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가 말한 '탈권위주의' 시대의 도래

Global View 2009.06.17 11:08
빈부의 격차가 심화된다는 점에서 세계화에 반대하는 움직임이 많지만, 정작 후진국이나 개발 도상국에서 세계화를 원하는 여론이 훨씬 우세하다는 통계도 있다. 세계의 경제권에 편입됨으로써 개인의 삶의 질을 향상시킬 가능성이 커진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글로벌화가 가진 자와 못가진 자의 격차를 더욱 크게 만든다는 것은 맞다. 그런 점에서 국가와 사회가 갖추어야 할 분배의 정책, 공정한 기회가 주어지는 환경, 개인의 권한 보장이 아주 중요하다.

정보통신과 IT의 발달은 정보력의 격차를 크게 줄였다. 아니, 역전시킨 경우도 있다. 아무리 권위있는 기관이라 하더라도 폐쇄적인 구조로 경직된 방식으로 운영된다면, 보통 사람들보다도 정보력이 떨어질 수 있다. 오랜 기간 생각을 했더라도 후발 주자가 더 빨리 정보와 아이디어를 사업화할 수 있다.

안철수 박사는 21세기 키워드를 한 가지만 선택하라면탈권위주의라는 단어를 택하겠다고 하였다.


참으로 적합한 표현이다
. 국가와 기득권자의 권위가 줄고 개인의 권위가 커지고 있다는 말이다. 이 지구 상의 수많은 사람들이 삶의 공간을 확보하고 생존하기 위해서, 더 나아가 성공의 열망을 위해서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또한 그들에게는 인터넷과 통신이라는 도구가 아주 저렴한 가격에 제공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더 이상 기업과 국가나 어떤 공동체도 자신들의 규범과 이데올로기를 강요할 수 없다. 개인의 선택이 중요해지고 있으며, 그들은 인터넷이나 소셜 네트워크로 거미줄처럼 문화와 공감대를 형성해 간다.

문화 스페셜리스트 김지룡 씨의 표현처럼 지금은 개인이 국가를 선택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안전이 보장되고, 세금을 적게 내고, 자녀를 좋은 환경에서 교육할 수 있고, 인간다운 삶을 영위할 수 있고, 자신의 능력을 발휘할 가능성이 높은 국가를 선택한다. 각 개인의 가치관과 인생 계획이 국가의 어젠다보다 우선한다. 우리 나라에만 존재하는 기러기 아빠의 현실은 우리 국가가 교육 서비스에는 실패했음을 여실히 입증하고 있다. 더욱 좋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국가로 능력이 있는 사람들은 움직이게 되어 있다.

누가 진정한 영향력을 지니고 있는가?

정보통신과 IT의 발전은 각 개인이 선택할 수 있는 삶의 공간을 글로벌화시켰다. 다른 나라는 어떻게 살고 있고, 그들이 나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도 인식하게 된다. 또한 능동적으로 신속하게 새로운 정보를 파악해야 생존할 수 있다. 더 이상 국가나 일부 지도자가 통제된 정보력으로 권위를 유지하고, 국민들은 그에 의존하던 시대는 종언을 고했다. 

미디어의 영향력은 신문이나 TV에서 블로그, 웹, 트위터(Twitter)로 빠른 속도로 움직이고 있다. 어떤 글로벌 PR 업체에서 일하는 파트너와 대화를 나눈 적이 있는데, PR에서 가장 영향력있는 매체로 파워 블로거와 애널리스트(전문가 집단, IT의 경우 가트너나 IDC), 그 다음이 보도자료를 통해 활자화하는 언론이라고 한다. 이렇게 세상은 바뀌고 있다. 탈권위주의의 시대적 현상을 보여주는 예다.
 
배움에서 세대가 뒤바뀌는 현상

선생(先生)이라는 표현은 오래 살수록 배워줄게 많다는 점을 의미한다. 그런데, 기술이 발달한 현실에서 젊은이들이 나이든 사람을 가르치는 상황이 늘고 있다. 손주들이 할아버지, 할머니를 가르치는 휴대폰 광고를 보면 빠르게 발전하는 하이테크의 생활화를 체감할 수 있다. 또한 디지털 세대는 불연속적 기술(Disruptive Technology)의 지속적인 출현으로 더욱 세분화되고 있다. 먼저 태어난 사람이 선생이 아니고, 먼저 알고 이해한 사람, 응용할 수 있는 사람이 선생이다.

