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이 수학·과학자 영입하는 시대

CEO 칼럼 2011.10.31 11:30

인도사람들이 수학을 잘하는 이유 - 수학적 사고의 일상화

“인도인들이 수학에 대한 소질이 특출하거나 교육 방식이 유별난 것은 아니다. 다만학교 교육뿐만 아니라 일상생활 속에서도 습관처럼 늘 수학을 적용하고 살아간다. 수학적 사고가 일상화 있는 것이다.”

                                  <수학문제 푸는 사진. 출처: 네이버 블로그>

인도를 방문했을 때 만난 어느 대기업 임원의 대답이다. 그는 글로벌 사업의 경험이 풍부해 나름대로 객관적으로 인도의 경쟁력을 판단하는 통찰력을 가지고 있었다. 인도가 정보기술(IT) 강국으로 도약하고 있는 배경에는 이러한 일상화된 수학적 사고방식이 있었다.

우리나라의 수학 교육도 강도 면에서는 남부럽지 않은 수준이다. 그러나 삶의 현장에서는 별 필요 없는, 대학 진학을 위한 관문 정도로 인식되고 있다. 대입을 위한 수학은 아주 기본적인 내용이다. 그것도 단순히 답을 산출해 내는 데 초점을 두고 있다.  

수학은 ‘답을 맞히는 것’보다 ‘답을 도출하는 과정’이 더 중요하다. 정답 맞히는 데 급급한 수학 교육으로는 훗날 어려운 문제를 해결할 전문가를 키우는 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풀리지 않는 수학 문제 하나를 가지고 밤새 씨름도 해보고 여러 선인의 지혜와 고민을 자기 입장에서 반문하고 고민하는 훈련 과정이 있어야 하는데, 그런 중요한 과정이 빠져 있기 때문이다.

수학은 공학의 기초, 문제 해결 순간의 희열은 내재적 기쁨

최근 이공계 기피 현상과 함께 질적 저하도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한 공과대학 교수는 “요즘 학생들은 수학의 기초가 부족하다. 조금만 응용을 해도 전혀 문제를 풀지 못한다”고 하소연한다. 부모의 열성과 교육제도가 만들어 놓은 울타리 안에서 주어진 지식의 습득과 조련에만 의지해왔으니 조금만 문제를 꼬아놓아도 해결의 실마리를 찾기 힘든 것이다. 수학은 공학의 기초다. 과학적인 탐구 자세와 지적 호기심 없이 고등 수학을 활용한 공학으로 발전한다는 것은 요원한 일이다. 어려움이 있어도 밤새 공부하고 연구를 할 수 있는 이유는 그 자체가 즐겁고 성취감을 이룰 수 있기 때문이다. 어려운 문제를 풀어냈을 때의 희열, 새로운 것을 발견하고 만들어내는 창의력의 발휘는 누가 알아주지 않더라도 본인만은 만족할 수 있는 내재적 기쁨이다.

우리나라는 과학 기술을 발판으로 사회 발전과 국민 생활 향상을 이룩한 자랑스러운 역사가 있다. 과학 기술에 기반한 리더십을 발휘한 대표적 인물이 세종대왕이다.

                                      <세종대왕, 출처: 김기창 작가 작품>

세종대왕은 전 세계적으로도 가장 과학적이라고 인정받는 한글을 창제하고, 측우기·자격루·해시계 등 실생활에 유용한 과학 기구들을 발명해 우리나라 과학사에 굵직한 획을 그었다. 그는 계급을 뛰어넘어 장영실과 같은 인재를 발굴하고, 학자들이 연구개발에 몰입할 수 있도록 물심양면으로 지원했다. 이러한 업적은 백성을 긍휼히 생각하는 세종대
왕의 인간 존중 사상과, 과학 기술에 대한 확신
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오늘날 기업이나 조직의 핵심 역량은 기술이고, 기술은 수학과 과학에 기반한다. 대형 검색 서비스가 많이 있었음에도 구글이 군계일학의 독보적 위상을 구축한 것 역시 수학과 알고리즘 덕택이었다. 구글의 검색 엔진은 성능과 정확성 면에서 타 서비스와는 차원이 달랐다.

