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업자 안철수가 안랩을 떠나던 날

CEO 칼럼 2012.10.12 07:00

자기가 만든 회사를 17년만에 떠나는 창업자

 

9월 20일 오후 안철수 창업자가 안랩과 작별을 고하기 위해 회사를 찾았다. 바로 그 전날 그는 18대 대통령 선거 출마’라는 어려운 결정을 발표했다. 오랜 기간 그를 알고 지냈던 사람의 하나로서 기자회견 광경을 지켜 보면서 “참으로 많은 고민을 하셨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 분의 손때가 묻어있는 이 회사의 직원들과 의미있는 마지막 만남을 주선하는 일이었다.

그가 어떤 과정을 거쳐 창업했는지, 어떤 꿈과 생각으로 이 회사를 일구어 왔는지 잘 알고 있다. “원칙대로 사업을 해서 성공을 할 수 있다는 것과 소프트웨어를 해서 이익을 남길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는 그의 도전은 성공으로 입증되었다. ‘영혼이 있는 기업’을 만들고자 했던 그의 의지는 안랩의 기업 문화 속에 스며들어 있다. 이제 그가 없이 우리 직원들이 그 목표를 이루어 내야 한다는 막중한 책임감을 느꼈다.

 

직원들의 환호 속에 나타난 안철수 창업자는 안랩과의 인연을 결연하게 끊었다. 자신이 창업해서 열정을 불살랐던 회사였다. 자기 인생의 줄기라고 할 수 있는 이 회사에 왜 애착이 없겠는가? 그러나, 그는 “이제 안랩은 제가 알고 있는 우리 나라의 수많은 좋은 회사 중의 하나일 뿐”이라며 스스로 선을 그었다. 그를 가까이서 본 사람들은 그가 냉정하게 결단을 내리는 성격이라는 것을 잘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작 그런 그의 행동을 보면서 아쉬움은 피할 길이 없다.

직원들과 작별 인사하며 초창기 직원과 포옹하며

전 직원의 환호와 박수 속에 간략한 환송연이 있었고, 안철수 박사는 회사를 모두 돌면서 직원 하나하나 악수하고, 포옹하고, 사진을 찍었다. 오늘만은 회사에서 마음껏 시간을 보내고 싶다며 다음 스케줄은 아예 잡지도 않았다. 환송연에서의 다채로운 풍경은 이미 안랩 블로그 (http://blog.ahnlab.com/ahnlab/1608)에 자세히 소개되어 있다.

 

친구와 같았던 나의 보스

 

개인적으로 안철수 박사를 15년 이상 알고 지냈다. 아무도 정보 보안에 관심이 없을 때 정보 보안의 중요성을 알리기 위해 같이 동분서주했다. 벤처, 소프트웨어, 정보 보안. 이 모두가 사회적으로 따돌림을 받던 시절이었기에, 서로를 격려해 가면서 미래의 비전과 당위성을 알리는 데 힘을 같이 했다. 당시 젊은 벤처 기업가와 기술자들은 동료 의식이 강했는데그 중심에는 안철수 박사의 존재감이 컸다. 탄탄하고 투명한 경영으로 기업을 성장시켜 가는 그의 모습을 보면서경영인으로서 존경심과 더불어 부러움을 느꼈었다.

 

내가 했던 사업을 안랩이 인수하면서, 우리 두 사람은 한 조직 내의 관계가 되었다. 그러나, 그와 경영 회의를 할 때 그가 하던 말이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나를 세상에서 생각하듯이 윗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그냥 경영적으로 같이 상의하는 사이로 생각해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서로가 다른 관점에서 봐야 회사를 위해 올바른 방향을 잡을 수 있겠지요.

 

그는 조직상 보스다. 그럼에도 그는 항상 이렇게 나를 대해 주었기에 마치 친구처럼 여러 아이디어를 폭넓게 상의할 수 있었다. 수평적 리더쉽이자 파트너쉽 경영이다.  (그는 본래 창업을 혼자보다 2-3명이 같이 하는 게 좋다는 지론을 가지고 있다. 위험을 줄이고 다양성을 추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안랩의 역사를 돌아보며..

우리는 경영적으로 많은 생각을 나누었다. 회사의 문화, 조직, 전략, 마케팅 등. 다행히 통하는 게 많았다. 현장에서 뛰는 사람을 좋아했고, 과감히 도전하는 것을 장려했고, R&D를 통한 원천 기술의 힘을 믿었다. 관료화를 혐오했고, 조직보다 사람을 우선시했다. 다양성이 있어야 창의력이 싹튼다는 그의 경영 철학은 회사 전반에 스며들어 있었기에 나는 일하기가 아주 편했다.  

 

그는 매사에 신중하지만 결정에 있어서는 아주 과단성이 있다. 내가 특정 사업에 대해 애착을 가지자, 그는 “김 사장님, 사업이 잘 안 될 때는 무언가 문제가 있는 겁니다. 경영자는 냉정해야 합니다. 특히 자기가 일군 것일수록 과감히 포기할 줄 알아야 합니다. 이를테면 V3 사업, 제가 직접 만든 것이지만, 만일 사업에 문제가 생긴다면 저는 접을 수 있습니다.”라고 조언했다. 실제로 그는 조용한 행동주의자다

 

진정성의 모습

 

나는 7월 초, 부친상을 치르게 되었다. 많은 조문객들이 다녀갔다. 안철수 박사도 첫날 저녁에 찾아왔다. 이미 언론에서 주목을 받는 분이어서 기자들도 많이 왔고, 그 날 아버님 조문을 온 것은 언론을 통해 알려졌다.

 

그러나, 그가 발인식에까지 왔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는 크리스찬도 아니다. 그럼에도 교회식으로 치러진 발인 예배에 참석해서, 뒷 자리에 조용히 앉아서 예배를 드리고 갔다. 당시 책을 집필하던 시기라 무척 바쁜 시기였던 것을 잘 알고 있다. 얼굴이 많이 푸석해 보였다. 그럼에도 우리 가족을 위로하기 위해, 아버님 발인에 참여하기 위해, 아무도 보지 않는 가운데 그는 조용히 다녀갔다. 그의 진정성을 보여주는 한 예다. 누구에게 보이기 위한 것이 아닌, 그의 진정한 모습에 우리 가족은 큰 위로를 받았다.

 

CLO(Chief Learning Officer)로서 안랩 직원과 간부들을 위한 그의 교육은 큰 자취를 남겼다. ‘전략’과 ‘마케팅’ 강의는 2년에 걸쳐 안랩에 스며들었다. 나도 사업을 17년 가까이 하다보니 많은 경영 서적을 읽으면서 공부를 했고, 실전에서 경험했다그러나, 그의 ‘전략’과 ‘마케팅’ 강의는 너무나도 쉽게 핵심을 파고들었다진정한 프로일수록 쉽게 설명하기 마련이다. 그의 실전 경험과 미국에서 철저하게 공부한 것이 결합되어 나온 노하우다.

직원들의 메모를 보며 직원들과 담소하는 안철수

 

미국에서 MBA를 받고 온 어느 임원은, “이렇게 쉽게 전략과 마케팅을 설명하는 것을 처음 보았다. 내가 몇 과목 들은 것보다 훨씬 실용적이다.”고 감탄했다. 지금 우리 회사의 제품 및 사업 기획은 모두 그가 만들어준 전략과 마케팅의 틀에서 운용된다. 특히 안철수 박사는 재무나 회계의 탄탄한 기반 위에 모든 경영적 요소를 설명한다. 엔지니어 출신 경영인인 나로서는 큰 도움을 받았다. 그야말로 나의 보스라기보다는 경영 멘토이자 동료로서 의미있는 시간을 함께 했다.

 

포스트 안철수 시대의 안랩

 

 “그 때 큰 소명, 우리나라에서 컴퓨터 바이러스를 퇴치하는 기술을 가지고 계속하는 사람이 저밖에 없었잖아요? 그래서 저에게는 정말로 맞는 직업을 버리고, 소명을 따라서 만든 회사가 안랩이구요. 그런데 지금 아이러니하게도 소명 때문에 안랩을 떠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이제 안철수 창업자는 뜻한 바가 있어 다른 길로 간다. 진정성과 문제의 본질에 충실하는 그의 자세는 어느 길로 가든지 변하지 않을 것이다. 또한 그는 회사와 명확한 선을 그어 나갈 것을 잘 안다.

직원들의 박수 속에 안랩을 떠나며 차에 타기 전에 마지막 인사


이제 이사회 의장뿐만 아니라 제가 가졌던 모든 마음과 추억까지도 모두 정리해야 할 것 같습니다.”

 

창업자는 떠났어도 안랩은 그가 직원들과 같이 만든 핵심가치의 기업 정신을 이어나갈 것이다. 이 사회에 도움이 되는, 좋은 기업이 되고자 하는 그의 철학은 안랩 속에 영원히 남아있을 것이다.

