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업자 안철수가 안랩을 떠나던 날

CEO 칼럼 2012.10.12 07:00

자기가 만든 회사를 17년만에 떠나는 창업자

 

9월 20일 오후 안철수 창업자가 안랩과 작별을 고하기 위해 회사를 찾았다. 바로 그 전날 그는 18대 대통령 선거 출마’라는 어려운 결정을 발표했다. 오랜 기간 그를 알고 지냈던 사람의 하나로서 기자회견 광경을 지켜 보면서 “참으로 많은 고민을 하셨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 분의 손때가 묻어있는 이 회사의 직원들과 의미있는 마지막 만남을 주선하는 일이었다.

그가 어떤 과정을 거쳐 창업했는지, 어떤 꿈과 생각으로 이 회사를 일구어 왔는지 잘 알고 있다. “원칙대로 사업을 해서 성공을 할 수 있다는 것과 소프트웨어를 해서 이익을 남길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는 그의 도전은 성공으로 입증되었다. ‘영혼이 있는 기업’을 만들고자 했던 그의 의지는 안랩의 기업 문화 속에 스며들어 있다. 이제 그가 없이 우리 직원들이 그 목표를 이루어 내야 한다는 막중한 책임감을 느꼈다.

 

직원들의 환호 속에 나타난 안철수 창업자는 안랩과의 인연을 결연하게 끊었다. 자신이 창업해서 열정을 불살랐던 회사였다. 자기 인생의 줄기라고 할 수 있는 이 회사에 왜 애착이 없겠는가? 그러나, 그는 “이제 안랩은 제가 알고 있는 우리 나라의 수많은 좋은 회사 중의 하나일 뿐”이라며 스스로 선을 그었다. 그를 가까이서 본 사람들은 그가 냉정하게 결단을 내리는 성격이라는 것을 잘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작 그런 그의 행동을 보면서 아쉬움은 피할 길이 없다.

직원들과 작별 인사하며 초창기 직원과 포옹하며

전 직원의 환호와 박수 속에 간략한 환송연이 있었고, 안철수 박사는 회사를 모두 돌면서 직원 하나하나 악수하고, 포옹하고, 사진을 찍었다. 오늘만은 회사에서 마음껏 시간을 보내고 싶다며 다음 스케줄은 아예 잡지도 않았다. 환송연에서의 다채로운 풍경은 이미 안랩 블로그 (http://blog.ahnlab.com/ahnlab/1608)에 자세히 소개되어 있다.

 

친구와 같았던 나의 보스

 

개인적으로 안철수 박사를 15년 이상 알고 지냈다. 아무도 정보 보안에 관심이 없을 때 정보 보안의 중요성을 알리기 위해 같이 동분서주했다. 벤처, 소프트웨어, 정보 보안. 이 모두가 사회적으로 따돌림을 받던 시절이었기에, 서로를 격려해 가면서 미래의 비전과 당위성을 알리는 데 힘을 같이 했다. 당시 젊은 벤처 기업가와 기술자들은 동료 의식이 강했는데그 중심에는 안철수 박사의 존재감이 컸다. 탄탄하고 투명한 경영으로 기업을 성장시켜 가는 그의 모습을 보면서경영인으로서 존경심과 더불어 부러움을 느꼈었다.

 

내가 했던 사업을 안랩이 인수하면서, 우리 두 사람은 한 조직 내의 관계가 되었다. 그러나, 그와 경영 회의를 할 때 그가 하던 말이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나를 세상에서 생각하듯이 윗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그냥 경영적으로 같이 상의하는 사이로 생각해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서로가 다른 관점에서 봐야 회사를 위해 올바른 방향을 잡을 수 있겠지요.

 

그는 조직상 보스다. 그럼에도 그는 항상 이렇게 나를 대해 주었기에 마치 친구처럼 여러 아이디어를 폭넓게 상의할 수 있었다. 수평적 리더쉽이자 파트너쉽 경영이다.  (그는 본래 창업을 혼자보다 2-3명이 같이 하는 게 좋다는 지론을 가지고 있다. 위험을 줄이고 다양성을 추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안랩의 역사를 돌아보며..

우리는 경영적으로 많은 생각을 나누었다. 회사의 문화, 조직, 전략, 마케팅 등. 다행히 통하는 게 많았다. 현장에서 뛰는 사람을 좋아했고, 과감히 도전하는 것을 장려했고, R&D를 통한 원천 기술의 힘을 믿었다. 관료화를 혐오했고, 조직보다 사람을 우선시했다. 다양성이 있어야 창의력이 싹튼다는 그의 경영 철학은 회사 전반에 스며들어 있었기에 나는 일하기가 아주 편했다.  

