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이 수학·과학자 영입하는 시대

CEO 칼럼 2011.10.31 11:30

인도사람들이 수학을 잘하는 이유 - 수학적 사고의 일상화

“인도인들이 수학에 대한 소질이 특출하거나 교육 방식이 유별난 것은 아니다. 다만학교 교육뿐만 아니라 일상생활 속에서도 습관처럼 늘 수학을 적용하고 살아간다. 수학적 사고가 일상화 있는 것이다.”

                                  <수학문제 푸는 사진. 출처: 네이버 블로그>

인도를 방문했을 때 만난 어느 대기업 임원의 대답이다. 그는 글로벌 사업의 경험이 풍부해 나름대로 객관적으로 인도의 경쟁력을 판단하는 통찰력을 가지고 있었다. 인도가 정보기술(IT) 강국으로 도약하고 있는 배경에는 이러한 일상화된 수학적 사고방식이 있었다.

우리나라의 수학 교육도 강도 면에서는 남부럽지 않은 수준이다. 그러나 삶의 현장에서는 별 필요 없는, 대학 진학을 위한 관문 정도로 인식되고 있다. 대입을 위한 수학은 아주 기본적인 내용이다. 그것도 단순히 답을 산출해 내는 데 초점을 두고 있다.  

수학은 ‘답을 맞히는 것’보다 ‘답을 도출하는 과정’이 더 중요하다. 정답 맞히는 데 급급한 수학 교육으로는 훗날 어려운 문제를 해결할 전문가를 키우는 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풀리지 않는 수학 문제 하나를 가지고 밤새 씨름도 해보고 여러 선인의 지혜와 고민을 자기 입장에서 반문하고 고민하는 훈련 과정이 있어야 하는데, 그런 중요한 과정이 빠져 있기 때문이다.

수학은 공학의 기초, 문제 해결 순간의 희열은 내재적 기쁨

최근 이공계 기피 현상과 함께 질적 저하도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한 공과대학 교수는 “요즘 학생들은 수학의 기초가 부족하다. 조금만 응용을 해도 전혀 문제를 풀지 못한다”고 하소연한다. 부모의 열성과 교육제도가 만들어 놓은 울타리 안에서 주어진 지식의 습득과 조련에만 의지해왔으니 조금만 문제를 꼬아놓아도 해결의 실마리를 찾기 힘든 것이다. 수학은 공학의 기초다. 과학적인 탐구 자세와 지적 호기심 없이 고등 수학을 활용한 공학으로 발전한다는 것은 요원한 일이다. 어려움이 있어도 밤새 공부하고 연구를 할 수 있는 이유는 그 자체가 즐겁고 성취감을 이룰 수 있기 때문이다. 어려운 문제를 풀어냈을 때의 희열, 새로운 것을 발견하고 만들어내는 창의력의 발휘는 누가 알아주지 않더라도 본인만은 만족할 수 있는 내재적 기쁨이다.

우리나라는 과학 기술을 발판으로 사회 발전과 국민 생활 향상을 이룩한 자랑스러운 역사가 있다. 과학 기술에 기반한 리더십을 발휘한 대표적 인물이 세종대왕이다.

                                      <세종대왕, 출처: 김기창 작가 작품>

세종대왕은 전 세계적으로도 가장 과학적이라고 인정받는 한글을 창제하고, 측우기·자격루·해시계 등 실생활에 유용한 과학 기구들을 발명해 우리나라 과학사에 굵직한 획을 그었다. 그는 계급을 뛰어넘어 장영실과 같은 인재를 발굴하고, 학자들이 연구개발에 몰입할 수 있도록 물심양면으로 지원했다. 이러한 업적은 백성을 긍휼히 생각하는 세종대
왕의 인간 존중 사상과, 과학 기술에 대한 확신
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오늘날 기업이나 조직의 핵심 역량은 기술이고, 기술은 수학과 과학에 기반한다. 대형 검색 서비스가 많이 있었음에도 구글이 군계일학의 독보적 위상을 구축한 것 역시 수학과 알고리즘 덕택이었다. 구글의 검색 엔진은 성능과 정확성 면에서 타 서비스와는 차원이 달랐다.

수학과 과학 - 기초학문의 흔들리지 않는 뿌리이자 마르지 않는 샘

기업들은 더 스마트하고 더욱 지능화한 기술을 개발하기 위해 더 우수한 수학자와 과학자를 영입하고 있다. 최근 급격하게 발전한 IT 덕택에 과거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연구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수학과 과학은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사고와 연구개발(R&D)의 토대가 될 뿐 아니라, 업무의 생산성과 투명성을 측정하는 잣대가 된다. 즉 기업의 능력을 가늠하는 척도라 할 수 있다.

