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 & 아이패드, 여성에 유리한 이유

IT와 세상 2010.04.10 11:31

스마트폰과 아이패드가 여성의 위상을 높일 수 있는 이유

'여성신문'과의 인터뷰는 인상적이었다. 평소 얘기할 기회가 없었던, 여성의 사회 활동, 사회적 현상 등에 대해 IT 관점에서 대담이 오갔다. 앞으로 스마트폰, 아이패드와 같은 도구는 기술적 장벽을 제거하기 때문에 여성들에게도 무한한 기회를 줄 것으로 생각한다. 그 대담 내용을 일부 보완해 블로그에 올린다.

소통·섬세함·아이디어·도전이 기술보다 중요해

“IT 세계, 디지털 문화에 발을 들여놓은 이상계급장떼고 얘기하고 또 사고해야 한다. 블로그나 트위터 모두 수평적 관계에서 얼마나 적극적으로 달려드느냐가 중요하다.”

 

© 정대웅 / 여성신문 사진기자 (asrai@womennews.co.kr)

IT가 중심이 된 첨단 정보화 사회의 현재와 미래를 얘기하는 데 있어 김홍선 안철수연구소 대표이사는 평등 구조에서의생태환경소통을 키워드로 내세웠다. 그리고 이 두 가지 요소는 정보화 사회에서의 성 격차에도 불구하고, 여성에게 더욱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라고 전망한다. 이때생태환경이란 컴퓨터가 휴대전화 안에 들어오고, 그 휴대전화가 현재의 스마트폰으로 진화됐다는 단순한 차원의 얘기가 아니다.

50
년대에도 3D 기술이 있었고, 70년대엔 3D 영화도 나왔지만, 기술적 한계로 이를 충분히 꽃피울 여건이 안 됐다가 이번의아바타처럼 애니메이션과 그래픽이 결합되면서, 즉 생태환경이 갖춰지면서 3D 자체가 강력한 문화 콘텐츠로 대성공을 거두게 됐다는 것이다.


여기에 하드웨어보다는 소프트웨어와 콘텐츠
, 아이디어와 창의적 기획력이 한층 더 중요한 시대가 왔고, 기술적으론아이디어를 실현할 인큐베이션 장치가 다 돼 있기에대기업보다는 중소기업, 여성 등 상대적으로 비주류 그룹이 이 생태환경을 더욱 잘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 설명한다. 그래서 비엔지니어도 기술에 대한 콘셉트를 가지고 살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IT가 주도하는 이 변혁 속에서 길을 잃지 않고 잘 적응하기 위해 어떻게 준비하고 대처해야 하는가.

IT보다는 우리나라가 가부장적 사회문화이기에 이 변화가 더 충격적인 것이다. 이런 면에서 소프트웨어가 성 격차를 오히려 없애 가고 있고, 그래서 여성들에게 좀 더 많은 가능성과 기회를 열어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미국의 경우, 90년대 초반부터 IT기업에 여성이 많이 진출했다. 맥 휘트먼 전 이베이 최고경영자(CEO), 칼리 피오리나 전 휴렛패커드 CEO 등이 대표적인 예다. 여성 특유의 프레젠테이션,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뛰어났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여성들이 좀 더 적극적으로 이 흐름에 참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막연히 여성이 보호를 받아야 한다는 통념에는 반대한다. 물론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는 필요하지만, 직장 내에서도 대우만 받으려고 해서는 발전이 안된다. 오히려 여성의 강점을 살린, 소프트하고 정확하고 논리적인 부분에 집중해야 한다. 기업에서 성패는 역량의 발휘로 결정된다.

Meg Whitman (전 eBay CEO)

Carly Fiorina (전 HP CEO)

 

특히 저출산 고령화 사회, 양육과 부양의 인프라를 갖추고 제공하는돌봄노동서비스에 IT를 활용해 효율을 극대화할 수 있을까.

"여기에 더해 시대적 화두가그린이고, ‘스마트. 탄소 배출량을 줄여야 하고, 교통 체증을 줄여야 하기에 모바일 오피스나 그에 준하는 업무로 가게 돼 있다. 이런 구조를 스마트폰이 가능하게 만들 것이다. 정보화와 인프라는 많이 구축돼 있으니 데이터베이스(DB)화된 정보를 어떻게가치로 끌어내느냐가 문제다. 모바일 오피스가 되면 가사와 일을 병행할 수 있는 환경이 자연스럽게 구축될 것이다."


-
일자리 문제가 심각한 가운데 실업, 비정규직, 경력단절 등에 있어 여성 일자리는 최고 위험 수위에 처해 있다. IT를 활용해 이를 극복할 수 있을까.

“대기업 중심의 구조가 바뀌는 핵심은 소프트웨어와 콘텐츠의 플랫폼이다. 이제까지 컨트롤할 수 있는 건 대기업밖에 없었지만, 이제는 평평한(flatness) 구조, 대등한 관계로 가기 때문에 상황이 변했다. 애플이나 구글이 개방성을 체질화해 비즈니스 모델을 바꾸어 버린 덕택이다. , 플랫폼만 만들고 콘텐츠는 건드리지 않았기에 마켓 플레이스를 제공할 수 있게 됐다. 그래서 기획과 아이디어가 중요한 구조로 가기에 여성들이 할 일이 늘어날 것은 자명하다.