수학과 과학 - 기초학문의 흔들리지 않는 뿌리이자 마르지 않는 샘

기업들은 더 스마트하고 더욱 지능화한 기술을 개발하기 위해 더 우수한 수학자와 과학자를 영입하고 있다. 최근 급격하게 발전한 IT 덕택에 과거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연구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수학과 과학은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사고와 연구개발(R&D)의 토대가 될 뿐 아니라, 업무의 생산성과 투명성을 측정하는 잣대가 된다. 즉 기업의 능력을 가늠하는 척도라 할 수 있다.

과거 우리나라가 경제적으로 급격히 발전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교육에 대한 열정과 기술 중심의 발전 방향 설정이었다. 이 명제는 지금도 유효하다. 다만 우리가 교육 문제를 얘기할 때 본질적 요소인 ‘탐구와 몰입의 즐거움’을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 문제다. 비록 힘들고 치열한 경쟁의 나날이 계속되더라도 그러한 즐거움을 발견할 수 있고, 이를 바탕으로 세상을 움직이는 변화를 이끌겠다는 꿈과 포부를 키워갈 수 있다면 온갖 어려움을 극복해갈 수 있다.

과학 기술이 소외된 상태에서 윤택하고 활기찬 사회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나날이 발전하고 있는 첨단 과학 기술은 수학과 과학 같은 기초 학문에 뿌리를 두고 있다.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흔들리지 않고, 샘이 깊은 물은 가뭄에도 끊이지 않는다.

튼실한 뿌리가 있어야 든든한 줄기와 알찬 열매를 기대할 수 있다. 수학과 과학은 과학 기술의 뿌리이고 샘이다. 흔들리지 않는 뿌리와 마르지 않는 샘이 될 기초 학문의 발전을 기대해본다.



* 이 칼럼은 2011.10.31 일자 중앙일보에 실린 칼럼입니다. Ah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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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호텔 욕조 옆에 붙은 그림을 생각하니

CEO 칼럼 2009.04.16 21:54

1 2일의 일본 출장 일정을 마치고 돌아가는 하네다 공항에서 이 글을 쓰고 있다. 짧은 일정일수록 마치 꿈을 꾼 느낌을 가지곤 한다. 도시 한 가운데를 휘저으며 연이은 미팅에 참여하다 보면, 출장지의 모습을 마음 속에 담아놓을 여유는 별로 없다. 그래도, 잠깐씩 지나치더라도 색다른 풍경과 삶의 현장을 스쳐 지나가게 되고 잠시나마 상념에 잠기곤 한다.

 

일본 호텔 욕조 옆에 붙은 그림

욕조 옆에 붙은 그림

여행지에서 각자가 바라보는 생각과 관점이 틀리기 때문에, 동일한 시간대에 같은 여행지를 가더라도 인상에 남는 이미지는 사람마다 틀리게 마련이다. 몇 년 전에 가족 여행으로 일본에 갈 기회가 있었다. 동경을 떠나면서 작은 아이에게 이번 여행에서 무엇이 가장 인상적이었는가를 물어보았다. 그러자, “호텔 화장실에 그림이 붙어 있는 풍경화 그림이라고 말해서 다소 놀란 적이 있다. 그 호텔에 여러 번 갔음에도 나는 전혀 생각지 않았던 것이 그 아이에게는 가장 강렬한 이미지로 남았던 것이다.

 

이번 출장 중에 고객 방문 일정을 마치고 지하철 역에 내려서 사무실로 돌아오던 중에 오래된 사찰이 눈에 띄었다. 옆에 있던 일본 법인장에게 물었더니 예전에 유교를 연구하던 교육 기관이라고 한다. '도산서원' 같은 일종의 아카데미라고 할 수 있는데 분위기는 마치 옛 절의 이미지였다. 마침 다음 스케줄까지 30분 정도 시간이 있어서 그 곳에 잠깐 들르자고 했다.

 

그런데, 나의 눈길이 간 이유는 그 시설이 역사적인 사적(史蹟)이라는 이유보다 도시 한 가운데서 발견할 수 있는 옛 숨결 때문이다. 그것도 바로 첨단 기술의 전시장이라고 할 수 있는 아키하바라(秋葉原)에서 단지 도보로 10분 거리에 위치해 있었다. 몇 천년 전 살았던 공자(孔子)의 학문을 연구하는 서원이 최신 하이테크 지역과 공존하고 있다는 사실에 묘한 기분도 들었다.

