을 느끼게 했다. 어떤 때는 나이 많으신 교수님과 같은 테이블에 앉기도 했다. 한국에서 교수님을 도서관에서 본 적이 전혀 없었던 나로서는 색다른 경험이었다.

뉴욕의 자랑인 공공 도서관

미국 작은 시의 한 공공도서관

 

동네마다 있는 공공 도서관은 미국 사회가 자랑하는 아름다운 풍경이다. 한국에서도 '공공 도서관을 짓자'는 운동이 벌어졌었던 적이 있는데, 도서관은 그 동네의 숨결같은 존재다. 미국 회사에 근무하던 시절 우리 아이들의 책은 주로 도서관에서 빌렸다. 손수 구매해서 소유한 책은 상당히 적다. 아이들 책을 빌리러 갔다가 가족이 같이 앉아서 이런 저런 책을 보던 시절은 지금도 행복한 추억으로 남아 있다. 마치 엄마의 품처럼 포근함이 느껴졌다.

 

내가 앞서 캘리포니아에서 만난 분에게 도서관을 낮에만 연다는 것은 문제가 있지 않나요? 아무리 기숙사에 공부할 공간이 있더라도 도서관은 대학의 심장과 같은 곳인데..”, 그러자 그 분은 아놀드(배우 출신캘리포니아 주지사인 아놀드 슈워제네거를 지칭)에게 물어 보세요. 저도 답답합니다.” 마침 캘리포니아 주립 대학에서 도서관의 24시간 개방을 요구하는 데모도 있었다는 뉴스를 접했다. (도서관 개방 요구 데모 뉴스)


경제가 어렵고 삭막해져가고 있다. 그런 가운데 테크놀러지의 발달로 도서관의 모습도 바뀌어야 한다고 한다. 전자책(eBook)이 책을 대체하게 되고 사이버 공간에서 학습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아무리 인터넷이 발달하더라도 책과 도서관이라는 아날로그 공간을 100% 대체할 수는 없다. 나도 아마존의 킨들(Kindle)을 애용하고 있지만 책을 보완하는 것이지 완전히 대체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아날로그 세대에서 자라난 나의 지나친 향수일지 모른다. 그러나, 도서관은 생각을 정리하고 책 속에 빠져들게 하는 마력을 지니고 있다. 인터넷에서 얻는 지식과는 차원이 다르다. 특히 진리 탐구를 위한 대학에서의 도서관은 진리의 박동을 뿜어 내는 심장이다. 우리 나라에서는 도서관을 단순 비용으로 생각하지 않았으면 한다.
 

미국에서 '어메이징' 한국 칭찬 받아보니

Global View 2009/11/15 09:52

필라델피아의 날씨는 을씨년스러웠다. 6년 전 왔을 때에도 그랬던 것 같다. 경기가 안 좋아서인지 거리의 표정도 밝지는 않아 보인다. 나의 지나친 느낌일까? 그래도 미국 역사의 시작이 이루어졌고 정가의 중심인 지역이라 그런지 정장을 한 사람들을 많이 보게 된다.

 

솔직히 이번 출장에는 기대보다는 걱정이 앞섰다. 비록 파트너 사와 오랜 기간 제품 평가에 이은 협상 과정을 진행하고 있었지만 미국이라는 시장이 그렇게 만만치 않다는 점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미국 기업 중에는 말만 앞서고 신뢰하지 못할 기업들도 많다.


IT 본고장에서의 조심스런 시장 접근
 

파트너 서명식 현장

8월에 미국에서 시장 진입을 발표하자 많은 이들이 우려를 표시했다. 우리가 어떻게 거대 업체들을 상대로 IT의 본고장에서 승부하려고 한다는 것인가? 당시 나는 틈새 시장(niche market)을  중심으로 조심스럽게 접근하겠다고 분명히 밝혔다. 이미 몇 개의 파트너 사와 심도 있는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그 중 하나는 캘리포니아를 기반으로 개인 고객 중심의 판매망을 가진 양판점으로 10월에 본격적인 영업 활동이 시작되었다.

또 다른 하나가 동부에서 공공 시장을 상대로 보안 서비스를 제공하는 전문 업체인 사이버소프트였다
. 이번 출장의 주요 목적은 이 회사와의 계약을 마무리하는 것이었다. 

경제적 불황기에는 정부가 가장 안정적인 고객이다. 특히 사이버 보안은 늦출 수 없는 분야라서 오바마 정부가 들어선 이후 예산이 늘었다고 한다. 부시 정부에서도 사이버 보안은 우선 순위가 높았지만 워낙 전쟁 비용에 돈이 많이 들어가다 보니 예산이 부족했다고 한다.