소프트웨어를 개발할 수 있는 사람이 여성을 포함해 우리나라에 많은데
, 이런 기술을 개발하는 데는 기술자 수십 명이 필요한 게 아니다. 아이디어를 갖고 오면 기술력이 있는 사람과 같이 사업하면 된다. 소셜 네트워크를 통해 아이디어의 일정 부분을 올리면 저 멀리 인도에서 공학도가 함께 일하자고 연락해오는 세상이다. 문제는 이를 실현하려는 뜻과 의지다. 그만큼 기술의 장벽이 없어지고 있는 추세다. 이제까지 휴대전화 안에 소프트웨어를 넣는 게 어려웠지, 이 단계를 넘은 이상 더 이상 어려울 게 없다. 결국 기술을 찾아서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건 자신의 몫이라고 얘기하고 싶다.”

 

현대백화점 보안세미나의 청중들

현대백화점 강연

-노하우(know-how)보다 정보를 찾는 노웨어(know-where)가 더 중요하다고 하셨다. 현실에서 어느 정도 적용되는가.

“이미 수년 전 미국 대학생들이 졸업하면서 ‘Thank you, Wiki(위키피디아)!’라고 했다. 그래서 교수들이 대학생들의 리포트를 검증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이 인터넷에서 가져온 아름다운 문장들과 로직을 리포트에 썼는지 여부를 가리는 것이다. 바꿔 말하면 자신이 저장해둔 정보는 이젠 별로 큰 의미가 없다. 오히려 흐름을 파악하는 게 더 중요하다. 이를 통해 전문화된 사회로 가는 것이다. 인터넷 1세대가 포털에 지식들을 올렸을 땐 검증이 안 돼 틀린 것들이 많았지만, 요즘은 점점 깊이 파고들어 전문성이 높아지는 추세다.”


-
스마트폰을 주축으로 한 생활 혁명이 일어나고 있다. 이에 대해 가까운 미래를 전망은?

"애플의 아이팟의 경우, 이를 통해 음악시장을 평정했고, 많은 이들이애플이라는 브랜드에 호감을 가지게 됐다. 시대적 환경으론 인터넷이 상용화됐고, 검색 기능을 가진 구글 엔진이 보편화되고, 소셜 네트워크가 구축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애플의 아이폰을 샀을 때 할 수 있는 응용이 크게 많아지니까 확 뜬 것 아니겠는가. 스마트폰의 출현이 중요한 것은 휴대전화 단말기에 대한 권한이 제조업체밖엔 없었는데, 스마트폰이 개방형으로 갔기 때문에 이 단말기 업체에 의존하지 않고 독자적으로 갈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엄청난 마켓 플레이스가 열린 것이다아이패드와 같은 디바이스는 컴퓨터에 겁을 내는 주부, 여성들에게 큰 장애를 제거할 것이다.

 

아이패드, 스마트폰은 여성에게 기술적 장벽을 제거할 수있다.

스마트인가. 내가 어디 있는지 알 수 있고, 움직임도 감지하며, 볼 수도 있고, 인식도 하며, 소리도 듣는다. 냄새나는 것만 빼고는 감각을 모두 인식할 수 있는 것이다. 게다가 이 모든 것이 터치로 이루어지고 있다.

이는 종전에 컴퓨터가 남성들의 전유물이었다면 이젠 스마트폰으로 여성들에게 더 유리한 생태환경이 열리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 퍼스널 디바이스, 즉 인간적인 제품이 되면서 더 많은 소셜 네트워크와 커뮤니케이션을 잘 할 수 있는 여성이 주축이 될 것이다. 한편으론 컴퓨터에 어색했던 많은 사람이 스마트폰에 좀 더 인간적으로 다가갈 수 있게 될 것이고, 필요한 정보를 빨리 주고받을 수 있기에 엄청나게 바뀐 세상이 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언론의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인가. 

"기존의 권력구조가 많이 바뀌면서 정보 독점 시대가 끝나갈 것이다. 트위터나 페이스북에 중독되면 아예 언론을 안 볼 수도 있다. 스스로 판단하는 세상이고, 정보에 대한 마케팅은 매스미디어에만 허용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미국 회사들에 마케팅 전략에 대해 물어보니까 광고홍보회사들이 톱 블로거, 애널리스트, 트위터, 그 다음으로 언론을 잡아야 한다고 자문한다더라. 그만큼 사회적 영향력이 바뀌고 있는 거다. 아마 방송이 제일 큰 타격을 받을 것이다. 방송은 중간 중간의 광고로 먹고 살았는데, 광고를 중간에 끼워 넣기 힘들거나 전혀 필요 없는 추세로 갈 것이다. 매체의 차이보다는 궁극적으로 얼마나 콘텐츠의 질이 좋고 빠르냐가 더 중요하다. 콘텐츠의 싸움인 것이다."

 

-트위터, 미투데이, 블로고스피어, 아이폰 등 소셜 미디어의 전망은 어떤가.

