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성의 축구가 IT 현실에 주는 교훈은?

IT와 세상 2010.06.20 08:28

박지성의 체험이 값진 것처럼 IT도 현실에 부딪혀야

박지성과 이청용 선수는 확실히 다르다
. 내가 아는 어떤 여성분은 축구를잘 모르지만 평소 박지성 선수의 인간 됨됨이와 인터뷰하는 모습을 보고 호감을 가졌었다고 한다. 그런데, 막상 그리스와의 경기를 보고 나서 박지성 선수가 정말 축구를 잘하는 것을 깨닫게 되어 더욱 좋아하게 되었다고 한다. 2번째 골을 넣는 과정에서의 심한 몸싸움, 빠르고 저돌적인 드리블, 반 박자 빠른 슛 동작은 우리 나라 선수들도 저렇게 골을 넣을 수 있구나하는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아르헨티나와의 경기에서 이청용 선수의 골도 스피드와 감각 측면에서 달랐다.

 

나는 그들의 경쟁력이 유럽 무대에서 직접 부딪히면서 경험한 것에서 나왔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자질이 뛰어 나더라도 직접 부딪혀 보지 못했다면 우물 안 개구리일 뿐이다. 우리끼리 '메시'가 어떻고 '테베스'가 어떻다고 얘기해 보았자 무슨 의미가 있는가? 직접 그런 이들과 같은 공간에서 부딪히면서 뛰어봐야 그들의 움직임과 특징을 몸소 체험할 수 있다.

 

워낙 톱클래스 선수들이 즐비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소속이라서 박지성 선수가 늘 선발로 나설 수 있는 여건은 아니지만, 기라성 같은 선수들과 호흡하고, 볼을 주고 받고, 실제 경기에서 체력적으로 부대낀 가운데 얻은 노하우와 경험은 수많은 국내 축구 전문가들의 이론과 과학적 예측보다 더 값어치가 있다. 그렇기에 그런 세계에서 생존한 박지성과 이청용 선수가 남다른 것이다.

 

역시 아르헨티나의 메시는 세계 최고의 플레이어로서 손색이 없었다. 그러나, 메시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전체의 축구 흐름이 물처럼 흘러가는 아르헨티나의 경기력은 아주 인상적이었다. 독일 월드컵 당시 어느 경기에서인가 수십 번의 연속 패스를 통해 골이 이루어지던 것을 보았었는데, 충분히 그러한 실력이 짐작이 간다. 그들의 팀웍과 패스력은 집중된 훈련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런 선수들이 많이 배출될 수 있는 저변과 환경, 그리고 자신감이 기반이 되어 있다. 브라질과 아르헨티나의 한 차원 높은 축구는 그렇게 형성되었다고 할 수 있다.

 

축구의 메시 vs. IT의 스티브 잡스

 

최근 애플과 구글의 리더쉽에 의해 IT 산업은 물론 전 분야에서 혁명적인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축구에 메시가 있다면 IT 세계에는 스티브 잡스가 있다. '스티브 잡스'라는 키워드 하나만 가지고도 수많은 얘기들이 회자되고 있다. “우리 나라에서는 스티브 잡스가 나올 수 없는가?”라는 교육적 시각부터 스티브 잡스 같은 난봉꾼에 휘둘리는 형국과 같은 거친 언사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메시 선수

스티브잡스


 

최근 미국에서 연예인들이 덜 주목받는다고 한다. 스티브 잡스를 중심으로 그의 스피치, 경영철학, 삶의 궤적이 조명되고, 애플의 신제품 출시, 여기에 정면 승부를 하고 있는 구글, 그들의 전쟁 속에 탄생하는 혁신적인 사업 모델, 신제품에 이르기까지 재미있는 이야기가 끊임없이 쏟아져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인문학과 기술의 만남이라는 멋진 시대적 명제에 이목이 집중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아직도 국내의 모임에 나가 보면 예전에 매킨토시처럼 그러다가 말거야”, “그거 제품 별것도 아닌데 젊은 애들이 광분한다”, “하드웨어는 삼성이 훨씬 나은데.. 이제 노력하면 소프트웨어도 금방 따라잡을 수 있을 거다라는 대화가 오간다. 트위터나 블로그 공간에서 논의되던 대화 분위기와 너무 달라, 순간 어떻게 대화에 끼어 들어야 할지 고민스러울 때도 있다. 물론 오랜 경험을 가진 사회 지도자들의 예측이 맞을 수도 있다.