 

동영상 참조: http://www.youtube.com/watch?v=rZ-0LWnC9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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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환기를 이끄는 기업가 정신

CEO 칼럼 2012.09.18 13:33

미국 실리콘밸리에 위치한 어느 벤처 기업의 최고책임경영자(CEO)와 대화를 할 기회가 있었다. 그는 그 기업의 창업자는 아니었다. 창업자가 추구했던 사업 모델은 실패해서 창업자는 이미 떠난 후였다. 대주주였던 벤처캐피털은 기업을 살리기 위해 그를 전문경영인으로 영입했다. 벤처캐피털이 그에게 요구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보통의 경우라면, 하루빨리 경영을 정상화하고 재정 상태를 흑자 구조로 바꾸라고 주문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에게 주어진 과제는 달랐다. 필요한 자금을 투자할 터이니 새로운 도전을 해보라는 것이었다. 당시 인력들의 경험을 기반으로 한 신제품이든, 기존의 기술을 향상시킨 것이든, 남과 다른 무엇(to-be-something)이 되라는 게 전부였다고 한다.

 

 

 

 

<사진출처: 구글 검색>

             

그는 기업의 전열을 다시 정비하고 열정적으로 노력한 결과, 혁신적인 제품을 출시하는 데 성공해서 주목할 만한 틈새 기업(niche player)’으로 인정받기에 이르렀다. 비록 흑자 전환은 하지 못했지만, 그 기술의 잠재력을 인정한 대기업에 의해 인수되었다. 대기업의 포트폴리오에 편입된 그 제품은 현재 전세계 시장에서 성공적으로 판매되고 있다.

 

실리콘밸리에서 이노베이션과 차별화가 기업의 가치를 얼마나 좌우하는지 잘 대변해주는 스토리다. 벤처캐피털 역시 좋은 인력과 네트워크 형성을 도와주기 위해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정보 보안 산업은 1990년대 중반부터 수많은 벤처 기업의 탄생을 촉발했다. 혁신적인 기술이 연이어 발명되었고, 투자는 활발했다. 그런데, 2006년 이후 그 열기가 크게 줄었다. 많은 전문가들은 수백 건의 인수합병이 2005년까지 대부분 마무리되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대기업 제품이 되면서 매출과 시장은 성장하고 있었지만, 이노베이션은 현저히 줄어들었다.

 

흥미로운 것은, 그로부터 1~2년 후 창업 열풍이 다시 불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오랜 친구 중에, 벤처 기업을 대기업에 성공적으로 매각해서 큰 부를 거머쥔 이도 있었다. 그는 자신의 기업을 매수한 대기업에서 고위급 임원으로 재직했다. 수많은 청중 앞에서 기조 연설을 할 정도로 유명 인사도 되었다. 그러던 그가, 어느 날 갑자기 명예와 직장을 내던지고 조그마한 벤처 기업을 창업했다.

 

일자리에 대한 불안감도 없고, 평생 먹고 살 만한 재력도 확보한 그가 다시 창업의 가시밭길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 질문을 한 게 필자뿐이었겠는가? 그의 대답은 의외로 아주 간단했다. “재미가 없다는 것이다.

 

 

카드 빚으로 컴퓨터 장만해서 사업을 시작했을 때는, 재정은 쪼들려도 세상에 보탬이 되는 제품을 만든다는 기쁨에 충만했다고 한다. 그런데, 수많은 회의와 연설, 인터뷰로 점철된 업무는 지루하고 시간 낭비처럼 느껴졌다고 한다. 그의 말에 따르면, 인수 후 대기업으로 편입됐던 직원들 대부분이 의무 복무 기간이 끝나자 창업을 하거나 작은 회사로 옮겼다고 한다.

 

이 친구의 이야기를 통해 미국의 정보기술(IT) 산업 속에서 대기업과 벤처 기업의 역할 분담을 실감할 수 있다. 수많은 창업 기업들이 혁신적인 제품 개발에 매진하고, 그 중 성공하는 기업들은 대기업에 인수된다. 대기업은 외부의 이노베이션(벤처 기업)을 수혈해서 자신들의 강점인 체계적인 사업 인프라 속에 집어넣는다. 대기업은 혁신을 위해 노력하는 한편, 이러한 신선한 피를 받아들임으로써 관료화의 함정에 빠지지 않도록 끊임없이 스스로를 자극하는 것이다.

 

<안철수의 생각>에서 저자 안철수 원장은 대기업과 함께 탄탄한 중소기업과 벤처 기업들이 육성된다면 이 축이 국가 경제의 리스크를 낮추고 안정성을 높여줄 것이라며 경제를 포트폴리오관점에서 바라보았다. 또한 5천만 국민 중 대기업에 종사할 수 있는 사람은 200만 명밖에 없기 때문에 2천만 명 이상의 일자리는 중소기업 또는 벤처 기업에서 나올 수밖에 없다는 현실을 지적했다.

 

실제로 미국 인구조사 통계국의 데이터에 따르면 1980년부터 2000년까지 대부분의 고용 상승은 설립한 지 채 5년이 안 된 기업들이 만들어 냈다. (출처 : '창업국가'). 그만큼 벤처 기업과 중소기업은 양질의 일자리 창출의 핵심 동력이다.

 

               <창업국가, 사진 출처: 구글 검색>

 

우리는 기업의 가치가 혁신성에 의해 크게 좌우되는 시대에 살고 있다. 혁신, 즉 이노베이션은 호기심과 도전 정신을 통해 이루어진다. 내가 만든 제품을 다른 사람이 사용하는 것을 볼 때의 희열은 경험한 자만이 알 수 있다. 도전 정신을 가진 많은 사람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기대감에 힘들어도 기업가의 길을 걷는다. 기업가 정신은 전환기에 놓인 우리가 반드시 추구해야 할 시대정신이 아닐까.


[중앙일보 컬럼 기고 내용을 일부 수정해서 포스팅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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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A 제러미 린, 꿈을 추구하는 젊은이의 모습

CEO 칼럼 2012.02.24 08:55
꿈을 포기한 대가

“왜 어린아이가 운동선수를 좋아하는지 아십니까?”

“잘 모르겠네요. 란제리 모델들과 어울리기 때문인가?”
“아니요. 그건 우리가 좋아하는 이유이구요, 아이들은 그들이 꿈을 추구하기 때문에 좋아합니다.”
“그렇다고 제가 덩크슛을 배울 수는 없지 않습니까?”
“그렇지만 당신은 요리를 할 수 있잖습니까? 당신은 요리를 하고 싶어 했지만, 대학을 졸업한 후 줄곧 이 직장에서만 일해 왔습니다. 그렇게 당신의 꿈을 포기한 대가로 도대체 얼마나 벌었습니까?”

영화 "Up in the air"

 영화 ‘업 인 디 에어(Up in the air)’에서 해고 전문가인 라이언 빙햄(조지 클루니)이 구조조정 대상자인 중견 간부에게 던진 대사다. 평생 한 직장에 충성을 다했고 자녀를 위해 최선을 다했던 사람에게 잔인한 통보를 하는 순간이다. 가슴 아픈 장면이다.

특히 ‘자신의 꿈을 포기한 대가’라는 표현이 뇌리에 남는다. 우월한 스펙과 안정된 직장을 성공의 잣대로 삼는 환경 속에서 개인의 꿈을 실현한다는 것은 교과서 속의 얘기일 뿐인가? 혹은 일부 ‘튀는 인물’에게나 가능한 드문 일인가? 개인이 꿈을 추구할 수 없다면, 그 사회의 비전은 도대체 무엇인가?


NBA 제러미 린 열풍

 

최근 미국 트위터나 페이스북에서는 미국프로농구(NBA)에서 활약하는 대만계 미국인 선수 ‘제러미 린(Jeremy Lin)’이 화제다. 스포츠 뉴스는 물론 포털과 언론에서도 이 선수의 활약상이 연일 톱뉴스로 등장한다. 농구는 미국의 자존심으로서 키와 체격이 큰 선수들이 주를 이룬다. 따라서 동양계는 철저히 소외당할 수밖에 없다. 그런 미국프로농구 세계에서 그는 ‘황색 열풍’을 일으키고 있다.

제러미 린. 1988년생. 대만계 미국인. 하버드대 경제학과 졸업. 독실한 크리스찬.
                
현재 미국 NBA의 뉴욕 닉스 소속 포인트가드.

프로필만 보면 그는 모범생으로서 공부도 잘하고 운동도 잘하는 영락없는 소위 ‘엄친아’다.


 그러나 그 이면의 기록을 보면 분위기가 전혀 다르다. 고등학교 졸업 후 농구 명문 대학 진학을 희망했지만 그의 꿈은 좌절되었다. 어느 곳에서도 운동 장학생으로 그를 원하지 않았고, 그는 자력으로 하버드대에 갈 수밖에 없었다. 졸업 후에 기대했던 프로선수 드래프트에서도 그는 철저히 외면당했다. 간신히 계약선수로 전전하다가 방출되어 뉴욕 닉스에 후보선수로 들어간다.