"단적으로 말해 소셜 미디어와 연관되지 않는 언론은 생존할 수 없다고 본다. 트위터의 경우, 다른 사람들이 생각하는 걸 느끼고 소통할 수 있다. 트위터엔 짤막하고 쉬운 문구를 쓰지만, 쭉 흐름을 보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있다. 이런 건 도저히 언론에서 잡을 수 없는 부분이다. 최근 미국에서 슈퍼볼이 사상 최대의 시청률을 기록했는데, 이것도 소셜 미디어가 받쳐줘서 가능했던 거다. 사람들끼리 소셜 미디어를 통해 서로 같이 얘기하면서 경기를 봤으니까. 결국 언론의 문제는 소통의 문제인데, 이 소셜 미디어가 소통 문제를 상당 부분 해결해 줄 수 있을 것이다."

 

-인권 문제, 특히 여성이나 청소년 문제를 취재하다 보면 많은 경우 그 원인을 인터넷 유해 문화에서 찾게 된다. IT 혁명이 가져다준 이 그림자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우리나라의 사이버 문화를 보면, 남 얘기 하는 걸 좋아하는 현상이 두드러진다. 사람들끼리 모여서 오프라인에서 흉보던 것이 사이버 공간으로 와서 악플로 된 감이 적지 않다. 사이버의 유해성 문제는 토론문화가 성숙되지 않은 우리나라의 문화적 특성과도 결부해 볼 수 있다. 그러나 차츰 정화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악플을 하다가 서로 자제시키기도 하고, 무엇보다 한층 전문화된 영역으로 가고 있으니까. 블로그 자체도 자신의 의견을 통해 커뮤니티를 형성하는 것이 목적이다. 더구나 트위터의 경우 악플 현상이 없다. 전문화된 구조로 가고 있어 악플이 의미가 없는 데다가 타임 라인(Timeline)이 계속 움직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가 진정한 IT 강국이 되기 위해 절실한 것은 무엇인가.

 

무엇보다 소프트웨어 없이, 중소기업 없이는 안 된다. 소프트웨어는 기본적으로 창의력과 혁신성이 중요한데, 대기업은 제조업과 규율, 관리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이다. 세계적인 기업들이지만 애플이나 구글은 창의력과 혁신으로 정신무장이 돼 이것이 체질화돼 있는 기업들이다. 독점하기보다는 상생하는 기업문화를 갖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선 중소기업이 애플처럼 성장할 생태계가 안 돼 있고, 콘텐츠 업체도 없다. 그것이 안 된다면 IT 강국은 물 건너갔다고까지 감히 생각한다. 정부와 대기업도 이를 알고 있을 것이다. 문제는, 그 방법에 대해 같이 머리를 맞대고 이를 이뤄나가는 사회를 만들었으면 좋겠다. 소프트웨어를 한 사람이 성공 신화를 만들고, 그래서 젊은 사람들이 끊임없이 도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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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가 트위터의 매력에 빠져든 이유는?

IT와 세상 2010.03.15 07:43

트위터에 대한 관심은 약 1년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어느 미국 회사에 방문해서 이런 저런 얘기를 하던 중 앞으로 트위터(Twitter)를 적극 활용하려는 마케팅 계획을 듣게 되었다.

 

미국 시장에서 톱 블로거의 지지(endorsement)가 중요하다는 것은 현지 전문가들을 통해 익히 알고 있었다. 신제품이나 신기술을 시장에 선보일 때 커뮤니케이션PR의 첫 번째 목표가 블로그 커뮤니티, 그 다음이 가트너와 같은 시장 분석기관이다. 전문지나 언론은 그 다음이다. 그래도 트위터(Twitter)는 아직 생소했다. 트위터에 대한 책도 사 보면서 개념을 깨우쳤지만 동조하는 이들이 주위에 적어서 직접 활동하지는 않았다.

100억 Tweet의 돌파 (2010. 3. 5)

최근 급증하는 트윗 숫자

 

한국에서도 언제부터인가 얼리어답터와 일부 언론인, 정치인들이 트위터를 사용한다는 뉴스를 접하게 되었다. 마침 나는 작년 초부터 시작한 개인 블로그에 한참 재미를 붙이고 있었다. 업무를 마친 밤 늦은 시간이나 새벽에 블로그를 하다 보니 별도로 시간을 낸다는 엄두가 나지 않았다. 게다가 한국에서 트위터는 일상적인 채팅이나 협소한 분야에 머무르는 것 같았다. 물론 그것도 의미가 있는 활동이지만, 그러기에는 시간이 너무 부족했다.

 

그러던 중 내부 보고 자료가 빠르고 정확하게 업데이트 되는 것을 보고 비결을 묻자 트위터 덕택이라고 하는 것 아닌가? 가벼운 메시지 위주로 시작하던 트위터가 전문 콘텐츠의 소통과 담론으로 분화되어 나가고 있었던 것이다. 전 세계의 수많은 자료가 빠른 속도로 공유되고 있었다.

 

아이폰 출시후 급성장한 트위터 사용자수

특히 스마트폰의 도입은 트위터 성장에 영향을 주었다. 10만 정도에서 소강 상태를 보이던 트위터 인구는 아이폰의 출시를 계기로 증가폭이 커졌다. 내 느낌으로는 이 통계 이상으로 영향이 있었을 것으로 생각한다.

시간과 장소에 제한없이 자투리 시간을 활용해서
, 혹은 순간순간 느꼈던 생각들을 알리기에는 트위터가 제격이다. 스마트폰으로 교체할 때 이미 나는 트위터를 염두에 두고 있었다.