신뢰 구축은 글로벌 사업의 기반 


나는 글로벌 사업에서 터놓는 대화로 신뢰를 구축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 그래서, 비록 나로서는 처음 방문이었지만 이 회사를 더 잘 이해하기 위해 CEO 및 임원들과 저녁 늦게까지 하루 종일 대화를 나누었다. 사업적인 얘기부터 회사의 성장 과정, 사업 전략, 시장의 요구 사항은 물론 개인적인 얘기까지 오고 갔다. 20년 가까이 보안을 가지고 정부를 상대로 한 경험은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고객의 애로 사항과 원하는 것을 생생하게 들을 수 있었다.

 

실제의 사이버 위협 상황과 보안 업체들의 동향에 대한 정보도 값진 성과였다. 확실히 직접 필드를 뛰는 사람들의 얘기는 생생하다. 비록 작은 기업이지만 기술적 전문성과 보안에 대한 애착과 진지함을 가진 모습을 보면서 현란한 세일즈 언어로 무장한 전형적인 미국의 기업과는 다른 느낌을 가진다. 서로 간의 진정성과 철학이 비슷함을 공감할 수 있었다.

 

사업의 결과에 대해서 속단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좋은 팀웍으로 재미있게 같이 일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의지가 있어야 설사 어려움에 부닥치더라도 같이 극복해 갈 수 있기 때문이다. 


로펌에서의 조촐한 서명 행사
 

계약서 서명 행사는 법률 사무소(law firm)에서 이루어졌다. 나는 공증이 필요해서 다운타운까지 가야 하나 보다 했다. 그런데, 법률 사무소에 들어서니 우리를 위한 조촐한 파티가 준비되어 있었다. 나름대로 지역의 유력 지도자들이 모여 들었다. 이런 모임이 우리의 파트너쉽을 공표하면서 인지도를 높이기 위한 효율적 수단이라고 귀띔한다.


VIP와 함께

리셉션에서 환담하는 모습


참석한 사람 중에는 주 상원의원(Anthony Williams), 대표 변호사들, 언론사 오너, 기업 CEO, 대기업 임원, 정치인 참모, 대학 교수 등 다양했다. 적은 인원이지만 오피니언 리더와 지역의 유지, 잠재 고객이 모두 어우러져 네트워킹이 되는 자리다. 서로 간에는 이미 오래 알고 지낸 사이로 보였다.

이날의 주인공은 단연 우리였고 주 상원의원의 축사에 이어 나도 스피치를 요청받았다. 무엇을 얘기할까 고민하던 중 보안은 신뢰와 관계를 바탕으로 합니다. 안철수연구소는 단순히 제품을 팔고 돈을 받아가는 벤더가 아닙니다. 15년 간 고객과의 소통하는 채널이 우리의 사업의 존재 근거이고 고객의 신뢰가 우리 사업의 철학입니다. 미국에서도 그런 정신을 이어갈 겁니다라는 주제로 몇 마디 얘기했다.


연설을 경청하는 모습

주 상원의원의 축사

연설하는 모습


한국을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들

여러 사람들과 얘기를 하면서 한국 업체에 대한 불신이 별로 없고 오히려 기대하는 모습을 느낄 수 있었다. 단순히 내가 한국인이기 때문에 치켜 세우는 것은 아니었다. 법률 사무소의 대표 변호사 중의 한 분은(Harris Baum) 한국을 광적으로 좋아한다. 그의 사무실에 들어가니 한국 국기가 놓여 있었다. 한국인들의 밝고 친절한 모습이 너무나도 좋다고 한다. 50대의 나이에 태권도 검은 벨트를 땄다

정치의 본고장답게 펜실베니아를 중심으로 한 이곳 지역에서 80만부 가량이 배포되는 'The Public Record'라는 정치 전문 신문이 있다.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며 정치적 영향력이 크다고 한다. 이 언론사의
 회장은 자신이 6.25 당시 직접 목격한 한국의 모습을 얘기하면서 한국의 발전상이 “어메이징(Amazing)”하다면서 방문할 때마다 놀라고 자랑스럽다고 한다. (이 신문은 우리 기사를 1면에 다루어서 우리에게도 큰 홍보 효과가 되었다.)

'The Public Record' 1면에 실린 모습

양사의 협력을 기대하는 기사


IT를 통해 빠르게 도약한 한국에서 배워야 한다는 분위기도 있었다. 오히려 말로만 고객을 위한다고 하면서 이익만 추구하는 미국의 IT 기업들에 대해서 실망해 하는 얘기들도 나왔다. 몇 년 전에는 전혀 인정하지 않던 한국의 IT가 이제는 미국에서도 호기심으로 바라보고 있다. 서비스 품질(quality of service)이 관건이라는 점에는 의견이 일치했다.