 

그 곳은 아스팔트도 깔려 있지 않았고 정원도 잘 정돈되어 있지도 않았다. 흙길 위에 듬성등성 놓인 돌무덤을 건너뛰다 보면 여기저기 우거진 잡초가 보이고, 고색창연한 옛 건물이 드문드문 눈에 드인다. 결코 화려하지도 않고 잘 손질되어 있지도 않다. 몇 백 년 전에도 이 모습 그대로였을 것으로 생각이 된다. 그런데, 그런 앤티크(antique)한 분위기에 숨이 확 트이는 기분이 강하게 들었다.

 

공자의 학문을 연구하는 서원의 전경(좌)과 이곳에서 데생을 하는 사람들


공원에서 풍경화를 그리는 일본의 노인들의 여가 문화

주위를 둘러 보니 나이 많으신 노인들이 여기 저기 둘러 앉아 스케치북에 풍경화 데생을 하고 있었다
. 누군가가 데생을 하는 것을 본 것도 꽤 오래 된 것같다. 화가처럼 보이지 않는, 은퇴한 평범한 어르신들 같았다. 주위에 누가 지나가도 모를 만큼 조용히 집중하는 모습이 참으로 보기 좋았다. 나오는 길에 공원 사무실 같은 곳에 들어서니 마치 옛 학교 교실에 들어서는 느낌이다. 그곳에서 서무를 보시는 분이 옆에서 기념품을 같이 판다. 바삐 돌아가는 국제 도시 동경의 한 복판에서 숨결을 느낄 수 있는 차분한 공간이었다.

 

동경 시내의 녹지

그러고 보니, 동경에 처음 온 15년 전쯤 가장 인상깊었던 것은 시내 한 가운데를 차지하고 있는 녹지 공간이었다. 지금은 서울도 조경에 신경을 많이 쓰고 있고, 도시 한 가운데를 흐르는 청계천도 있어서 도시 경관이 덜 삭막해졌다. 게다가 서울과 붙어 있는 북한산, 도봉산, 청계산, 서울 한복판에 있는 남산, 이 모두가 있음은 우리의 행운이다.

그러나
,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에는 서울과 동경의 차이가 숨막힘과 숨을 쉴 수 있음의 차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 정도로 크게 대비가 되었다. 마치 호텔 화장실 욕조 옆에 붙은 고풍스런 옛 그림처럼 숨결이 우리의 바쁜 삶에 공간에 같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우즈베키스탄에서 되찾은 25년 전의 나의 모습

1
년 반전에 우즈베키스탄에 세미나 때문에 갔다가 그 곳에서 고맙다며 저녁에 오페라 장소를 예약해 주었다. 사실 우즈베키스탄은 경제 수준이 우리 보다 별로 높지 않아서 웬 오페라?”하는 기분이 들었다. 그런데, 옛 러시아에 속했던 우즈베키스탄은 전통적으로 클래식 음악이 발전했고 지금도 음악인들이 많이 있다고 한다. 아주 재능이 있으면 러시아로 스카우트 되어간다고 하니, 이곳의 음악인들은 1군을 꿈꾸는 2군이라고나 할까? 어쨌든 시간 때운다는 기분으로 간 적이 있다.


그러나
, 그 곳에서 라 트라비아타를 듣는 순간 25년 전 나의 모습을 되찾을 수 있었다. 성실하고 진지하게 오페라를 공연하는 모습을 보며, 국가 경제 수준으로 문화 척도를 규정하려고 했던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 '아, 이 나라 국민은 삶 속의 숨결을 간직하고 사는구나'

7-80년대 음악 감상실의 추억

25
년 전 대학 캠퍼스 안에서 음악 감상실은 즐겨 찾던 장소였다. 솔직히 점심 먹고 나서 식곤증에 조용히 자러 가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클래식 음악을 틀어 주는 음악감상실은 7-80년대 젊은이들에게는 중요한 문화 공간이었다. 돌이켜 보건대 그 당시는 대중 가요나 팝송이 크게 많지 않았던 것 같다. 좋아하는 노래들은 거의 다 금지곡으로 되어 있었고, 대학가요제나 팝송 몇 개 정도가 고작이었다. 또한 클래식을 듣는 게 일종의 겉멋처럼 보이기도 했던 시절이다.