제러미 린 vs. 코비 브라이언트

그나마 방출 대상에 올랐다가 주전선수의 부상을 계기로 선발 기회를 얻는다. 감독도 별 기대를 하지 않았고, 교체 출전한 첫 게임에서도 별다른 주목을 끌지 못했다. 그러나 그는 연패로 침체되었던 팀을 연승의 기록으로 반등시킨 일등공신이 된다. 작은 키에도 활발한 플레이와 레이업슛, 빠른 침투 공격, 완벽한 수비, 정확한 중거리 슛 등을 선보이며 그의 활약은 매 게임 이어진다. 지난 10일(현지시간) 경기에서는 NBA 간판 스타 코비 브라이언트의 LA 레이커스를 상대로 38득점을 하는 경이적인 기록을 달성하기도 했다.


 그는 명문 대학 출신으로서 좋은 직장을 얻어서 편안하게 사는 데 별 어려움이 없었지만, 보통 사람들의 상식을 뒤엎었다. 자신을 인정해 주는 코스를 포기하고 자신을 무시하는 세계를 선택했다. 무자비하게 방출당하면서, 언제 방출당할지 모르는 불안한 상태에서 후보 생활을 전전했다. 그럼에도 그는 농구에 대한 꿈과 도전을 포기하지 않았다. 불굴의 노력은 한순간 주어진 기회를 거머쥐는 데 큰 역할을 했다. 꾸준한 연습으로 다져진 충실한 기본기와 장대 숲을 헤집고 다니는 그의 스피드는 많은 이들을 열광시켰다. ‘프로 농구는 흑인 스포츠’라는 인식을 불식하며 열등감을 가졌던 많은 동양계 미국인에게 자신감을 불어넣고 있다.

꿈을 위해 도전하는 기업가들

 우리 사회에도 자신의 꿈과 비전을 성취하기 위해 도전하는 이들이 있다. 산업 현장에서 세계를 상대로 열정을 불태우는 기업가들이 있다. 자금도 부족하고 세간의 주목도 받지 못한다. 잘 알려진 직장에서 편안하게 살기를 바라는 주위의 시선도 있다. 그러나 작지만 세계를 꿈꾸기에 강하고 즐겁다.

정보화와 세계화 시대에 힘의 축은 개인에게로 옮겨가고 있다. 따라서 개인의 역량과 열정은 사회 발전의 중요한 요소다. 기업도 종업원 하나하나가 어떠한 리더십과 창의력을 발휘하느냐에 따라 성과의 차이가 크다. 세계를 품고 도전하는 기업가 정신은 현재 한국 사회가 가장 절실하게 요구하는 시대정신이다. 따라서 이를 실현할 수 있도록 공정한 기회를 주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우리 공동의 목표가 돼야 한다. 그랬을 때 제러미 린처럼 기존의 인식과 장벽을 두려워하지 않고 진지하게 꿈을 추구하는 이가 많아질 것이고, 우리 사회의 각 분야에서 꿈과 도전이 큰 성과로 꽃필 기회도 더욱 늘어날 것이다.

* 이 블로그는 2012. 2. 13일자 중앙일보 게재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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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소 씻는 세탁기’서 읽는 중국문화

CEO 칼럼 2011.11.21 11:00

    한 대학에서 특강을 한 적이 있다. 매주 최고경영자(CEO)를 초빙해 현장의 목소리를 직접 듣는 프로그램이었다. 흥미롭게도 강의실을 가득 메운 학생들의 전공 분야가 인문계와 이공계가 절반씩 섞여 있었다. 융합이 중요하다는 생각에 의도적으로 만든 강좌라고 한다. 고등학교부터 문과와 이과로 나뉘는 우리의 교육 현실에서 보면 신선한 시도다.

 마침 주제가 정보기술(IT)이 일으키는 사회 변화였다. 모바일·클라우드·소셜네트워크·사이버 보안·프라이버시 등과 같은 시대적 키워드를 중심으로 진행됐다. 특히 지금은 고인이 된 스티브 잡스가 인문학과 기술이 교차하는 것을 설명하는 사진을 띄우자 탄성이 터져나왔다. 바로 그 강의장의 모습과 맞아떨어지기 때문이었다.

기술혁신을 통한 급격한 IT성장

    돌이켜 보면 과거 20~30년에 걸쳐 IT는 우리의 업무 생산성을 크게 향상시켰다. 그뿐 아니라 IT의 역할은 더 이상 보조적 수단이 아니라 사업의 중심으로 이동했다. IT가 일으키고 있는 변화의 미래는 이에 그치지 않는다. 삶의 구석구석에 스며들어 우리의 라이프스타일과 사회 환경을 바꾸고 있다.


 

                                            <사진출처. 네이버 블로그>

 IT는 기술혁신을 통해 급격한 성능 향상, 보급 확대, 가격 하락의 사이클을 보여줬다. 한 예로 과거 대학 전산실에서 사용하던 컴퓨터보다 현재 개인들이 가지고 다니는 컴퓨터가 더 강력해지는 데 불과 한 세대도 걸리지 않았다.

 컴퓨터와 인터넷의 덕택으로 정보를 찾는 것은 자유로움 그 자체다. 이제는 정보를 알고 있는 것보다 정보를 찾는 노하우가 더 중요한 시대가 되었다. 모바일 환경은 공간의 제약마저 없애고 있다. 태블릿과 스마트폰은 인간적인 터치로 기계적 장벽을 줄여가고 있다.

 카메라는 어떤가. 이제는 매우 보편적인 기능이 되어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누구나 수많은 사진이나 영상을 만들어낸다. 그뿐 아니라 그렇게 생성된 콘텐트는 소셜네트워크를 통해 급속도로 퍼져 나간다. 그런가 하면 무선인터넷을 대표하는 와이파이(WiFi), 위치를 알려주는 GPS 기능을 집어넣는 것은 아주 적은 비용으로도 가능하다.

 즉 지능적이고 스마트한 것을 만드는 일은 경제적 현실성 여부에 의해 좌우되지 않는다. 단지 얼마나 의지를 갖고 진지하게 실험하느냐에 달려 있다. 이러한 환경 변화로 인해 우리가 생각하고 소통하는 방식, 생활 문화, 그리고 교육 시스템에 큰 변화가 예상된다.

 이러한 변화는 산업시대처럼 후진국에서 선진국을 일방적으로 따라가는 형태로 진행되는 것도 아니다. 지역적으로나 세대별로 생각하는 방식과 문화가 다를 수밖에 없다. 감내할 수 있는 소비 수준도 천양지차다. 따라서 같은 기술이라고 해도 적용되는 형태는 다를 수 있다.

중국의 채소 씻는 세탁기 개발을 통해 배울 수 있는 점

 중국의 가전 회사인 하이얼은 유독 중국 농가에서 세탁기 고장 신고가 자주 접수되는 점에 주목했다. 그 원인을 분석해 보니 채소 찌꺼기가 기계에 끼어서 오작동하는 것이었다. 세탁기를 옷이 아닌 채소를 씻는 데 사용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하이얼은 고객을 탓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했다. 그리고 얼마 후 채소를 씻는 세탁기를 개발했다. 가위 발상의 전환이다. 우리나라에서도 한국 음식문화의 특성을 고려한 김치냉장고를 개발하지 않았는가.

 글로벌 기업 인텔에서는 인류학자가 제품 개발에 참여한다. 특히 후진국에서 기술이 어떻게 적용될지에 대해 집중적으로 연구한다고 한다. 인텔이 어떤 기업인가. 전자제품 속의 부품을 만드는 반도체 기업이다. 보통 사용자들은 직접 접하지 않는 제품이다. 그런 회사가 이러한 준비를 오래 전부터 준비하고 있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지금이 바로 인문학과 기술 융합이 필요한 시기

                                               <사진 출처. 조선일보>

 그런데 IT 강국이라고 자부하는 우리나라는 어떤가. 빠른 IT 인프라와 디지털 정보화 측면에서는 우리가 앞선 측면이 있다. 하지만 가위 혁명적이라 할 스마트 시대를 주도할 만한 준비는 하지 못한 게 사실이다. 지금은 기술이 기능적 수준에서 벗어나 우리의 삶 속에 유연하게 적용되는 스마트 시대다. 바로 인문학과 기술의 융합이 필요한 때다.

 또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이 있다. 융합은 거대 담론만으로 실현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융합은 자신의 울타리에서 벗어나 서로가 열린 마음으로 다가가는 자세에서 시작된다. 이때 자유로운 사고와 소통은 창의력의 원천이다. 거창한 구호를 앞세우는 데 익숙했던 과거의 방식으로는 이렇게 소프트하고 유연한, 그리고 세밀한 접근은 낯설고 새로운 도전이다. 그러나 이러한 사회적 공감대를 만들 수 있다면 우리의 잠재적 역량과 더불어 새로운 기회를 창출해 낼 것이다.