 

그는 매사에 신중하지만 결정에 있어서는 아주 과단성이 있다. 내가 특정 사업에 대해 애착을 가지자, 그는 “김 사장님, 사업이 잘 안 될 때는 무언가 문제가 있는 겁니다. 경영자는 냉정해야 합니다. 특히 자기가 일군 것일수록 과감히 포기할 줄 알아야 합니다. 이를테면 V3 사업, 제가 직접 만든 것이지만, 만일 사업에 문제가 생긴다면 저는 접을 수 있습니다.”라고 조언했다. 실제로 그는 조용한 행동주의자다

 

진정성의 모습

 

나는 7월 초, 부친상을 치르게 되었다. 많은 조문객들이 다녀갔다. 안철수 박사도 첫날 저녁에 찾아왔다. 이미 언론에서 주목을 받는 분이어서 기자들도 많이 왔고, 그 날 아버님 조문을 온 것은 언론을 통해 알려졌다.

 

그러나, 그가 발인식에까지 왔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는 크리스찬도 아니다. 그럼에도 교회식으로 치러진 발인 예배에 참석해서, 뒷 자리에 조용히 앉아서 예배를 드리고 갔다. 당시 책을 집필하던 시기라 무척 바쁜 시기였던 것을 잘 알고 있다. 얼굴이 많이 푸석해 보였다. 그럼에도 우리 가족을 위로하기 위해, 아버님 발인에 참여하기 위해, 아무도 보지 않는 가운데 그는 조용히 다녀갔다. 그의 진정성을 보여주는 한 예다. 누구에게 보이기 위한 것이 아닌, 그의 진정한 모습에 우리 가족은 큰 위로를 받았다.

 

CLO(Chief Learning Officer)로서 안랩 직원과 간부들을 위한 그의 교육은 큰 자취를 남겼다. ‘전략’과 ‘마케팅’ 강의는 2년에 걸쳐 안랩에 스며들었다. 나도 사업을 17년 가까이 하다보니 많은 경영 서적을 읽으면서 공부를 했고, 실전에서 경험했다그러나, 그의 ‘전략’과 ‘마케팅’ 강의는 너무나도 쉽게 핵심을 파고들었다진정한 프로일수록 쉽게 설명하기 마련이다. 그의 실전 경험과 미국에서 철저하게 공부한 것이 결합되어 나온 노하우다.

직원들의 메모를 보며 직원들과 담소하는 안철수

 

미국에서 MBA를 받고 온 어느 임원은, “이렇게 쉽게 전략과 마케팅을 설명하는 것을 처음 보았다. 내가 몇 과목 들은 것보다 훨씬 실용적이다.”고 감탄했다. 지금 우리 회사의 제품 및 사업 기획은 모두 그가 만들어준 전략과 마케팅의 틀에서 운용된다. 특히 안철수 박사는 재무나 회계의 탄탄한 기반 위에 모든 경영적 요소를 설명한다. 엔지니어 출신 경영인인 나로서는 큰 도움을 받았다. 그야말로 나의 보스라기보다는 경영 멘토이자 동료로서 의미있는 시간을 함께 했다.

 

포스트 안철수 시대의 안랩

 

 “그 때 큰 소명, 우리나라에서 컴퓨터 바이러스를 퇴치하는 기술을 가지고 계속하는 사람이 저밖에 없었잖아요? 그래서 저에게는 정말로 맞는 직업을 버리고, 소명을 따라서 만든 회사가 안랩이구요. 그런데 지금 아이러니하게도 소명 때문에 안랩을 떠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이제 안철수 창업자는 뜻한 바가 있어 다른 길로 간다. 진정성과 문제의 본질에 충실하는 그의 자세는 어느 길로 가든지 변하지 않을 것이다. 또한 그는 회사와 명확한 선을 그어 나갈 것을 잘 안다.

직원들의 박수 속에 안랩을 떠나며 차에 타기 전에 마지막 인사


이제 이사회 의장뿐만 아니라 제가 가졌던 모든 마음과 추억까지도 모두 정리해야 할 것 같습니다.”

 

창업자는 떠났어도 안랩은 그가 직원들과 같이 만든 핵심가치의 기업 정신을 이어나갈 것이다. 이 사회에 도움이 되는, 좋은 기업이 되고자 하는 그의 철학은 안랩 속에 영원히 남아있을 것이다.

 

동영상 참조: http://www.youtube.com/watch?v=rZ-0LWnC9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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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폰 열풍에 벤처 거품이 떠오른 까닭은?