 

세미나 발표하는 필자

오페라가 열린 극장


특히 몇 개의 유명한 노래만 알려진 다른 오페라와 달리 라 트라비아타는 대부분의 곡이 귀에 익다. 그래서인지 그날의 오페라를 듣는 순간은 정말 그 세계에 빠져드는 느낌이었다. 삶의 숨결을 느꼈다고나 할까? 출장에서 돌아온 순간 바로 CD를 사서 자동차에 넣고 다녔던 것도, 나의 삶의 한 부분을 차지했던 시절을 되찾은 기쁨 때문이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다시 클래식 CD를 꺼내서 들어보는 계기가 되었다. 클래식 음악이 정신없이 살고 있는 나에게 잊혀졌던 삶의 숨결이었던 셈이다.

 

그린의 테마가 세계를 휩쓸고 있다.



www.thomasfriedman.com

중동전문가에서 IT 혁신을 소재로 글로벌 전문가가 된 토머스 프리드먼도 이번에는 '
뜨겁고 평평하고 붐비는 세계 (Hot, Flat, and Crowded)로 에너지 기술 혁신에 의해 에너지 환경 시대를 열어가야 한다고 역설하고 있다. 역시 통찰력있는 지적이다.

 

그렇지만, ‘그린이 자연의 본질적 고유성, 그 속에서의 생명력을 의미하는 것이라면, 우리 주위의 옛 모습에서 삶의 숨결을 되찾는 노력이 우선되어야 하지 않을까? 아키하바라에서 본 작은 공간처럼, 정신없이 올라가는 빌딩 숲 속에서 숨을 쉴 수 있는 장소가 모자이크처럼 조화를 이룬다면, 그 자체가 작은 '그린'이 아닐까?

 
휘영찬란한 테헤란로의 빌딩 속보다 북한산을 바라보는 광화문 근처가 그나마 더 숨결이 느껴지는 것도 비슷한 이유다. 지방의 고속도로를 달리다 보면 높고 푸르른 산천의 멋진 그림이 콘크리트로 지어 버린 아파트때문에 깨지는 것을 보면서 기분이 상한다.

 

나는 가장 현대적인 기술인 IT에 한 평생 종사해 왔다. 아마 앞으로도 은퇴하기까지 이 분야를 떠나지 않을 것 같다. 그러나, IT와 과학 기술이 모던(modern)하고 정신없는 사회만을 추구한다는 편견은 옳지 않다. 과학과 기술이 고즈넉한 삶의 환경과 충분히 어우러져 살 수 있고, 그 속에서 그린은 실천된다고 본다. 최근 IT 프로젝트들도 그린이라는 키워드로 포장하려고 애쓰고 있다. 물론 '그린'이 IT에 있어서도 에너지 절약, 클라우드컴퓨팅, 가상화와 같은 새로운 패러다임인 것은 정확한 방향이다. 그러나, '그린'이 이전 것을 부인하고 완전히 다른 영역으로 옮겨가는 개념은 아니다.

새로운 것을 열심히 파괴하고 재구축하는 그린이 아니라, 과학 기술이 인간적인 문화와 삶 속으로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세상, 그래서 옛 숨결을 통해 생명력을 다시 얻을 수 있는 그린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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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인 내가 '사농공상'을 싫어하는 이유

CEO 칼럼 2009.04.08 11:01

어떤 기자로부터 다음과 같은 질문을 받았다. “현재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을 하면서 가장 보람을 느끼는 것이 무엇입니까?” 기업의 CEO로서, 기업가(Entrepreneur)로서 어떤 의미의 삶을 사느냐는 질문으로 해석했다. 그 순간 내 입에서 튀어나온 말은회사를 성장시키는 보람에서’, ‘직원들과 동고동락하는 기쁨에서‘ ‘신기술을 개발해서 산업 발전에 이바지하기 위해서와 같은 상투적인 말이 아니었다.

"현실과 부대끼면서 사는 삶 그 자체이지요"


2, 3
초 생각할 틈도 없이 부지불식간에 튀어나온 말이었다. 나 자신을 그럴 듯하게 포장하기 위한 미사여구를 쓸 만도 하건만 반사적으로 나온 대답치고는 너무도 평범했다. 그러나, 돌이켜 보건대 이 표현은 내 마음 속에 내재되어 있던 현재의 내 심정이었다
.

