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마케팅 시대 - IT와 콘텐츠의 결합

책으로 보는 세상 2009.06.29 08:31

해외 사업을 하다 보면 우리에 대해 가지고 있는 외국인들의 보편적 인식을 피부로 느낀다. 안랩의 해외 사업을 뛰다가 부딪히는 장벽을 몇 가지 정리해 보면 대략 다음과 같다.
 

-   한국에 대한 지식 (북한과 88올림픽 밖에 모르는 경우 힘이 빠진다)

-   한국에서는 IT가 발달했고, 실생활에 접목이 많이 되어 있다?

-   한국에는 정보 보안의 핵심기술이 있다?

-   안랩(AhnLab)은 누구이며, 무엇을 하는 회사인가?


물론 한국에 대해 아주 잘 아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생각했던 이상으로 인식의 벽은 두껍다. 이런 열악한 국가 이미지와 회사의 브랜드를 극복하고 안랩의 기술을 알리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러자면 우리의 걸어온 과정을 스토리로 설명하는게 효과적이다.

한국이 영세한 후진국에서 짧은 기간에 눈부신 발전을 하게 된 역사, 산업시대를 거쳐 빠르게 정보화 시대로 넘어간 과정, IMF 경제 위기를 극복하면서 벤처 산업이 나오게 된 배경, 생활속에 자리잡은 IT의 현황과  얼리 어답터(early adopter)의 문화, 인터넷 중심으로 가면서 정보 보안 기술을 가지게 된 이유 등등. 우리의 기술력이 뛰어난 이유를 스토리를 통해 설명해야 어느 정도 설득이 된다.

아마 해외 사업을 하는 중소기업 CEO, 또한 대기업들 마저도 비슷한 고민을 할 것이다. IT나 글로벌 사업만의 문제도 아니다. 국내에서도 신상품과 서비스를 전달할 때 멋있는 스토리로 고객의 마음을 잡으려고 애를 쓴다. 짧은 시간에 어필할 수 있는 스토리의 효과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스토리텔링 마케팅을 소개한 책 : 이야기가 세상을 바꾼다
 

어떻게 좋은
 스토리를 만들어야 할까 고민하던 차에 이야기가 세상을 바꾼다; Storytelling Marketing)”라는 책을 접하게 되었다. 홍사종 교수는 적자에 헤매던 정동극장을 완전히 탈바꿈시켜 새로운 문화 산업의 돌파구를 제시한 선구자다. ‘이야기 마케팅의 전도자(evangelist)이며, 기업과 기관, 학교에서 개혁적이고 창의적인 모델을 여러 모로 입증시킨바 있다. 평소 홍 교수의 소신과 자신감에 감복해 왔던 나로서는 이 책을 보자 무척 반가웠다.

이 책에서는 그가 평소에 주장하던 내용이 정연한 논리와 해박한 지식으로 정리되어 있다
. 그의 이야기론은 시대적 코드와 문화에 대한 통찰력을 엿보게 한다. 일단 책을 들면 단번에 읽어나갈 수 있을 정도로 쉽고 재미있게 구성되어 있다.

냉장고의 개념을 바꾼 대기업 간의 마케팅 전쟁 이야기가 나오는데, 냉장고 광고 카피가 어떻게 진화해서 꿈을 파는 스토리로 업그레이드 되었는가를 단계별로 설명하고 있다. 


소리가 나지 않는다…. 소리가 나지 않는 냉장고

남자들은 모른다. 주부가 갖고 싶은 냉장고 oo ‘

‘oo은 사랑입니다

여자라서 행복하다

 

마케팅에서는 제품을 Feature-Benefit-Value로 구분하여 분석하는 기초 개념이 있다. 쉽게 말해서 마케팅은 기능(feature)으로 갖추어진 제품을 어떻게 고객 관점의 가치(value)로 타겟팅하여 전달할 수 있는 가에 달려있다.