그러나
, 어떤 사안에 대한 판단은 직접 부딪히고 체험을 통해서 얻어야 한다. 제품 스펙의 비교나 일부 자료에 의존해서는 탁상공론일 뿐이다. 이미 수많은 사람들이 사용하고 있는 현실, 새벽 2시에 태평양 건너에서 발표하는 신제품 발표를 듣는 이들의 고민은 이 시대의 변화를 보여 주고 있다. 우리끼리 아무리 자화자찬해 보았자, 수많은 전문가들이 글로벌하게 소통하는 현장에서 비참하게 깨질 뿐이다.

위기는 얼마나 자신이 뒤떨어져 있는지 모르거나 인정하지 않는데서 온다. 사실을 감추려는 노력은 더욱 상황을 악화시킬 뿐이다. 오히려 이럴수록 객관적인 차이를 인정하고 장기적으로 계획을 세우는 자세가 바람직하다. 브라질과 아르헨티나의 환경 속에서 세계적 축구가 나왔듯이, 실리콘밸리와 같은 생태계 속에서 소프트웨어와 콘텐츠도 꽃을 피운다. 따라서, 이러한 격차를 객관적으로 분석해서 체계적인 노력과 인식의 변화를 도모해야 한다.

 

다행히 축구에도 이승렬 선수와 같은 젊은 꿈나무들이 자라나고 있듯이, 우리 나라에도 잠재력있는 젊은 IT 기업인들이 이 싸움에 뛰어들고 있다. 사고의 틀과 접근 방식이 전혀 다른 이들을 보게 되고, 아예 한국을 뛰어 넘어 세계를 두드리는 과감함을 보고 놀라게 된다. 뭔가 다르게 하고 있다는 자체가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비록 그들이 단번에 세계적 스타가 되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끊임없는 고민과 체험속에서 세계와 자웅을 겨루게 될 것이다. 

월드컵 축구 무대에서 활약하는 박지성과 이청용 선수를 보면서, IT 분야에서 도전하고 부딪히는 자세가 떠오른 것은 지나친 생각의 비약일까?

황당하지만 유용하게 스마트폰을 사용한 사례

IT와 세상 2010.05.11 07:26
스마트폰을 지니고 있다 보면 때로는 전혀 생각지 않았던 순간에 유용하게 사용하게 된다. 금년 초에 경험한 황당한 경우를 짤막하게 소개한다.

Case 1

박지성 선수와 챔피언스리그

박지성 선수의 출전이 유력시되는 유럽 챔피언스 리그 경기가 있는 날이었다. 그 전날 몹시 피곤해서 새벽에 축구나 보자 하는 생각에 일찍 눈을 붙였다. 챔피언스 리그는 보통 우리 나라 시간으로 새벽 4시-4시 30분 경에 한다. 유럽 시간으로 밤경기이다 보니 웬만한 마니아가 아니면 엄두도 내기 어렵다. 이 날은 마침 나의 생체적 리듬과 시간대가 맞나 보다.


눈을 뜬 시각은 4시 조금 넘어서였다. 일찍 잠든 탓에 기분도 괜찮았다. 맑은 정신에 축구를 보는 것도 오랫만이라 들뜬 마음에 TV의 전원을 눌렀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케이블 방송이 안 나오지 않는가? TV를 이리저리 돌려 보고, 셋탑박스의 케이블도 확인하고 리셋하는 스위치도 만지작 거려 보았지만 깜깜 무소식이었다. 이미 축구는 한참 하고 있을텐데..