물론 인생의 경륜은 중요하고, 어른들의 가르침은 여전히 중요하다. 그러나, 어떤 가치 판단을 자의적 잣대로 결정해서는 공감대를 얻기 어렵다. 이를 테면 젊은이들의 인터넷 사용을 건전하게 계몽해야 한다는 어른들의 걱정이 크다. 폭력적이고 천박한 언어, 사행성을 조장하는 이들은 인터넷 공간을 어지럽힌다. 그러나, 이것을 강화된 제도나 처벌에 의해 해결된다고 믿는다면 너무 단순한 생각이다. 

적극적이고 열린 대화를 통해 스스로 정화되는 것이 인터넷의 철학이고 정신이다. 열린 공간과 커뮤니티를 통해 많은 오피니언 리더들이 적극 참여함으로써 많은 문제가 걸러질 수 있다. 법과 규제는 항상 최소한에 머무르는 것이 바람직하다. 인터넷이 사회에서 인정하는 권위가 인정되지 않고, 막말로 계급장 띄고 얘기하는 공간이다 보니 혼란스럽게 비칠 수 있다. 그러나, 그럴수록 건강한 커뮤니티가 형성될 수 있는 잠재력이 있는 것이고, 그렇게 만드는 것이 이 시대를 사는 우리들의 숙제다.

인터넷을 괴물처럼 생각할 이유도 없고 그렇게 만들어서도 안 된다. 진정으로 인터넷이 위험하다고 생각한다면, 보다 적극적으로 여기에 뛰어드는 용감한 자세가 필요하다. 건강한 인터넷 세계는 각 개인의 의견을 존중하고 경청하는 합리적 마인드가 우선해야 한다.


권위의 개념부터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시점이다. 21세기는 탈권위주의 시대, 개인주의, 글로벌화의 흐름으로 진행될 것은 자명하다. 기존의 국가나 정부의 역할은 권위의 주체에서, 개인의 권리와 기회를 보장할 수 있는 지원자(Supporter)의 형태로 변신해야 한다. 또한 각 개인의 권한이 존중될 수 있는 사회를 같이 만들어가야 한다.


 

법학자가 쓴 세계화 재해석 '제국의 미래'와 민주주의는 관용에 달렸다

책으로 보는 세상 2009.06.06 12:17
관용의 정신으로 세계화 역사를 해석한 '제국의 미래'

두꺼운 책을 선택하기가 쉽지 않은 시대다. 인터넷을 통해 정보가 빠르게 소통되다 보니 지식의 깊이보다 폭이 선호되는 느낌이다. 그러나, 어떤 주제를 중심으로 많은 자료를 통해 이를 입증하는데 충실하다보면 두껍게 될 수 밖에 없다. 이런 책은 저자의 오랜 고민이 반영되어 있어 사고의 틀을 형성하는데 좋다. 그 관점에 동의하든지 안 하는 것은 각 개인의 문제일 뿐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법학자가 쓴 역사서, 제국의 미래

 

솔직히 제국의 미래(Day of Empire)’라는 책에 눈이 간 것은 ‘CEO가 휴가 때 읽을 책!’이라는 선전 문구였다. 그런 점에서 보면 이 책을 출판한 회사의 마케팅 효과는 적어도 나에게는 먹힌 셈이다. 또한 저자인 에이미 추아(Amy Chua)가 국제법 박사 학위 소지자라는 점도 호기심을 불러 일으켰다. 법학자가 역사서로 보이는 책을 저술했다고 하는데 어떤 시각으로 바라 보았을까? 저자가 내가 공부했던 대학 도시에서 자라났다는 것도 개인적으로 친밀감을 느끼는데 한몫 했다.

 

"제국의 미래" 책 표지

에이미 추아 (예일대 법대 교수)

책의 내용은 마침 내가 궁금했던 '제국이 형성되고 몰락되는 과정'을 저자의 시각으로 기술하고 있다. 중국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중국계 2세라는 점이 서양과 동양의 역사를 균형있게 바라 보는 관점을 형성하는데 도움이 된 것 같다. 미국인이 저술한 책 중에 당(), 몽고, () 등의 중국 국가를 로마, 영국, 미국 등과 동일한 잣대로, 또한 풍부한 사료(史料)를 바탕으로 설명한 책을 보기 힘들었다.