과거 우리나라가 경제적으로 급격히 발전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교육에 대한 열정과 기술 중심의 발전 방향 설정이었다. 이 명제는 지금도 유효하다. 다만 우리가 교육 문제를 얘기할 때 본질적 요소인 ‘탐구와 몰입의 즐거움’을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 문제다. 비록 힘들고 치열한 경쟁의 나날이 계속되더라도 그러한 즐거움을 발견할 수 있고, 이를 바탕으로 세상을 움직이는 변화를 이끌겠다는 꿈과 포부를 키워갈 수 있다면 온갖 어려움을 극복해갈 수 있다.

과학 기술이 소외된 상태에서 윤택하고 활기찬 사회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나날이 발전하고 있는 첨단 과학 기술은 수학과 과학 같은 기초 학문에 뿌리를 두고 있다.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흔들리지 않고, 샘이 깊은 물은 가뭄에도 끊이지 않는다.

튼실한 뿌리가 있어야 든든한 줄기와 알찬 열매를 기대할 수 있다. 수학과 과학은 과학 기술의 뿌리이고 샘이다. 흔들리지 않는 뿌리와 마르지 않는 샘이 될 기초 학문의 발전을 기대해본다.



* 이 칼럼은 2011.10.31 일자 중앙일보에 실린 칼럼입니다. Ah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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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 사생활 유출로 본 정보보안의 문제는?

보안 이야기 2009.05.11 10:50

발단(Trigger) IV-(1): 정보의 디지털화와 정보 보안

로맨틱 코미디 영화 ‘노팅힐
(Notting Hill)’에서 나온 장면이다. 유명한 영화배우인 애나 스콧 (Anna Scott, 줄리아 로버츠)이 젊은 시절 찍었던 누드 사진이 언론에 공개되어 무명의 연인인 윌리엄 대커(William Thacker, 휴 그랜트)의 집으로 몰래 피신한다.

노팅힐 (www.cinecine.co.kr)

그런데, 기자들에게 들키게 되어 둘의 사이마저 공개되는 상황으로 일은 커지게 된다.

그 때 두 사람은 당혹감 속에 이런 대화를 나눈다. 윌리엄이 “단지 하루야. 오늘 신문은 내일 쓰레기통에 들어갈 뿐이야”라고 위로하자 애나는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이 스토리는 파일로 저장될 거야. 나에 대한 기사를 쓸 때마다 내 사진을 끄집어낼 거다. 신문은 영원한 거야”라고 화를 내며 떠나간다.

애나(Anna)는 정보가 축적되어 잊혀지지 않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지를 알고 있었던 것이다
. 국내에서도 신정아 씨 사건을 비롯해 유명인과 스타들의 개인 사진이나 사생활 정보 유출이 문제가 되는 일이 자주 발생하고 있다. 그 만큼 개인정보를 포함한 정보 보안의 중요성도 크게 대두되고 있는 것이다.

기록 문화의 발전 과정

마틴 루터의 종교 개혁이 성공한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인쇄술의 발명으로 다량의 선언문을 손쉽게 배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인쇄술 덕택에 교황청의 카톨릭 사제들에 의해서 독점되던 정보가 지식인들에 의해 읽혀 질 수 있는 계기도 되었다. 자크 아탈리는 '미래의 물결'에서 역사의 교훈을 지적하고 있다.

"권력의 중앙집권을 용이하게 하리라고 믿는 새로운 통신기술이 실상은 그와 반대로 기존 권력을 분산시키는 막강한 적이다"

세종대왕의 한글 창제는 수많은 일반 백성들이 문화의 혜택을 누릴 수 있게 했다
. 지식을 독점해서 권력을 영위하려는 사대부들의 집요한 반대를 물리치기 위해 극비리에 진행된 훈민정음 창제는 백성들의 계층간 소통을 원활하게 해야 한다는 집념을 보여 준다. 

유교와 중국화에 비중을 둔 당시의 시대적 상황은 지도층의 반발이 거셌음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활자와 한글의 발명은 향후 500년 조선을 받쳐주는 국가적 업그레이드의 계기였다. 우리 나라의 가장 위대한 왕으로 존경받는 근본적 이유가 여기에 있다.

마틴 루터

세종대왕



이처럼 기록 문화는 기술의 발달에 힘입어 지속적으로 발전해 왔다. 기록 기술은 정보의 독점력을 제거함으로써 권력의 중심축을 옮기는 역사적 마일스톤이 되어 왔다.