IT와 세상 2010.02.23 13:30

슈퍼 앱스토어 창설

수십만개의 앱(App)을 유치하겠다

앱스(Apps) 개발로 꿈나무 육성

 

스마트폰 열풍은 애플리케이션(Application)이라는 소프트웨어 용어를 일반화시켰다. 아마도 금년 연말에 2010년도를 풍미한 키워드로 (App)’이 한 자리를 차지할 것이 확실시된다. 모바일 벤처가 우리의 미래라는 얘기가 기업, 정부, 언론, 학계를 가릴 것 없이 봇물처럼 터져 나오고 있다.

 

아이폰의 출시를 환영한다는 블로그(http://ceo.ahnlab.com/81)를 통해 스마트폰이 소프트웨어 산업이 살아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희망한 나로서는 이런 움직임이 반갑기 그지 없다. 스마트폰이 불편하다느니 별게 아니라는 언론의 흐름이 불과 몇 달 사이에 바뀐 것이 어리둥절할 정도다. 어쨌든 소프트웨어의 후진성이 우리의 미래를 발목 잡고 있기에 아이폰 충격은 긍정적 소식이다.

스마트폰 개발자 컨퍼런스 현장 (devmento.co.kr)


벤처 열풍과 비슷한 구호

그러나
, 한편으로 찝찝한 느낌이 드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런 열풍 속의 분위기와 구호가 과거 벤처 거품 때와 비슷한 분위기라서 그런가?

'벤처 몇 만개는 만들어야 한다'
'벤처가 우리의 희망이다'
'교수와 대학생들의 창업을 적극 권장한다'


벤처 열풍의 상징 테헤란로

바로
10년 전 벤처 열풍 당시에 풍미하던 구호이자 메시지다. 너도 나도 창투사를 만들었고, 벤처로 포장만 하면 묻지마 투자가 성행했으며, 사업 모델도 빈약한 회사가 몇 백억 가치로 인정 받던 시절이었다.

물론 과거의 쓰라린 실수를 반복할 정도로 우리가 어리석지는 않다
. 그러나, 스마트폰의 본질적인 요소는 제쳐 두고 벌써부터 의 문화로 흐르는 분위기는 심히 걱정스럽다. 풍성한 앱(App)의 시대가 전개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정작 소프트웨어의 라이프사이클을 제대로 거치는 기본에 취약한 우리의 현실을 도외시하고 있다. 

한편 사업 모델의 변화는 우리의 산업 구조를 바꾸고 있다. 애플과 같은 소프트웨어 플랫폼 업체의 시장 장악으로 통신 사업자가 소외되고 있다
. 단말기도 HTC같은 대만의 벤처 기업이 글로벌 리더로 뛰어 오르는 지각 변동이 일어났다. 그러나, 우리 나라에서는 정반대로 기득권을 지닌 대기업이 주도하는 형국이다. 그만큼 중소 소프트웨어 기업들이 몰락했거나 뛰쳐 나갈 힘을 상실했다는 점을 반증한다.

소프트웨어는 창의력과 혁신성이 핵심적 요소다. 그런 점에서 규율과 프로세스에 의해 움직이는 대기업보다 아이디어와 열정에 의해 움직이는 중소기업에 적합하다. 물론 대기업이 못할 것은 없다. 그러나, 애플과 구글처럼 유연함과 혁신(innovation)의 생존 코드를 가지고 있는 기업이 아니면 경쟁력을 가질 수 없다. 수직적 사업 모델보다 수평적 윈윈이 혁신적 사업 모델로 정착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앱스(Apps)가 진정한 일자리 창출로 연결되려면
 

앱스(Apps) 산업이 정착하려면 창의적인 아이디어와 열정으로 무장한 중소기업이 사업을 할 수 있는 기반을 갖추어야 한다.  정부나 대기업에서 이런 기업을 지원하겠다고 공언하고 있지만, 그 자체가 성공을 이끄는 열쇠가 되는 것은 아니다. 안철수 카이스트 석좌교수가 지적했듯이 그 비결은 공정한 거래 질서다. 시장 자체가 불공정하고 왜곡돼 있는 구조 속에서는 아무리 좋은 아이디어가 있더라도 기업들이 제대로 탄생해서 성장해 갈 수 없다.(아이뉴스 24 기사 연결, http://bit.ly/a9S0Zq )

정부가 지나치게 관여하는 것은 또 다른 부작용을 낳는다
. 시장 지배력을 지닌 대기업의 지나친 관심도 시장을 왜곡시킬 수 있다
 생태계는 본래 자연적으로 형성되기 마련이다.