 

이 책의 키워드는 관용(寬容)’이다. 어떤 제국이든 관용을 보일 때 가장 융성했고, 관용이 사라질 때 몰락되어 갔다는 주장이다. 자체적으로 허물어지든지, 아니면 외부의 침입에 속절없이 무너지든지.. 이 책이 부시 대통령이 이라크 침공을 한 이후 미국이 늪에 빠져 헤메는 시점에 출간되어서인지, ‘관용이라는 단어는 미국의 권력 교체 시점과도 맞아 떨어졌다. 어쨌든, 저자는 관용이라는 공통 키워드를 추출해 내기까지 꽤 오랜 기간 동안 자료 수집과 분석을 수행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어린 시절부터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했었다는 저자의 사견도 적혀있다.

 

관용의 제국을 연 페르시아

 

보통 이런 종류의 역사서는 그리스 로마 시대로 시작한다. 왜냐 하면, 그리스 로마의 정신이 서구 문화의 뿌리이기 때문에, 서구 문명 중심으로 역사를 설명할 때 그 이전의 국가는 별로 도움이 안 된다. 그러나, 이 책은 페르시아를 첫 제국의 모델로 선정한다. 당시 페르시아의 지역적 팽창이나 영향력으로 볼 때에 페르시아가 패권 국가라는 사실은 명약관화하다.

 

어떤 이들은 페르시아는 실제로 지배를 했다기 보다 영향력을 통해 그 지역 주민을 그냥 놓아 두었기 때문에, 이들을 직접 통치한 제국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얘기하기도 한다. 페르시아는 그 지역의 종교, 습속, 문화를 그대로 유지할 것을 존중했다. 구약에서도 페르시아의 키루스 왕(성경에서는 고레스왕으로 번역됨)은 이스라엘 백성을 바벨로니아 유수로부터 돌아오게 한 중요한 역사적 터닝 포인트를 만들었다. 저자는 이러한 다양성의 인정, 즉 관용의 철학이 페르시아를 제국의 위상으로 끌어 올렸으며, 그것이 사라지고 독선이 자리잡으면서 제국이 무너지게 되었다고 설명하고 있다.

당태종 이세민

 

세계화된 중국의 모습 당()나라

 

중국에서는 당나라가 중국 역사상 가장 화려한 국제적 위상을 갖추었음은 자명하다. 우리 나라 역사에서는 당나라가 그다지 좋은 이미지로 설명되지 않는 느낌이다. 요동 정벌로 고구려를 침공하고 신라와 손잡고 고구려를 멸망시킨 역사가 우리 피부에 와 닿기 때문일까? 그러나, 신라방의 예에서 본 것처럼 당나라는 국제적으로 가장 개방적인 시대를 열었다. 모든 길은 장안(長安)’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말은 결코 허세가 아니었다.

 

중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왕으로 불리우는 당태종 이세민은 그 유명한 정관지치(貞觀之治)의 시대를 열었다. 비록 자기 형과 동생을 죽이고 쿠데타를 일으킨 잔인한 권력 찬탈의 과정을 겪었지만, 이러한 콤플렉스를 이기기 위해서인지 황제로서 보여 준 그의 정치력은 놀라웠다. 무엇보다 인내를 가지고 반대파의 핵심인 위징을 포함한 많은 인물들을 정치의 현장으로 끌어들였다. 반대 의견을 귀담아 듣고 반영해서 백성 중심의 정치를 편 것은 모든 정치 지도자가 본받아야 할 정신이다. 백성들을 위하는 긍휼한 마음보다 권력 쟁취와 자기들만의 세계를 만든 뒤, 그에 따른 이익만을 추구하는 사악한 정치인들의 모습이 한심할 뿐이다.

 

당현종

암흑 시대인 측천무후 시대를 거쳐 정관지치의 국가적 틀을 국제적 개방화로 이끌어 낸 당 현종 시대(개원의치)의 당나라는 단연 세계의 중심이었다. 한국은 물론 아라비아, 유럽의 상품이 활발히 거래되고, 각종 종교와 문화가 받아들여졌다. 수천 년 중국 시사(詩史)에 있어서 가장 돋보인 당시(唐詩)의 대표격인 이백, 두보, 왕유가 모두 이 시대에 출현한 것은 문화적으로 융성했음을 보여준다.