역사적 사건 - 컴퓨터의 등장과 정보의 디지털화

무엇보다 획기적으로 패러다임을 바꾼 파격적인 기술(Disruptive Technology)은 컴퓨터의 등장과 정보의 디지털화를 들지 않을 수 없다. 디지털화로 정보는 영구적인 저장이 가능해졌고 실시간 검색이 가능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컴퓨터는 본래 연산 처리를 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 주판이나 암산으로 하는 것과는 상대가 되지 않는 수치 연산 능력은 수작업에 들어가는 많은 시간을 줄여 주었다. 컴퓨터가 나온 초반기에 메인 프레임을 도입한 목적은 방대한 연산 처리를 컴퓨터로 함으로써 시간을 줄이고 자동화하기 위함이었다. 그래서 70-80년대에는 ‘데이터 프로세싱(Data Processing, 약칭 DP)’이 각광을 받았다.

워드 프로세싱(Word Processing)이 문서를 작업하는 것을 의미하듯, 데이터 프로세싱은 방대한 회계나 관리용 데이터 처리를 자동화하는 데 초점을 맞추었다. 그 작업은 많은 인력이 데이터를 입력하고 프린트해 출력물을 보는 과정으로 되어 있었다. 메인 프레임이 연산 처리와 I/O 입출력 역량, 프린팅(인쇄)에 강한 기능을 보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메일 프레임을 도입하는 목적 자체에 충실하기 위함이었다.

이렇게 등장한 컴퓨터가 점차 정보를 활용하는 도구로 포지셔닝(positioning)하기 시작했다. 그 과정을 제프리 무어는 'Living on the fault line'에서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1970년대에 데이터 프로세싱은 공장 같은 작업 환경에서 허름한 작업복을 입은 직원들이 처리했다. 보통 지하에 위치한 이 작업장은 데이터 프로세싱 관리자가 통솔했다.

1980
년대에 들면서 정보를 활용하고자 하는 노력이 시도되었고, 이 때 등장한 학문이 바로 MIS(Management Information System)이다. MIS 부서를 이끄는 이들의 복장은 하얀 드레스 셔츠 정장(화이트 칼라)이었. 점진적으로 비즈니스에서 정보의 비중은 커졌고, IT 부서의 장은 CIO라는 경영자 레벨로 승격되었다. 현재는 정보가 업무를 도와주는 기능이 아니라, 정보 자체가 돈이다.

입체적으로 증대하는 디지털 정보의 활용

이와 같이 디지털 정보의 저장과 활용 측면이 부각되자 기술 혁신도 속도를 더했다. 하드 디스크(HDD), CD, DVD, 플래시카드, USB 등 다양한 저장 매체가 등장했다. 또한 경량화에 따라 휴대하기 편한 형태(portable)로 되었고, 가격은 지속적으로 하락했다. PC만 해도 연산 처리 능력을 필요로 하는 연구 목적으로 활용되다가 일반에 보급된 동기는 정보의 저장과 활용 때문이었다.

1990년대 초반에 ‘멀티미디어(Multimedia)’라는 말이 유행했다. 지금도 자주 사용되는 용어이지만 그 당시는 강력한 시대적 메시지였다. IT를 하는 사람치고 멀티미디어를 얘기하지 않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그 이유는 1980년대에 PC의 보급으로 문서가 디지털 형태로 PC에 저장되었고, 여기서 더 나아가 일반 텍스트보다 훨씬 많은 데이터를 저장하는 CD-ROM이 등장했다. 저장 용량이 커지자 드디어 텍스트가 아닌 영상이나 음성도 디지털 형태로 저장하고 처리할 수 있게 되었다. 이는 디지털 정보 처리의 외연을 입체적으로 확장하는 계기가 되었다. 당시 빌 게이츠가 아직 앳된 모습으로 수줍어하며 발표한 CD-ROM 컨퍼런스는 멀티미디어 컨퍼런스와 동의어였다.

그로부터 15년쯤 지난 지금에 이르러 멀티미디어는 MP3 플레이어, 디카(디지털 카메라), PDA, 포토샾, 유튜브(YouTube) 등의 형태로 우리 생활 속에 깊숙하게 자리잡고 있다. 한 마디로 컴퓨터 보급의 확대로 정보의 디지털화는 급속도로 진행되었다. 저장 기술도 혁신적으로 발전되어 무어의 법칙에 따라 디지털 저장 기기를 길거리에서도 살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그만큼 일반인의 생활 속에 디지털 정보는 빠른 속도로 다가왔다. 이렇게 무한한 혜택의 세상을 가져다 주는 화신과 같은 디지털 정보는 아날로그 시대와는 차원이 다른 문화적 변화를 야기시켰을 뿐만 아니라, 한편으로 정보 관리의 새로운 문제점도 드러내는 계기가 되었다.