NHN, 다음커뮤니케이션의 기업 가치가 어떻게 급성장했는지 우리는 익히 알고 있다. 온라인 게임 업체들은 아예 글로벌 시장을 이끌고 있다. 이들은 정부의 지원없이 성공했다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일부 게임 센터와 같은 지원이 있었지만 엔씨소프트, 넥슨과 같은 회사가 정부의 지원이나 대기업의 비호로 성공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App)의 글로벌 경쟁력을 키우고 현재 뒤떨어진 소프트웨어 산업을 살리는 방법은 명확하다. 공정한 거래와 생태계가 유지될 수 있도록 해 주면 된다. 이 단순한 원칙이 형성되지 않고 있기 때문에 껍데기 IT 강국이라는 오명을 쓰고 있는 것이다.

 
스마트폰과 앱스 열풍이 소란스럽기만 하다가 다시 대기업의 시장 지배력으로 마무리될 수도 있다. 그럴 경우 한국에서는 통할 지 모르지만 글로벌 시장에서는 철저히 소외될 것이다. 그것은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하는 대기업에게도 불행이다. 우리의 미래는 혁신 기업의 양성에 달려 있고, 그런 기업들이 진정한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해 내는 선도적 역할을 담당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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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랩 CEO로서 신사옥 착공이 갖는 의미는?

CEO 칼럼 2009.11.22 07:14

안철수연구소의 CEO가 되고 나서 크고 작은 각종 프로젝트와 사업에 관여하게 되었다. 그 중에서 전혀 다른 분야가 있었으니 판교에 사옥을 만드는 프로젝트다. 한평생 IT에 종사했던 나로서는 모든 내용이 생소했다. 건설업계는 IT와는 분야도 완전히 다르지 않은가? 게다가 IT 기업으로서 거래되던 규모와는 차원이 다른 자금이 동원된다.

 

공사장 전경 (1)

공사장 전경 (2)

이미 부지 선정에서 기초 작업들은 잘 준비되어 있었다. 그렇다 하더라도 나의 CEO 임기 중에 조감도 확정, 시공사 선정, 착공에서 실제 건설이 모두 이루어져야 한다. 건물을 완공하고 들어섰을 때에 이 건물에 입주하는 직원은 물론 방문하는 분들이 이 건물에 대해 어떤 인상을 가지게 될까 하는 생각을 하면 많은 부담과 책임감을 가지게 된다. 나의 인생에 있어 예상하지 않았던 작품 중의 하나가 되는 것이다.

사옥 내역을 설명하는 장면

현관의 대리석, 천장 및 바닥재, 레이아웃 등 크고 작은 결정을 앞에 놓고서 아무래도 공부를 해야 하겠다는 생각에 아예 날을 잡아서 벤치마킹할만한 건물들을 돌아다녀 보았다. 평소에 많은 건물을 드나들었지만 사옥을 짓는다는 생각에서 전혀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니 각 건물들의 철학과 가치를 느낄 수 있었다.

여러 건물을 돌아 다니다 보니 의외로 서울 시내에 진정한 사옥으로 설계한 건물이 별로 없다는 실상을 깨달았다
. 부동산이나 임대 수입에 목적을 둔 건물은 사옥과 판이하게 달랐다. 우리의 사옥은 직원들이 사용할 공간이다. 또한 우리 회사는 연구소가 주축이고 24시간 깨어 있어야 하는 장소다. 그래서 직원들이 일하기 좋은 환경, 안철수연구소가 오랜 기간 자리 잡을 장소를 만드는 것이 최우선 목표가 되었다. 일단 그렇게 원칙을 세우고 나니 의외로 많은 결정들은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공정성과 투명성에 원칙을 둔 선정 과정

안철수 의장과 쏠리테크 사장과의 환담

7.7
디도스 대란으로 정신 없이 바쁘게 뛰던 7월 달에 최종 시공자를 결정했다. 건설 규모가 대형빌딩에 비해 그다지 크지 않다고 스스로 생각하고 있었음에도 의외로 많은 건설사가 적극적으로 참여해서 치열한 경쟁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안철수연구소의 브랜드 가치와 현금 안정성 때문에 수익을 떠나서 의미가 크다는 얘기를 공공연하게 한다.

어떻게 보면 영업적 멘트일 수도 있고 경제가 안 좋은 상황이라 더 그럴 수도 있다. 어쨌든 수주전이 치열하다 보니 부담도 되었고 또다른 시험이라는 판단에서 중심을 잡아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일단 최우선 원칙을
투명하고 공정한 선정 과정에 두었다. 안철수연구소의 이름을 걸고 깨끗한 선례를 만들겠다는 목표를 설정했다.