누구든지 역사 속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면서 살아간다. 내가 사업을 하면서 보람이 있다면 현실 속에서 많은 사람을 만나면서, '사람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일까', '그 사람들에게 무엇을 어떻게 갖다 줄까' 끊임없이 탐구하면서 그들과 같이 살아가는 이 시간과 공간에서 기쁨을 누리는 삶 자체라고 생각한다
.

돈보다는 일하는 재미가 중요


이 모습이 역사 속에서 살아가는 나의 실체이고 의미다. 훗날 어느 누가 물어봐도 현재 주위에서 벌어지는 상황들, 내가 살았던 이 시대의 문화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폭 넓은 경험과 사실(fact)에 근거해서 자신있게 말할 수가 있다. 왜냐하면 나는 그들과 부대끼면서 살았기 때문이다.

내가 사업을 시작할 때에 중소기업을 훌륭하게 경영하시던 사촌 형님이 내게 들려준 한 마디는 아직도 내 뇌리에 박혀있다. “절대로 돈을 벌려고 그것을 찾아 다니지 마라. 일을 하는 재미, 사업을 하는 그 자체에 기쁨을 느끼면 돈은 따라오게 되어 있어!”


그 당시는 교과서에 있는 당연한 이야기를 하신다고 대충 흘려 보냈지만, 사업을 하면서 아픔과 기쁨을 번갈아 경험하면서 터득한 진리다.

사실 사업에 있어서 돈은 피와 같다. 돈은 기업에 생명력을 불어 넣고 활동을 하게 하는 요소이고, 돈을 버는 자체가 기업의 존재 이유이다. 그러나, 결코 돈은 수단이고 결과적 이익이지 돈 자체가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 돈이 목적이 될 때에 기업은 사리사욕의 도구로 쓰여지고 그렇게 될 경우 기업은 생명력을 상실하게 된다. 기업은 현실 속에서 끊임없는 창조를 일으키는 존재가 됨으로써 생명력을 가지게 되고, 그 결과 돈도 벌 수가 있다. 그래야 기업이 사회적 의미를 지닌다
.

사농공상(士農工商)에 대한 거부감


내가 청소년 시절 혐오했던 개념이 사농공상(士農工商)이었다. 고교 시절 국어 선생님이우리 나라에서는 공부를 많이 한 사람이, 특히 문과 쪽을 해야 지도자가 될 수 있어. 이 세상을 봐라. 높은 분들 중에 이공계 출신이 어디 있니?”라고 얘기했을 때에 심한 거부감이 치밀어 올랐다. 그 분은 농담처럼 얘기했지만 그분의 마음 속에 있는 말이 부지불식간에 나왔다고 생각한다.

김홍도의 "타작" (출처 : http://commons.wikimedia.org/wiki/File:Danwon-Byeo.tajak.jpg)



인문 교육의 중요성을 무시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내가 혐오한 것은 위선적 삶이 우리의 역사 속에 점철되어 있다는 점이다. 겉으로는 심오한 이상을 추구하는 척하면서 실제로는 현실적인 이익을 챙기는 양반이라는 사람들. 나라의 저변을 구성하는 대다수 계층의 삶은 거들떠 보지도 않은 채 권력욕에 사로잡힌 상류 계층들. 그들과 왕실이 벌이는 유치한 행위가 부각이 되는 역사의 관점. 세계 모든 나라가 이런 과정을 거쳤지만, 특히 우리 나라는 아직도 권력 의존적인 경향을 보여왔다. 아직까지도 사농공상(
士農工商)은 아니더라도 적어도 사()가 상()과 공()보다는 상위 개념인 것 같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의식을 바꾸어야 한다고 한다. 그런데,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픈 게 당연한 사람의 심리 아닌가? 정체된 가운데 한정된 자원을 가지고 아귀다툼하는 제로섬 사회에서 이런 마음을 억지로 품지 말라는 것은 현실성이 없다.

 

발전과 성장이라는 것을 고려하지 않은 정체된 삶이 1960년 이전의 과거 역사다. 발전하고 뻗어 나가 더 큰 자원을 만들어 내고 얻을 생각은 하지 않고 주어진 것을 빼앗으려고 달려드는 우리의 모습에 실망했었다. 창조와 발전을 추구하는 상()과 공()이 철저하게 무시되는 사회에서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심리는 어쩔 수 없다. 그러니, 권력을 쟁취하기 위해, 부모의 유산을 많이 가지기 위해, 경영권을 빼앗기 위해 전쟁을 한다.