위의 광고 카피를 보게 되면, 냉장고의 기능(feature)에 머물렀던 하드웨어 광고가 어떻게 가치(value)전달의 수준을 넘어서 스토리를 통해 꿈을 팔게된 변천 과정을 한눈에 알 수 있다. 냉장고라는 기계가 주부들의 감성을 건드려서 가정의 생활 문화로서 자리잡았다. 제품에 문화가 결합해서 설득력을 갖는 이른바 컬덕트(CULture+proDUCT)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냉장고 광고의 변천


최근 해외 백화점에 가 보면 한국의 가전 제품들이 인기가 높다. LCD TV, 휴대폰은 말할 것도 없고, 냉장고, 세탁기 등도 한국 제품이 진열대 앞에 나와 있다. 세탁기와 건조기(dryer)의 시장을 연 미국의 업체들은 내구성과 튼튼함으로 오랜 기간 사업을 영위해 왔다. 그러나, 이제는 품질과 견고함은 기본이지 그 자체만으로 좋은 평가를 받던 시대는 지났다.

그 자리를 예쁘고 아늑한 이미지의 우리 제품이
차지하기 시작했다. 한때 한국에서 가전산업은 일본 제품보다 디자인이나 품질이 떨어지고 수익성도 나쁜 사업으로 밀려나고 있었다. 그러나, 스토리를 통해 화려하게 거듭나며 고부가 생활 공간의 필수품으로 자리잡았다. 물론 대기업 위주의 사업으로 인해 중소기업이 압박을 크게 받는 현실도 개선해야 하지만, 적어도 마케팅적인 성공은 인정해야 한다.

글로벌한 이야기 전쟁 

 

하얀거탑 (한국/일본판) a-bori.com/blog/

또한 이 책에서는 영화, 연극, 오페라, 소설 등 다양한 분야에서 벌어지는 이야기 전쟁 시대를 실감있게 묘사하고 있다. 유대인들로 장악된 헐리우드의 예에서 보듯이 문화의 침투력은 엄청나다. 그런데, 이런 상황을 비난만 할 이유가 없다. 오히려 이럴수록 우리의 무구한 역사와 재미있는 스토리들을 풀어낼 수 있는 기회가 되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 있는 창의력이다.

 한편 스토리가 글로벌하게 하이브리드(hybrid)화되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우리의 이야기인 <시월애>, <엽기적인 그녀>, <괴물>과 같은 이야기가 헐리우드에 팔려 나갔다. <미녀는 괴로워>, <올드보이> 영화는 거꾸로 우리가 원작을 사와서 성공한 경우다. 화제가 되었던 드라마 <꽃보다 남자>는 일본 만화이고, <결혼 못하는 남자>, <하얀 거탑>은 일본 드라마와 소설이 원작이다. 드라마를 더 잘 만들어 일본으로 역수출하는 것도 활발하다. 이야기와 콘텐츠의 창의성과 질이 중요하지, 원작이나 시장의 국경은 허물어지기 시작했다. 

이런 현상에 대한 홍사종 교수의 제언은 상당히 현실적이다.


'우리끼리만 통하는 문화적 DNA글로벌 모드로 바꾸어나가는 일을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남의 나라 이야기에도 빨대를 꽂는 열린 마음이 필요하다.


정보통신과 문화의 시너지는 이야기로 꽃을 피운다

 

특히 인터넷과 전자상거래, IT 산업으로 형성된 디지털경제로의 패러다임 변화로 인한 인간소외감을 두 가지 측면에서 지적하고 있다. 하나는 급진적, 단절적 시대변화에 불안감을 느끼며 살아가면서 자연과의 분리와 디지털 혁명으로 인한 피로감이다. 그 다음은 정보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해나가지 못하는 이들의 소외감과 이로 인한 양극화 현상이다. 이를 해결하는 방안으로 문화적 복지, 일탈문화의 제공, 카타르시스 제공을 통한 사회적 갈등해소를 제안하고 있다. 오히려 지금이 정보기술과 문화의 결합이 중요한 시점임을 강조한다.

"디지털 경제환경을 거꾸로 읽으면 지금이야말로 정보산업 경쟁력과 더불어 사회적 일탈욕구와 소외문제를 풀어줄 건강한 이야기산업의 육성을 위한 중요한 시점임을 알 수 있다."


홍사종 교수의 정동극장 이야기

 

홍사종 교수

그는 잊혀져 가던 정동극장의 극장장이 되면서 틈새 시장을 개척했다. 책에도 설명되어 있듯이 극장의 입장에서 상품을 만들고 판매하는 전략이 아니라 거꾸로 수요를 만들고 이를 자극해서 극장 안으로 끌어들이는 방법이었다.”

국악 장터
, 돌담길 추억이 있는 음악회, 동창회나 친목회를 위해 커스터마이즈 해 주는 공연 등 다채로운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또한 젊은 직장인들을 대상으로 점심 시간을 이용한 공연은 공연은 밤에 한다는 인식을 깨뜨리고, 공연 관점에서 죽은 시간인 낮 시간을 적극 활용했다.