한국의 음식에 대해서도 모두들 잘 알고 있었고 문화와 역사에 대해서도 많은 질문을 받았다. 한편 나는 미국 역사가 시작한 필라델피아와 동부의 지역 문화 및 역사에 대해 들을 수 있었다. 글로벌 사업의 묘미는 이런 재미에 있다. 서로 간의 다른 문화와 성격을 깨달으면서 이해해 가야 진정한 사업이 이루어지기 마련이다.

 

2010년은 이번 파트너쉽의 시험대가 될 것이다. 무거운 숙제를 안고 오면서 부담감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그러나, 새로운 사업 개척에 대한 즐거움 속에 피곤함이 힘들지만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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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프트웨어는 비용이 아니고 가치다 - SW 인력 시리즈 2

IT와 세상 2009/11/12 07:36

"소프트웨어는 비용(cost)이 아니고 가치(value)다"

 

국내 대기업에 근무할 당시 컴퓨터 사업에 관여했다. 컴퓨터 제품이다 보니 연구개발(R&D) 부서에는 소프트웨어 개발자가 하드웨어 인력보다 더 많았다. 그런데, 그 곳에서 오래 근무한 소프트웨어 개발자들의 바람은 매우 단순했다. ! 메인(Main) 프로그램 한번 만들어 보고, 직접 설계해 봤으면…” 메인 모듈은 전체 소프트웨어의 중심이 되는 프로그램이다. 건물에 비유하면 기초 공사를 정의하고 중심 기둥을 놓는 것과 같다. 그러면, 메인 프로그램을 만들 기회가 없는 것일까?

 

하드웨어 사업의 초점은 하드웨어 박스 자체이다. 제품 기획은 하드웨어 사양(specification)을 정하는 게 대부분이었다. CPU 채택, 메모리 용량, 목표 성능, I/O 포트 숫자, 외장 기구 형태, MTBF 등등. 나도 전자공학을 전공한 사람으로서 이런 기술이 개발하기 어렵고 중요하다는 것을 잘 안다. 하드웨어가 제대로 동작하지 않으면 얼마나 난감한가? 그러나 궁극적으로 사용자가 진정 원하는 것이 이 박스 자체일까?

 

새로운 하드웨어가 정의되면 소프트웨어 개발자의 업무는 라이센스된 시스템 소프트웨어를 활용해서 개발된 하드웨어를 구동할 소프트웨어, 디바이스 드라이버(Device Driver)를 만들고 튜닝(tuning)하는 게 대부분의 일이었다. 그래서 소프트웨어는 개발이 아니라 포팅(porting)이라고 불렀다. 한 마디로 하드웨어 스펙이 먼저 정해진 다음, 그 하드웨어에서 어떤 소프트웨어가 동작할지 찾는 게 일이었다.


컴퓨터를 구매하는 기준은?
 

그러나, 컴퓨터를 구매할 때 중요한 기준 중의 하나는 내가 원하는 소프트웨어가 돌아가느냐이다. 아무리 멋있고 내구성이 좋은 제품이라 하더라도 소프트웨어가 없으면 왜 사용하겠는가? 당연히 소프트웨어를 판매하는 유통업체(ISV; Independent Software Vendor)들은 잘 알려진 플랫폼을 선호할 수밖에 없다.

MS-DOS

Sun Micro의 워크스테이션


초창기 PC의 운영체제(OS) 플랫폼은 마이크로소프트가, 워크스테이션 분야에서는 썬마이크로시스템즈가 오픈 컴퓨팅 환경을 통해 수많은 응용 소프트웨어가 돌아가게 하는데 주력했다. 마이크로소프트와 선마이크로가 독보적 위치를 가지진 것이 제품의 성능과 스펙 때문이었는가? 그 플랫폼에서 사용가능한 소프트웨어의 양과 질에 의해 승부가 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와 같이 미국 기업들이 IT를 이끌게 된 비결은 OS와 소프트웨어의 플랫폼을 장악해 왔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나 대만에서 PC나 서버의 호환 기종의 하드웨어를 만드는 데만 급급한 사이에 실익은 소프트웨어가 챙기고 있었던 것이다. 현재 스마트폰의 플랫폼을 아이폰(iPhone), 안드로이드(Android) 가 장악해 가고 있는 현실은 PC 플랫폼 전쟁의 재판()이다.