* 이 칼럼은 2011.11.21 일자 중앙일보에 실린 칼럼입니다. Ah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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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이 수학·과학자 영입하는 시대

CEO 칼럼 2011.10.31 11:30

인도사람들이 수학을 잘하는 이유 - 수학적 사고의 일상화

“인도인들이 수학에 대한 소질이 특출하거나 교육 방식이 유별난 것은 아니다. 다만학교 교육뿐만 아니라 일상생활 속에서도 습관처럼 늘 수학을 적용하고 살아간다. 수학적 사고가 일상화 있는 것이다.”

                                  <수학문제 푸는 사진. 출처: 네이버 블로그>

인도를 방문했을 때 만난 어느 대기업 임원의 대답이다. 그는 글로벌 사업의 경험이 풍부해 나름대로 객관적으로 인도의 경쟁력을 판단하는 통찰력을 가지고 있었다. 인도가 정보기술(IT) 강국으로 도약하고 있는 배경에는 이러한 일상화된 수학적 사고방식이 있었다.

우리나라의 수학 교육도 강도 면에서는 남부럽지 않은 수준이다. 그러나 삶의 현장에서는 별 필요 없는, 대학 진학을 위한 관문 정도로 인식되고 있다. 대입을 위한 수학은 아주 기본적인 내용이다. 그것도 단순히 답을 산출해 내는 데 초점을 두고 있다.  

수학은 ‘답을 맞히는 것’보다 ‘답을 도출하는 과정’이 더 중요하다. 정답 맞히는 데 급급한 수학 교육으로는 훗날 어려운 문제를 해결할 전문가를 키우는 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풀리지 않는 수학 문제 하나를 가지고 밤새 씨름도 해보고 여러 선인의 지혜와 고민을 자기 입장에서 반문하고 고민하는 훈련 과정이 있어야 하는데, 그런 중요한 과정이 빠져 있기 때문이다.

수학은 공학의 기초, 문제 해결 순간의 희열은 내재적 기쁨

최근 이공계 기피 현상과 함께 질적 저하도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한 공과대학 교수는 “요즘 학생들은 수학의 기초가 부족하다. 조금만 응용을 해도 전혀 문제를 풀지 못한다”고 하소연한다. 부모의 열성과 교육제도가 만들어 놓은 울타리 안에서 주어진 지식의 습득과 조련에만 의지해왔으니 조금만 문제를 꼬아놓아도 해결의 실마리를 찾기 힘든 것이다. 수학은 공학의 기초다. 과학적인 탐구 자세와 지적 호기심 없이 고등 수학을 활용한 공학으로 발전한다는 것은 요원한 일이다. 어려움이 있어도 밤새 공부하고 연구를 할 수 있는 이유는 그 자체가 즐겁고 성취감을 이룰 수 있기 때문이다. 어려운 문제를 풀어냈을 때의 희열, 새로운 것을 발견하고 만들어내는 창의력의 발휘는 누가 알아주지 않더라도 본인만은 만족할 수 있는 내재적 기쁨이다.

우리나라는 과학 기술을 발판으로 사회 발전과 국민 생활 향상을 이룩한 자랑스러운 역사가 있다. 과학 기술에 기반한 리더십을 발휘한 대표적 인물이 세종대왕이다.

                                      <세종대왕, 출처: 김기창 작가 작품>

세종대왕은 전 세계적으로도 가장 과학적이라고 인정받는 한글을 창제하고, 측우기·자격루·해시계 등 실생활에 유용한 과학 기구들을 발명해 우리나라 과학사에 굵직한 획을 그었다. 그는 계급을 뛰어넘어 장영실과 같은 인재를 발굴하고, 학자들이 연구개발에 몰입할 수 있도록 물심양면으로 지원했다. 이러한 업적은 백성을 긍휼히 생각하는 세종대
왕의 인간 존중 사상과, 과학 기술에 대한 확신
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오늘날 기업이나 조직의 핵심 역량은 기술이고, 기술은 수학과 과학에 기반한다. 대형 검색 서비스가 많이 있었음에도 구글이 군계일학의 독보적 위상을 구축한 것 역시 수학과 알고리즘 덕택이었다. 구글의 검색 엔진은 성능과 정확성 면에서 타 서비스와는 차원이 달랐다.

수학과 과학 - 기초학문의 흔들리지 않는 뿌리이자 마르지 않는 샘

기업들은 더 스마트하고 더욱 지능화한 기술을 개발하기 위해 더 우수한 수학자와 과학자를 영입하고 있다. 최근 급격하게 발전한 IT 덕택에 과거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연구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수학과 과학은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사고와 연구개발(R&D)의 토대가 될 뿐 아니라, 업무의 생산성과 투명성을 측정하는 잣대가 된다. 즉 기업의 능력을 가늠하는 척도라 할 수 있다.

과거 우리나라가 경제적으로 급격히 발전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교육에 대한 열정과 기술 중심의 발전 방향 설정이었다. 이 명제는 지금도 유효하다. 다만 우리가 교육 문제를 얘기할 때 본질적 요소인 ‘탐구와 몰입의 즐거움’을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 문제다. 비록 힘들고 치열한 경쟁의 나날이 계속되더라도 그러한 즐거움을 발견할 수 있고, 이를 바탕으로 세상을 움직이는 변화를 이끌겠다는 꿈과 포부를 키워갈 수 있다면 온갖 어려움을 극복해갈 수 있다.

과학 기술이 소외된 상태에서 윤택하고 활기찬 사회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나날이 발전하고 있는 첨단 과학 기술은 수학과 과학 같은 기초 학문에 뿌리를 두고 있다.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흔들리지 않고, 샘이 깊은 물은 가뭄에도 끊이지 않는다.

튼실한 뿌리가 있어야 든든한 줄기와 알찬 열매를 기대할 수 있다. 수학과 과학은 과학 기술의 뿌리이고 샘이다. 흔들리지 않는 뿌리와 마르지 않는 샘이 될 기초 학문의 발전을 기대해본다.



* 이 칼럼은 2011.10.31 일자 중앙일보에 실린 칼럼입니다. Ah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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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브 잡스가 남긴 최고의 선물은 '도전'

CEO 칼럼 2011.10.14 06:30
“스티브 잡스는 평상시엔 직원들에게 친절하다.
단 업무적인 이슈에 부닥치면 완벽할 때까지 파고들어간다.
토론할 때의 모습은 진지하다 못해 치열할 정도다.”


애플(Apple)에 근무했던 기술자는 스티브 잡스를 이렇게 회고했다.

오래된 친구를 잃은 슬픔

회오리 같은 인생 역정, 불꽃처럼 타오른 삶, 어느 날 갑자기 신제품을 내놓는 ‘외계인’ 등. 스티브 잡스를 묘사하는 표현들은 하나같이 열정적이고 이색적이다. 스티브 잡스가 유명을 달리했다는 비보에 마치 오랜 친구를 잃은 듯 안타깝다. 정보기술(IT) 분야에 몸담고 있는 이들 누구나 비슷한 상실감을 느꼈을 것이다.

하긴 그가 만든 제품을 처음 접한 게 대학 시절인 1980년대 초반이었으니 거의 30년 가까운 세월을 그와 함께 보냈다고 할 수 있겠다. 지난 30년간의 IT 역사를 볼 때 그만큼 커다란 영향력을 끼친 사람은 드물다. 토머스 에디슨이 전기 문명을 우리 역사에 남겼다면, 잡스는 IT를 통한 디지털 라이프를 우리에게 선물했다.

'스티브잡스의 프리젠테이션 모습(사진출처: 네이버 블로그)'

디지털 라이프의 선구자였던 스티브 잡스

IT 분야의 선구자였던 그는 굵직굵직한 변곡점을 만들어 냈다.

우선 개인용 컴퓨터(PC)라는 시장을 만들었다. 이전에는 컴퓨터라고 하면 으레 검은색 배경 화면에 흰색이나 녹색 글자가 떠오르는 단말기였다. 그런데 그는 밝은 색 배경에 다양한 크기와 모양의 글자, 아이콘과 그래픽이 주도하는 획기적 화면을 세상에 선물했다. 이후 모든 컴퓨터의 사용자 인터페이스는 그가 선보인 방식으로 변화했다. 그는 또 CD가 주도하던 음반 시장을 온라인 디지털 음원 위주로 바꾸었다. 음성 통신을 위한 휴대전화는 모바일 인터넷이 가능한 스마트폰으로 재탄생했다. 또 수직적 산업 모델을 수평적 모델로 바꾸는 앱스토어(AppStore) 경제를 창출했다. 모두가 안 된다고 단정했던 태블릿PC를 발매 27일 만에 밀리언셀러로 만든 이도 잡스다. 그는 자신이 연 PC 시대의 종언을 스스로 고하며 포스트PC 시대를 선언했다.