이런 판단에는 다음과 같은 그의 소신이 반영되었다.

"기능과 품질은 산업화 패러다임의 덕목이다. 정보화, 감성화 패러다임에서는 기능과 품질이라는 기본위에 이야기라는 궁극의 덕목을 의식적으로 추가해야 한다."

 
우리 회사의 마케팅 참조 도서

마침 이 책을 읽고 마케팅을 담당하는 간부에게 주었더니
, 이미 제품기획, 인터넷 마케팅 부서에서 다음 주제로 선정해서 읽고 있다고 한다. 이제 안랩과 같은 기술 회사도 기술 제품과 서비스를 스토리로 전개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이미 형성되어 있었던 터라 나와 거의 동시에 책을 선택하게 된 것 같다.

 

기술과 아이디어가 범람하는 시대에 설득력있는 스토리는 수많은 정보의 범람으로 혼란스러운 고객의 마음을 정조준 할 수 있다. 아울러 문화와 콘텐츠는 IT의 바탕 위에 꿈을 파는 가치로 업그레이드될 수 있다. 이 책은 나에게는 그런 확신을 가지게 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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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 박사와 10년전 만남을 생각하니

경영 이야기 2009.06.19 16:03

"나는 술 잘 마셨었는데 억울해요"

무릎팍 도사에서 술 얘기가 나오면서 안철수 박사가 한 얘기다. 회사 CEO를 하는 과정에서 크게 아프게 되었고, 그래서 술을 완전히 끊게 되었된 과정을 설명하면서였다. 그래서, 자신은 본래 전혀 술을 안 하는 줄로 사람들이 인식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말은 맞다. 나는 안철수 박사와 술을 해 본 증인(?)이다. 초창기에 내가 운영하던 회사와 안철수연구소는 공동 제품을 만들었다. 우리의 네트워크 보안 기술과 안철수연구소의 백신을 결합한 'V3 바이러스월'이었다. 이 제품은 새로운 개념을 열었고, 장영실상도 받는 영광을 차지했다.

▲안철수 박사와 공동으로 장영실상을 수상한 후 기념사진


공동 개발을 마치고 성공을 기원하는 회식 자리에서였다. 10년도 넘는 일이라 기억은 희미하지만, 근처 통닭집에서 생맥주를 같이 한 적이 있다. 그리고 안철수 박사가 "나는 술을 먹으면 더 또렷해지는 스타일이다. 술을 밤새워 마시고 나서 항상 내가 모든 사람 택시태워 보내고 멀쩡하게 집으로 들어간다"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 다른 이들에게도 같은 증언을 들은 바 있다.

그런데, 어느날 갑자기 안철수 박사가 과로로 인한 간염으로 병원에 입원했다는 얘기를 접하고 삼성의료원에 급히 달려갔다. 하긴 7년 동안 4~5시간밖에 안 자고 백신을 만들고, CEO가 된 후에는 유학(이때가 1차 유학으로 펜실베이니아대학 공대 공학석사를 받았다.)을 가서 공부와 경영을 병행하느라 이틀에 한 번 꼴로 밤을 새웠으니, 체력이 어떻게 버티겠는가. 그 이후로 안 박사는 술을 완전히 끊었다. 

안철수연구소의 건물에 관한 스토리

다음은 회사 사무실의 역사에 관해서다. 회사 행사에서 직원들 대상으로 퀴즈 프로그램을 진행한 적이 있다
. 문제 중의 하나가 안철수연구소가 창업부터 몇 번 이사를 다녔느냐였다. 최근에 들어온 직원들이 많아서인지 잘 맞추지 못했다. 나는 지금이 6번째인 것을 아는데..

 

첫 사무실이 있던 한판빌딩

그제서야 안철수 박사를 만난 지 벌써 10년이 넘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바뀐 건물에 적어도 한 번 이상은 가 보았으니 정확히 기억할 수밖에 없다. 체험을 통한 기억이 오래 간다는 진리를 다시 한번 느끼는 계기가 되었다. 한편 시간이 정말 빨리 지났구나하는 생각에 내 나이를 돌아보게 된다. 안철수 박사와 같은 시점에 정보 보안 사업에 뛰어든 지 어느덧 올해로 14년째가 된다.