각종 기기에서 커지는 소프트웨어의 역할

소프트웨어가 중요해지는 각종 제품들

이제 소프트웨어는 범용 컴퓨터뿐 아니라 정보 기기, 통신 시스템, 가전 제품에도 들어간다. 이런 장비에 들어가는 소프트웨어는 일반 컴퓨터용 소프트웨어와 완전히 다를까? 최근 이런 제품에 들어가는 소프트웨어는 웬만한 컴퓨터에서 사용되는 수준과 맞먹는다. 임베디드 시스템이라고 불리는 시스템 소프트웨어의 구조는  대동소이하다.

관건은 얼마나 소프트웨어를 잘 설계하고 사용해서 소프트웨어 원가를 줄이고 전체 제품의 이익률을 높이느냐에 달려있다
. 그런데, 하드웨어 사업만 영위해 온 이들은 소프트웨어 개발을 하드웨어 원가에 들어가는 비용 정도로만 산정한다. 비용의 항목은 투입된 인건비와 개발 장비다. 결국 창의력과 고급 전문성이 필요한 지식 산업을 시간당 계산하는 노동 집약적 산업으로 격하시킨 꼴이다. 게다가 소프트웨어의 기본 사상과 특성을 모르고 있다. 이를 테면,


  • 소프트웨어의 장점은 재사용(reuse)에 있다. 여러 장비에 걸쳐서 비슷한 기술을 사용하면, 필요한 부분을 패키지화해서 적절히 재사용함으로써 원가를 몇 분의 일로 절감할 수 있다. 더욱이 검증된 코드를 재사용할 경우 품질 수준도 크게 높일 수 있다. 
  • 소프트웨어는 하드웨어 제품의 품격을 높인다. 사용자가 결국 사용하는 것은 콘텐츠와 소프트웨어다. 제품의 디자인이 예쁘고 가격이 싼 것도 중요하지만, 융합 즉 컨버전스 시대에는 개인 위주로 서비스가 특화(personalized service)되기 마련이다. 이 모두가 혁신적인 아이디어의 소프트웨어가 결정한다.

 

시대가 바뀌었다 - 하드웨어 마인드에 젖어 있는 경영 방식

대기업에서 같이 근무했던 후배를 만난 적이 있다
. 그 기업에서 여전히 소프트웨어 개발을 담당하던 그는 이제는 소프트웨어 개발 환경은 좀 달라졌지?”라는 질문에 고개를 저었다. 여전히 소프트웨어 개발은 하드웨어의 로드맵 이후에 고려된다는 것이다. 그는 “경영진에서는 소프트웨어의 특성을 모르기 때문에 실적은 하드웨어 제품을 얼마나 팔았느냐에만 연연한다.”라고 푸념했다.

그러고 보니, 외람된 얘기지만 대기업 고위층에서 소프트웨어에 대한 통찰력을 가진 분을 찾기가 힘들다. 여전히 하드웨어 박스를 만드는 데 주력하고 있다. 심지어는 동일한 시스템 소프트웨어를 사용하는데, 하드웨어 사업 부문별로 별도의 소프트웨어 개발을 하고 있다고 한다. 재사용(reuse)이라는 소프트웨어의 사상을 전혀 모르니 소프트웨어가 가치(value) 창출이 아닌 단순 비용(cost) 처리가 되고 있는 것이다.

 

생각이 바뀌는 데는 시간이 걸리게 마련이다. 몇 십 년을 고수해온 사업 방식을 바꾼다는 게 쉬운 일인가? 아무리 애플, 구글의 스토리를 책이나 강의로 접해도 직접 체험하지 않는 한 사용자에게 미묘한 변화를 일으키는 소프트웨어의 특성을 이해하기란 어렵다.

그러나 안타까운 것은 세상은 급변하고
, 이런 생각을 바꾸지 않는다면 차별화라는 기업의 영원한 숙제를 해결할 수 없다. 차별화를 해야 지속적으로 성장하고 수익률을 높일 수 있다. 하드웨어 원가 절감으로는 한계가 뚜렷하다. 당연히 수익을 높이는 소프트웨어와 창의적 서비스로 중심축을 옮겨야 한다.

(아이뉴스24에 기고한 칼럼을 보완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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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프트웨어는 조연이 아니라 주연이다 - SW 인력 시리즈 1

IT와 세상 2009/11/09 12:01

우리 나라 IT에서 가장 심각한 문제는 소프트웨어가 제 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는 점이다. 특히 소프트웨어 인력은 적지 않은 숫자임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인정을 못 받고 있는 가슴 아픈 현실이다.  물론 근본적으로는 전반적인 이공계 기피현상에 기인한 것이지만 이를 여기서 논한다면 너무 큰 주제로 확대되므로 일단 소프트웨어에 국한해서 논의를 전개해 보기로 한다.