  (다음 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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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가 '먼나라 이웃나라 일본편'을 권하는 이유

책으로 보는 세상 2009.05.04 17:29

책으로 보는 세상섹션을 분류해 놓고서 정작 하나도 글을 올리지 못했다. 어떤 책을 첫 번째로 소개할까 망설여서였다.

 

수많은 의사 결정(decision-making)을 해야 하는 CEO를 하다 보면 많은 책을 탐독하게 된다. 작년에 방영했던 TV 드라마 세종대왕에서 세종대왕이 왕위에 오르자마자 어려운 결정을 해야만 하는 상황에 직면해서 고민하는 장면이 나온다.

고민의 실마리를 찾고자 그는 과거 역사에서 비슷한 경우가 있는지 밤새 서적을 뒤적인다. 결국 그는 해답을 찾지 못하고 스스로 결정을 할 수 밖에 없게 된다. 그 장면을 보면서 나도 그런 기대 심리 속에 책을 찾아보았던 시절이 떠올랐다.

 

독서는 과거의 성공과 실패의 과정을 간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게 하며, 세상의 흐름을 깨닫게 해 준다. 내가 처음으로 소개하고자 하는 책은 만화인 이원복 교수의 먼나라 이웃나라 일본편이다. 이미 베스트셀러라서 많은 분들이 읽어 보았을 것으로 생각하는데, 나에게는 의미가 남다른 책이다.


1권 일본인

2권 역사

 
나는 개인적으로 일본 사업에 대해 관심이 많았다
. 단순한 호기심이 아니라 우리 나라와 서로간에 보완(complementary)할 수 있는 요소가 많다는 생각에서다. 서로 간에 주고 받을게 많으면 많을수록 비즈니스와 교류는 활발해지기 마련이다. 일본인에 대해 좋고 나쁘고의 선입견은 없다. 단지, 차이가 있다는 자체가 흥미로울뿐더러 시너지를 이루면 잠재적인 가치가 높다고 생각할 뿐이다.


그래서
, 일본에 대한 궁금증에 무수히 많은 책을 읽었다. 기억나는 것만 해도 족히 2-30권은 되는 것 같다. 특파원이 쓴 현장 리포트, 일본 문화에 대해 분석한 글, 상거래 관행, 역사와 의식 구조, 언어의 형성 등등. 그런데, 이 모든 것을 하나의 통일된 개념으로 요약해서 정립해 준 책이 이원복 교수의 먼나라 이웃나라.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일본에 대한 인식의 틀(framework)이 잡히게 해 준 고마운 책이다.

 

이원복 씨의 먼나라 이웃나라시리즈는 어린 아이부터 어른까지 오랜 기간 애독되어 온 책이다. 네덜란드, 이탈리아, 영국 등 유럽 각 국가의 역사를 한 권씩 정리한 책의 내용은 아주 유익해서 만화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고 할 수 있다. 이원복 교수가 독일에서 공부했으니 유럽에서의 체험을 바탕으로 이런 책을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그 후 이원복 교수는 21세기 문명, 한국인, 경제, 산업과 같은 다양한 시대적 개념들을 만화로 정리해 우리의 이해를 도왔다. 그런데, 그가 일본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내용을 소개한 것은 다소 의외였다. 그는 서문에서도 “10년 가까이 살았던 유럽과 달리 살아본 경험이 없는 일본에 대해 쓴다는 것은 너무 무모한 짓이었다고 솔직하게 소회를 적고 있다.

 

그러나, 일본에서 살아보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일본인에 대해 분석한 1편은 내용 전개가 아주 명쾌하다. 우리와 겉으로는 비슷해 보이지만 전혀 다른 의식 구조를 가지고 있는 일본인을 이해한다는 것은 단순하지가 않은데, 이 책은 체계적으로 특성(characteristics)과 근본적 원인을 잘 설명하고 있다.

진짜 생각인 혼네(本音)’와 실제의 발언인 다테마에(立前)’가 다른 것, 그 배경에는 상대방에 대한 배려(기쿠바리, 氣配り)가 있음은 일본인을 이해하는 핵심이다. 또한 이에 대한 본질적 배경에는 섬나라에 같이 모여 살면서 튀지 않고 조화 속에 살고자 하는 ()의 문화가 자리잡고 있다.

 

과거에 일본이 성공한 7가지 이유와 그것 때문에 현재와 미래에 고전하게 되는 7가지 고민은 평소 생각했던 시각과 거의 같아서인지 책을 읽으면서 강한 공명감(共鳴感)을 느낄 수 있었다. 그 중에서도 인상 깊었던 2가지만 소개한다.

