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성의 축구가 IT 현실에 주는 교훈은?

IT와 세상 2010/06/20 08:28

박지성의 체험이 값진 것처럼 IT도 현실에 부딪혀야

박지성과 이청용 선수는 확실히 다르다
. 내가 아는 어떤 여성분은 축구를잘 모르지만 평소 박지성 선수의 인간 됨됨이와 인터뷰하는 모습을 보고 호감을 가졌었다고 한다. 그런데, 막상 그리스와의 경기를 보고 나서 박지성 선수가 정말 축구를 잘하는 것을 깨닫게 되어 더욱 좋아하게 되었다고 한다. 2번째 골을 넣는 과정에서의 심한 몸싸움, 빠르고 저돌적인 드리블, 반 박자 빠른 슛 동작은 우리 나라 선수들도 저렇게 골을 넣을 수 있구나하는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아르헨티나와의 경기에서 이청용 선수의 골도 스피드와 감각 측면에서 달랐다.

 

나는 그들의 경쟁력이 유럽 무대에서 직접 부딪히면서 경험한 것에서 나왔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자질이 뛰어 나더라도 직접 부딪혀 보지 못했다면 우물 안 개구리일 뿐이다. 우리끼리 '메시'가 어떻고 '테베스'가 어떻다고 얘기해 보았자 무슨 의미가 있는가? 직접 그런 이들과 같은 공간에서 부딪히면서 뛰어봐야 그들의 움직임과 특징을 몸소 체험할 수 있다.

 

워낙 톱클래스 선수들이 즐비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소속이라서 박지성 선수가 늘 선발로 나설 수 있는 여건은 아니지만, 기라성 같은 선수들과 호흡하고, 볼을 주고 받고, 실제 경기에서 체력적으로 부대낀 가운데 얻은 노하우와 경험은 수많은 국내 축구 전문가들의 이론과 과학적 예측보다 더 값어치가 있다. 그렇기에 그런 세계에서 생존한 박지성과 이청용 선수가 남다른 것이다.

 

역시 아르헨티나의 메시는 세계 최고의 플레이어로서 손색이 없었다. 그러나, 메시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전체의 축구 흐름이 물처럼 흘러가는 아르헨티나의 경기력은 아주 인상적이었다. 독일 월드컵 당시 어느 경기에서인가 수십 번의 연속 패스를 통해 골이 이루어지던 것을 보았었는데, 충분히 그러한 실력이 짐작이 간다. 그들의 팀웍과 패스력은 집중된 훈련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런 선수들이 많이 배출될 수 있는 저변과 환경, 그리고 자신감이 기반이 되어 있다. 브라질과 아르헨티나의 한 차원 높은 축구는 그렇게 형성되었다고 할 수 있다.

 

축구의 메시 vs. IT의 스티브 잡스

 

최근 애플과 구글의 리더쉽에 의해 IT 산업은 물론 전 분야에서 혁명적인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축구에 메시가 있다면 IT 세계에는 스티브 잡스가 있다. '스티브 잡스'라는 키워드 하나만 가지고도 수많은 얘기들이 회자되고 있다. “우리 나라에서는 스티브 잡스가 나올 수 없는가?”라는 교육적 시각부터 스티브 잡스 같은 난봉꾼에 휘둘리는 형국과 같은 거친 언사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메시 선수

스티브잡스


 

최근 미국에서 연예인들이 덜 주목받는다고 한다. 스티브 잡스를 중심으로 그의 스피치, 경영철학, 삶의 궤적이 조명되고, 애플의 신제품 출시, 여기에 정면 승부를 하고 있는 구글, 그들의 전쟁 속에 탄생하는 혁신적인 사업 모델, 신제품에 이르기까지 재미있는 이야기가 끊임없이 쏟아져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인문학과 기술의 만남이라는 멋진 시대적 명제에 이목이 집중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아직도 국내의 모임에 나가 보면 예전에 매킨토시처럼 그러다가 말거야”, “그거 제품 별것도 아닌데 젊은 애들이 광분한다”, “하드웨어는 삼성이 훨씬 나은데.. 이제 노력하면 소프트웨어도 금방 따라잡을 수 있을 거다라는 대화가 오간다. 트위터나 블로그 공간에서 논의되던 대화 분위기와 너무 달라, 순간 어떻게 대화에 끼어 들어야 할지 고민스러울 때도 있다. 물론 오랜 경험을 가진 사회 지도자들의 예측이 맞을 수도 있다.