"그래, 우리에게는 인터넷이라는 선생이 있지." 인터넷으로 원인을 찾고자 PC를 켰다. 그런데, PC는 켜지는데 인터넷이 되지 않았다.  그제서야 우리 집의 인터넷은 케이블을 통해 연결된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그럼 전화는? 불행히도 인터넷 전화이니 전화도 불통. 근본적으로 케이블에 문제가 있는 건데.. 어떻게 케이블 회사에 전화를 하지? 전화 번호도 모르는데..

순간 스마트폰이 생각났다. 스마트폰으로 인터넷 검색을 통해 케이블 회사의 지역 방송 번호를 알아내어 전화를 했다. 멘트가 흘러 나오는데 우리 지역은 아침 6시까지 네트워크 공사 관계로 서비스가 안 된다는 것이 아닌가? 확인하기 위해 5분 이상 기다리니 안내원이 나왔지만 메시지는 동일했다.

할 수 없이 허탈감에 읽던 책을 뒤적거리면서 아침을 맞이했다. 케이블은 6시가 지나서도 연결이 되지 않아 오랫만에 '커뮤니케이션이 단절된 찝찝한 느낌'으로 출근을 헸디. 만일 스마트폰마저 없었다면 출근하자 마자 부랴부랴 케이블 업체에 사람 보내달라고 하지 않았을까?


Case 2

지역을 이사하기 위해 집을 알아보고 있었다.  마침 외부에 나갔다가 퇴근 길에 옮기려는 지역 근처에 위치한 부동산중개소를 찾아 갔다.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었지만 너무 늦어서 집을 볼 시간이 안 되었다. 나중에 시간 있을 때 오겠다고 하고 명함만 들고 나왔다.

주말에 아내하고 외출한 김에 그 지역에 갈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되어 지갑에서 부동산중개소의 명함을 찾았다. 순간 명함을 회사에 놓고 온 것이 생각났다. 이런, 회사에 들렀다 갈 수도 없고 중개소 이름도 기억이 안 나는데.. 위치만 아는데 방법이 없을까?

부동산 간판에 있는 전화번호


순간 "스마트폰에서 다음(Daum) 지도의 로드뷰로 그 중개소의 전화 번호를 알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떠올랐다. 보통 그런 업체는 간판에 크게 전화번호를 써 놓지 않는가? 다행히 내 생각은 먹혀 들었다. 큰 길을 선택하여 로드뷰를 보니 그 부동산중개소의 사명과 전화번호를 어렵지 않게 얻을 수 있었다. 바로 전화를 걸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었음은 두말할 나위 없다. 스마트폰과 지도 애플리케이션이 나에게 결정적 도움을 주었다. 

그 후 나와 같은 방식으로 상호명을  찾는 TV 광고를 본 적이 있다. 그런 생각을 한 나 자신에 대해 기특하게(?) 생각되었다.

Case 1은 융합된 인터넷 환경이 얼마나 허무하게 우리 사회를 암흑 세계로 만들 수 있는 가에 대해 보여 준다. 만일에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네트워크를 건드린다면?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온갖 채널로 커뮤니케이션을 하다가 그 수단이 제로가 되었을 때의 공허함은 공포와 무서움으로까지 발전한다. 이미 우리의 라이프 스타일은 그만큼 인터넷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다. 

Case 2는 스마트폰으로 오프라인 사회를 연결해 내는 작은 사례다. 유비쿼터스라는 거창한 표현을 안 쓰더라도, 모바일 상태에서 얼마든지 내가 원하는 정보를 즉각적으로 알아낼 수가 있다. 디지털 정보로 컴퓨터 속에 들어가 있는 정보는 물론, 세상에 널린 오프라인 정보도 인식해 낼 수 있는 지능화 사회가 오고 있다. 온라인-오프라인의 융합이라고나 할까?