 

반면에 명나라는 정화(鄭和)라는 인물을 통해 대형 선박 군단을 이끌고 아프리카까지 세계적 위상을 보여주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이후 철저하게 폐쇄적으로 바뀐다. 결국 만주족에 의해 멸망당한 후, 제국주의 시대에 속절없이 무너진 중국의 모습을 관용이 사라진 탓이라고 저자는 설명하고 있다.

 

비즈니스 마인드로 강대국이 된 네덜란드

 

네덜란드 동인도회사 (reciculous.textcube.com)

서구 국가 중에서는 네덜란드가 눈길을 끌었다. 암스테르담을 방문했을 때 개방적인 사고를 지닌 네덜란드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흔히 동성애와 개방적인 성문화로 표현된 네덜란드의 모습은 그 일편일 뿐이다. 그만큼 네덜란드는 개인주의가 당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문화를 가지고 있다. 특정 종교를 강요하는 국가로부터 도피한 사람들로 구성된 네덜란드는 비즈니스 마인드로 세계적으로 팽창한 독특한 케이스다. 바로 이런 점이 폐쇄적 국가 일본의 문을 열고 들어간 비결이기도 하다. 또한 미국이라는 신천지를 연 청교도 정신, 국제화 도시 뉴욕을 만들어 낸 원천이기도 하다.

 

물론 이 책에서는 로마, 대영제국, 몽고 등 대표적 제국들을 많은 비중을 가지고 분석하고 있다. 또한 진정한 제국으로 위상을 끌어올리지 못한 오스만, , 무굴, 또한 그릇된 편견과 착각으로 역사상 최악의 국가가 된 히틀러 시대의 독일과 2차 세계 대전의 원흉인 일본도 언급되어 있다. 저자는 관용이라는 잣대로 역사의 전반을 훑고 있으며, 세계화의 과정도 이를 통해 설명한다.

 

훌륭한 인재를 포용할 수 있는 환경이 강()함의 비결


훌륭한 인재가 중요시되는 세상이 강대국이 되는 덕목이라고 설명하는 저자의 관점에 나는 전적으로 동의한다
 

부를 창조하는 가장 큰 동력은 약탈과 몰수가 아니라 교역과 혁신이라는 것은 이미 입증된 사실이다. 또한 한 사회가 세계적으로 우수하고 똑똑한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정복이 아니라 이민으로 대체되면서, 전략적인 관용의 양상 역시 달라지고 있다. (책에서 인용)

 

알버트 아인슈타인

이를 가장 잘 실현한 예가 '이민자의 국가'인 미국이다. 미국이 지역 강국에서 세계적 강국으로 성장한 배경에는 첨단 기술과 과학이 자리잡고 있다. 과학의 비약적 발전은 아인슈타인과 같은 망명한 물리학자, 나치를 피해 미국으로 건너온 유진 클라이너가 건설한 실리콘밸리의 벤처자본주의가 자리잡고 있다. 그 외에도 헝가리 출신으로 인텔을 이끈 앤디 그로브, 러시아 출신으로 구글의 공동 창업자 세르게이 브린과 같은 이민자들이 수많은 미국인들과의 합력으로 정보 기술은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개인이 국가를 선정할 수 있는 시대에 있어서 좋은 인재를 확보하고 양성하는 것은 국가의 최우선과제다. 우물 안 개구리의 좁은 국가 의식으로는 강대국으로의 길은 꿈도 꿀 수가 없다. 기업이든 국가든 열린 마음으로 인재를 확보하고 좋은 조직을 만드는데 심혈을 기울여야 한다는 게 역사가 가르쳐주는 교훈이다.

 

법학자가 이렇게 역사서를 저술할 수 있는 자유로운 학문적 분위기도 인상적이다. 국제법이라는 전공을 확대해서 세계화의 과정을 조명할 수 있는 지적 포용성이 부럽다. 법학과 역사의 전문성이 결합되어 더욱 빛이 나는 느낌이다. 이 책에 대해 일부 비판적인 평가도 있지만 적어도 나에게는 역사적 사실을 통해 하나의 중요한 틀을 형성하게 해 주었다.

 

다양성과 창의력을 존중하는 기업을 구상하며...