 

첫째, 최고 품질의 상품을 만드는 일본인의 정신이다. 노동을 신성시하게 된 정신이 탄생하게 된 배경으로 '이시다 바이간(石田梅岩)'을 지적한다. 그는 가난한 집안 출신으로 스스로 터득한 진리를 통해 세키몬(石門) 학파를 이루어 일 자체가 수양이라는 철학을 설파하였다. 이것이 장인 정신으로 발전해서 노동에 숭고한 가치를 두는, 그래서 최선을 다해 최고의 품질을 만들어 내는 장인 정신의 바탕이 되었다.

 

쇼토쿠태자

본과 비즈니스를 하면 누구든지 품질의 높은 벽을 경험하게 된다. 때로는 비합리적으로 생각될 정도로 지나친 경우도 있다. 허지만 상대적으로 품질에 소홀했던 우리에게는 많은 점을 깨닫게 해 준다. 그러나, 이런 완벽한 품질 추구가 비용을 과도하게 상승하게 하는 원인이 되고, 급변하는 글로벌환경에서 속도가 뒤쳐지는 단초를 제공한다. 여기에 일본의 고민이 있다.

 

둘째, 좋은 것은 기꺼이 취한다 (이이토코토리, 良いとこ取り). 우리에게도 친숙한 쇼토쿠태자(聖德太子)는 이 사상을 적극적으로 정착시킨 인물로 평가받는다. 그는 종교, 정치, 문화, 사회 등 전반에 걸쳐서 자신에게 이로운 것은 자유롭게 받아들이라는 실리의 정책을 펴 나간다. 배워서 내 것으로 만드는 습합사상(習合思想)이 태어나게 된 배경이다.

 

www.mrbaseball.com

미스터 베이스볼(Mr. Baseball)’이라는 영화가 있다. 메이저리그에서 뛰던 잭 엘리어트(Jack Eliot)는 방출되어 일본 프로야구팀으로 옮긴다. 그의 홍보 담당인 히로코는 어느 날 그를 프랑스 식당으로 초대해서 그 유명한 코베 소고기로 만든 스테이크를 대접한다.

잭은 일본 음식을 잘 안 먹는다고 하면서 이 스테이크는 미국에서 먹었던 것보다 더 낫다고 하자
, 그녀는 이 요리는 완전한 일본 요리다. 일본은 세상에서 가장 좋은 것을 취해서 자신의 것으로 만든다 (Japan takes the best from all over the world and makes it her own)”라고 설명한다. 1990년대 초반에 이 영화를 보았을 때는 일본에 가 보기 전이라 그 의미를 몰랐는데, 그 후 이이토코토리의 정신은 일본 곳곳에 배어있음을 발견할 수 있었다.

 

2권인 역사편은 약간 지루한 편이지만, 평소 궁금했던 덴노(天皇)의 의미와 내력을 이해할 수 있다. 의외로 일본인들은 천황의 역사에 대해 관심이 적다. 초창기 형성 과정에 대한 신빙성이 적어서 그런 것 같다.  ‘태정태세문단세로 계보를 외우는데 익숙한 우리로서는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이다.

그렇지만 오다 노부나가
, 도요토미 히데요시, 도쿠가와 히데요시가 등장하는 부분은 책, 영화, 만화로 다양하게 나오고 있다. 역사적으로 중요한 전환기였을 뿐만 아니라 이 세 사람의 성격이 대비를 이루기 때문이다. 워낙 전개 과정이 극적이고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라는 고민의 즐거움을 더해 준다.

'일본판 삼국지'라고나 할까? 따라서, 쇼군(軍)과 바쿠후(幕府), 에도(江戶) 시대로 이어지는 역사에 일본인들은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만일 일본에 대해 이해하기 위해 단 한 권의 책을 봐야 한다면 '먼나라 이웃나라 일본편'을 강하게 추천한다
. 특히 일본 사업을 하려면 적어도 이 내용을 잘 알고 있어야 한다. 혼네(
本音)와 다테마에(立前)를 모르면 일본인과의 비즈니스에 있어서 첫 단추가 깨진다.

혹 일본 문화에 대해 더 이해를 하고자 하면 김지룡 씨의
나는 일본 문화가 재미있다를 권한다
지금도 이 책들은 내 곁에 놓아 두고 수시로 들여다 본다.