트위터 세계로 들어간 과정

그러나
, 기업에서 4사분기 말과 1사분기 초는 가장 바쁜 기간이다. 사업 전략 및 계획 준비하랴, 전직원 교육하랴 정신 없는 기간을 보냈다. 그 후 더 미룰 수 없다는 생각에 2월 말에 조용히 트위터 세상에 발을 들여 놓았다 (@hongsunkim).

초반에는 트윗
(Tweet)을 보내지 않고 그냥 팔로우(follow)만 하려고 했다. 그런데 1시간이 채 되지 않아 평소 블로그로 알고 지내던 광파리(http://blog.hankyung.com/kim215) 님께서 내가 트위터에 들어온 것을 공표해 버렸다. 순간 수십 명의 팔로워가 붙어 당황스러웠다. 이렇게 된 이상 숨어 지낼 수 없어서 인사의 메시지를 트윗(Tweet)으로 날려 보았다. 그러자 반응이 오기 시작했고, 여러 지인들로부터 격려의 메시지가 쇄도했다. 예전에 알고 지냈던 이들, 옛 직원들도 팔로워로 들어 왔다. 소통의 스피드는 짜릿했다.

그렇게 나는 트위터 세상에 몸담게 되었다. 트위터는 블로그와는 다른 차원의, 그러면서도 보완적(complimentary)인 수단이다. 아직 나는 초보 단계다. 시간이 모자람도 절감한다. 왜 이리도 세상은 빨리 변하고 있는가? 지금 이 시간에도 온 세상 정보를 트위터와 블로그로 알리는 이들의 열정이 놀랍다. 그래서, 트위터의 매력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보게 되었다.

 

첫째, 글로벌 커뮤니티 속에서 입체적으로 커뮤니케이션이 이루어진다. 비록 140자 이내라는 짧은 글이지만, 오히려 단편의 문장 속에서 그 사람의 진정한 생각을 읽을 수 있다. 손정의 사장의 메시지를 어디에서 이렇게 생생하게 읽을 수 있겠는가? 사실 짧은 글 속에 중요한 요지가 더 함축되어 잘 담아질 수 있다. (아래 cartoon 참조)

The Evolution of Communication, Mike Keefe, The Denvor Post, March 27, 2009


둘째
, 타임라인(Timeline)
이라는 시간적 차원이 추가되었다. 정보는 더 이상 저장(store)되고 관리(manage)되는 정적인 요소에 그치니 않는다. 방대한 정보가 떠 돌아 다니며 타임라인이라는 시간축과 팔로워라는 소셜 네트워크 축을 통해 입체적으로 퍼져간다. 이 정보를 어떻게 잡아내어 자신의 가치(value)로 만드느냐가 열쇠다. 끊임없이 고급 정보는 역동적으로 생성되어 흘러가며, 이는 실시간(real-time)으로 소통되고 있다.

셋째, 트위터는 컨버전스 시대에 판단 기준을 삼을 수 있는 도구다. 각종 기술과 콘텐츠, 아이디어가 융합되어 가고 있다. 기존의 생각과 틀이 바뀌고 있고, 그 변화 속도는 너무나도 빠르다. 경험적이고 학구적인 이론이나 기존의 사업 모델이 적용되지도 않는다. 그럴 수록 전문가(Guru)의 통찰력과 감각이 절실하게 필요하다. 트위터에서 논의되는 전문가의 의견은 상식 수준의 정보와 차원이 다르고 맥을 잘 잡는다.

 

여러 장점 중에서 전문가의 역할이 중요해졌다는 점이 나에게는 큰 매력이다. 우리가 현재 경험하고 있는 변화는 패러다임 이동 수준이 아니다. 지축이 흔들리는 구조적 탈바꿈이다. 사업 모델의 충돌, 기술과 콘텐츠의 집합(aggregation), 여기에 소셜 미디어와 문화 코드의 복합성이 뒤엉켜 있다. 산업화 시대의 규율과 통제의 기업 문화와 훈련된 역량으로는 풀어갈 수가 없다.

 

창의력과 혁신성이 중요하고 적극적으로 소통하는 역량을 필요로 한다. 홍수처럼 떠돌아 다니는 정보와 지식의 구름 속에서 전문가와 리더의 생각을 읽는 것이야말로 아주 중요하다. 또한 스스로 전문가가 되어 세상과 소통하는 자세가 요구된다. 그런 시대에 트위터를 비롯한 소셜 미디어는 입체적으로 우리를 도와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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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가 말한 '탈권위주의' 시대의 도래

Global View 2009.06.17 11:08
빈부의 격차가 심화된다는 점에서 세계화에 반대하는 움직임이 많지만, 정작 후진국이나 개발 도상국에서 세계화를 원하는 여론이 훨씬 우세하다는 통계도 있다. 세계의 경제권에 편입됨으로써 개인의 삶의 질을 향상시킬 가능성이 커진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글로벌화가 가진 자와 못가진 자의 격차를 더욱 크게 만든다는 것은 맞다. 그런 점에서 국가와 사회가 갖추어야 할 분배의 정책, 공정한 기회가 주어지는 환경, 개인의 권한 보장이 아주 중요하다.