안철수연구소의 실질적 초석이 된 오영 빌딩

내가 안철수 박사를 처음 만났던
2번째 위치는 남부 터미널 근처 건물이었다. 지금도 그 위치를 정확히 기억하는 이유는 건물 주위가 온통 모텔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서울 시내에 모텔이 그렇게 밀집해있는 지역을 처음보았다. 지금도 모텔이 상당히 많은 타운이라고 알고 있다. 우리 나라에서 모텔이라면 생각나는 부정적 인식, 그리고 그와 연관된 어두운 서비스 간판들이 많이 눈에 띄었다. 도저히 사무실이 있는 곳 같지가 않았다.

모텔 타운 한복판에 있던 오영빌딩

그런데, 이 건물은 안철수연구소의 중요한 초석이 된다. 안철수 사장이 미국 유학을 마치고 복귀한 시점이었다. 또한 대주주인 한글과컴퓨터에 마케팅을 의존하고 있던 사업 모델에서 탈피해서, 비로소 안철수연구소 (당시 이름으로 안철수컴퓨터바이러스연구소)가 독자적으로 영업 조직을 갖추고 회사의 모양을 갖추었다. 현재 안철수연구소의 권영찬 차장이 1호 영업 사원이었다. 비록 직원들 월급주기 빠듯한 상황이었지만

 

규모가 20명도 채 안 되었던 것 같다. 내가 하던 회사도 20명 내외였으니까 비슷한 규모여서 동병상련의 처지를 얘기했던 기억이 난다. 정보 보안사업을 한다고 하면 돈이 되겠느냐?’며 주위에서 한심하다는 눈길을 받을 정도였으니.. 벤처 기업이라는 개념도 없었고, 중소기업은 대기업 계열사의 하청업체 정도로 받아들여지는 분위기였다. 게다가 소프트웨어 산업에 대한 인식은 지금보다도 훨씬 열악했다. 그 곳에서 안철수연구소의 주춧돌이 탄탄하게 놓여진다.


미국 기업의 거액 인수 제안을 거절한 시점이 이때이며, 인간 안철수가 TV를 타게 된 계기인 '성공시대'가 바로 여기에서 촬영된다. (나도 동종업계 기업인으로 인터뷰를 하면서 TV에 최초로 출연하는 영광을 얻었다)

도약의 발판 우영 벤처 타워

CIH 바이러스 대란을 통해 도약한 우영 벤처 타워

그 다음 옮긴 곳이 강남역에서 양재역 쪽으로 내려가다 보면 우성아파트 근처에 있던 건물이었다. 내가 찾아가려고 하니까 안 사장이 찾기 쉬울 거예요. 바나나클럽이라고 하면 모르는 사람 없대요.”라며 설명해주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 건물은 술집 네온사인이 휘황찬란한 그 가운데 있었다. 지나쳐 보기는 한 지역인데 정말 부근에서 바나나클럽을 물어보니 바로 가르쳐 준다.

그 건물이 안철수연구소가 본격적으로 도약하는 공간이 된다. CIH 바이러스가 터지고 망가진 PC를 들고서 번호표 들고 기다리던 곳이 바로 그 곳이다. 마침 나도 길 건너편에 있었기에 같이 만나서 식사를 한 적이 있는데, 과거보다 훨씬 여유가 생기고 CEO다운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이와 같이 모텔 타운에서 기초를 만든 2번째 건물을 거쳐 술집 한가운데 있는 우영 벤처 타워에서 보안 업계 처음으로 매출(수주액) 100억원을 돌파했.


그 후에서야
IT 기업들이 주로 있던 강남 테헤란로 부근과 수서 시대를 거쳐 지금 여의도에 위치하게 되었다. 모텔 타운에서 초석을 다지고, 술집 타운에서 도약의 발판을 마련한 후, 벤처 타운에서 코스닥 상장을 이루었다. 그리고 나서 지금은 순복음교회 부근의 교회 타운이다.

이 곳을 우리가 글로벌하게 도약하는 계기로 삼고 싶은게 안철수연구소 CEO인 나의 꿈이다. 2년 뒤에는 판교 사옥으로 들어가게 된다. 그 때에는 세계에서 인정받는, 세계 각지의 파트너와 고객을 상대로 하는 진정한 글로벌 기업의 위상으로 입주하고 싶다. 그래서, 영혼이 있는 기업, 정직하고 투명한 기업의 철학을 이어 갈 것이다.