어떻게 보면 황당한 경우였지만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는 스토리라 지금도 가끔 생각이 난다. 



밤잠을 설치며 프리미어 축구를 보는 이유

Global View 2009.06.15 14:09
왜 밤새 유럽 축구에 열광하는가?

영국 프리미어 리그(Premier League)에 어떤 팀과 어떤 선수들이 있는지도 몰랐던 팬들이 박지성이라는 스타 덕택에 맛을 보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제는 밤을 지새우며 실시간으로 경기를 시청하는 세상이 되었다. 더 나아가 챔피언스 리그, 유럽컵을 밤잠을 설치면서 볼 정도로 열성적인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밤늦게까지 경기를 보고 나서 월요일 점심 시간에 얘기의 꽃을 피우는 것도 새로운 풍속도다.

골을 넣는 박지성 (www.ohmynews.com)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아스널의 챔피언스 리그 준결승전 때의 일이다. 새벽 3시 45분에 경기가 시작했는데, 박지성이 전반 7분만에 첫 골을 넣고, 곧 이어 호나우두가 예리한 프리킥으로 11분에 두번째 골을 넣었다. 이로써 승부는 났다. 나는 전반 30분까지 보고 더 이상 볼 필요가 없는 것같아 다시 잠이 들었다. 그런데, 어떤 직원은 늦게 깨는 바람에 전반 15분에서야 TV를 틀었다고 한다. 결국 결정적인 2골이 들어가는 장면은 보지 못한 채 잠도 못 자서 더 피곤하다며 푸념하는 모습이 안스러웠다. 이런 해프닝은 밤낮이 바뀐 세계의 스포츠를 시청해야 하는 우리에게 흔히 발생할 수 있다.


프리미어리그와 비교되는 K-리그

한편 프리미어 리그의 빠르고 수준있는 플레이에 한국의
프로축구 K-리그는 상대적으로 비교되기 마련이다. "K-리그의 경쟁 상대는 한국 프로 야구가 아니라 영국의 프리미어 리그다. 그래서, 더욱 긴장해야 한다" 라는 컬럼을 본 적이 있는데, 아주 적합한 지적이다. 프리미어 리그를 처음 접하면 마치 핸드볼을 보는 것처럼 스피디하다. 여기에 익숙해지게 되면 K-리그가 슬로 사커처럼 답답해 보인다. 눈높이가 달라진 관중들을 만족시키려면 실력 차이를 줄이는 수밖에 없다.

프리미어 리그는 더 이상 영국인들 만의 스포츠가 아니다. 아스널(Arsenal)은 주전 선수 대부분이 외국인으로 구성되어 있다. 다른 구단도 영국인은 소수에 머무른다. 구단주도 다양한 국적으로 구성되어 있다. 첼시는 러시아, 맨체스터 시티는 아랍에미레트, 리버풀은 미국 국적의 오너가 대주주다. 게다가 삼성, LG를 비롯한 세계 각 나라의 기업들이 스폰서로 나선다.

축구 전쟁 -1969 (출처-blog.chosun.com)

렇게 축구라는 스포츠가 글로벌화 되고 투자가 집중되면서 프로 클럽 경기가 더 주목을 끌고 있다. 각 클럽은 세계 각국을 대상으로 선수를 리쿠르트(recruit)하며 팬클럽을 운영한다. 너무 돈에 의해 좌우되어 본래의 클럽 정신을 훼손한다는 비판도 있지만, 수익을 추구하는 프로팀을 뭐라고 하겠는가?