정보통신과 IT의 발달은 정보력의 격차를 크게 줄였다. 아니, 역전시킨 경우도 있다. 아무리 권위있는 기관이라 하더라도 폐쇄적인 구조로 경직된 방식으로 운영된다면, 보통 사람들보다도 정보력이 떨어질 수 있다. 오랜 기간 생각을 했더라도 후발 주자가 더 빨리 정보와 아이디어를 사업화할 수 있다.

안철수 박사는 21세기 키워드를 한 가지만 선택하라면탈권위주의라는 단어를 택하겠다고 하였다.


참으로 적합한 표현이다
. 국가와 기득권자의 권위가 줄고 개인의 권위가 커지고 있다는 말이다. 이 지구 상의 수많은 사람들이 삶의 공간을 확보하고 생존하기 위해서, 더 나아가 성공의 열망을 위해서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또한 그들에게는 인터넷과 통신이라는 도구가 아주 저렴한 가격에 제공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더 이상 기업과 국가나 어떤 공동체도 자신들의 규범과 이데올로기를 강요할 수 없다. 개인의 선택이 중요해지고 있으며, 그들은 인터넷이나 소셜 네트워크로 거미줄처럼 문화와 공감대를 형성해 간다.

문화 스페셜리스트 김지룡 씨의 표현처럼 지금은 개인이 국가를 선택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안전이 보장되고, 세금을 적게 내고, 자녀를 좋은 환경에서 교육할 수 있고, 인간다운 삶을 영위할 수 있고, 자신의 능력을 발휘할 가능성이 높은 국가를 선택한다. 각 개인의 가치관과 인생 계획이 국가의 어젠다보다 우선한다. 우리 나라에만 존재하는 기러기 아빠의 현실은 우리 국가가 교육 서비스에는 실패했음을 여실히 입증하고 있다. 더욱 좋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국가로 능력이 있는 사람들은 움직이게 되어 있다.

누가 진정한 영향력을 지니고 있는가?

정보통신과 IT의 발전은 각 개인이 선택할 수 있는 삶의 공간을 글로벌화시켰다. 다른 나라는 어떻게 살고 있고, 그들이 나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도 인식하게 된다. 또한 능동적으로 신속하게 새로운 정보를 파악해야 생존할 수 있다. 더 이상 국가나 일부 지도자가 통제된 정보력으로 권위를 유지하고, 국민들은 그에 의존하던 시대는 종언을 고했다. 

미디어의 영향력은 신문이나 TV에서 블로그, 웹, 트위터(Twitter)로 빠른 속도로 움직이고 있다. 어떤 글로벌 PR 업체에서 일하는 파트너와 대화를 나눈 적이 있는데, PR에서 가장 영향력있는 매체로 파워 블로거와 애널리스트(전문가 집단, IT의 경우 가트너나 IDC), 그 다음이 보도자료를 통해 활자화하는 언론이라고 한다. 이렇게 세상은 바뀌고 있다. 탈권위주의의 시대적 현상을 보여주는 예다.
 
배움에서 세대가 뒤바뀌는 현상

선생(先生)이라는 표현은 오래 살수록 배워줄게 많다는 점을 의미한다. 그런데, 기술이 발달한 현실에서 젊은이들이 나이든 사람을 가르치는 상황이 늘고 있다. 손주들이 할아버지, 할머니를 가르치는 휴대폰 광고를 보면 빠르게 발전하는 하이테크의 생활화를 체감할 수 있다. 또한 디지털 세대는 불연속적 기술(Disruptive Technology)의 지속적인 출현으로 더욱 세분화되고 있다. 먼저 태어난 사람이 선생이 아니고, 먼저 알고 이해한 사람, 응용할 수 있는 사람이 선생이다.

물론 인생의 경륜은 중요하고, 어른들의 가르침은 여전히 중요하다. 그러나, 어떤 가치 판단을 자의적 잣대로 결정해서는 공감대를 얻기 어렵다. 이를 테면 젊은이들의 인터넷 사용을 건전하게 계몽해야 한다는 어른들의 걱정이 크다. 폭력적이고 천박한 언어, 사행성을 조장하는 이들은 인터넷 공간을 어지럽힌다. 그러나, 이것을 강화된 제도나 처벌에 의해 해결된다고 믿는다면 너무 단순한 생각이다. 

적극적이고 열린 대화를 통해 스스로 정화되는 것이 인터넷의 철학이고 정신이다. 열린 공간과 커뮤니티를 통해 많은 오피니언 리더들이 적극 참여함으로써 많은 문제가 걸러질 수 있다. 법과 규제는 항상 최소한에 머무르는 것이 바람직하다. 인터넷이 사회에서 인정하는 권위가 인정되지 않고, 막말로 계급장 띄고 얘기하는 공간이다 보니 혼란스럽게 비칠 수 있다. 그러나, 그럴수록 건강한 커뮤니티가 형성될 수 있는 잠재력이 있는 것이고, 그렇게 만드는 것이 이 시대를 사는 우리들의 숙제다.

인터넷을 괴물처럼 생각할 이유도 없고 그렇게 만들어서도 안 된다. 진정으로 인터넷이 위험하다고 생각한다면, 보다 적극적으로 여기에 뛰어드는 용감한 자세가 필요하다. 건강한 인터넷 세계는 각 개인의 의견을 존중하고 경청하는 합리적 마인드가 우선해야 한다.