그의 영향력은 실로 엄청났다. 그가 신제품을 발표하면 세계는 숨죽이고 그 무대를 주목했다. 발표장은 환호성으로 넘쳤고 그의 연설과 어록은 두고두고 회자됐다. 개인화와 융합은 ‘인문학과 기술의 소통’이라는 그의 철학을 반영한 시대정신이 되었다. 대학을 중도 포기한 그가 스탠퍼드대 졸업생들에게 준 메시지는 그의 삶에서 우러난 것이기에 더욱 깊은 울림을 주었다. 결코 평범하다고 할 수 없는, 치열함과 굳은 의지로 일관된 삶이었기에 더 깊은 통찰력이 느껴졌다.

그는 자신이 설립하고 성공으로 이끈 회사에서, 자신이 고용한 사람으로부터 쫓겨나기도 했다. 그러나 온갖 좌절과 치욕, 실패를 뚫고 IT 세계의 지도자로 멋지게 재기했다.

인생은 격렬한 파도와 같다

한때 좌절하고 있던 필자에게 어느 선배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누구나 인생의 파도를 만나게 된다. 파고의 차이가 있을 뿐 평탄할 수만은 없다. 스티브 잡스 같은 이야말로 가장 격렬한 파도를 겪으며 살고 있지 않은가? 그보단 덜하겠지만 사업을 하려면 진폭이 큰 오르내림을 각오해야 한다.” 그 격려가 어려운 시절을 극복하는 데 큰 도움이 됐음은 물론이다.

“나는 암 진단을 받았다. 죽음은 어느 누구도 피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죽음은 삶이 만든 최고의 발명품이기 때문이다.
죽음은 낡은 것을 없애고 새로운 길을 내어준다.”


죽음을 앞두고서도 그는 이렇게 초연했다. ‘죽는다는 사실을 기억하면 정말로 잃을 게 없다’는 생각으로 끊임없이 도전한 삶이었기에 그의 메시지는 더 깊은 울림을 주었다.

'스티브잡스의 스탠포드 졸업식 연설 모습(사진출처: 네이버 블로그)'

“실패의 위험을 감수해야 예술가로 살아갈 수 있다.
늘 갈망하라, 우직하게 나아가라
(Stay hungry, Stay foolish).”


도전의 아름다움을 보여준 그의 삶은 기업가 정신이 절실한 시대에 이렇듯 우리가 놓쳐선 안 될 가치들을 새삼 일깨워준다.

*  2011.10.11 일자 중앙일보에 실린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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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스티브 잡스들을 위하여

CEO 칼럼 2011.10.13 06:30

1980년대, 미국 유학 시절 졸업 논문 작성을 앞두고 있던 때였다. 논문의 방향과 실험은 거의 정해졌고, 한 권의 책으로 완성하는 일만 남겨두고 있었다. 시간 내에 최대한의 완성도를 내기 위해서는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했다.

생애 처음 장만한 애플 컴퓨터 세트, 아직도 소장중

고민 끝에 가난한 유학생 신분으로는 ‘과감한’ 결정을 내렸다. 당시 선풍적으로 인기를 끌던 애플의 맥(Mac) 컴퓨터와 레이저 프린터 세트를 구입하기로 한 것이다. 학교 컴퓨터에 담겨 있던 내용을 옮기는 작업, 새로운 컴퓨터를 익히는 시간 등을 감안하면 위험 요소도 적지 않았다.


'스티브잡스가 자신의 딸 이름을 따서 지은 애플의 '리사', 1983(사진출처: etnews)'

우려는 기우에 불과했다. 직관적인 사용자 인터페이스라서 별도의 학습 시간이 필요 없었다. 그래프와 도식이 많이 필요한 전공이었음에도 크게 시간을 절약할 수 있었고 언제든 고품질의 출력물을 확인할 수 있었다. 지도교수도 놀랄 정도로 빨리 논문을 완성할 수 있었다. 돌이켜 보면 이것이야말로 내 인생에서 가장 잘한 결정 중의 하나였다.

이것이 애플과 나의 소중한 인연의 시작이었다. 20년도 지났지만 나는 아직도 이 컴퓨터를 소장하고 있다. 결코 잊을 수 없는 내 삶의 조력자였기 때문이다.

   '스티브잡스의 프리젠테이션 모습(사진출처: 네이버 블로그)'

스티브 잡스는 수많은 혁신적인 발명품을 우리에게 가져다 주었다. 컴퓨터, 통신 기기, 오디오 플레이어, 태블릿 등 각종 기기는 물론 멀티미디어 콘텐츠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디지털 라이프를 재구성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언제나 '고객의 시각'을 유지한 스티브잡스의 철학을 본받아야

이는 스티브 잡스가 늘 ‘고객의 시각’을 유지했기 때문이다. 자신이 고객이 되어 어떤 것을 만들면 좋을까 고민했다. 고객은 복잡하고 어려운 제품을 원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는 모든 기술적 요소를 단순하게 만들었다. “단순함은 복잡함보다 더 어렵다. 어떤 걸 단순하게 만들기 위해서, 당신의 생각을 선명하게 만들기 위해서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내가 단시간에 졸업 논문을 완성할 수 있었던 것도 그의 이런 철학 덕분이다.

우리나라에도 잠재적인 스티브 잡스들이 있다. 이들에게 필요한 건 무엇일까. 가장 근원적인 것은 자신의 삶을 진지하게 사는 자세다. 우리는 무엇엔가 기대어 살기를 원한다. 학력이나 경력과 같은 배경, 조직의 시스템, 타인의 인정 등. 그러나,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스티브 잡스와 같이 진솔하게 자신이 꿈꾸는 세계를 그려가는 자세다. 꿈꾸던 세계를 실현 가능하도록 해주는 것이 소프트웨어다.

한국의 스티브잡스에게 고한다


한편, 그들이 ‘한국의 스티브 잡스’로 성장하려면 그만한 토양이 전제돼야 함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잡스는 융합, 소프트웨어, 수평적 비즈니스 모델의 키워드로 우리나라에 충격을 주었다. IT와 인문학의 창의적인 융합을 이끌어내고, IT 산업의 주도권이 소프트웨어에 있다는 명제에 사회적 공감대를 이루고, 수직적 비즈니스 관행을 벗고 수평적 비즈니스 모델을 정착해나가는 일이 우리에게 숙제로 남았다. 이는 교육, 제도, 산업 구조 등 다각도에서 풀 일이다. 아울러 실패하더라도 도전 자체의 가치를 인정하는 사회 분위기도 필요하다.

* 2011.10.10 일자 한국일보에 실린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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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재범 콘서트 후 IT 스토리텔링 스친 이유

CEO 칼럼 2011.07.13 07:02

6월의 마지막 주말 오후.

주룩주룩 내리는 비 속에서 아내와 함께 올림픽 공원 체조경기장을 찾아가고 있었다. 생전 처음 어느 가수의 라이브 콘서트에 가기 위해서였다. 오래 전 어렵게 티켓을 구해 놓고 혹여 이 날 다른 스케줄이 발생할까 노심초사하며 기다렸던 이벤트였다. 처음 가보는 장소이고 비도 많이 와서 일찌감치 콘서트 장소에 도착했다. 그런데, 1시간이 남았음에도 이미 줄을 서서 들어가는 인파로 가득했다.

 

임재범 콘서트!


콘서트장 주변에는
다시 깨어난 작은 거인’, ‘왕의 귀환’, ‘돌아온 록의 전설등의 메시지로 가득했다

나는 가수다라는 프로를 통해 가수 임재범의 모습을 처음 보았다. ‘고해너를 위해를 통해 그가 노래 잘 하는 가수라는 것은 익히 알고 있었다. 그러나, 정작 그의 모습을 TV에서 본 적은 전혀 없었다. 그러다가 나가수에서 처음으로 임재범을 보게 된 것이다. 선 굵은 노래는 강렬한 인상을 주기에 충분했다. 임재범이 출연하면서 나가수의 인기도 높아지지 않았나 하는 생각마저 든다. 우리 집도 그때부터 그 프로를 본격적으로 보기 시작했으니까.

'나가수'에서 열창하는 임재범

콘서트 포스터


모녀가 손잡고 나타난 콘서트장

청중들을 둘러 보니 정말 다양하다
. 20대부터 5-60대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남녀노소다. 입장하기 위해 줄 서 들어가는데 바로 앞에는 따님이 연세드신 어머님 손을 꼭 붙잡고 왔다고 한다. 자리를 잡으니 앞에는 젊은 대학생 커플, 그 옆에는 대학생으로 보이는 아들 딸을 데리고 온 가족이 출동했다. 왼쪽을 보니 60대 할머니로 보이는 분들이 5-6명 같이 와서 자리잡고 앉았다. 중장년에 이르기까지 고른 여성팬들이 있다는 점을 대번 알 수 있었다.

 

드디어 막이 올랐다. 첫 곡은 빈잔’. 북을 치면서 시작하는 곡이라서 오프닝으로는 적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추노와 시티헌터의 OST로 알려진 낙인’, ‘사랑’, 한편 ‘주먹이 운다와 같은 파워풀한 음악, ‘사랑보다 깊은 상처등 잘 알려진 노래들을 섞어 가면서 하나씩 부르기 시작했다. 전반부는 대체적으로 친밀감이 높은 노래 위주였다.