클럽의 위상이 커지고 세계화할수록 국가별 대항 경기의 관점도 달라지고 있다. 과거에는 축구 전쟁이 있을 정도로, 축구 경기는 반 전쟁의 분위기였다. 그러나, 점점 해외 유명 선수들의 얼굴을 익히게 되면서 상대방의 선수들도 친숙해졌다. 유명한 감독들은 여러 국가를 옮겨 다니며 자신의 고국과 경쟁을 한다. 그러면서, 점점 애국심보다 즐김의 스포츠로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 

미국에서 축구가 활성화되지 않는 이유

미국에 온 펠레 (k.daum.net)

미국에서도 1970년대에 축구를 활성화시키려고 했다. 이미 한물간 펠레, 베켄바워, 에우제비오와 같은 세계적 슈퍼 스타들을 영입해서 붐을 일으키려고 애썼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농구, 야구, 미식축구 만큼의 위상을 가지는데 실패했다. 다른 나라에서 축구는 최고의 인기 스포츠인데, 미국에서는 왜 안될까?  원인으로 여러 가지가 지적되지만 다음 2가지가 인상적이다.

첫째, 축구는 45분 동안 쉼없이 진행되기 때문에 광고를 집어 넣을 틈이 없다. 그런 점에서 중간 브레이크 타임이 많은 농구, 야구, 미식축구, 아이스하키가 제격이다. 괜히 축구 경기 중간에 광고를 넣었다가 그 사이 골이 들어가거나 결정적인 장면을 놓치게 되면서 소비자들의 원성을 받았다
. 당연히 광고주는 효과가 없다며 난색을 표명했다. 스폰서가 없는 프로 스포츠는 활성화되기 어려웠다.
 
둘째, 미국에서는 국가 대항의 스포츠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경향이 강하다. 미국이 다민족 국가이고 개인주의가 강한 배경이 한몫한다. 블로그 "미국 축구의 오해와 진실" 에서도 그 현상을 다음과 같이 잘 묘사하고 있다.

"다른 나라들이 국가간에 벌어지는 축구 경기를 통해, 월드컵 등 세계적인 축구대회를 통해 축구의 묘미에 한껏 빠져드는 사이 미국인들은 국내에서 펼쳐지는 다양한 스포츠에 더 많은 관심을 쏟았다. 미국이 발달시켜온 스포츠인 야구, 미식축구, 농구, 아이스하키 등을 보면 축구처럼 국제적인 스포츠라기보다는 미국과 일부 국가에서만 국지적으로 발달해온 종목임을 쉽게 알 수 있다."


물론 미국인들도 올림픽이나 국가 대항 경기에서 열심히 응원하고 기쁨의 눈물을 흘린다. 그러나미국에서 올림픽 중계를 잘 보면 경기 자체보다 선수의 스토리를 더 클로즈업한다. 예를 들어, 미국이 금메달을 딴 장면보다 마이클 펠프스와 같은 개인의 인간 승리를 부각한다. 1990년 초까지만 해도 축구가 월드컵을 비롯한 국가 대항 성격으로 비추어졌기 때문에, 미국인들이 거부감을 느낀 것은 일리가 있다.


국가 단위보다 개인에 초점이 가는 스포츠의 글로벌화

그러나, 앞으로 다국적 팀이 많아질수록 국가 대항보다 클럽 축구, 국가보다 개인이 부각될 것으로 생각한다. 나만 해도 박지성 선수가 먼 거리를 와서 시차를 극복하면서 A-매치 경기를 하는 것 보다, 현지에서 충분히 휴식을 취하고 주전으로 나서서 좋은 플레이를 보여 주었으면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월드컵같은 중요한 경기라면 모르지만, 단순한 친선 경기에 굳이 무리할 필요가 있을까? 팀웍을 맞추기 위해서라지만, 현지에서 주전 경쟁하기에도 벅찬 선수들의 몸관리를 생각해야 주어야 한다.

패배한 상대팀을 격려하는 히딩크 (sungsooin.koreanblog.com/36)

또한 많은 선수들이 세계 시장을 상대로 자신의 꿈을 키웠으면 한다. 우리 나라 대표팀에서 초대를 받지 않았던 추신수 선수가 맹활약을 하는 것이나, 국내에서 주목을 받지 못했던 박지성 선수가 일본에서 인정을 받은 것을 보면서, 국내에서 인맥과 기반이 없어도 실력만으로 승부할 수 있는게 세계 시장이다. 선진 축구를 TV로 접하면서 어린 선수들도 수준이 높아지는 계기가 된다.