어느 탈락한 기업으로부터
떨어지기는 했지만 과정이 워낙 깨끗해서 기분이 찝찝하지 않다라는 얘기를 전해 듣고 나서, 소기의 목적은 이루었다고 자부심을 가진다. 영업을 위해 여러 채널을 동원해서 우리 회사에 접근하다가 오히려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는 얘기가 공공연하게 건설업계에 떠돌았다고 한다. 그래서, 선정 과정이 투명하고 공정해야 실력에 초점을 맞출 수가 있었다. 시작이 깨끗해야 그 다음에 후탈이 없게 된다.

 

안철수연구소 신사옥을 짓는 첫 삽을 뜨면서

드디어 지난 주에 착공식이 있었다
. 땅을 둘러보면서 아 이 곳에 우리의 둥지를 트겠구나하는 생각에 가슴이 벅차 올랐다. 착공식이라는 행사에 처음 간 나로서는 모든 것이 생소했다. 테이프 커팅, 시삽을 하면서 바로 옆에 서 계신 안철수 의장이 많은 행사에 가 보았지만 우리가 주인인 것은 처음이네요라며 감회에 젖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테이프커팅

시삽


‘벤처 기업이라는 말이 나오기도 전인 시절, 서초의 작은 사무실에서의 3명의 출발은 무모한 도전이었습니다. 당시 외부 환경은 마치 지금 이곳처럼 춥고 메마른 바람이 부는 황량한 벌판과도 같았습니다. 그렇게 불모지와 다른 없는 척박한 환경에서 불확실한 미래의 위험을 안고 첫 발을 내딛은 안철수연구소가 성공과 도약을 거듭해 오늘 자신의 사옥을 짓게 되었습니다고 과거를 잠시 회상한 뒤 이 사옥은 글로벌 기업으로서 도약하는 안철수연구소의 모태가 될 것이라는 의지를 천명하면서 연설을 마쳤다.
(연설 전문 http://blog.ahnlab.com/ahnlab/736)

마침 추운 날씨에도 많은 직원들이 참석해서 높은 관심을 나타냈다. 사실 여의도에서 판교로 움직이게 되면 삶의 공간을 옮겨야 할 직원들이 많다. 그런 점에서 단순히 사무실을 이동하는 그런 단순한 문제가 아니라 임직원의 가족까지 관련된 2년 프로젝트다.


판교 테크노밸리의 랜드마크가 되기를 기대하며

많은 기업들이 사옥에 입주하면서 운명이 두 갈래로 바뀐다고 한다. 도약의 발판을 마련해서 비상(飛上)하거나 무리한 자금 동원과 초점을 잃은 사업으로 추락한다고 한다. 안철수연구소는 부동산이나 원칙에 어긋는 사업은 아예 고려하지 않을 것이므로 후자가 될 가능성은 적다. 그러나, 신사옥에 둥지를 틀어서 도약하기 위해서는 더욱 각고(刻苦)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직원들과 함께


작년에 CEO가 되고 나서 금년도에 많은 씨를 뿌리기 시작했다. 앞으로 3-5년 내에 많은 신사업과 프로젝트의 결실을 기대하고 있다. 신사옥에 입주하는 2년 뒤에는 가시적인 부분이 구체화된다. 그런 점에서 판교 신사옥은 안철수연구소의 성장 발판을 다지는 시점과 같은 시대를 걷게 된다. 다시 한번 경영에 대한 의지를 불태우게 된다.

이 건물이 안철수연구소의 마지막 건물이 아닌 첫 건물이 되었으면 좋겠네요”라는 설립자 안철수 박사의 기대감은 CEO인 나의 목표이자 우리 임직원들의 목표이기도 하다. 안철수연구소의 새로운 모멘텀인 판교 신사옥의 주춧돌을 놓는 소임을 담당하게 된 것도 나에게는 큰 행운이다. 이 사옥이 판교 테크노밸리의 랜드마크가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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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가 취업을 준비하는 젊은이들에게(4) - 갑 vs 을 시대착오적 세태

CEO 칼럼 2009.10.05 12:36

먼저 두 가지 사례를 들어 보겠다.

 

사례 1

대기업 부장이었던 분이 있었는데, 어느 날 독립했다고 연락이 왔다. 그 동안 닦아 놓은 인맥을 바탕으로 사업을 하려고, 마침 명예퇴직 프로그램이 좋아서 퇴직금 두둑하게 챙겨 나왔다고 한다.

 

그를 잘 아는 이들은 어리둥절했다. 그 분은 을 괴롭히는 전형적인 인물이었다. 항상 의 요구에 무조건 응하도록 압력을 가하고, 계약을 차일피일 미루고, 그러면서 심한 접대 요구는 유명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회사에서도 그를 좋게 평가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데, 그는 그렇게 알게 된 기업들이 자신을 도와줄 것이라고 착각했던 것이다. ‘슈퍼 갑앞에서 잘 보이는 것 이외에 의 옵션이 얼마나 있겠는가? 그러나, 회사를 나온 그에 대한 예우는 이전과 달라질 수 밖에 없다. 결국 모두가 냉랭하게 대했고 그 후 소식은 잘 모른다.