 

이 책을 읽으면서 CEO로서 회사의 바람직한 모습을 여러 모로 생각해 보았다. 평소에 내가 생각하는 회사의 중요한 키워드는 다양성이다.

다양성은 창의력의 산실이다. 다양성이 없을 경우 그 회사는 윗사람의 지시에 따라 움직이는 단순한 조직이 될 뿐이다. 이런 조직은 규율과 통제, 분업과 숙련화와 같은 속성에 기인한 산업 시대의 산물이다. 그러나, 네트워크 경제에서는 개인의 공헌 가치가 극대화해야 하고, 창의력에 따라 가치의 척도가 달라진다. 농업이나 제조업이든 서비스업을 막론하고 현대 산업의 시대 정신이다.

 

그런 점에서, 자신의 잠재된 가치를 발휘할 수 있는 조직 문화가 필수적이다. 그러려면 다양성이 포용되고 존중되어야 한다. 다양한 의견이 활발히 제시될 수 있고 토론에 의해 합의점을 도달할 수 있는 문화가 성공하는 기업의 필요 조건이라고 생각한다. 국가나 사회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진정한 민주주의와 공정한 경쟁이 승리하는 것이 아닐까? 다양성이 인정되고 관용이 중심이 되는 공동체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경쟁력있다는 사실을 이 책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역사와 문화를 아는 교육이 기본이 되어야 : 사교육 논의를 바라보는 시각 (2)

CEO 칼럼 2009.05.05 16:43

콘텐츠가 중요한 시대라고 한다. 해리포터 시리즈 작가인 조앤 롤링이나 히트 영화의 제조기인 스티븐 스필버그의 예를 많이 든다. 소설과 영화, 드라마, 또한 음악과 같은 창조품의 위력은 익히 알고 있다. 한국도 한류 열풍으로 톡톡히 재미를 보고 있다. 언론에서 무형 자산을 자동차, 조선과 같은 대표적인 수출 품목과 비교하는 것도 종종 본다.

 

그런데, 과연 이런 콘텐츠는 어디에서 나오는가? 창의력을 바탕으로 한 탄탄한 스토리텔링(Storytelling)에서 나온다.


영화 제작사인 드림웍스
(DreamWorks)의 작가가 TV에서 인터뷰하는 것을 들었다. “특수 효과, 애니메이션, 음향, 그래픽, 이런 것은 누구라도 (장비와 돈과 인력이 있으면) 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가장 애타게 찾는 것은 스토리다. 창의적인 스토리(Creative Story)가 영화의 모든 것을 결정한다. 그래서, 전 세계를 누비면서 좋은 콘텐츠를 찾는데 혈안이 되어 있다”.

 
스토리의 힘은 어디에서 나오는가?


한때 디워
(D-War)가 논쟁의 대상이 된 적이 있었다. TV토론 프로에도 등장할 정도였다. 나는 디워를 본 적이 없다. 그러나, 내 주위에서 그 영화를 본 이들의 평가는 대체로 냉랭했다. 애들 등쌀에 보러 갔다가 애들이 나가자고 해서 생전 처음 영화 도중에 나왔다고 투덜대는 사람도 있었다. 볼 만 하다는 얘기도 들었지만, 전반적인 중론은 그래픽은 우수하나 스토리는 빈약하다였다. 진중권 씨는 스토리가 기본이 안 되어 있다며 신랄하게 공격했다.

 

어쨌든 이 논란은 스토리의 부족함으로 귀결된다. 아무리 특수 효과가 뛰어 나더라도 스토리가 약하면 사랑을 받기가 힘들다. 혹자는 디워반지의 제왕과 비교한다. 그러나, ‘반지의 제왕을 단순히 특수 효과가 뛰어난 판타지 영화로 이해했다면, 그 스토리의 깊이를 너무나도 과소평가한 것이다.

 

존 톨킨 교수(ko.wikipedia.org)

반지의 제왕은 오랜 기간 세계의 수많은 독자들에게 사랑받아온 판타지 소설이다. 작가인 존 로널드 루엘 톨킨(John Ronald Reuel Tolkien) 교수는 이 소설을 통해 자신이 상상하는 세계를 방대하게 설계했다. 이 소설을 위해 인공 언어를 만들었을 정도로 심혈을 기울였고, 심리적 갈등과 반전의 묘미가 심오한 작품이다. 그의 시대에는 상상의 한계를 뛰어넘는 묘사를 할 수 있는 도구가 소설로만 가능했다. 기술이 발전하면서 비로소 영상으로 표현하는게 가능해지자 치밀한 노력과 열정으로 그 내용을 실체화한 것이 피터 잭슨(Peter Jackson) 감독이 만든 3부작 영화다.