글로벌 비즈니스의 즐거움은 서로 다른 문화와 환경, 역사 속에서 관계를 설정해 가는 데 있다. 대상국의 문화와 심리, 사회 구성, 역사와 전통에 대해 이해가 높을수록 비즈니스를 더욱 단단하게 만들어가게 된다. 결국 사람과 사람간의 이해가 비즈니스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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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소기업과 상생없이 한국의 미래는 없다

경영 이야기 2009.04.04 13:54

"공정한 시장과 산업의 생태계" 

역사적으로 급격한 사회 발전의 기폭제가 되고 국민에게 혜택을 극대화한 견인차는 혁신의 정신이었다. 그리고, 항상 이러한 혁신의 중심에는 뛰어난 지도자가 있었다. 조선왕조 500년 동안 세종 대왕이 이룩한 업적이 나머지 왕들의 치세를 합친 것보다 위대하다. 세계적으로 가장 과학적이라고 인정 받는 문자를 창제하고 각종 과학 기술을 발전시킨 것은 백성을 긍휼히 생각하는 세종 대왕의 인간성과 천재성이 만들어 낸 작품이다.

비록 현재 미국 자동차 산업의 불꽃이 꺼져가는 형국이지만, 100년 전부터 전설적인 기업가들이 미국을 자동차 강국으로 만들었다.

헨리 포드는
T 모델을 통해 자동차의 보편화를 실현했고, 알프레드 슬론(Alfred Sloan)은 다양한 가격대의 제품 구성과 고객 중심 경영(그는 회사로 가기 전  대리점으로 직접 출근해서 그곳에서 업무를 지시한 것으로 유명하다. 고객의 목소리를 회사 내로 전파하는 소위 '현장경영'을 몸소 실천한 것이다)으로 포드를 꺾고 70GM 왕국을 열었다. 혁신을 게을리한 현 경영진 때문에 이러한 선구자들의 업적을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

 


또한 한국을 대표하는 세계적 기업의 창업자들은 근면함과 열정으로 굴지의 기업으로 키웠다
. 모두가 기업가 정신에 투철했고 불굴의 정신으로 아프리카보다 인정을 못 받던 나라를 세계에서 존경 받는 국가로 만드는데 크게 기여했다. 그 외에도 많은 선각자들이 곳곳에서 공헌한 덕택에 압축 성장이라는 키워드로 상징되는 한국의 산업화는 성공했다.

IT와 벤처 모델은 미국에서 직수입

정보화 시대에 들어서면서 중소 벤처 기업이 이런 정신을 이어 받는 것처럼 보였다
. 한국의 역동적인 기질에 힘을 받아 IT 강국이라는 한국 브랜드가 탄생하는데 기여했다. 한국의 재벌 구조는 일본의 게레츠(
系列)와 맥을 같이 하지만, 벤처 기업은 미국에서 직수입한 모델이다. 마치 전통 산업은 일본의 기술과 노하우 덕을 보았지만, 정보화 시대를 이끄는 IT는 미국에서 직접 들여온 것처럼 우리는 패러다임 변화를 능동적으로 수용했다.


그러나
, 불행히도 오늘날 중소 벤처 기업은 한국에서 정착하지 못하고 있다. 중소기업이라는 측면에서는 일본이나 대만에 비해 층이 두텁지 못하고, 벤처 라는 관점에서는 미국의 성공 모델이 자리잡지 못하고 있다. 그 이유는 벤처 기업의 경쟁력에도 문제가 있지만, 본질적으로 기업의 생태계가 형성되지 못한 원인이 크다.

새로운 아이디어와 기술로 탄생한 벤처 기업이 성공으로 마무리되는 길은 크게 두 가지다. 증권 시장에 상장하는 것과 M&A가 되는 경우다. 물론 꿈을 이루지 못하고 좌절하는 경우는 더 많다. 이러한 벤처 기업의 생명 주기를 통해 벤처 캐피탈은 투자 자금을 회수하고 연구한 기술은 더 크게 사회에 공헌하는 계기를 가진다. 특히 패러다임이 급변하는 IT 산업은 M&A를 통해 불연속적인 성장의 모멘텀을 마련해 왔다. 수십 개의 기업을 사 들인 시스코를 비롯한, IBM, HP, 구글 등 IT 리더들에게 있어서 M&A는 중요한 성장 전략이다.

그러나, 우리 나라에서는 중소 벤처 기업이 발전적 흡수가 되는 경우를 발견하기 어렵다. 대기업이 중소기업을 M&A한 사례가 몇 개나 되는가? 그러면 벤처 기업들이 그렇게도 실력이 없거나 시장이 매력이 없어서 그랬는가? 그렇다고만 볼 수 없는 것이 벤처 기업이 형성한 시장에 대기업이 뛰어든 것을 우리는 많이 목격한다. 결국 생태계가 형성되지 않고 있는 것을 반증한다.


산업 생태계에 대한 아쉬움

아쉬운 것은 벤처 열풍이 꺼진 후 대기업과 중소기업은 더욱 수직적 관계로 심화되었다는 점이다
. 수직적 관계에서 상생이니 시너지란 말은 추상적 구호일 뿐이다. 대기업의 영업 이익의 확대는 바로 협력사인 중소 기업의 이익 감소로 나타날 수 밖에 없는 제로섬 게임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글로벌한 옵션이 많이 생긴 대기업에 있어서 인정과 사명만으로 사업을 할 수는 없는 현실이다.