 

사례 2

공무원을 오래 하시다가 도중에 모 회사의 임원으로 가신 분이 있다. 그가 한참 잘 나갈 때에는 업체들이 눈 밖에 나지(?) 않으려고 눈도장을 찍느라 바빴다. 그가 행사할 수 있는 예산과 결정권은 막강했다. 전문가가 적던 시절이어서 그의 발언권은 아주 컸고, 이에 힘입어 그는 승승장구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고 전문가들이 많아지면서 그의 실력은 한계를 드러냈고, 내부에서도 견제의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그나마 늦기 전에 회사로 옮긴 것은 괜찮은 결정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이 분이 회사에 가서도 목에 힘을 빼지 못하고 지냈다. 고객의 목소리를 겸허히 듣는 것이 익숙하지 않았고, 그러다 보니 접대를 나가서도 훈계조로 얘기하거나 자신이 주도하려는 모습을 보였다. 결국 적응을 하지 못하고 회사를 관두었다.

 

갑과 을의 관계는?

갑과 을은 평등한 관계인가?

직장을 선택하면 업무의 형태가 의 어느 한쪽에 속하게 마련이다. 이를테면 회사 자체가 의 역할, 즉 제품이나 서비스를 구매하는 역할이 큰 업종일 수 있다. 아니면 의 역할을 담당하는 부서에서 근무하게 될 수 있. 모두가 그 회사를 위해서는 중요한 일이기에 어디서든지 성실하게 임한다면 전문가로서 중요한 커리어를 쌓을 수 있다.

그런데
, 우리 나라는 의 불평등이 심각한 문화라는 점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어느 나라나 물건을 사는 쪽보다 판매하려고 하는 입장이 항상 아쉬운 법이다. 특별히 공급이 부족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구매자가 비즈니스의 열쇠를 쥐게 된다.

그렇지만, 입장을 바꾸어 생각하면 좋은 제품과 서비스를 해 주기 바란다는 갑의 마음도 있을 수 있다. 거래는 상품과 용역을 재화로 교환하는 공정한 개념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한쪽으로 치우쳤을 때의 불투명성과 불합리성의 문제다.

 

왜 유독 우리 나라에서는 의 권한이 강할까? 
필자의 생각에는 과거에 장사를 하는 사람들을 낮추어 보는 사농공상(
士農工商)’의 전통과 유교적 문화가 잠재적 원인중의 하나인 것 같다. ‘상도(商道)’라는 소설과 드라마를 보면 겉으로는 고상한 척하면서 뒤로는 상인들의 이문(利文)을 갈취하는 양반들의 위선적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상인을 이기적이고 돈만 밝히는 장사치로 간주하는 가운데, ‘내가 당신의 물건을 사 준다’, ‘베풀어준다라는 우월적 인식이 자리잡지 않았을까? 이런 인식이 현대 산업 사회로 오면서 투명한 거래로 진화했어야 하는데, 불행히도 정부와 대기업 위주의 경제 성장 속에서 그런 문화의 형성은 미루어져 왔다. 시간이 가면서 나아지고는 있지만, 여전히 불평등은 심각하다.



그런 상황에서 직장에 취직해서 어떤 종류의 업무를 맡느냐는 나중에 그의 커리어에도 영향을 미치는 것을 많이 목격했다. 이를테면 만일 의 업무로 몇 년을 지내고 나면, 훗날 직장을 옮기거나 업무가 바뀌어서 의 입장에 처했을 때 잘 적응을 못 하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된다. 앞의 사례에서 보듯이 사회에서의 자신의 위상을 완전히 착각하기도 한다.

20년이 넘도록 편안하게 직장을 다니신 분이 있다. 연봉도 다른 업종의 친구들보다 높은 편이었고 시간적 여유도 많았다.억세게도 운이 좋구나라는 생각에 부러움이 들었다. 본인 스스로도 운이 좋아서 편하게 지낸다고 자랑하곤 했다. 그러나, 그 조직도 구조조정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고 그는 커리어의 전환점에 서게 되었다. 그는 내가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지?”하고 심각한 무력감을 느끼게 되었다고 한다. 자신의 가치는 그 조직이 만들어 준 것이지 자신이 만든 것이 거의 없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조직 속의 내가 아니라, 진정한 나의 가치가 필요
 
'
일을 시키는 입장일을 직접 수행하는 자세의 차이는 엄연히 존재한다. 물론 일을 시키면서도 철저히 분석해서 전문가가 될 수는 있다. 그러나, 겉에서 보고 판단하는 것과 실제로 부딪히면서 경험하는 것은 천지차이다. 안철수 박사가 직접 숙제도 하고 시험도 보면서 해야 자기 것이 된다라며 CEO를 관 두고 고행의 MBA 프로그램에 들어간 이유와 일맥상통한다.