그러나
, 어떤 사안에 대한 판단은 직접 부딪히고 체험을 통해서 얻어야 한다. 제품 스펙의 비교나 일부 자료에 의존해서는 탁상공론일 뿐이다. 이미 수많은 사람들이 사용하고 있는 현실, 새벽 2시에 태평양 건너에서 발표하는 신제품 발표를 듣는 이들의 고민은 이 시대의 변화를 보여 주고 있다. 우리끼리 아무리 자화자찬해 보았자, 수많은 전문가들이 글로벌하게 소통하는 현장에서 비참하게 깨질 뿐이다.

위기는 얼마나 자신이 뒤떨어져 있는지 모르거나 인정하지 않는데서 온다. 사실을 감추려는 노력은 더욱 상황을 악화시킬 뿐이다. 오히려 이럴수록 객관적인 차이를 인정하고 장기적으로 계획을 세우는 자세가 바람직하다. 브라질과 아르헨티나의 환경 속에서 세계적 축구가 나왔듯이, 실리콘밸리와 같은 생태계 속에서 소프트웨어와 콘텐츠도 꽃을 피운다. 따라서, 이러한 격차를 객관적으로 분석해서 체계적인 노력과 인식의 변화를 도모해야 한다.

 

다행히 축구에도 이승렬 선수와 같은 젊은 꿈나무들이 자라나고 있듯이, 우리 나라에도 잠재력있는 젊은 IT 기업인들이 이 싸움에 뛰어들고 있다. 사고의 틀과 접근 방식이 전혀 다른 이들을 보게 되고, 아예 한국을 뛰어 넘어 세계를 두드리는 과감함을 보고 놀라게 된다. 뭔가 다르게 하고 있다는 자체가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비록 그들이 단번에 세계적 스타가 되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끊임없는 고민과 체험속에서 세계와 자웅을 겨루게 될 것이다. 

월드컵 축구 무대에서 활약하는 박지성과 이청용 선수를 보면서, IT 분야에서 도전하고 부딪히는 자세가 떠오른 것은 지나친 생각의 비약일까?

시대가 필요한 인력, 대학과 산업 시각차는?

CEO 칼럼 2010/06/06 07:20

이 시대가 필요로 하는 인력은? - 대학과 산업의 시각차

‘IT
인력 양성 방안이라는 주제의 어떤 모임에 참석한 적이 있다. 대학교수, 기업임원, 정부관계자가 한 자리에 모였는데, 인력의 수요 공급의 시각차에 대한 논의가 주를 이루었다. 이런 형태의 모임이 한두 번이 아니었고, 논의가 진전되더라도 실행된 기억이 별로 없었기에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보통 발언 기회가 주어지면 한마디씩 하고 끝나는 분위기였기 때문이다

 

어느 대학교수의 볼멘 소리

그런데
, 그날 모임에서 어느 교수님의 말씀이 기억에 남는다. "기업에서 원하는 인력의 요건을 보면 현실성이 없어요. 수학과 과학에 충실해야 하고, 컴퓨터 프로그래밍 잘 해야 하고, 영어 잘해야 하고, 중국어나 다른 외국어 중 하나를 잘하면 좋겠고, 커뮤니케이션 스킬이 좋아야 하고, 창의력이 있고.. 여기에 더 나아가 요즈음은 인문학적 소양과 상상력을 요구합니다. 이런 인력 있습니까? 그런 교육을 모두 시킬만한 대학은 없습니다.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하기보다는 현실적인 방안을 찾아야 합니다."