자원 동원 능력 측면에서 대기업과 중소 기업은 엄연히 격차가 존재한다. 계약 과정에서의 협상력, 법적 대응 능력, 금력, 고급 인력을 끌어들이는 매력 측면에서 중소기업은 허약할 수 밖에 없다.

역사적으로 돌이켜 보면 혁신적으로 성장한 주도 세력이 나타나고 이들이 공정 거래를 유지하는 가를 감시하기 위해 강자를 견제하는 과정의 반복이었다. 예를 들어, 미국의 데오도르 루스벨트 대통령은 세계 최고의 부자인 록펠러의 독점 체제를 무너뜨렸다. 마이크로소프트에 대한 IT 업체들의 견제도 이와 맥을 같이 한다. 이들은 모두 뛰어난 기업가 정신으로 성공의 상징이었지만 시장의 공정성을 원하는 미국의 법 정신은 균형과 견제를 이루는 잣대가 되었다.


전문기술과 사업적 집중력을 가진 중소기업 없이 우리 나라의 미래는 없다
. 특성상 창의력과 도전 정신이 가장 활발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다나카와 같은 노벨상 수상자가 일본의 중소기업에서 나왔다는 것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90년 대에 대기업들이 구조 조정을 벌일 때에 클린턴 대통령은 소기업 창업 프로그램을 통해서 산업 구조를 재편했다.

공정한 시장 경쟁이 생태계를 만드는 필요조건

중소 기업에 대한 다양한 지원 정책이 논의되고 있다
. 그러나, 정책이 효과가 있으려면 건강하고 투명한 시장 질서를 만드는 것이 우선 되어야 한다. 부채만 더해 주는 지원보다 R&D가 수익으로 연결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어야 한다. 공정한 시장 경쟁이 보장되는 것이 생태계를 만들어 가는 필요조건이다.

게다가 지금은 개방성에 기반한 네트워크 경제 체제이다. 다시 말해 전문성에 기반을 둔 수평적 관계가 세계적 추세다. 창의력과 혁신의 정신을 갖춘 전문 중소기업이 더욱 절실하며, 공정한 시장 환경 속에 기업가 정신은 살아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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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이야기 담은 CEO블로그를 시작하며

IT와 세상 2009.03.30 14:44

 

나는 5월이 되면 결혼한지 23년이 되고 대학 다니는 두 아들을 둔 가장이다. 내가 태어난 1960년은 베이비 붐의 피크였다. 그래서인지 내가 대학을 가던 시기는 입시생은 가장 많고 대학 정원은 가장 적았던 시기로 묘사된다. 삼수생은 감점을 주는 희귀한 제도까지 등장했을 정도이니 얼마나 치열했는지 상상이 간다.

 

1960년에 1인당 GNP 79달러였으니 아프리카 국가보다도 가난했다고 한다. 그 후 2만불 시대, 11대 경제 교역국으로 발전한 한국의 경제 역사의 현장에 나도 서 있었다는 것이 자랑스럽다. 농경 시대에서 산업화 시대, 정보화 사회로 가는 압축 성장의 짜릿한 역사적 발전 과정에 나름대로 한 역할 할 수 있었던 것도 행운이었다.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 중 한 장면

 

한국적 민주주의라고 하는 암울한 유신 독재 시대에 청소년기를 보냈다.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70년대 말에 강남의 한 고등학교를 다닌 나를 깊은 향수에 빠져들게 했다. 흙 먼지 나는 강남의 도로길과 78번 버스, 후크를 채워야 하는 검정색 교복과 무서웠던 교련 선생님, 통기타와 춘천가는 기차. 이소룡의 쌍절곤에 반해 맹룡과강 3번 연달아 본 추억, 늦은 밤 진추아의 ‘One Summer Night’을 들으며 공부하던 시절. 나의 모습을 그 영화 속에 투영해 보면서 진한 몰입에 빠져들었었다


 

대학에 들어가서 서울의 봄을 경험했다. 아크로폴리스 광장에서 1만 명이 넘는 대학생들의 마음을 움직였던 학생회장과 복학생 대표(지금은 둘 다 국회의원이 되었다)의 스피치는 지금도 귓가에 남아 있다. 그러나, 꿈은 좌절했고 광주항쟁이라는 비극이 벌어지고, 5공이라는 또 다른 독재 시대에 소위 짭새들이 캠퍼스에 같이 지내면서 대학 생활을 보냈다. 6.29 항쟁, 88 올림픽 시절에는 미국에서 유학 시절을 보내고 있어서 한국에 없었지만, 민주화되어 가는 역사의 중심에서 나름대로 한 번도 투표를 거르지 않고 성실하게 권리를 수행하여 왔다.