무릎팍 도사에서 안철수연구소의 역사를 설명하는 녹화 과정에서 건물 얘기가 있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최종 방영에서는 제외되었던 것 같다. 그래서, 안철수연구소의 역사에 대해
 몇 자 적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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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문화를 아는 교육이 기본이 되어야 : 사교육 논의를 바라보는 시각 (2)

CEO 칼럼 2009.05.05 16:43

콘텐츠가 중요한 시대라고 한다. 해리포터 시리즈 작가인 조앤 롤링이나 히트 영화의 제조기인 스티븐 스필버그의 예를 많이 든다. 소설과 영화, 드라마, 또한 음악과 같은 창조품의 위력은 익히 알고 있다. 한국도 한류 열풍으로 톡톡히 재미를 보고 있다. 언론에서 무형 자산을 자동차, 조선과 같은 대표적인 수출 품목과 비교하는 것도 종종 본다.

 

그런데, 과연 이런 콘텐츠는 어디에서 나오는가? 창의력을 바탕으로 한 탄탄한 스토리텔링(Storytelling)에서 나온다.


영화 제작사인 드림웍스
(DreamWorks)의 작가가 TV에서 인터뷰하는 것을 들었다. “특수 효과, 애니메이션, 음향, 그래픽, 이런 것은 누구라도 (장비와 돈과 인력이 있으면) 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가장 애타게 찾는 것은 스토리다. 창의적인 스토리(Creative Story)가 영화의 모든 것을 결정한다. 그래서, 전 세계를 누비면서 좋은 콘텐츠를 찾는데 혈안이 되어 있다”.

 
스토리의 힘은 어디에서 나오는가?


한때 디워
(D-War)가 논쟁의 대상이 된 적이 있었다. TV토론 프로에도 등장할 정도였다. 나는 디워를 본 적이 없다. 그러나, 내 주위에서 그 영화를 본 이들의 평가는 대체로 냉랭했다. 애들 등쌀에 보러 갔다가 애들이 나가자고 해서 생전 처음 영화 도중에 나왔다고 투덜대는 사람도 있었다. 볼 만 하다는 얘기도 들었지만, 전반적인 중론은 그래픽은 우수하나 스토리는 빈약하다였다. 진중권 씨는 스토리가 기본이 안 되어 있다며 신랄하게 공격했다.

 

어쨌든 이 논란은 스토리의 부족함으로 귀결된다. 아무리 특수 효과가 뛰어 나더라도 스토리가 약하면 사랑을 받기가 힘들다. 혹자는 디워반지의 제왕과 비교한다. 그러나, ‘반지의 제왕을 단순히 특수 효과가 뛰어난 판타지 영화로 이해했다면, 그 스토리의 깊이를 너무나도 과소평가한 것이다.

 

존 톨킨 교수(ko.wikipedia.org)

반지의 제왕은 오랜 기간 세계의 수많은 독자들에게 사랑받아온 판타지 소설이다. 작가인 존 로널드 루엘 톨킨(John Ronald Reuel Tolkien) 교수는 이 소설을 통해 자신이 상상하는 세계를 방대하게 설계했다. 이 소설을 위해 인공 언어를 만들었을 정도로 심혈을 기울였고, 심리적 갈등과 반전의 묘미가 심오한 작품이다. 그의 시대에는 상상의 한계를 뛰어넘는 묘사를 할 수 있는 도구가 소설로만 가능했다. 기술이 발전하면서 비로소 영상으로 표현하는게 가능해지자 치밀한 노력과 열정으로 그 내용을 실체화한 것이 피터 잭슨(Peter Jackson) 감독이 만든 3부작 영화다.

 

과연 우리의 교육 현장에서 이런 콘텐츠를 만들 수 있는 인력을 기르는 교육이 이루어지고 있는가? 대학 입시를 위해 정보를 얻고 유명 강사를 쫓아다니는 열정은 가히 세계 수준이다. 또한 그런 노력을 뭐라고 할 수 없는 교육 현실이다. 그러나, 과연 창의적인 스토리가 그런 환경에서 만들어질까? 오히려, 우리의 교육 커리큘럼은 그에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는 경향이 있다.