권위의 개념부터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시점이다. 21세기는 탈권위주의 시대, 개인주의, 글로벌화의 흐름으로 진행될 것은 자명하다. 기존의 국가나 정부의 역할은 권위의 주체에서, 개인의 권리와 기회를 보장할 수 있는 지원자(Supporter)의 형태로 변신해야 한다. 또한 각 개인의 권한이 존중될 수 있는 사회를 같이 만들어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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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무가 정보의 디지털화로 재조명받다?

보안 이야기 2009.05.12 07:36

발단(Trigger) IV-(2): 정보의 디지털화와 정보 보안

학부 시절 (전자공학과)에 수강 신청을 하려고 하는데 '아날로그 전자 회로'와 '디지털 정보 시스템'의 두 과목이 있었다. 친구들하고 얘기해도 뭐가 뭔지 감이 잡히지를 않았다.

마침 옆에 있던 과 선배에게 물었더니, "아날로그는 파동 곡선처럼 이어지는 모양이고, 디지털은 0, 1로 딱딱 떨어지는 거야"라고 설명하지 않는가? 지금 생각해 보면 우습지만 약 30년 전에 우리 수준이 그랬다. 그만큼 디지털이 막 개념적으로 대두되던 시절이다.

전자공학에서는 아날로그와 디지털로 과목과 전공이 나뉘게 된다. 반도체나 통신을 한 사람들은 아날로그를, 컴퓨터나 논리 설계를 한 사람들은 디지털로 구분된다. 학창 시절 친구들과 이 두 가지 개념을 구분하는 기준은비교적 단순했다.

"아날로그는 지저분한 것이고, 디지털은 깨끗한 것". 왜냐 하면 아날로그는 자연 현상 속의 시그널(signal)이라서 환경과 고유 특성에 따라 영향을 받는다. 반면 디지털은 0,1 이라는 단순한 논리에 의해 설명된다. 디지털은 이론도 깔끔하고 실험 결과가 절대적인 반면, 아날로그 실험은 신경도 많이 써야 되고 결과도 틀린 경우가 생긴다. 

어쨌든 컴퓨터의 보급은 정보의 디지털화를 가속화시켰다. 정보의 디지털화, 이로 인한 디지털 정보의 간편한 저장과 통신의 기술은 우리 생활에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그러한 변화를  크게 세 가지로 정리해볼 수 있다.

첫째, 기록 문화의 패러다임이 바뀌었다. 오늘날 대부분의 기록은 디지털화되어 저장된다. 오래된 문서도 광 파일의 형태로 스캔(scan)해서 볼 수 있다. 구글이 세계의 모든 도서를 스캔해서 검색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야심을 보인 것도 그러한 기술이 존재하고 저장 비용도 저렴해졌기 때문이다. 디지털 정보가 기록 문화의 중심으로 자리잡은 요인은 데이터베이스의 보편화, 강력한 검색 엔진, 문외한도 쉽게 사용할 수 있는 유저 인터페이스(UI) 등이었다.


용의 눈물과 역사 속 조영무의 재조명

그러다 보니 예전에 발견할 수 없었던 정보가 가치있는 것으로 재조명되기도 한다
. 한때 조선왕조실록이 CD-ROM에 들어가면서 재미있는 일화를 소개하는 TV 프로를 본 적이 있다. 조선 시대가 창건되는 과정을 그린 TV 드라마 ‘용의 눈물’에는 예전에 역사책에서 별로 주목을 받지 못하던 인물들이 많이 등장한다.

태조부터 태종에 이르기까지 권력의 획득과 좌천을 거듭하는 과정에서, 역사의 조역이다 보니 일반 문서로는 눈에 띄지 않는 인물들이 많다. 그런데, 잘 발견되지 않았던 인물들이 CD-ROM에 저장된 디지털 정보에서 키워드로 검색해 보면 상당히 많이 역사의 무대에 등장한 것을 발견하게 된다

조선왕조실록

조선왕조실록(CD-ROM)



그 대표적 예로 '조영무'라는 인물을 예로 들고 있다. 조영무는 포은 정몽주를 선죽교에서 살해한 이방원의 오른팔 중의 하나다. 그는 공신으로 포상도 많이 받았고 때로는 권직에서 밀려나기도 했다. 어쨌든 그의 이름을 검색해 보면 여러 번 관직에 오른 것을 알 수 있다. 높은 정승을 한 적이 없어서인지 역사에서는 거의 무시되고 있지만, 디지털 정보의 검색 덕택에 그 인물이 얼마나 그 시대를 풍미했는지를 찾아보는 것이 가능했다.

활자와 문자의 발명으로 시작된 기록 문화는 디지털화된 정보를 통해 차원이 다른 시대를 맞이했다. 그 동안 잊혀졌고 찾기 힘들었던 정보가 저장되고 검색되면서, 모든 정보가 만천하에 발가벗겨질 수 있는 시대가 된 것이다. 