 

고려대에서 강의하던 시절

얘기를 듣는 순간 "! 우리가 너무 일방적으로 요구만 했구나"라고 깨달으면서 한편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조금 더 시간을 가지고 생각해 보니 "바로 그런 교육 체계가 필요한 것 아닌가?" 라는 다소 엉뚱한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대학이 산업이 필요로 하는 인력을 배출하던 산업화 시대의 방식에 익숙하다
. 우리 나라의 비약적인 성장의 배경에는 지속적으로 배출되는 고급 인력이 있었다. 대학 졸업장은 좋은 직장에 취직해서 출세하기 위한 하나의 방편이었고, 그렇기에 입시 경쟁도 나날이 치열해졌다.

그러나, 정보화를 거쳐 지식 기반 사회로 가면서 상황은 바뀌고 있다. 기업의 변신이 다반사로 이루어지고 있고 사업 모델은 수시로 바뀐다. 잘 훈련된 조직 문화보다 개인의 창의력과 아이디어, 모티베이션(동기부여)이 개인의 기업에 대한 공헌에 커다란 영향을 끼친다. 경영학자 게리 해멀의 주장으로는 열정, 창의성, 추진력이 기업에 공헌하는 개인의 능력의 80%를 차지한다. 반면 지식과 근면함은 그다지 기업에 큰 가치를 주지 않는다. (http://ceo.ahnlab.com/103그렇기에 기업에서는 창의력있는 인력을 애타게 찾고 있지 않은가?

 

사회인을 양성한다는 관점에서의 대학 교육의 목표는 더 이상 스펙에 머무르면 안된다. 전공 지식과 우수한 성적, 자격증, 토익 점수가 반드시 기업이 원하는 인력이 된다는 보장은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대학이 단순히 기업이 필요로 하는 인력을 양성하는 곳도 아니지 않은가? 끊임없는 진리 탐구와 교육이 본연의 모습이다. 그런 점에서 스킬셋을 가르치는 사교육 컴퓨터 학원과는 엄연히 다르다.


기업이 원하는 인재는?
 

이 시대에 기업이 원하는 것은 답이 없는 문제를 풀 줄 아는 창의력과 진지하게 자신의 인생을 헤쳐나갈 수 있는 인격적 성숙함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러려면 기초에 충실하면서도 다방면을 섭렵할 수 있는 자유로움이 있어야 한다. 또한 자신의 탤런트와 강점을 발견해서 이를 바탕으로 인생을 설계해야 나가는 고민의 훈련을 해야 한다. 결국 어떤 과목을 선택해서 자신의 커리어를 만들어갈지에 대한 결정은 학생의 몫이어야 한다.

 

대학생기자들과 만나는 안철수교수

그렇다면 대학의 커리큘럼은 앞서 교수님이 지적한 '프로그램 잘 하고 수학 잘하고, 커뮤니케이션 잘 하고 등등'을 학생들이 발견할 수 있는 장을 제공해야 한다. 물론 한 사람이 그 모든 것을 잘 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러나, 대학에서 일단 다양한 프로그램이 제공되어야 학생들이 그 중에서 자기가 잘할 수 있고 재미있는 것을 발굴해서 찾아낼 수 있지 않겠는가?
 
또한 대학은 교수의 강의만으로 구성되어 있는 게 아니다. 대학 문화와 커뮤니티는 또 다른 배움의 장이다. 이를테면, 프로그래밍 같은 기초는 소프트웨어 전문가와 철저한 훈련의 장을 통해 더 효과적으로 배울 수 있다. 한편 이론적 틀은 전문 교수에 의해서만 제대로 갖출 수 있다. 창의력과 도전성을 갖춘 인력이 사회에 배출될 수 있는 방향으로 논의의 초점을 맞추었으면 하는 바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