기업 속에는 현실 속의 잔잔한 즐거움이 있다. 20대 초반부터 50대에 이르는 직원들과 같은 공간에서 그들과 호흡을 같이 하면서, 각 개인의 기쁨과 애환을 느낄 수가 있다. 머리를 싸매고 고민하는 즐거움이 있고, 서로의 아이디어를 놓고 논쟁하는 긴장감도 있다.

 

▲ 현재 진행중인 V3배 사내 축구대회 A리그 개막 사진 


고객이든 주주이든
, 다양한 직업의 사람을 만나면서 한국이라는 공동체 속에서 공통 부분은 무엇이고 갈등 요소는 무엇인지 발견할 수가 있다. 여러 나라의 사람들과 접하면서 그들의 문화와 역사 속에서 서로 어울리는 부분들을 발견할 때에 그 누구도 가르쳐줄 수 없는 기쁨을 느낀다. 사업을 통해 내가 느끼는 현실적 삶이다
.

창조적 파괴를 꿈꾸며


내가 더 감사하는 것은 우리가 혁명의 시대에 살고 있다는 점이다. IT산업에 종사하는 이들은 산업 시대에서 정보화 사회로 가는 길을 개척하는 선구자다. 온갖 기술적 패러다임이 수없이 생성하고 소멸하는 과정에서 생존해 나간다.

또한 우리가 만들어내는 창조적 개념들은 많은 구시대적 패러다임을 소멸시킨다. 그렇기에 혁명의 시기에는창조적 파괴 과정(Process of Creative Destruction)’이라는 자본주의의 고유 정의가 더 가슴에 와 닿는다. 내가 뛰어든 정보 보안 사업도 인류 역사상 손꼽을 만한 개념인 인터넷의 불길 속에서 탄생하였다
. 수많은 개인과 기업, 기관들이 신뢰받는 사회와 환경 속에서 살 수 있도록 하는 차원 높은 사명이 있기에,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더욱 애착을 가지게 된다.

대학을 가느라 사교육에 엄청난 돈이 들어 가고, 대학을 나와도 취직이 안 된다고 혼란스럽다. 그러나, 우리의 갈 길은 명확하다. 과학과 기술, IT가 오늘날 이 시대가 원하는 덕목이다. 글로벌 비즈니스는 것은 그런 요소를 실현화시키는 요체다. 이런 생활을 현실 속에 담아가는 것은 충분히 의미있는 삶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이 사업을 하는 CEO로서의 나의 모습이다.

"아이뉴스 컬럼 - CEO 스토리(1)" 활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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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욕의 '게코' 경제, 과학기술이 중요한 이유

CEO 칼럼 2009.04.06 11:31

올리버 스톤 감독의 영화 ‘월스트리트(Wall Street)에서 주인공 고든 게코(Gordon Gekko, 마이클 더글라스)는 피도 눈물도 없는 기업 사냥꾼이다. 그는 "탐욕이 옳다(Greed is right). 탐욕이 이 세상의 시스템이 제대로 돌아가게 하고, 결국 현재 제대로 작동하고 있지 않는 미국이라는 주식회사를 살릴 수 있다"며 탐욕론을 주장한다. 이 영화 후 이런 부류의 인간들을 '게코'라고 명명하는 신조어가 되었다. 결국 게코(Gekko)같이 비윤리적이고 탐욕스러운 금융가들에 의해 세계 경제가 어려움을 겪게 되었지만...

게코는 뉴욕 증권가에서 성공하려는 야망에 찬 버드 폭스
(Bud Fox, 찰리 쉰)에게 내부 거래와 음모, 불법적 행위로 돈을 버는 방법을 가르쳐 준다. 게코는 "이것은 제로섬 게임이다. 누가 얻으면 누구는 잃게 된다. 돈은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고 이쪽에서 저쪽으로 옮겨갈(transfer) 뿐"이라는 궤변으로 남의 돈을 자기 것으로 만드는 책략에만 열중한다.

게코(우)와 폭스 (outnow.ch에서 인용)

조언하는 직장 선배 (outnow.ch에서 인용)


반면 이제 거의 퇴물이 되어 가는 주인공 버드의 증권 회사 선배는 "돈을 통해 연구 개발을 할 수 있고, 그것이 새로운 부(富)를 만들어 낸다. 우리는 그들을 돕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조언을 한다. 같은 증권업계에 종사하고 있지만 돈에 대해 어떠한 가치관을 가지고 있는가를 극명하게 보여 주고 있다.