둘째, 인쇄와 출판 산업에도 큰 영향을 주게 되었다. 정보의 디지털화로 각 개인이 습득할 수 있는 정보의 양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도서와 정보가 쏟아져 나오는 시대에 그 많은 책의 전체를 읽기를 기대하는 것은 현실성이 없다. 결국 훑어보는 와중에 눈에 띄게 하는 테마를 시각화할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그런 경향은 90년대 초반부터 잡지에 나타나기 시작했다. 잡지의 모습은 
지면에 빽빽하게 들어선 글자 위주에서, 독자의 시선을 잡기 위해 과감한 레이아웃(Layout)을 보이기 시작했다. 어떤 잡지는 1/3 이상 여백을 비워놓는 파격을 연출했고 큼직큼직한 폰트 크기의의 키워드 중심으로 전개했다. 독자들에게 충격(impact)과 영향력을 주기 위함이다. 그동안 문서 형태로 되어 있는 책이나 잡지도 독자의 수요를 반영해서 전략을 바꾸게 되었다. 한 마디로 ‘읽는’ 것에서 ‘보는’ 쪽으로 활자물의 편집 방향도 바뀌게 되었다.

물론 DTP(Desktop Publishing), CTS(Computerized Typesetting System)과 같은 기술이 뒷받침되었다. 더 나아가 인터넷과 통신의 발달은 정보의 유통 구조도 혁신적으로 만들었다. 지금 작성하고 있는 이 블로그도 21세기에 등장한 Web 2.0의 패러다임을 대변하고 있지 않는가?

셋째, 아날로그 산업을 대체해 갔다. 오늘날 영화의 시각 효과를 구성하는 시각화(visualization) 기술의 선구자는 실리콘 그래픽스(Silicon Graphics)라는 컴퓨터 제조 업체다. SG는 워크스테이션이 컴퓨터 산업의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떠오를 때 썬마이크로시스템즈나 HP와 달리 영화 시장에 주목했다. 당시 영화의 시각 효과는 아날로그 장비를 통한 일종의 믹스 형태가 그 한계였다.

영화 Abyss의 그래픽(www.solarnavigator.net)

그러나, 디지털로 처리되는 3D 그래픽 소프트웨어는 상상력을 영상화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였다. 컴퓨터 문외한이던 영화 제작 업체들이 컴퓨터를 활용하면서 어비스(Abyss), 터미네이터2(Terminator 2)와 같은 영화가 대성공을 거두었다. 잘 알다시피 현재 CG(컴퓨터그래픽)는 영화나 드라마 제작에 광범위하게 적용되고 있다.

오늘날 모든 영화는 디지털로 제작되고 있다. 아직 대부분의 영화관이 아날로그 영사기를 사용하고 있어서 디지털 영화를 아날로그로 다운그레이드해 상영하긴 하지만 디지털 영화관이 점점 늘어나고는 추세다. 병원의 진료 기록, 영상 차트, 초음파 영상 데이터 등 모두가 디지털로 저장된다. 또한 우리 나라 법원의 모든 기록과 판례도 주민등록번호로 조회가 가능하다.

과거에 문서를 들고 다니는 모습을 보는 것이 흔치 않다.
업무를 하는 모습만 보면 그 사람이 판사인지, 의사인지, 기술자인지, PD인지 판단이 서지 않는다. 왜냐하면 컴퓨터 앞에 앉아서 디지털로 저장된 정보를 통해 판단을 하고 업무 처리를 하는 모습은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디지털 정보로 인해 편의성이 커진 것은 명약관화하다. 그러나, 그러한 혜택의 이면에는 정보가 남용되고 탈취될 가능성이 극도로 증대했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디지털화가 된 정보는 복사도 쉽고, 조작도 가능하다. 이제 누가 정보를 생성하고 소멸할 책임을 지느냐는 문제도 해결해야 할 과제가 되었다. 이것이 정보의 디지털화로 인해 정보 보안이 화두가 된 이유다.

(다음 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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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이야기 담은 CEO블로그를 시작하며

IT와 세상 2009.03.30 14:44

 

나는 5월이 되면 결혼한지 23년이 되고 대학 다니는 두 아들을 둔 가장이다. 내가 태어난 1960년은 베이비 붐의 피크였다. 그래서인지 내가 대학을 가던 시기는 입시생은 가장 많고 대학 정원은 가장 적았던 시기로 묘사된다. 삼수생은 감점을 주는 희귀한 제도까지 등장했을 정도이니 얼마나 치열했는지 상상이 간다.

 

1960년에 1인당 GNP 79달러였으니 아프리카 국가보다도 가난했다고 한다. 그 후 2만불 시대, 11대 경제 교역국으로 발전한 한국의 경제 역사의 현장에 나도 서 있었다는 것이 자랑스럽다. 농경 시대에서 산업화 시대, 정보화 사회로 가는 압축 성장의 짜릿한 역사적 발전 과정에 나름대로 한 역할 할 수 있었던 것도 행운이었다.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 중 한 장면

 

한국적 민주주의라고 하는 암울한 유신 독재 시대에 청소년기를 보냈다.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70년대 말에 강남의 한 고등학교를 다닌 나를 깊은 향수에 빠져들게 했다. 흙 먼지 나는 강남의 도로길과 78번 버스, 후크를 채워야 하는 검정색 교복과 무서웠던 교련 선생님, 통기타와 춘천가는 기차. 이소룡의 쌍절곤에 반해 맹룡과강 3번 연달아 본 추억, 늦은 밤 진추아의 ‘One Summer Night’을 들으며 공부하던 시절. 나의 모습을 그 영화 속에 투영해 보면서 진한 몰입에 빠져들었었다