앞으로도 물론 월드컵과 유럽컵은 더욱 큰 이벤트가 될 것이다. 스타 플레이어들이 총출동하고 큰 돈이 오고 가니까.. 그러나, 경기를 보는 관점은 국가 중심에서 각 선수 중심으로 바뀔 것 같다. 스타들이 국가별로 헤쳐 모여서 벌이는 다른 각도의 게임 조합, 국가라는 정체성보다 개인의 실력과 감독의 용병술을 즐기는 형태로 바뀌어 나가지 않을까?  한국이 한일 월드컵에서 승리하는 날, 히딩크 감독이 스페인이나 포르투갈 선수들을 개인적으로 위로하는 모습은 이미 선수들과 게임 자체가 중심이 되는 현상을 보여준다.

이제 스포츠에서도 다국적 기업이 중심이 되어서 전세계의 시청자를 대상으로 하는 글로벌 시장이 형성되었다. 그럴수록 지역별 시장, 국가 대항전보다 개인의 실력이 중심이 되는 형태로 바뀔 것이다. 글로벌화에 따라 평평해지는, 즉 플랫(flat)화 되는 현상이 이미 전개되고 있다. 정보통신과 IT 기술의 발달은 스포츠를 더욱 흥미로운 글로벌 콘텐츠로 만들어 갈 것이다.


 

박지성에게 우리 사회가 배워야 할 3가지 교훈

CEO 칼럼 2009.04.21 10:40

최근 TV에서 방영된 박지성 스페셜 프로는 인상적이었다. 우리 나라 사람이라면 박지성 선수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으로 생각한다. 나도 무척 좋아한다. 팀을 위한 그의 플레이는 어느 감독이라도 좋아하지 않을 수 없을 거다. 한국 사람이라서 팔이 안으로 굽는지 모르지만,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기라성 같은 스타들도 자기 자신의 개인기로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은 뛰어나지만, 박지성처럼 항상 공간을 창출하고 볼을 연결해 주는 선수는 드물다. 다음과 같은 표현은 박지성 만의 특성을 잘 나타낸다.

퍼거슨 감독 그는 공을 가지지 않았을 때의 움직임이 뛰어나다

에브라 그는 마치 귀신(ghost)같다. 이쪽에 있는 것을 보았는데, 어느 순간 뒤쪽에 있다
미키 토마스 "그의 모습을 보면 핀볼 기계가 생각난다"


내가 박지성을 가장 인상적으로 접한 장면은 2002년 월드컵 전에 프랑스와의 평가전 때 터뜨린 골이었다. 김남일 선수의 롱 킥을 받아서 공의 방향을 바꾸더니 톡톡 드리블 해가면서 골 구석으로 차 넣는 장면! 한 템포 빠르기 때문에 수비나 골키퍼가 속수무책인 이 장면은 내가 본 우리 나라의 축구 골 장면 중 가장 인상적이었다. “우리 나라 선수도 저런 플레이를 할 수 있구나하고 감탄했었다. 그때부터 나도 그의 팬이 되었다.


그의 어린 시절부터 부모의 헌신적인 보살핌, 노력과 행운 속에 현재의 위치까지 가기의 과정을 그린 이번 프로그램을 본 사람은 대부분 비슷한 감동을 느꼈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런데, 전에 발견하지 못했던 3가지 포인트가 인상 깊었다. 그를 통해 젊은이들이, 또한 우리 사회가 배워야 할 점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MBC 스페셜 프로그램에 출연한 박지성 선수(화면 캡쳐)


 

첫째, 프로성(性)이다 -축구는 잘 하고 싶은데 평범하고 싶어요

 
프로는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할 때에 최고로 실력을 발휘할 수 있다
.축구는 잘 하고 싶은데 평범하고 싶어요라는 표현은 진정으로 축구에 대한 애정을 보여 준다. 누구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하는 것은 프로가 아니다. 부모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좋은 학교에 가고, 주위의 부러움과 시선을 받기 위해 열심히 한다면 본말이 전도된 거다. 또한 자신을 과시하기 위해 자식을 다그치는 부모도 자식을 진정으로 위하는게 아니다. 아인트호벤에서 1년 이상 시달렸던 야유를 환호성으로 바꾼 것은 그러한 애정과 실력 덕택이다.