 

과연 우리의 교육 현장에서 이런 콘텐츠를 만들 수 있는 인력을 기르는 교육이 이루어지고 있는가? 대학 입시를 위해 정보를 얻고 유명 강사를 쫓아다니는 열정은 가히 세계 수준이다. 또한 그런 노력을 뭐라고 할 수 없는 교육 현실이다. 그러나, 과연 창의적인 스토리가 그런 환경에서 만들어질까? 오히려, 우리의 교육 커리큘럼은 그에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는 경향이 있다.


역사와 문화가 콘텐츠의 산실
 

좋은 이야기의 중요한 소재는 역사와 문화다
. 반지의 제왕은 북유럽 신화에 심취해 있던 작가에 의해 만들어졌다. 톨킨 교수는 ‘나니아연대기를 집필한 C.S. 루이스와 동시대 인물로서 교감을 같이했다니, 이런 자유로운 상상력의 교환이 뛰어난 콘텐츠를 만들어내는 힘이 되었을 것이다. 해리 포터와 같은 소설은 영국의 문화와 고성(古城), 구전되어온 이야기들이 축적되어 만들어진 역사와 환경의 산물이다. 단순히 작가의 천재적 영감만으로 이루어진게 아니다.

서구 문명의 뿌리를 이해하려면 그리스 로마 역사를 알아야 한다. 영화 '300'은 그리스의 조그마한 도시국가가 세계를 휩쓸던 페르시아를 상대로 대항한 더모필레 전쟁을 소재로 삼고 있다. 비록 장열한 전사를 했지만, 이를 계기로 그리스 도시국가들은 통합된 국가로 성장해서 오늘날 민주주의의 초석을 이루게 되었으니, 역사적으로 의미가 큰 사건이었다. (전제국가인 페르시아가 오랜 기간 호령했다면 민주주의의 싹이 틀 수 없었다는 지적도 있다).

또한 말도 안 되는 것처럼 보이는 그리스 로마 신화 이야기가 많은 서구 문학과 연극, 영화에서 인용되어 등장한다. 셰익스피어의 고전을 이해하려면 그리스 로마 신화를 꿰뚫고 있어야 한다. 그런 인문학적 연구와 고찰이 더 다양하고 깊이있는 콘텐츠를 만들어낼 수 있다.

 

우리 나라에서도 '공동경비구역 JSA'와 '웰컴 투 동막골'이 성공한 배경은 냉전 시대 속에서 한민족의 끈끈한 동질감을 절묘하게 작품 속에 담았기 때문이다. 이데올로기를 넘어 서서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인간 관계의 깊이를 훈훈한 이야기로 풀어냈다. 이와 같이 우리의 문화, 역사 속에서 차별화되고 재미있는 이야기는 만들어진다.


공동경비구역 JSA

웰컴 투 동막골

 

역사 공부를 등한시하는 부끄러운 우리의 모습

그런데
, 우리 나라 수능 시험에서 한국 역사, 즉 국사가 필수 과목이 아니다. 수능이 절대적 기준인 우리 나라에서 그 의미는 국사를 대충해도 대학가는데 지장이 없다는 얘기다. 자신의 역사를 제대로 모르면서 무슨 스토리를 만든다는 얘기인가이러다가는 허구가 가미된 TV 드라마 내용을 액면 그대로 역사로 인식하는 사람들이 더 많아질 수도 있다.

한때
국사는 모든 시험 과정에서 피할 수 없는 필수 과목이었다. 수능의 이전 모습이었던 예비고사 시절, 국사 과목은 50점이 배정되었던 국어, 영어, 수학 다음으로 많았던 30점이 배정된 전략 과목이었다. 고시는 물론 유학 시험, 국비 시험과 같이 국가가 관리하는 시험에서 국사는 필수였다. 왜 상황이 바뀌었는지 이해가 되지를 않는다. 개인적으로 역사적 관점이 다르고 논란이 많아서 그 중요성이 약화된 것인가?