 

한국의 지난 50년의 압축 성장은 서구에서 몇 백 년에 걸쳐 진행된 역사다. 한국인의 급하고 과격하며 불합리한 모습을 우리 스스로 반성하곤 한다. 그런데, 프랑스의 어떤 학자는 이런 급격한 사회 변화를 이룩한 한국인들의 정신 구조와 심리 상태가 혼란스러운것은 지극히 당연하다고 한다. 과거의 규범과 습속, 문화가 역동적으로 변해 왔기 때문이다. 간단한 예로 우리 시대에는 남자가 부엌에 들어가는 것이 금기시되었다. 그러나, 지금은 요리 잘하는 남자가 사랑받는 시대다. 지독하게 못 살았던 친구들의 모습과 하이테크, 럭셔리한 현재의 사회가 머리 속에 공존하니 내 머리가 얼마나 복잡하겠는가?

 

수학이 좋아 이과를 선택했던 나는 아무런 거리낌없이 공대를 지망했다. ‘기술입국이라는 표어가 너무나도 멋있었고, 사명감에 불타기까지 했다. 이런 강력한 시대적 메시지가 있었기에 70-80년대에 공학은 가장 인기가 좋았다. 전자공학, 소프트웨어를 전공하면서 IT 전문가로서 커리어를 차근차근 밟아 나갔다. 나는 과학 기술이 역사를 발전시키고, 우리의 삶을 풍족하게 하고, 우리 나라를 선진국으로 발전시킨다고 철석같이 믿는다. 그래서, 백성을 긍휼히 여겨 과학 기술을 중흥시킨 세종대왕을 존경한다.

 

나는 ‘IMF 경제 위기로 인한 대기업의 무너짐과 ‘IT’벤처의 태동과 성장, 또한 버블과 몰락의 중심에 위치해 있었다. 젊은 나이에 촉망받는 리더로서 분에 넘치는 찬사를 받아서 우쭐한 적도 있었고, 처절한 실패의 나락을 경험하기도 했다. 다행히 재기에 성공해서 현재는 안랩의 CEO를 맡고 있다. 나는 실패의 경험에서 책이나 주변 친지에게서 간접적으로 얻을 수 없는 깨달음을 수십배, 수백배 얻을 수 있었다. 삶에 있어서 겸손함과 진지함이 얼마나 중요한지 몸소 체험했다. 엘리트 코스를 걸어왔다고 스스로 자부하던 자신의 머리를 해머로 얻어맞은 듯한 충격은 내가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지를 알게끔 해 주는 계기였다.

 

CEO로서 바쁜 나날을 보내면서, 마음 한 구석에서 갈증을 느껴왔다. 나름대로 치열하게 살아왔던 삶의 경험, 전문가로서 이 사회를 바라보는 시각, 한국이 더 좋게 변했으면 하는 애정, 턱없이 부족한 전문 경영인의 한 사람으로서의 답답함, 이런 생각들을 나눌 수는 없을까?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의 시간은 훗날 후배들과 후손에게 역사가 될 것이다. 그들에게 김홍선은 몇 단어로 설명될 뿐이다. 그렇다면 나는 그 역사 속에서 어떤 모습으로 비쳐질까?

 

이제 한국 나이로 50에 들어서면서 나의 생각들을 나눌 의미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나의 주장을 말할 책임도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우리 나라가 전문가들이 우대받고 과학과 기술이 성장 동력이 되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고 확신한다. 또한 글로벌 시대에 한국이 더욱 적극적으로 나아가야야 한다고 생각한다. 탁상공론이 아닌 실용주의에 입각한 행동(action)이 중요하고, 추상적 논의가 아닌 실체적이고 Hands-On(실제 체험의) 경험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IT 전문가로서의 20년 가까운 세월, 15년이 넘는 경영인으로서의 삶 속에서 경험한 것들과 나의 생각을 나누고자 블로그를 오픈한다. 농경 사회에서 산업 사회, 정보화 사회를 거쳐 글로벌 사회가 머리 속에 가득한 가운데, 부대끼던 삶 속의 상념을 누구와 얘기하고 싶었다.

 

누구나 견해는 다를 수 있다. 내가 던지는 자그마한 이야기가 비판과 공명을 통해 완성되어 가기를 희망한다. 혹 그러한 이야기가 담론이 되어 이 사회를 더욱 살만한 공간으로 만들어가는데 일조할 수 있다면 더 없는 영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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