역사와 문화가 콘텐츠의 산실
 

좋은 이야기의 중요한 소재는 역사와 문화다
. 반지의 제왕은 북유럽 신화에 심취해 있던 작가에 의해 만들어졌다. 톨킨 교수는 ‘나니아연대기를 집필한 C.S. 루이스와 동시대 인물로서 교감을 같이했다니, 이런 자유로운 상상력의 교환이 뛰어난 콘텐츠를 만들어내는 힘이 되었을 것이다. 해리 포터와 같은 소설은 영국의 문화와 고성(古城), 구전되어온 이야기들이 축적되어 만들어진 역사와 환경의 산물이다. 단순히 작가의 천재적 영감만으로 이루어진게 아니다.

서구 문명의 뿌리를 이해하려면 그리스 로마 역사를 알아야 한다. 영화 '300'은 그리스의 조그마한 도시국가가 세계를 휩쓸던 페르시아를 상대로 대항한 더모필레 전쟁을 소재로 삼고 있다. 비록 장열한 전사를 했지만, 이를 계기로 그리스 도시국가들은 통합된 국가로 성장해서 오늘날 민주주의의 초석을 이루게 되었으니, 역사적으로 의미가 큰 사건이었다. (전제국가인 페르시아가 오랜 기간 호령했다면 민주주의의 싹이 틀 수 없었다는 지적도 있다).

또한 말도 안 되는 것처럼 보이는 그리스 로마 신화 이야기가 많은 서구 문학과 연극, 영화에서 인용되어 등장한다. 셰익스피어의 고전을 이해하려면 그리스 로마 신화를 꿰뚫고 있어야 한다. 그런 인문학적 연구와 고찰이 더 다양하고 깊이있는 콘텐츠를 만들어낼 수 있다.

 

우리 나라에서도 '공동경비구역 JSA'와 '웰컴 투 동막골'이 성공한 배경은 냉전 시대 속에서 한민족의 끈끈한 동질감을 절묘하게 작품 속에 담았기 때문이다. 이데올로기를 넘어 서서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인간 관계의 깊이를 훈훈한 이야기로 풀어냈다. 이와 같이 우리의 문화, 역사 속에서 차별화되고 재미있는 이야기는 만들어진다.


공동경비구역 JSA

웰컴 투 동막골

 

역사 공부를 등한시하는 부끄러운 우리의 모습

그런데
, 우리 나라 수능 시험에서 한국 역사, 즉 국사가 필수 과목이 아니다. 수능이 절대적 기준인 우리 나라에서 그 의미는 국사를 대충해도 대학가는데 지장이 없다는 얘기다. 자신의 역사를 제대로 모르면서 무슨 스토리를 만든다는 얘기인가이러다가는 허구가 가미된 TV 드라마 내용을 액면 그대로 역사로 인식하는 사람들이 더 많아질 수도 있다.

한때
국사는 모든 시험 과정에서 피할 수 없는 필수 과목이었다. 수능의 이전 모습이었던 예비고사 시절, 국사 과목은 50점이 배정되었던 국어, 영어, 수학 다음으로 많았던 30점이 배정된 전략 과목이었다. 고시는 물론 유학 시험, 국비 시험과 같이 국가가 관리하는 시험에서 국사는 필수였다. 왜 상황이 바뀌었는지 이해가 되지를 않는다. 개인적으로 역사적 관점이 다르고 논란이 많아서 그 중요성이 약화된 것인가?

 

물론 역사에 대한 관점은 사람마다 틀리고 시대에 따라 변한다. 그러나, 전반적인 틀을 가져갈 수 있어야 사회인으로 성장할 수 있다. 나는 한국적 민주주의가 최고의 가치라는 유신 헌법을 달달 외우면서 대학에 들어갔다. 대학에 들어가자 마자 교과서에 쓰여져 있던 지식은 완전히 부숴졌다. 지금 생각해 보면 허무한 시간 낭비였다.

 

그러나, 전혀 무의미하지는 않았다. 그런 혼란과 갈등 속에서 더 많은 고민과 독서를 하게 되었다. 속았다는 분노감에 정반대 개념의 책에 빠져든 적도 있었다. 그후 다양한 사회적 경험과 문화적 충격을 거치면서 역사를 바라보는 전체적 틀을 형성해 갈 수 있었다. 아마 누구나 비슷한 과정을 겪게 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면서 자신의 역사의식과 가치관이 만들어지게 된다. 어쨌든 역사와 문화에 대한 지적 탐구와 생각하는 훈련은 의미가 아주 크고, 그런 점에서 교육 과정에서 선택 옵션이 되어서는 안 된다.