 

사실 '갑'과 '을'을 단순히 수직적 관계로 보는 발상은 시대착오적이다. ‘’의 역할은 큰 목표를 실현해 가는 과정에서 '을' 즉 파트너의 도움을 필요로 할 뿐이다. '을'의 상품을 사 주거나 일거리를 주는게 아니다. 그런데, 이러한 파트너쉽을 자신의 파워(power)로 착각하고 즐기려는 이들이 있다.

은 항상 아쉽고, 머리 조아려야 하고, 고객이 부르면 달려가야 한다. 허나 ’로 오랜 경험을 쌓을 경우 자기 독립심이 강해지고, 자신의 역량에 대해 냉정하게 판단할 수 있다. 조직에 의해 내가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만의 현실적 가치를 보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이냐 이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사회에서의 삶을 태하는 진지한 자세가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보통 사회생활에 임하는 자세는 초기 몇 년의 직장 생활에서 자리잡히기 때문에 커리어에 있어서 중대한 기로다. 초반에 자신을 연단하는데 더 투자한다는 자세로, 직접 일을 수행하는 경험을 많이 쌓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 경험을 통해 업무에 대한 통찰력이 생기게 되고, 그것이 진정한 자신의 실력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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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가 취업을 준비하는 젊은이들에게(1) - 커리어를 먼저 생각해야

CEO 칼럼 2009.09.27 13:08

CEO가 취업을 준비하는 이들에게 (1) - 커리어를 먼저 생각해야

취업을 위해 많은 젊은이들이 준비하고 있다
. 청년 실업난이라서 취업이 힘든 상황이기는 하지만, 오히려 기업 입장에서는 필요한 인력을 구하는데

취업 이벤트 현황

구인난을 겪고 있다. 특히 엔지니어를 구하는 것은 더욱 어렵다. 이러한 괴리는 기술 인력의 수요는 큰데 비해 이공계를 기피하고, 이공계를 선택했더라도 소명감을 가지고 준비를 하지 않은 데 기인한다.

어쨌든 어떤 자세로 어떤 직장을 선택해서 첫 발을 내딛는가는 인생에 있어서 중요한 전기(轉機)
. 환경도 틀리고 시대도 다른 상황에서, 각자 인생은 다르게 전개될 수 밖에 없다. 절대로 남의 것을 모방할 수 없는 게 자신의 인생이다. 
 

필자도 공부를 마치고 사회에 나선지 어느덧 20년째다. 그래서, 여러 모로 부족한 사람이지만, 직장을 선택해야 하는 예비 사회인들에게 Tip이 될만한 몇 가지 생각을 시리즈 형태로 적어 본다. 혹 사회 예비생들에게 도움이 된다면 더없이 큰 기쁨이다.

 

인생의 모멘텀을 돌아보게 한 TV 인터뷰

 

켄자TV 홈페이지

얼마 전 일본 켄자 TV와 인터뷰를 했다. 일본의 20대 젊은이들에게 CEO가 줄 수 있는 지표를 소개하기 위한 탐방 시리즈라고 한다. 영예롭게도 인터뷰를 하는 한국 CEO 10인 중의 한 명으로 선정되었다. 일요일 저녁 시간으로 스케줄을 잡을 수 밖에 없어서 모처럼의 휴식 시간을 놓쳤지만, 이웃 나라 젊은이를 대상으로 한다는 호기심에 흔쾌히 임했다.

인터뷰는 필자의 사회 경험을 단계적으로 설명하는 형태로 진행되었다
. 주로 어떤 계기가 전환점이었고, 영향을 준 사람은 누구였는지, 그런 결정을 하게 되기까지의 고민 등이 관심의 대상이었다. 이를테면, 첫 직장을 선택한 배경, 정보 보안 초창기에 사업에 뛰어든 이유, 안랩의 CEO가 된 후의 고민과 결정 등등.

 

미리 작가가 정리한 내용에 답변하는 일상적인 인터뷰 방식이 아니었다. 준비된 스크립트는 있었지만 수시로 질문의 틀을 벗어났다. 특히 그 당시의 결정을 하게 된 배경과 이를 통해 어떻게 인생의 방향이 바뀌었는지를 집요하게 질문해 왔다. 일본인 특유의 꼼꼼함과 끈질김을 느낄 수 있었다. 밤 늦은 시간까지 진행되어 거의 탈진 상태가 되었지만, 타인의 질문을 통해 내가 걸어 온 커리어(career)를 다시 한 번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결국 과거의 나의 이력이 현재의 나의 가치(value)를 입증한다.