 

첫째, 소프트웨어가 단순한 기능으로서 조연 혹은 단역의 역할에 머물고 있다.

 

2000년도 가트너(Gartner Conference)에서 썬 마이크로시스템즈(Sun Microsystems)의 창업자인 스콧 맥닐리 회장이 소프트웨어는 기능이지 산업이 아니다(Software is a feature, not an industry)라는 말을 해서 크게 화제가 되었다. 평소 맥닐리 회장을 존경했던 나는 현장에서 그 말을 듣고서 깜짝 놀랐다.

스콧 맥닐리와 스티브 발머 (마이크로소프트 홈페이지)


아니, JAVA라는 혁신적인 방향성을 제창한 회사의 CEO가 저런 말을 하다니?” 도대체 믿어지지가 않았다. 아니나 다를까 다음날 마이크로소프트의 스티브 발머 (Steve Balmer) 회장이 내 생애에 그런 바보같은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the most absurd thing I’ve heard in my life). 비즈니스의 모든 업무는 소프트웨어다. ERP, 데이터베이스, 워드프로세서 등 모두가 소프트웨어 아닌가? 소프트웨어는 미래다(Software is the future)!!라며 큰 소리로 반박하던 광경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결국 썬 마이크로시스템즈는 소프트웨어 기업인 오라클에 인수되는 운명이 되었다. 당시 썬 마이크로시스템즈가 마이크로소프트의 독점 행위를 놓고 선봉에 서서 싸우던 입장이었기에, 다소 감정적인 어조로 튀어나온 발언이라고 생각은 든다. 그래도 너무 지나쳤다는 생각이 들었다.

 

컴퓨터를 만들어 보던 학부 시절

 

전자공학을 전공하던 학부 시절에 컴퓨터를 만드는 실험을 한 적이 있다. 지금부터 약 25년 전이니 지금의 시대에서 바라보면 영락없는 구석기 시대다. 여러 명이 씨름해서 마이크로프로세서, 메모리, I/O를 여러 개의 보드로 구성해 봐야 겨우 286보다도 못한 성능의 컴퓨터를 만들 수 있었다. 당시 키보드를 누르면 모니터에 글자가 나오는 것을 보고 신기해 했던 기억이 난다.

 

컴퓨터 내부

그런데, 과제로 주어진 어떤 기능을 보여주려고 하니 도저히 하드웨어만으로는 안 되었다. 그래서, 조교에게 하드웨어 스펙을 아무리 봐도 그대로는 잘 안 되는데 어떻게 할까요?” 하고 물었다.

그러자 그 조교는 소프트웨어로 처리해도 통과시켜 주겠다라며 인정해 준 적이 있다. 구태여 오래 전 얘기를 꺼내는 이유는 하드웨어를 만드는 사람의 눈에는 소프트웨어가 이렇게 보조적 요소로 보인다는 점을 설명하기 위해서다.

그 당시는 소프트웨어를 제대로 돌릴 만한 하드웨어가 절대적으로 함량 미달이었다
. CPU 파워로 보나 메모리 용량, 각종 부품의 가격을 봐서 컴퓨터를 일반인이 만든다는 것은 언감생심이다. 그러니 일단 가동할 수 있는 하드웨어를 만드는 게 최우선 목표였다.

그에 비하면 지금은 하드웨어만 보면 가히 자유로움(freedom)을 만끽하는 세상이다. 무어(Moore)의 법칙은 메모리에만 적용되는 게 아니다. 하드웨어의 성능, 용량은 급증한 반면 가격은 급속도로 떨어졌다. 하드웨어의 걱정을 덜게 되니 소프트웨어로 무엇을 만들어야 좋을까하는 관점으로 중심이 이동했다. 이제 하드웨어는 소프트웨어를 실현시켜주는 가능자 정도가 되었다. 한 마디로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의 위상이 뒤바뀐 것이다.

 

아이폰의 꿈과 사상은 소프트웨어로 이루어져..

 

애플(Apple)의 아이폰(iPhone)이 좋은 예다. 아이폰은 플랫폼이다. 3G, 웹브라우징, 이메일, MP3, PDA에 이르기까지 사용자에게 필요한 기능을 총집결했다. 한편 사용자가 원하는 것을 쉽게 달성할 수 있도록 세밀하게 아이디어를 결집했다. 사용자가 사용할 소프트웨어가 정의되었고 그에 맞추어 하드웨어가 준비되었다.

이를테면 사용자의 검색을 돕기 위해 이중 터치 스크린이 도입되었고, 어느 장소를 찾아가기 위한 구글 맵스(Google Maps)를 모바일 환경에서 바로 구현할 수 있도록 3G GPS를 결합했다. 그 외에 통신, 저장 기기 등 각종 하드웨어 구성 요소가 이를 따랐다.