탐욕에 물들은 금융 엘리트에 의해 경제 위기가 자초되고, 불법 정치 자금과 주가 조작과 같은 우울한 소식으로 오늘의 뉴스는 점철되어 있다. 경제 활동에서 돈은 피와 같은 존재다. 그런데, 돈이 부와 가치를 창출하는 목적이 아니라, 돈 자체가 목적이 되고 있다. 당연히 그런 목적을 위해서는 다른 사람의 희생을 바탕으로 하게 된다. 특히 우리 나라에서 여기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여지없이 권력 주위를 서성거리던 이들이다.

아이비리그 출신 MBA들 중에 실업자가 많다는 것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가뜩이나 경제가 어려운 상황에 기업에서 구조 조정으로 실직한 경력자들이 사회로 쏟아져 나오고 있으니, 대학을 갓 졸업한 신출내기들이 경쟁하기는 쉽지 않다. 그래도 최근 미국에서 일자리를 지원이라도 할 수 있는 전공은 이공계밖에 없다고 한다기업의 가치를 증대시키는 원천은 끊임없는 과학 기술의 연구와 개발에 있다는 인식에는 변함이 없는 것 같아 다행이다. 오히려 더 나아가 오바마 정부는 어떻게 하면 인도나 중국으로 아웃소싱되는 엔지니어링 일자리를 미국으로 다시 가져올 가를 고민하고 있다고 한다.


대한민국 부(富)의 성장은 누구의 공(功)인가?


대한민국이 세계에서 주목을 받는 국가로 성장한 배경에는 각 분야에서 기술자들과 산업 인력들의 정진과 노력이 절대적인 역할을 했다.
그런데, 정작 단물은 엉뚱한 이들이 차지한 경향이 있다.  물론 자본주의 사회에서 어떤 형태로든 합법적으로 돈을 벌고 불린 것은 인정되고 보장되어야 한다. 그러나, 불로소득과 돈 놀이로 부를 얻은 이들이 우리 나라의 발전을 위해 얼마나 도움이 되었는가의 판단은 별도의 문제다.

어떤 이공계 교수를 만났는데 그가 "이공계 교수는 실험실에서 연구하고 프로젝트 하느라 소위 재테크를 할 줄도 모르고 시간도 없다. 그런데, 다른 전공의 교수들은 외부 활동을 잘 하면서 정보도 얻고 해서 부동산으로 많은 돈을 모으더라"고 푸념하는 것을 들었다. 물론 그런 방식으로 돈을 번 사람은 극히 일부일 것이다. 그러나, 만일 그들이 인맥과 배경을 통해 부를 축적했다면, 우리 나라를 위해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들은 아무리 좋은 학교를 나오고 경험이 많더라도 지도자로서 자격이 없다.
 
국가가 이만큼 경제가 성장하게 되기까지, 과학과 기술 발전을 위해 밤을 지새우거나 산업 현장에서 구슬땀을 흘린 많은 이들이 주역인 것을 부인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런 발전 덕택에 부동산 가치도 올랐고 주식 가치도 오르게 되지 않았는가? 그런데, 이들이 상실감에 젖어 있다면 무언가 공평성이 깨진거다. 
사회의 발전과 성장에 기여한 데 비례해서 인정받아야 공정하고 건전한 사회다.

R&D는 비용이 아니고 투자다

부강하게 되고자 하는 것은 모든 사람과 공동체의 바램이다
. 그런데, 과학 기술의 경쟁력이 국가와 기업을 강하게 만든다는 것은 역사의 교훈이다. 오늘날 IT와 과학 기술이 경쟁력을 갖추어야 부가 창출되고, 이를 바탕으로 경제는 돌아간다는 것은 자명하다.

그렇기에 우리의 성장 엔진은 추상적 구호나 테마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고, 진정한 과학과 기술력에서 나온다. 과학과 기술을 모르는 사람들이 이래라 저래라 해서는 탁상공론에서 벗어나올 수가 없다. R&D
는 비용이 아니고 투자라는 평범한 진리를 되새겨볼 시점이다.

한국일보 'IT 프리즘 (12월 17일)' 기고 활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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