 

대학에 들어가서 서울의 봄을 경험했다. 아크로폴리스 광장에서 1만 명이 넘는 대학생들의 마음을 움직였던 학생회장과 복학생 대표(지금은 둘 다 국회의원이 되었다)의 스피치는 지금도 귓가에 남아 있다. 그러나, 꿈은 좌절했고 광주항쟁이라는 비극이 벌어지고, 5공이라는 또 다른 독재 시대에 소위 짭새들이 캠퍼스에 같이 지내면서 대학 생활을 보냈다. 6.29 항쟁, 88 올림픽 시절에는 미국에서 유학 시절을 보내고 있어서 한국에 없었지만, 민주화되어 가는 역사의 중심에서 나름대로 한 번도 투표를 거르지 않고 성실하게 권리를 수행하여 왔다.

 

한국의 지난 50년의 압축 성장은 서구에서 몇 백 년에 걸쳐 진행된 역사다. 한국인의 급하고 과격하며 불합리한 모습을 우리 스스로 반성하곤 한다. 그런데, 프랑스의 어떤 학자는 이런 급격한 사회 변화를 이룩한 한국인들의 정신 구조와 심리 상태가 혼란스러운것은 지극히 당연하다고 한다. 과거의 규범과 습속, 문화가 역동적으로 변해 왔기 때문이다. 간단한 예로 우리 시대에는 남자가 부엌에 들어가는 것이 금기시되었다. 그러나, 지금은 요리 잘하는 남자가 사랑받는 시대다. 지독하게 못 살았던 친구들의 모습과 하이테크, 럭셔리한 현재의 사회가 머리 속에 공존하니 내 머리가 얼마나 복잡하겠는가?

 

수학이 좋아 이과를 선택했던 나는 아무런 거리낌없이 공대를 지망했다. ‘기술입국이라는 표어가 너무나도 멋있었고, 사명감에 불타기까지 했다. 이런 강력한 시대적 메시지가 있었기에 70-80년대에 공학은 가장 인기가 좋았다. 전자공학, 소프트웨어를 전공하면서 IT 전문가로서 커리어를 차근차근 밟아 나갔다. 나는 과학 기술이 역사를 발전시키고, 우리의 삶을 풍족하게 하고, 우리 나라를 선진국으로 발전시킨다고 철석같이 믿는다. 그래서, 백성을 긍휼히 여겨 과학 기술을 중흥시킨 세종대왕을 존경한다.

 

나는 ‘IMF 경제 위기로 인한 대기업의 무너짐과 ‘IT’벤처의 태동과 성장, 또한 버블과 몰락의 중심에 위치해 있었다. 젊은 나이에 촉망받는 리더로서 분에 넘치는 찬사를 받아서 우쭐한 적도 있었고, 처절한 실패의 나락을 경험하기도 했다. 다행히 재기에 성공해서 현재는 안랩의 CEO를 맡고 있다. 나는 실패의 경험에서 책이나 주변 친지에게서 간접적으로 얻을 수 없는 깨달음을 수십배, 수백배 얻을 수 있었다. 삶에 있어서 겸손함과 진지함이 얼마나 중요한지 몸소 체험했다. 엘리트 코스를 걸어왔다고 스스로 자부하던 자신의 머리를 해머로 얻어맞은 듯한 충격은 내가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지를 알게끔 해 주는 계기였다.

 

CEO로서 바쁜 나날을 보내면서, 마음 한 구석에서 갈증을 느껴왔다. 나름대로 치열하게 살아왔던 삶의 경험, 전문가로서 이 사회를 바라보는 시각, 한국이 더 좋게 변했으면 하는 애정, 턱없이 부족한 전문 경영인의 한 사람으로서의 답답함, 이런 생각들을 나눌 수는 없을까?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의 시간은 훗날 후배들과 후손에게 역사가 될 것이다. 그들에게 김홍선은 몇 단어로 설명될 뿐이다. 그렇다면 나는 그 역사 속에서 어떤 모습으로 비쳐질까?

 

이제 한국 나이로 50에 들어서면서 나의 생각들을 나눌 의미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나의 주장을 말할 책임도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우리 나라가 전문가들이 우대받고 과학과 기술이 성장 동력이 되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고 확신한다. 또한 글로벌 시대에 한국이 더욱 적극적으로 나아가야야 한다고 생각한다. 탁상공론이 아닌 실용주의에 입각한 행동(action)이 중요하고, 추상적 논의가 아닌 실체적이고 Hands-On(실제 체험의) 경험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IT 전문가로서의 20년 가까운 세월, 15년이 넘는 경영인으로서의 삶 속에서 경험한 것들과 나의 생각을 나누고자 블로그를 오픈한다. 농경 사회에서 산업 사회, 정보화 사회를 거쳐 글로벌 사회가 머리 속에 가득한 가운데, 부대끼던 삶 속의 상념을 누구와 얘기하고 싶었다.

 

누구나 견해는 다를 수 있다. 내가 던지는 자그마한 이야기가 비판과 공명을 통해 완성되어 가기를 희망한다. 혹 그러한 이야기가 담론이 되어 이 사회를 더욱 살만한 공간으로 만들어가는데 일조할 수 있다면 더 없는 영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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