아이폰의 사업 모델

 

무엇보다 아이폰은 아이튠스(iTunes)라는 플랫폼을 통해 풍부한 콘텐츠와 애플리케이션이 공급되는 아이팟의 고유 사상에 충실하다. 지금 우리 나라 대기업들이 흉내내는 앱스토어(AppStore)를 창시해낸 것이다. 여기에서 사용자와 하드웨어, 인터넷, 콘텐츠가 일체감 있게 운영되는 대동맥 같은 역할은 소프트웨어가 담당한다. 아이폰에서 누가 주연인지는 명약관화하다.

 

하드웨어를 만들고 나서 소프트웨어를 조연으로 활용하던 시대는 끝났다. 이렇게 주연과 조연이 바뀐 상황에서 우리는 아직도 소프트웨어가 조연, 아니 그것도 안 되는 단역의 역할에 머무르고 있다. 그러니, 소프트웨어가 비전이 없다고 하는 것이다. 이는 소프트웨어가 제품의 원가를 잡아먹는 비용(cost)이 아니라 제품의 사상과 개념을 결정하는 가치(value)의 실현자(enabler)로 변한 현 상황과는 동떨어진, 시대 착오적인 발상이 아닐 수 없다.


(아이뉴스 칼럼 기고문 중에서 보완해 올립니다.) 


밀크와 바닐라를 미국인이 못 알아들은 이유는?

Global View 2009/11/05 06:24

다소 부끄러운 얘기지만 미국 유학 시절에 경험한 일화를 소개한다.

 

일화 #1

 

맥도널드(McDonald)에 들어갔는데 그날따라 우유가 먹고 싶어서 햄버거와 밀크(Milk)를 주문을 했다. 그런데, 주문 받는 젊은 여직원이 못 알아 듣는다. 그래서, 재차 ‘Milk’를 여러 형태로 발음을 고쳐서 해 보았으나 “What did you say?”만 반복한다. 다행히 뒤를 돌아보니 기다리는 사람이 없어서 조심스레 다시 ‘milk’라고 하니 그 여자가 여기는 그런 물건 못 팔아요 (We can’t sell it)” 하는 게 아닌가? 나중에 알고 보니 ‘milk(밀크)’‘beer(비어)’로 알아 들은 것이었다. 하도 난감해서 결국 ‘Coke’로 음료수를 바꾸고 나서야 주문을 마칠 수 있었다. 지금도 그 때 생각을 하면 얼굴이 화끈거린다. 내가 ‘l’‘r’을 구별해서 쓰지 못했던 대가다.

 



일화 #2

 

어떤 한국 유학생 부부가 아이스크림 가게에 가서 바닐라 아이스크림을 사려고 했다. 그런데, ‘바닐라(vanilla)’라는 발음을 상점 주인이 못 알아 듣는 것이었다. 손짓 발짓 사용해서 여러 번 시도한 끝에 겨우 통했다고 한다. 옆에서 그 얘기를 듣던 다른 분이 나는 그래서 아예 닐라아이스크림 달라고 한다. 그러면 신기하게 알아 듣는다라고 자신의 경험담을 자랑스럽게 얘기해서 모두 폭소를 터뜨렸다. ‘Vanilla’의 액센트가 (Ni)’에 있기 때문에 액센트로 의미를 이해했다는 의미다.

 
'ㄹ'과 액센트는 한국어와 영어의 구조적 차이

앞의 사례는 한국어와 영어의 구조가 다르기 때문에 나타난 대표적 예다
. 한국어의 이 영어에서는 ‘l’‘r’로 엄연히 구별된다. 내가 아무리 발음이 나쁘다 치더라도 어떻게 밀크(milk)’라고 발음한 것을 비어(beer)’로 알아 듣는다는 말인가? 그만큼 미국인들이 알아듣는 과정에서 미(mi)비(bi)의 차이보다 ‘l’‘r’의 구분이 더 중요했던 것이다.

 

두 번째 일화는 영어에서는 개별 자음에 대한 정확한 발음보다 전체적 흐름, 다시 말해서 액센트와 억양(intonation)으로 받아들이는 성향이 있음을 보여 준다. ‘바닐라바(va)를 빼고 말하는 것 보다 니(ni)에 액센트를 주는 것이 커뮤니케이션 과정에서 더 중요했던 것이다.
 