 

우리는 가장 먼 위치의 자리에 앉아서 실물은 잘 보이지 않았지만 소리만은 잘 들렸다. 그런데, 아무리 마이크를 사용한다 하더라도 오케스트라와 각종 악기의 소리를 뚫고 나오는 소리는 마치 폭포수를 뚫고 나오는 힘이 느껴졌다. 확실히 파워가 있다는 느낌이다.


임재범의 "데스페라도(Desperado)"
 

다른 가수의 노래도 부르기 시작한다. 이문세의 가로수 그늘 아래 서면’. 그의 목소리와 딱 들어맞는다. 역시 같은 멜로디라고 해도 음색이 다른 가수의 목소리로 들으면 전혀 다른 느낌이 든다.

 
결정적인 것은
데스퍼라도(Desperado)’. 순간 아내의 얼굴을 쳐다 보았다.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노래이자 나도 즐겨듣는 노래이기 때문이다. 좋아하는 가수로부터 좋아하는 노래를 듣게 되다니... 벅찬 감동과 더불어 가슴 속에 찡한 울림이 밀려왔다. CD를 사리라.


콘서트장 풍경 (한경)

 

휴식 시간 없이 공연은 3시간 동안 이어졌다. 후반부에 들어가면서 드디어 록(rock)이 등장했다. 오케스트라가 빠지고 디아블로라는 그룹이 등장했다. 나는 과연 연세 드신 분들이 록에 어떻게 반응할까 궁금했었다. 그런데, 그런 우려를 씻기라도 하듯 록은 모든 청중을 일으켜 세웠다. 록에 대해 새롭게 매력을 느끼게 된 계기였다. ‘크게 라디오를 켜고를 끝으로 3곡의 록 공연은 그의 진면모를 보여 주기에 충분했다.

 

록이 끝나자 이제 그의 남은 히트곡들에 대한 기대감이 고조되었다. '고해' & '너를 위해'. 그리고 나가수에서 선보이면서 선물로 받은 여러분’. 장내가 조용해지더니 젊은 여성이 조용한 성가를 올갠 반주에 맞추어 부른다. 그가 진솔하게 털어 놓은 번민과 고뇌의 스토리와 묘하게 들어맞는다. 병에 걸린 자신의 아내, 끔찍하게 아끼는 딸 지수.

최고의 감동 '고해'

어쩐지 ‘
고해가 등장할 것 같은 분위기다.
 고해’. 노래방에서 절대 해서는 안 되는 곡 1. 애인에게 괜히 했다가 왜 임재범처럼 노래 못해?”라며 핀잔듣기 일쑤인 노래. 어떻게 다를까? , 그런데 정말 감동 그 자체다. ‘고해만으로도 10만원이 아깝지 않게 느껴졌다.

 

귀가하는 길에 임재범 CD를 다시 들어 보았다. 오히려 CD는 오늘 직접 들은 감동에 비해 떨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CD의 목소리는 가늘게 느껴졌으나, 현장에서 들은 노래는 그의 인생이, 스토리가 모두 담겨져 있는 소리였다.

오늘 콘서트 현장에서는 번민과 고뇌의 시절을 진솔하게 얘기했다. 그러다가
 고생하는 자기의 아내, 딸의 이야기가 이어졌기 적어도 이 순간만은 마치 고해하는 심정으로 부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한 스토리가 가미된 음악은 차원이 다르게 다가왔다. 내가 지금까지 들어본 고해중 최고 중의 최고였다.

'여러분'으로 대미를 장식한 뒤 마지막 앵콜 송은 '나가수'에서 입고 나왔던 캐주얼 정장 차림으로 '너를 위해'를 불렀다. 이로써 3시간의 대공연은 끝났다.


어느 평론가 말에 의하면 "임재범은 음정, 박자가 틀려도 그렇게 또다른 노래가 된다". 아주 적합한 표현이다. 음악이 몸에 배어 있고 그의 스토리가 감정에 실려서 음악으로 배출된다. 그래서인지 깊이있고 입체적이다. 비 맞으면서 돌아오는 길에도 그 감동은 내내 함께 했다. 다른 이들도 같은 감동을 받았는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우리에게는 아주 촉촉한 즐거운 시간이었다. 

임재범 콘서트를 다녀온 후 여운이 남아 칼럼을 썼다. 모 언론사에 제공하는 칼럼인데 임재범 콘서트 후 스친 생각이라 내용이 소프트해졌다. 정리하자면 임재범을 통해 본 IT와 스토리텔링에 대한 내용이다. CEO 칼럼은 아래와 같다.

스티브잡스-임재범에 열광하는 이유와 IT 스토리텔링

치열한 경쟁 속에 사는 현대인들, 감동 담긴 훈훈한 스토리에 공감
소통·친화력 강조하는 SNS처럼 IT제품 ‘스토리텔링’ 담아야 성공

   6월의 마지막 토요일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 폭우가 쏟아지는 가운데 1만여 명의 관객이 한 가수의 노래를 듣기 위해 이곳을 찾았다. 주인공은 유명 아이돌 그룹도, 한류 스타도 아닌 내년이면 쉰 살이 되는 록 가수 임재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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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인적인 고뇌와 방황으로 대중에게 잊혀졌던 임재범은 ‘나는 가수다’라는 TV 프로그램을 통해 단번에 재기했다. 오랜 침묵을 깨고 다시 등장한 것은 그가 노래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한 가족 때문이었다. 이런 스토리가 혼신을 다한 그의 열정과 음악의 진정성에 상승효과를 일으켜 큰 감동을 주었다. 콘서트 현장은 대학생부터 중년 부부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남녀노소로 가득했다. 그의 삶의 이야기가 노래라는 매개체를 통해 대중과 교감을 이루어낸 결과였다.

 비슷한 사례는 많다. 얼굴 없는 가수처럼 살다 빼어난 실력과 끼로 소위 ‘비주얼 가수’로 거듭난 김범수. 불굴의 노력과 음악인 김태원의 멘토링에 힘입어 서바이벌 프로그램에서 우승을 거머쥔 옌볜 청년 백청강. 그들의 노래 속에는 스토리가 담겨 있기에 청중에게 더 큰 감동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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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 goal.com)

 “저는 축구는 잘하고 싶은데 평범하고 싶어요.”

 한국을 대표하는 박지성 선수의 순수함이 담겨 있는 표현이다. 축구 명문대학 출신이 아니던 그는 눈에 띄지 않았던 존재였다. 설상가상으로 축구를 하기 힘든 신체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그럼에도 꾸준한 노력과 진지함, 남다른 축구에 대한 열정으로 시대를 대표하는 선수가 됐다. 오늘날 영국 최고의 명문 클럽에서 활약하는 그의 스토리는 자랑스럽기 그지없다. 최근에는 베트남에서 자기만의 기부 프로젝트를 시작했다고 한다. 그를 추앙하는 어린이들에게는 영웅이, 자라나는 꿈나무들에게는 희망이 되고 있다.

 오늘날 우리는 치열한 경쟁 속에 살고 있다. 생존을 생각해야 하고, 뒤처지면 안 된다는 강박관념에 짓눌려 여유를 즐기기 어렵다. 특히 과학기술의 발전 속도는 자칫 우리 삶을 기계적이고 기능화된 사고에 머무르게 한다. 그럴수록 눈길을 끌고 감동을 주는 것은 훈훈한 스토리다.

   그것이 예술적 콘텐트이든, 왕성하게 활동하는 누군가의 삶이든 간에 우리에게 기쁨을 주고 공감을 이끌어내는 데 매우 중요한 요소다. 스토리가 진솔하면 진솔할수록 우리에게 다가오는 감동도 배가된다. 이는 단지 유명 스타에 머무르지 않는다. 평범한 이들의 아름다운 이야기는 미디어를 통해 우리 삶을 윤택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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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품이나 서비스 또한 마찬가지다. 기능 혹은 성능의 기술적 지표보다 무엇을 어떻게 전달할지에 성패가 좌우된다. 기술자는 자신이 만든 것을 누군가가 사용할 때 가장 큰 보람을 느낀다. 따라서 어떤 생각으로 이것을 만들었느냐 하는 스토리를 전달하는 것이 필요하다.

   애플 최고경영자(CEO) 스티브 잡스가 건강이 좋지 않음에도 중요 신제품 발표에 꼭 등장하는 이유다. 신제품의 사상과 스토리를 전달하려는 것이다. 『이야기가 세상을 바꾼다』의 저자 홍사종 대표는 “‘잘 만든 제품’에 ‘잘 만든 이야기’가 입혀져야 생명력을 얻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한마디로 산업화 패러다임의 덕목인 기능과 품질이라는 기본 위에 멋과 이야기라는 궁극의 덕목을 의식적으로 추가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보기술의 발달로 인간미가 사라진다고 한다. 그러나 이제는 기술이 인간에게 다가서는 스마트와 융합의 시대다. 친화력이 점점 높아지는 스마트 기기, 소통의 공간과 시간을 무한 확대하는 소셜네트워크가 대표적인 예다.