역사의 현장에서 찾는 삶의 숨결 


상대적으로 역사가 짧은 미국에서도 중학교 수학여행지는 워싱턴
DC. 자랑스러운 독립의 과정과 헌법의 초석(Bill of Rights)을 만들어 낸 과정, 독립 선언서에 서명한 인물들, 내전(Civil War)을 극복하고 통합된 연방정부를 지켜낸 에이브러햄 링컨을 만나기 위해서다. 또한 독립전쟁과 남북전쟁의 역사의 숨결이 배어 있는 전쟁터와 유적지를 둘러 본다. 이것이 자유를 위해 건너온 이민자들이 민주 국가를 구성하게 된 미국의 역사요 정체성이기에,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 거의 의무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아쉬운 것은 이러한 역사의 현장을 너무 소홀히 관리하고 있다는 점이다. 오랜 건물을 허물고 깔끔하게 현대적 건축물을 올리는 것만이 능사일까? 온갖 먹거리와 볼거리와 같은 문화 상품을 개발하고 도로를 닦고 관광 사업을 전개하는데는 혈안이 되어 있으면서, 삶 속에서 역사의 숨결을 간직하는 노력, 또한 그런 정신이 이어질 수 있도록 하는 데에는 관심이 적다.

미국이나 유럽, 심지어는 이웃나라 일본의 대도시 한 복판에서 조그마한 유적도 그 당시 분위기로 잘 보전하는 것을 보고 부러웠다. (참조 블로그 '일본 호텔 욕조 옆에 붙은 그림을 생각하니',  http://ceo.ahnlab.com/19). 작은 도시에도 그 곳을 거쳐간 별로 유명하지도 않았던 인물들의 흔적을 남겨둔다.  그 속에서 삶의 숨결과 체취를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가공하지 않은 원본(Original) 그대로가 가장 갚진 것이다. 이런 것이 모두 스토리의 중요한 소재가 되기도 한다.

 

나는 남산 근처 후암동에서 태어나고 자라났기 때문에 어린 시절부터 남대문 주위를 항상 오갔다. 나에게 남대문은 너무나도 잘생긴 멋진 건축물이자 나의 친구였다. 남대문이 불타 버린 광경을 보면서 마음의 공허감과 분노는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국보 1호가 그렇게 허무하게 무너졌으니, 다른 유적지들은 어떠하겠는가?

남대문 전경(heritage.or.kr)

소실된 남대문 (dt.co.kr)



우리는 역사를 알아야 한다. 그 속에서 우리의 정신과 정체성을 발견할 수 있다. 역사는 수많은 값진 이야기를 만들 수 있도록 우리 조상들이 남겨 준 고귀한 자산이다. 창의력은 외딴 산 속에서 홀로 명상 속에서 나오는게 아니고, 우리의 생활 현장과 역사 속에서 발견할 수 있다. 자신의 역사와 문화를 아는 교육이 경쟁력있는 콘텐츠를 만드는 기본 자세다.

 

(다음 회에 '학벌 지상주의의 한계'를 이어서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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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아 브랜드를 높이는 세가지 고려사항

Global View 2009.04.02 11:33

외국에서 길 가는 사람을 붙잡고 한국하면 떠오르는 것을 물어보면 어떻게 대답할까? 얼마 전 유럽 출장을 가서 여러 사람을 만나면서 이런 실험을 해 보았다. 예상한 대로 북한’88 올림픽 1, 2위를 차지했다.


▲ 88 올림픽 개막식(사진출처 : 국제올림픽조직위원회)


 

월드컵을 주최했으니 축구를 좋아하는 유럽에서는 잘 알겠지 하고 생각한 것도 착각이었다. 실제로 월드컵 효과는 어느 정도 있었다. 그러나, 필자가 만났던 기업인들은 축구보다 요트, 음악 등 다양한 취미에 더 관심이 있었다. 그 순간 서구 사회는 개성과 개인주의가 중요한 나라라는 것을, 그래서 우리처럼 온 국민이 들썩거리는 문화와 다르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한국을 너무 모르는 외국인


많은 사람들이 코리아 브랜드의 가치를 제고해야 한다고 한다
. 전적으로 공감한다. 장사를 하러 가서 국가에 대해 설명하는 데 많은 시간을 쏟아야 한다면 그만큼 목적을 달성하는 데 어려움을 겪기 마련이다. 그러나, 브랜드는 우리의 입장이 아닌 상대방의 시각에서 바라보아야 한다. 이를테면, 우리가 IT 강국이라고 하지만 우리를 배우러 온 후진국을 제외하고는 그 실체를 잘 모르는 게
현실이다.