세계 각지에서 이민이나 유학으로 온 사람들이 영어라는 공통 언어로 소통하는 사회가 미국이다. 그러다 보니 미국에 살다 보면 여러 종류의 영어를 경험하게 된다. 백인, 흑인, 인도(Indian), 히스패닉(Hispanic) 등 수많은 종족마다 발음이나 언어를 구사하는데 있어서 차이가 있다. 지역별로도 차이가 있다. 정형화(Formal)되고 빠른 동부에서의 말하는 방식과 느리고 질질 끄는 스타일의 남부 영어는 차이를 확연히 느낄 수 있다. 영국식 언어는 고급 표현으로 우대받기도 한다.

 

이와 같이 어디에서 자랐고 어떤 교육을 받았느냐에 따라 다르게 느껴진다. 게다가 영어는 미국에서만 사용되는 것이 아니다. 국제적 모임이나 사업 미팅에서 영어를 사용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특성 (flavor)의 영어에 익숙해 져야 한다.

 

그런데, 어느 영어를 사용하더라도 몇 가지 고유 특성은 정확히 유지해야 한다. 앞서 말한 과 액센트는 한국어의 구조가 영어와 다른 대표적 경우다. 따라서, 이런 발음은 한국인이 영어로 소통할 때 가장 신경을 써야 한다


억양 차이로 다른 뉘앙스가 느껴지는 까닭은
 

동경에서 일본어로 발표를 하고 나면 참석했던 일본인들에게 어떠했느냐고 물어 보게 된다. 그러면 발음도 괜찮고 알아듣기는 했는데 무언가 듣기에 어색한 느낌이라고 한다. 의견을 종합 분석해 보면 결국 억양의 문제다. 우리 나라와 같은 언어의 뿌리를 가진 일본어만 해도 억양의 영향이 크다. 밋밋하게 얘기하는 것 같아도 잘 들어보면 파동이 느껴진다. 한국어가 유난히 평평한(flat) 특성이 있는 만큼 외국어를 배울 때 유의해야 한다.

 

나는 굳이 미국식 발음을 똑같이 흉내 내기 위해서 전력을 쏟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물론 유창하고 수려한 영어를 구사하면 좋겠지만, 그보다 먼저 의사 소통을 정확히 하는 커뮤니케이션 훈련에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야 바람직하다. 발음은 미국식으로 열심히 굴리는데 표현이 한정되어 있거나 세련되지 않다면 결코 영어를 잘 하는게 아니다.

 

글로벌 시대에 외국어는 필수 덕목이다. 그러나, 어느 언어를 구사하든 자신의 논리(logic)로 풍부한 표현력으로 대화하는 기법은 비슷하다. 이러한 커뮤니케이션 스킬(communication skill)이 외국어 발음을 흉내 내는 것 보다 중요하다. 단 한국어와 구조적 고유 특성이 다른 부분에 대해서는 더욱 디테일한 노력을 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미래의 IT비전을 이끈 오명 총장 만나보니

책으로 보는 세상 2009/11/02 06:38

어느 조찬 모임에서 오명 건국대 총장의 초정 강연이 있었다. 오명 총장은 많은 존경을 받는 분이다. 80년대 초 대학 시절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전자산업과 IT에 종사해 온 나로서는 한국이 이 분야에서 강국으로 발전한 과정이 각별하다. 그런데, 이러한 성장 과정에서 중요한 고비에는 항상 오명 박사가 있었다. 비록 당시에는 그 분을 직접 뵐 위치는 아니었지만 그의 존재를 익히 알고 있었다.


IT 한국을 만드는 중심에서...

대학원시절 현 ETRI인 전자통신연구소에 잠깐 근무한 적이 있다. 당시 단군 이래 최대의 R&D 프로젝트라던 TDX 교환기 국산화 현장에서 밤을 지새우는 선배들의 모습을 직접 목격했다.

TDX 이외에도
컬러 방송에 대한 과감한 실현, 우리 기술로 해외에 입증한 88올림픽의 정보통신 인프라 구축, DRAM을 통한 반도체 산업의 발판 마련, 초고속통신망의 기반이 된 데이터 통신 인프라, 국산 주전산기 개발, 대전 엑스포, 월드 베스트로 인정받는 인천 공항 건설 등 우리에게는 수많은 마일스톤(milestone)이 있었다.

한국의 IT는 어느 날 갑자기 뚝 떨어진 것이 아니다. 인재들에 대한 끊임없는 육성과 그들을 바탕으로 도전적인 프로젝트 수행, 이를 통해 점프하는 기술 경쟁력이 주효했다. 그런데, 그런 과정에는 오명 박사의 이름이 어김없이 등장한다. 그런 점에서 그 분의 실질적 공헌을 우리는 인정해야 한다. 그날 모임에서는 오명 총장이 직접 사인해 주신 “30년 후의 코리아를 꿈꿔라를 선물로 받았다. 강연 중에도 이 책의 내용을 중심으로 당시 상황을 생생하게 설명했다.