누구나 성공하게 되면 스포트라이트를 받게 되고 성인 군자가 아닌 한 거기에 도취하게 된다
. 나도 한때 잘 나간다라는 소리를 들으면 겉으로는 아닌 척하면서도 속으로는 기분이 우쭐하곤 했다. 50에 들어서 철이 들어서인지 이제는 혹 그런 시절이 다시 오더라도, 주목을 받고 싶지 않은게 솔직한 심정이다. 그런 것은 일시적이며 자신의 일에 대한 집중력을 떨어뜨리는 독약같은 요소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박지성은 아직 20대다. 게다가 그는 월드 스타다. 또한 그것을 즐겨도 될만한 부와 명예를 지니고 있다. 그렇기에 그런 어린 나이에 성숙한 모습을 바라보면, "그는 진정으로 축구를 좋아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유혹을 이긴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인데 말이다.

연예계나 스포츠 분야에서 얼마나 많은 스타들이 스캔들에 휩싸이고 우울증에 시달렸는가? 나이 많은 정치인들도 무대에서 사라지면 더 이상 주의(attention)와 관심을 받지 못하는 현실에 괴로워 한다고 하지 않는가? 그런데, 아직 결혼도 하지 않은 20대 청년이 이런 성숙함을 가진다는 것은 그가 철저한 프로근성을 갖추고 있음을 입증한다.

 

둘째, 실력과 능력으로 기존 체제를 무너뜨렸다.

 
월드컵 4강 후에 히딩크 감독의 성공 요인을 분석하는 내용 중에, 학연(學緣) 관계에 의한 기존 문화를 타파한 부분이 지적된다. 나도 전혀 몰랐던 사실인데 스포츠에서도 대학별로 선후배 관계에 의한 학연이 있었나 보다.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전통과 습속 가운데 우리는 지내고 있다.

 

오래 전에 목격한 광경이다. 소위 오피니언 리더들의 모임이었다. 그 중 한 분이 어떤 이와 얘기하다가 같은 대학 출신이란 것을 알았는지 요란하게 기뻐하는 모습을 보았다. 내가 볼 때에 그 둘 사이는 10살 이상 차이가 있는 것으로 보였고, 대학 동문이라지만 동시대에 같은 공간에서 있지 않았었다. 옆에서 이를 보던 어느 어르신께서 "사회의 지도자급이라는 사람들이 생면부지의 사람에게 같은 동문이라고 무작정 챙기니, 이래 가지고서야 어떻게 학연이 타파될 수 있겠는가?”하고 야단을 쳤다. 사실 나도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기에 속으로 시원했다.

 

또 다른 모임에서는 연로한 국회의원이 초대되어 축사를 부탁받자, "이 행사를 주관한 누구누구가 자기 후배"라며 잘 봐달라고 부탁을 하는 것을 들었다. 내가 볼 때 어림잡아도 2-30년 차는 나 보이는 관계인데 말이다. 소위 일류학교 출신이며 언론에 오르내리는 우리 지도자들의 인식이 이 정도다.