 그런 의미에서, 앞으로 우리가 만들어내는 제품이나 서비스를 어떤 스토리로 풀어내느냐는 매우 중요하다. 이를 위해선 제품의 기획부터 개발, 마케팅에 이르기까지 진정성과 일관성을 가진 스토리가 스며들어야 한다. 스토리텔링은 보다 인간적인 사회를 만드는 작은 노력이자 앞으로 기업의 경쟁력을 좌우하는 핵심이 될 것이다.

< CEO 칼럼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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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디도스 현장에서의 3박 4일

CEO 칼럼 2011.03.07 10:37
설마 또다른 DDoS 사태로 다시 블로그를 올리게 되리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악성코드는 계속 진화해 왔지만, 설사 보안 사고가 나더라도 이번에는 DDoS가 아닌 다른 형태가 되리라고 예상했다. 우리가 두 번 당할 정도로 허술한 대비를 세웠으리라고 생각하지 않는게 공격자(Attacker)의 상식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2011년 3월 4일 DDoS 사태는 다시 벌어졌다. 주말을 끼고 숨가쁘게 며칠을 보내고 나서 일요일 저녁 이 전쟁에 참여했던 인력들과 회의실에 모였다. 다음 날은 새로운 한 주가 시작된다. 업무 시작하기 전에, 우리 고객들이 출근하기 전에, 우리가 겪었던 일을 정리하고 대책을 미리 마련해야 한다. 더 이상 미룰 수가 없었기에 마음은 아프지만 연구원들을 깨웠고, 그들은 졸린 눈으로 하나 둘 회의장으로 들어왔다. 현장에서 그들이 경험한 얘기를 생생하게 들으면서, 또다른 역사의 한 장면을 보냈다는 생각이 들었다.

7.7 디도스 대란 VS 3.4 디도스 대공습

이번 공격은 여러모로 7.7 DDoS와 유사한 점이 많았다. 주요 정부기관과 금융기관, 포털 등을 동시 다발적으로 타겟했고 특정 시간에 동작하도록 했다는 점은 거의 같다. 선정된 대상도 일부 다르지만, 대체로 7.7과 성격은 유사했다. 보안 기업은 이번에는 우리 회사만 리스트에 있었다.

어느 대기업 임원은 "왜 우리는 빠졌지?" 라며 다소 불만섞인(?) 소리도 했다. 어느 기관에서는 자신들의 이름이 잘못 표기되었다며 정정해 주기를 요청하기도 했다. "악당들이 만든 리스트에 신경을 써야 하는가?" 하는 씁쓸한 생각마저 들었다.
헤드라인 뉴스에 등장한 3.4 디도스 안랩 DDoS 장비의 모니터링 화면

공격 형태는 다소 차이가 있다. 7.7의 경우 24시간 단위로 공격 리스트가 이동(shift)한데 비해, 3.4는 일단 공격이 시작하면 종료 시점이 없다. 결국 좀비 PC를 줄이지 않는 한 공격 트래픽은 계속된다는 얘기다. 또한 공격 도중에 원격에서 공격 대상과 시간을 수시로 조종했다.

특정 시간이 지나면 하드 디스크(HDD)를 파괴시키는 수법은 동일하다. 몇 개의 공격 시나리오로 구성되어 있어서 분석하는 과정에 가장 이견이 많았던 부분이다. 결국 각자의 관점 모두 맞다는 판명이 났지만.. 또한 특이하게도 이번 공격에서는 파괴 시점이 유동적이었으며 분석가를 속이기 위한 알고리즘으로 구성되어 있어 분석의 초점을 흐리게 하려는 노력이 역력했다.

결국 DDoS 공격이 실패로 드러나자 3월 5일 토요일 밤, 원격에서 감염시킨 PC를 바로 완전삭제하는 '지령'을 내려 보냈다. 이 공격은 7.7 에는 없었던 새로운 형태다. 증거인멸과 피해를 극대화하기 위한 치밀한 행동이었다.
토요일 저녁 "이제 끝났다 보다"하고 좀 쉬려는 연구원의 모니터링에 걸려든 마지막 악성코드는 3일째 밤 사투를 벌이게 한 최종 공격 명령이었다.

3.4 DDoS는 경미한 사건이었나?

3.3 DDoS 사건을 두고 7.7 DDoS와는 상대가 안 될 정도로 경미한 사고라고 평가절하 하는 의견도 있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악성코드 자체는 더욱 교묘하게 설계되어 있었다. 또한 배포 경위나 조종 역량에 있어서는 단순 모방이라고 보기에는 전문가의 냄새가 많이 난다. 과연 누구의 소행일까? 한 가지 이상한게 제1금융권이 아닌 '제일저축은행'이 들어가 있다는 점이다. 'SC제일은행'을 대상으로 해야 다른 명단과 어울린다. 개인적 추측이기는 하지만 혹시 한국을 알기는 한데 뭔가 부족한 인물은 아니지 않을까?

공격 기법은 최근에 유행하는 정교한 기법에 비해 떨어졌다. 악성코드의 제작과 배포기법에 비해 네트워크 공격 자체는 전문성이 덜했다는 것이다. 만일 네트워크 공격이 최신의 공격 방식을 채택했다면?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이번에 좀비화된 PC는 5만대 정도로 7.7 디도스 때 보다 상대적으로 적다. 그러나, 그러한 결과는 배포지를 미리 차단한 '예방' 조치가 그 만큼 잘 되었다는 점을 의미한다. 만일 7.7 디도스처럼 배포지를 미리 파악하지 못했다면 충분히 그 당시 수준으로 확산되었을 수 있다.

또한 악성코드의 조기 확보와 진단, 사이트에 대한 예고, 각 사이트의 준비 노력 등이 과소평가 되고 있다. 국민은행의 경우 이번 공격의 주타겟이었다. 가장 높은 트래픽으로 오랜 시간 힘든 상황이 지속되었음에도 완벽하게 방어했다. 이는 DDoS 구축은 물론 매달 모의훈련을 하면서 프로세스와 조직 역량을 배가한 결과로서 귀감이 될 만하다.

ASD(AhnLab Smart Defense)의 위력 발휘

우리 회사는 2008년부터 급증하는 악성코드를 어떻게 처리해야 하느냐 고심끝에 클라우드 기반의 종합위협 분석시스템, ACCESS를 개발했다. 그 결과 7.7 DDoS 당시 클라우드 엔진은 구축되어 시운전이 되고 있었지만, PC에 에이전트(agent) 배포가 막 시작했던 시점이라 사전 대응에 충분히 작동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 후 V3 Lite 무료백신, V3 365 클리닉 개인 사용자에게 적용되고, ASD(AhnLab Smart Defense) 시스템이 구축되면서 악성코드의 분석력과 추적 역량은 획기적으로 발전했다.



ASD는 3.4  DDoS 사태에서 진가를 발휘했다. 실시간으로 전국에서 돌아다니는 악성코드를 찾아 내어 그 행동 분석에 들어가기 때문에 샘플의 조기 발견에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특히 악성코드의 배포지인 P2P 사이트를 정확하게 알아내어 조기에 배포를 차단했다. 이러한 조기 발견과 차단이 긴박하게 돌아가는 해커와의 싸움에서 기선을 제압할 수 있었던 비결이었다.

또한 악성코드의 조기 분석을 통해 어떠한 종류의 네트워크 공격 유형인지 미리 예측했다. 따라서, 공격 시간은 물론 공격에 관한 제반 정보를 CERT팀과 관제 인력과 공유하고, 또한 우리 DDoS 장비에 업데이트했다. "복합적인 공격에는 복합적으로 맞방어를 해야 한다"는 단순한 원칙을 이번에 실질적으로 실행했던 셈이다.

우리 회사의 특징은 악성코드 분석센터(ASEC)와 침해사고에 대응하는 보안관제서비스(CERT) 조직이 바로 옆에 붙어있다. 네트워크 장비에 들어갈 시그너처 분석도 모두 한 조직이다. 결국 10미터 반경 이내에서 악성코드 배포 현황과 네트워크 공격 상황을 실시간으로 볼 수 있을 뿐더러, 각 분야의 모든 의사 결정자가 바로 그 사이버전쟁의 현장에 있기에 이런 위기 상황에 신속하게 대처할 수 있었다.
CERT (관제 센터) ASEC 모니터

사실 ASD를 구축하고 엔드포인트(PC)와 네트워크 장비의 통합적 운영, 악성코드 분석(ASEC)과 CERT의 시너지를 얘기해도 외부의 많은 전문가들이 반신반의 했지만, 이번에는 이 모두가 정확하게 작동했다. 몇 년 간의 집중적 R&D 투자와 수십억에 달하는 막대한 인프라 투자가 빛을 발해서 보람도 느꼈다. 무엇보다 우리의 방향이 맞았다는 것을 확신하게 된게 가장 큰 수확이다.