오늘의 한국을 만들어 온 지도자들
 

김재익 수석

강연 중에 오늘의 한국을 위해 조용하게 공헌한 많은 리더들이 언급되었다. 특히 그는 인생의 멘토(mentor)인 김재익 박사와의 인연에 대해 강연의 많은 부분을 할애했다. 잘 알려져 있듯이 김재익 박사는 당시 대통령이 경제는 당신이 대통령이야라고 전적으로 신뢰했던 수재 공무원이다. 오늘날 정보통신 산업으로 먹고 살 거리를 만든 것은 그의 의지와 공헌이 컸다.

이제는 20대 재벌 기업을 지원하는 정책을 앙심 먹고 철수하려 한다. 1500배에 달하는 3만여 개의 중소기업이 뛰놀 마당을 만들어야 한다

 

지금 들어도 미래를 보는 통찰력을 엿볼 수 있지 않은가? 아웅산 사태로 젊은 나이에 비명에 간 것이 대한민국으로서는 안타까울 뿐이다.

 

그 외에도 TDX 개발을 총괄한 양승택 박사, 검소하고 소박한 공무원의 표상인 김성진 장관 등 존경받는 인물들이 책에 나온다. 정치와 언론에서 온갖 트집 잡기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선배들의 희생적인 정신이 오늘날 자랑스런 한국의 위상을 만들어 내었응은 자명하다.

 

그의 과거와 현재 미래에 대한 소신은 연설 내내 느낄 수 있다. “역사적으로 우리 나라는 가난하고 침략당하는 비운을 겪어왔다. 유사 이래 국운(國運)이 이처럼 융성한 적은 일찍이 없었다. 60년도에 국민소득 100불도 안 되던 나라가 세계 13 GDP의 나라가 된 것은 이를 입증한다.

 

TDX 개통 (dt.co.kr)

80년대에는 전화 한 대 놓는 기간이 몇 달이 걸렸고 그 비용도 자동차 한 대 값과 맘먹었다. 5000억 원에 달하는 교환기 수입이 그 원인이었다. 기술자들도 자신이 없었던 교환기를 국산화한 것은 국가 프로젝트(National Project)의 쾌거였다. 개발자들이 직접 작성한 ‘TDX 혈서라는 서약서가 나올 정도로 비장한 각오였다. 이러한 국가 프로젝트는 설사 실패하더라도 수많은 인력들이 배출되고 인식이 바뀐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자신이 운이 좋다는 생각을 해야...' 


그는
40대 초반 차관을 시작으로 직업이 장관이라는 농담이 나올 정도로 정권을 초월한 대표적 엘리트 관료로 인정받는다. 한편 경영인으로서 대학 총장으로서 해외 국가의 자문으로서 맡은 일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고 있다. 그러한 성공에 대한 자신의 해석은 아주 담담하다.

 

나는 운이 아주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주위의 사람들도 그렇게 얘기를 한다. 하는 일마다 잘 되었으니까. 아무리 열심히 해도 운이 따르지 않으면 일이 되지를 않는다.” 다소 의외였다. 자신이 한 많은 일을 운으로 돌리다니! 그런데, 그 다음 말이 그의 본심이었다.

 

그런데, 운은 자기가 (본인이)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돌아온다. 다시 말해서 긍정적 사고로 사는 사람이 결과를 달성할 수 있다. 나는 내가 운이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면서 살아왔다

 

참으로 인생의 귀감이 되는 말이다. 긍정적 사고의 삶은 말처럼 쉬운 게 아니다. 그런데, 그의 삶의 궤적 속에 담겨있었던 인생관이기에 더욱 설득력이 있고 마음에 새겨진다. 경험으로 우러난 그의 메시지들은 진솔하다.


  • 리더라면 비전(Vision)을 가져야 한다는 말을 많이 한다. ‘비전’. 통찰력 혹은 미래에 대한 탁월한 예지력을 뜻하는 말인데, 이게 말처럼 쉽지만은 않다. 나는 비전을 가지라는 말은 공부하라라는 말을 더 그럴싸하게 표현해놓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 똑똑하고 부지런한 리더보다는 똑똑하면서도 조금은 게을러서 아랫사람이 앞장설 수 있는 기회를 줄 줄 아는 여유 있는 리더가 바람직하다. 그러나, 결정적인 문제에서는 책임지고 판단을 내릴 줄 알아야 한다.


조찬 모임을 끝내고 나오면서 모처럼 포만감을 만끽할 수 있었다. 출근길을 서두르는 이들의 모습이 아름답게 느껴지는 아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