히딩크 첼시 감독(출처 : 스포츠칸)

허정무 국가대표 감독(출처 : 뉴시스)


 

박지성은 축구의 명문 대학에서 부름을 전혀 받지 못했다. 아니 버림 받았다. 그의 성공 과정을 보면 그를 발탁한 히딩크 감독, 허정무 감독의 (언론과 주위의 비판을 무릅쓴) 현명한 판단  속에 기존 체제에서 가능하지 못했던 외길 시나리오로 전개된 것을 발견할 수 있다. 기존 질서에 대한 통쾌한 반전이자 돌파력이다. 결국 능력이 중심이 되는 유럽에 들어가서야 진정한 실력만으로 승부할 수 있었다. 우리 사회에서 이런 기득권, 즉 혈연, 학연, 지연에 의한 네트워크가 능력있는 사람들의 진출을 막는 것은 비단 축구 만이 아니다. 이를 타파했다는 점이 우리 사회에 시사하는 것을 절대 놓쳐서는 안 된다.

 

셋째, 글로벌한 자리매김(Global Positioning)이다.


박지성이 일본어로 말하는 것을 처음 봤다. 일본말을 약간 하는 나의 판단으로는 TV 인터뷰에서 그 정도 한다면 거의 의사 소통에 문제가 없는 것으로 보인다. 또한 그의 집에 놀러 온 같은 팀 동료인 에브라는 프랑스, 테베스는 아르헨티나 선수다. 같은 팀의 호나우두는 포르투갈, 루니는 잉글랜드, 긱스는 웨일즈, 비디치는 세르비아, 반 데르사르 골키퍼는 네덜란드, 베르바토프는 불가리아 국가대표 선수들이다. 이미 글로벌하게 최고 수준의 조합을 이룬 클럽에서 스스로 글로벌 존재임을 보여주고 있다.

 

아마 학교 다니는 동안 운동 하느라 제대로 공부하지도 못했을 거다. 혹자는 개인 교습을 받으니까 그럴 수 있지 않느냐고 할 지 모르지만, 어학이 단순히 누가 가르쳐준다고 늘지 않는다는 것은 상식이다. 자기 스스로 암기하고 표현을 익히고, 열심히 소통하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 아직도 메이저리그에 간지 오래된 이치로는 통역을 필요로 한다고 한다. 그만큼 어학은 자세에 달려 있다.

 

스스로를 글로벌하게 포지셔닝하려면 단순히 어학만의 문제가 아니다. 자신만의 실력이 받쳐주어야 한다. 남의 지식이 아닌 자신의 이야기, 즉 스토리를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축구의 박지성, 피겨 스케이팅의 김연아, 골프의 신지애 등은 자신의 분야에서 글로벌 리더로 자리매김한 스포츠 선수다. 이런 정신은 스포츠 분야에 국한되지 않는다. 경영인, 기술자, 학자, 정치인모든 분야에서 자신의 색깔과 특성을 글로벌하게 표현할 수 있는 전문가가 글로벌 리더다. 어느 학교에서 학위를 받았다느니, 누구를 안다느니, 외국어를 유창하게 하는 것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분야에서의 실력이다. 어학은 자신의 실력을 표현하는 도구일 뿐이다.  

 

박지성 선수는 우리의 기존 관념을 바꾼 의미있는 발자취를 남겼다. 바로 이런 프로성과 능력으로 기존 체제를 뛰어 넘어 글로벌 리더로 성장한 것이다더욱 놀라운 것은 그는 앞으로 더 많은 귀감이 되는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젊음을 가지고 있다. 우리 사회가 이런 젊은이의 노력과 상징성을 배워야 한다.

그는 좋은 지도자들(김희태 감독, 허정무 감독, 히딩크 감독, 퍼거슨 감독)이 적기에 이끌어 준 엄청난 행운이 뒤따랐다. 그런데, 그런 행운이 없더라도 능력이 있고 노력을 하면 성공할 수 있는 시스템과 체제가 마련되어야 바람직한 사회다. 우리 나라가 그렇게 되면 사회 각 분야에서 글로벌 리더들이 쏟아져 나올 것이다. 대한민국의 잠재력을 진정한 성장 엔진으로 바꾸기 위한 마인드 전환과 자기 개혁에 모두가 나서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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