물론 아직 부족한 점이 많다. 이번에 보강해야 할 부문을 다시 점검해서 더욱 강화해 나갈 것이다. 앞으로 스마트폰과 SNS와 같은 다양한 서비스가 다양화되면서 이에 대비하기 위한 R&D 투자에 더욱 박차를 가하리라 마음 속으로 다짐했다. '입체적이고 치밀한 공격'과 '지능화되고 종합적인 방어 시스템'의 전쟁은 이제 시작일 뿐이다.

감사드려야 할 분들에게

3박 4일 동안 밤잠을 못 이루고 노력한 우리 연구원, 대응 인력, 관제 요원, 현지 지원 인력, 고객 센터, 그 외에도 주말을 반납한 수많은 직원들의 헌신적인 노력에 진심으로 고맙게 생각한다. 여러분들의 열정적인 노력이 많은 분들을 큰 불편에 빠지지 않도록 도와드리게 되었다. 항상 사건이 마무리되고 나면 사후 지원과 각종 문의 때문에 고객 센터가 바쁘기 마련인데, 역시 지금 전화통에 불이 나 있다.

끝으로 이번 대응 과정에서 머리를 맞대고 밤을 지새운 방송통신위원회 직원들과 국정원, 한국인터넷진흥원(KISA) 연구원들의 노고를 높이 치하한다. 때로는 의견차도 있었지만 그것은 모두가 해결을 하기 위한 의지가 그만큼 강했기 때문이다. 같이 일해 본 사람만이 그 노력을 알아볼 수 있다. 우리 모두가 한 마음으로 노력했기에  조기 퇴치에 성공할 수 있었다.

앞으로도 더욱 정진할 것을 다짐하면서 3박 4일의 소감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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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위터 공간에도 세시봉 이야기 꽃피운 이유?

CEO 칼럼 2011.02.05 08:56

세시봉, 맘 한 구석의 낭만을 끄집어낸 이야기

설 연휴 전인 월
, 화 이틀간 유재석, 김원희가 진행하는 놀러와프로에서는 전설적인 세시봉의 멤버들이 모여서 작은 콘서트와 옛 시절 추억의 얘기를 담았다. 조영남, 송창식, 윤형주, 김세환! 모두 한국 가요계와 한국 문화의 한 획을 그었던 낯익은 이름들이다. 물론 젊은 세대는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50-60대에게는 이름 만으로도 당시의 추억에 빠져들 수 있는 힘이 있었다.

 
세시봉 음악은 사춘기, 70-80은 대학 시절

나는 세시봉에 직접 가 본 적은 없다. 그러나, 그 이름은 익히 들어서 알고 있다. 내가 73년도에 중학교에 들어갔고 79년도에 대학에 들어갔으니, 나에게 있어서 세시봉은 10대 사춘기, 70-80은 대학시절 음악이다. 특히 사춘기 시절 음악 들으면서 공부하면 야단맞았었는데, 이번 세시봉 특집프로를 보면서 바로 그 몰래 듣던 음악이 이렇게 내 맘 한 구석을 차지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내와 같이 자정이 훨씬 넘은 시간에 그 음악을 들으면서 찐한 감동을 느꼈다. 사실 트윈폴리오나 조영남 노래는 맘만 먹으면 언제든지 들을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4명이 기타치면서 즐겁게 부르는 노래가 나의 맘 속에 이렇게 공명을 불러 일으킬 줄은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양희은의 '아침 이슬' (MBC) 친구들에게 편지를 읽는 이장희 (MBC)

특히 1부에 나온 양희은의 아침 이슬’, 2부에 나온 이장희의 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는 정말 듣고 싶었던 터라 그 매력에 깊이 빠져 들었다. 역시 아침 이슬은 양희은이 불러야 제맛이군! 이장희 노래는 우리가 부르면 밋밋한데, 직접 그가 부르면 저렇게 매력이 있다니.

 

통금이 있던 시절 쥐 죽은 듯 조용한 밤에 책상에 앉아 있는 나의 유일한 벗은 라디오. ‘0시의 다이얼에서 이장희 DJ가 틀어 주던 음악과, 그가 읽어 주는 엽서의 사연을 들었던 기억이 또렷하다. 밖에 나갈 수 없던 시절, 심야 방송 DJ는 그 시간을 지배하는 왕이자 친구였다.

 

세시봉 이야기로 꽃을 피운 트위터 공간

한편 이 프로가 방영되는 내내 트위터 공간은
세시봉얘기로 꽃을 피웠다. 마치 옆에서 가족이나 친지들과 보면서 얘기하는 느낌이 들 정도로 트윗이 가깝게 느껴졌다.

동시대를 산다는 건 꽤나 대단한 일이다. 비슷한 음악에 감동받고, 같은 일에 흥분하고, 공통된 희망과 꿈을 꾼다는 건 마법처럼 놀랍고 화려한 일이다. 더욱이 제한된 트위터 공간에서 함께 숨쉬고 동감하는 사람이 있다는 건 행복이 아닐 수 없다.” 조애경 (@aikecho)

 

방송작가인 박경덕 씨 (@ParkKD)는 당시 이들과 현장에 같이 계셨는지 야사(野史)나 숨겨진 스토리를 실시간으로 트윗해 주었다. 마치 TV를 같이 보면서 바로 옆에서 나에게 이런 얘기 저런 얘기 들려주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트윗 공간에서 기술적 벽이 사라지고, 사람과 사람 만의 직접적인 소통만 이루어지는 찐한 느낌이 들었다.

 

우정 출연한 장기하 (MBC)

윤도현, 장기하! 세시봉 세대가 아닌, 내가 좋아하는 가수들의 등장도 양념처럼 느껴졌다. 나는 담배가게 아가씨라는 노래가 윤도현 씨 노래인 줄 알았는데, 송창식 씨의 곡이었다.

미국에서 꽤 유명한 록 그룹에서 기타리스트를 하는 사촌 동생이 있는데, 그의 친구들을 만난 적이 있다. 보통 락 가수 하면 터프하고 괜히 퇴폐적이지 않을까 하는 잘못된 선입견이 있다. 솔직히 나도 그랬었는데 그 친구들을 보면서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다. 비록 온몸에 문신을 하고 있었지만, 음악을 사랑하는 순수한 아티스트의 모습을 느낄 수 있었다.


순수함과 낭만의 문화
 

세시봉의 공연을 보면서 느낀 순수함도 비슷했다. 그들은 돈을 벌기 위해서, 유명해 지려고 치밀하게 기획된 상품이 아니었다. 그냥 노래가 좋았고, 밥 한끼 해결할 수 있으면 하는 심정에 그 곳에 와서 같이 어울려 노래하고, 노래 만들고, 즐거움과 아픔을 나누었다. 진정 노래를 좋아하고 아끼는 아티스트였다.

 

한 가지 더 와 닿은 단어는 낭만이다. 한 동안 우리는 낭만이라는 단어를 잊고 살아 왔다. 오직 성공한 사람과 실패자 (loser)로 구분되는 사회, 출세하고 소외받는 자로 나뉘어 사는 사회, 이유도 없이 어린 시절부터 밤 늦은 시간까지 학원을 오가는 사춘기 청소년들. 그들에게 아이돌 그룹이 훗날 낭만과 순수함으로 기억될 수 있을까?


세시봉이 활동하던 6-70년 대는 우울한 시절이었다. 미국은 진보와 히피, 인종 차별, 냉전, 베트남 전쟁, 케네디 암살 등 혼란과 갈등이 극심했던 시절이다. 또한 70년대 우리 나라 가수들은 암흑기였다. 말도 안 되는 이유로 금지곡이 되었고, 몰래 숨어서 테이프로 복사해 가면서 음악을 들어야 했던 시절이었다. 그래서인지 더욱 애틋한 감정이 드는 노래가 많다.

이 프로는 상당히 절제력도 뛰어났던 것 같다. 유재석, 김원희의 푸근함과 유머가 더욱 부드럽게 분위기를 이끌었다. 개인적으로 그건 너’, ‘왜 불러’, ‘고래 사냥’, ‘한 잔의 추억’,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과 같은 노래도 듣고 싶었으나 아쉬웠다. 70-80 가수들과는 다른 느낌을 갖게 되는 이들의 노래를 콘서트 형식으로 들을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다. 어쨌든 남자의 자격 합창’편 이후로 가장 감동적인 느낌을 받았던 프로였다.

 

조애경 씨의 트윗은 우리 부부가 느꼈던 감정을 잘 표현하고 있다.

쎄시봉. 빛바랜 앨범 속 추억의 사진 한 장을 보았다. 뛰는 가슴은 금방 눈시울까지 뜨겁다. TV가 고맙다고 오늘 처음 생각했다. 옛 것이 아름다운 건 추억할 게 많아서인지 모른다. 가슴 떨린 그 시절, 곧 잘 흥분하던 그 시절이 지금 이토록 그립다.” 조애경 (@aikecho)

 

어느 팬의 말처럼 같은 세대에 살아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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