 

물론 역사에 대한 관점은 사람마다 틀리고 시대에 따라 변한다. 그러나, 전반적인 틀을 가져갈 수 있어야 사회인으로 성장할 수 있다. 나는 한국적 민주주의가 최고의 가치라는 유신 헌법을 달달 외우면서 대학에 들어갔다. 대학에 들어가자 마자 교과서에 쓰여져 있던 지식은 완전히 부숴졌다. 지금 생각해 보면 허무한 시간 낭비였다.

 

그러나, 전혀 무의미하지는 않았다. 그런 혼란과 갈등 속에서 더 많은 고민과 독서를 하게 되었다. 속았다는 분노감에 정반대 개념의 책에 빠져든 적도 있었다. 그후 다양한 사회적 경험과 문화적 충격을 거치면서 역사를 바라보는 전체적 틀을 형성해 갈 수 있었다. 아마 누구나 비슷한 과정을 겪게 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면서 자신의 역사의식과 가치관이 만들어지게 된다. 어쨌든 역사와 문화에 대한 지적 탐구와 생각하는 훈련은 의미가 아주 크고, 그런 점에서 교육 과정에서 선택 옵션이 되어서는 안 된다.


역사의 현장에서 찾는 삶의 숨결 


상대적으로 역사가 짧은 미국에서도 중학교 수학여행지는 워싱턴
DC. 자랑스러운 독립의 과정과 헌법의 초석(Bill of Rights)을 만들어 낸 과정, 독립 선언서에 서명한 인물들, 내전(Civil War)을 극복하고 통합된 연방정부를 지켜낸 에이브러햄 링컨을 만나기 위해서다. 또한 독립전쟁과 남북전쟁의 역사의 숨결이 배어 있는 전쟁터와 유적지를 둘러 본다. 이것이 자유를 위해 건너온 이민자들이 민주 국가를 구성하게 된 미국의 역사요 정체성이기에,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 거의 의무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아쉬운 것은 이러한 역사의 현장을 너무 소홀히 관리하고 있다는 점이다. 오랜 건물을 허물고 깔끔하게 현대적 건축물을 올리는 것만이 능사일까? 온갖 먹거리와 볼거리와 같은 문화 상품을 개발하고 도로를 닦고 관광 사업을 전개하는데는 혈안이 되어 있으면서, 삶 속에서 역사의 숨결을 간직하는 노력, 또한 그런 정신이 이어질 수 있도록 하는 데에는 관심이 적다.

미국이나 유럽, 심지어는 이웃나라 일본의 대도시 한 복판에서 조그마한 유적도 그 당시 분위기로 잘 보전하는 것을 보고 부러웠다. (참조 블로그 '일본 호텔 욕조 옆에 붙은 그림을 생각하니',  http://ceo.ahnlab.com/19). 작은 도시에도 그 곳을 거쳐간 별로 유명하지도 않았던 인물들의 흔적을 남겨둔다.  그 속에서 삶의 숨결과 체취를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가공하지 않은 원본(Original) 그대로가 가장 갚진 것이다. 이런 것이 모두 스토리의 중요한 소재가 되기도 한다.

 

나는 남산 근처 후암동에서 태어나고 자라났기 때문에 어린 시절부터 남대문 주위를 항상 오갔다. 나에게 남대문은 너무나도 잘생긴 멋진 건축물이자 나의 친구였다. 남대문이 불타 버린 광경을 보면서 마음의 공허감과 분노는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국보 1호가 그렇게 허무하게 무너졌으니, 다른 유적지들은 어떠하겠는가?

남대문 전경(heritage.or.kr)

소실된 남대문 (dt.co.kr)



우리는 역사를 알아야 한다. 그 속에서 우리의 정신과 정체성을 발견할 수 있다. 역사는 수많은 값진 이야기를 만들 수 있도록 우리 조상들이 남겨 준 고귀한 자산이다. 창의력은 외딴 산 속에서 홀로 명상 속에서 나오는게 아니고, 우리의 생활 현장과 역사 속에서 발견할 수 있다. 자신의 역사와 문화를 아는 교육이 경쟁력있는 콘텐츠를 만드는 기본 자세다.

 

(다음 회에 '학벌 지상주의의 한계'를 이어서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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