 

코리아 브랜드 인지도를 높이는 것은 세계 속에서 한국이라는 국가의 문화와 정체성을 자리매김하는 것이다. 그것은 거창한 캐치프레이즈보다 실제로 접하고 느끼고 소통하는 환경 속에서 가능하다. 따라서, 우리를 일방적으로 알리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눈높이에 맞추어야 한다. 그런 측면에서 글로벌 사회에 임하는 기본 자세부터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첫째, 스토리가 있어야 한다. 6.25 전쟁 이후 한국의 발전 과정은 확실히 감동적이고 역동적이다. 국민소득 100불 이하의 후진국에서 산업사회를 거쳐 정보화시대를 앞장 선 글로벌 국가! 5000년 전통의 강한 문화와 하이테크가 어우러진 나라! 세계가 찬사를 보낸 김연아의 예술과 테크닉의 조화는 우리의 스토리를 상징한다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이런 내용을 다양한 사업 모델과 이야기로 담아낼 수 있어야 한다. 창의력과 꿈을 만들어 내는 것이 중요한 덕목인 시대다.



▲한국전쟁 당시 한강 다리의 모습과 현재의 서울 모습(사진출처 : 왼쪽- http://www.rt66.com/~korteng / 오른쪽 - 다이나믹코리아



둘째, 글로벌 표준과 궤를 같이 해야 한다. 소프트웨어와 콘텐츠, 디자인과 같은 무형의 자산을 훨씬 높게 가치를 평가해 주는 게 글로벌 인식이다. 규모와 양으로만 판단하는 하드웨어적 마인드는 시대착오적이다. 또한 글로벌 플랫폼이 되도록 전력을 다하든지, 아니면 그런 표준을 따르는 게 현명한 방안이다. 전세계 스마트폰의 75% 이상을 차지하는 심비안, 블랙베리, 아이폰은 우리 나라에서는 사용되지 않는다. 개인적으로나 업무적으로 활발히 소통되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가 우리 나라에는 거의 없다. 우리 고유의 가치를 보유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서로 소통하고 대화할 수 있지 않으면 고립되기 마련이다.


Genealist보다 Specialist가 대접을 받는 사회 


셋째
, 전문가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 해외에서 높은 연구 실적을 보인 학자들이 한국에 안 들어오는 이유 중의 하나가 연구에 집중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경제 규모에 비해 한국에 전문가 집단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지적을 우리는 깊이 반성해야 한다. R&D가 위축되는 분위기와 기술을 잘 아는 전문 경영인이 부족한 산업계는 적신호다. 금융 허브를 한다면서 이를 제어할 실력이 없으면 탐욕만 추구하는 펀드 전문가들의 먹잇감이 될 뿐이다. 글로벌 사회에서 대접받는 것은 어리숙한 제너럴리스트(Generalist)가 아니라 실력과 책임을 겸비한 전문가(Specialist)이다.


 



이런 원칙들을 바탕으로 실제 업무를 수행하는
사람들 간에 직접적 교류가 활발해져야 한다. 바로 이웃 나라인 일본 대기업의 임원들을 만나 보면 의외로 한국에 안 와 본 사람이 많다. 설사 방문하였다 해도 2, 30년 전의 한국의 모습을 기억하는 경우가 많다. 하물며 멀리 있는 미국이나 유럽은 어떠하겠는가? 다양한 스펙트럼의 소통이 이루어져야 입체화된 브랜드가 만들어진다.

 

일단 그들이 한국에 오면 우리가 얼마나 다양하고 기발한 아이디어로 재미있는 사회를 형성하고 있는지를 보고 감탄한다. 특히 그들에게 강한 인상을 주는 것은 정보화 사회를 이룬 IT의 적응력이다. 우리가 차별화된 무언가를 보여줄 수 있다는 게 얼마나 브랜드 측면에서 강점인가? 바로 여기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IT를 기반으로 기술력과 창의력이 무한히 뻗어갈 수 있도록 분위기를 형성하는 것이 바람직한 브랜드 실행 전략이라고 생각한다.

전자신문 (미래포럼) - 4월 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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