 

국문과 영문 이력서가 표현하는 방식의 차이는?

 

국문과 영문은 이력서(resume)의 형태가 반대다. 잘 알다시피 국문은 출신학교, 자격증, 수상경력 그리고 나서 경력을 연도순으로 나열한다. 영문은 최근 이력부터 시작해서 연도의 역순으로 설명을 하면서, 스킬셋(skill set)을 강조해야 한다. 학력은 맨 마지막에 나온다. 최근에는 영문식을 가미한 형태도 종종 보게 되지만, 아직 국문 형식이 많이 사용된다. 자기 소개서를 설명할 때에도 태어날 때부터 자라온 환경, 학교를 선택한 배경을 설명하고 나서 경력을 설명한다. 아마도 한국에서는 학교와 자격증 위주로 보는 문화가 있어서 그런가 보다.

 

그래서, 입사 면접을 할 때마다 국문 이력서에 기술된 내용과 반대 방향으로 질문하게 된다. 또는 서술되어 있지 않은 내용, 이를테면 그 사람의 기술과 경험, 업무적 경험을 구체적으로 알기 위해서 면접자와 씨름을 한다. 나는 그 사람의 커리어를 이해하고 잠재 역량을 판단하기에는 영문 방식이 더 효율적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가장 최근의 경력이 현재의 일자리에 적합한지 여부를 판별하는 중요한 기준이 아닌가? 현재의 본인이 있기까지 축적된 경력이 그 사람의 커리어다. 왜 10년 전에 졸업한 학교가 중요한가?

 

면접을 해 보면 그 사람의 경력이 플러스(+)의 삶으로 구성되었는지, 단지 자신의 지식과 경험을 팔러 다니기 위해 살았는지가 드러난다. 물론 인생이 애당초 설정한 목표대로 흘러가지는 않는다. 또한 한 분야에만 집중한다고 해서 플러스의 삶인 것만도 아니다. 전혀 다른 분야로 바뀌는 대전환이 일어나는 경우가 많이 있다. 의사에서 CEO, 또한 교수로 직업을 바꾼 안철수 박사만 보아도, 그의 말마따나 효율성에 의해 볼 수 없는 게 인생이다.

5년, 10년 뒤 당신의 모습은?

문제는 어떠한 자세로 임하느냐에 달려 있다
. 입사 면접을 할 때마다 물어보는 질문이 있다. “5, 10년 뒤의 자신의 모습을 어떻게 그리고 있습니까?” 회사의 간부나 임원이 되고 싶다든지, 경험을 쌓아 자신의 사업을 하고 싶다든지, 개발자로서 성공하고 싶다든지, 대답은 다양하다. 그런데, 의외로 이를 달성하기 위해서 어떤 전략으로 자신을 만들어갈 지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본 경우는 드물다.

 

목표가 진정성이 있어야,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어떻게 하면 자신의 부족한 면을 보강하고, 강점을 더욱 신장시킬까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되고, 이를 통해 계획의 틀이 마련된다. 안타까운 것은 사회의 통념이나 주위 사람 (부모, 친구)의 말만 듣고 방향을 정하는 경우를 많이 본다. 혹은 돈 몇 푼에 직장을 옮기거나, 살기 편하니까 도전을 기피한다. 이러한 모든 것이 결국에는 자신의 잠재적 역량(potential)을 사장시키게 된다. 자신의 표출된 역량이 하나씩 축적되어 커리어로 반영되고, 이를 사회가 얼마나 인정하느냐에 따라 자신의 몸값(연봉)은 결정된다.

 

일자리 구하기 어려운데 배부른 타령이라고 할지 모른다. 그러나, 의외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때로는 전공과 전혀 관련 없는 업무를 하면서 깨달음을 얻는 경우도 많다. 별볼 일 없는 잡일을 하면서도 큰 사업을 일구어낸 기업가들의 스토리를 많이 본다. 문제는 목표와 자세(Attitude)다. 성공의 지름길만 걸어가는 왕도는 없다. 오히려 외도(?)를 하면서도, 전혀 다른 커뮤니티에 참여하면서 기회를 포착하기도 한다. 도전을 통해 얻는 시행착오와 처절한 좌절도 커리어에는 오히려 큰 도움이 된다
 

일자리 창출이라는 정책은 단순한 일자리(Job)가 아니라 커리어(Career)를 키울 수 있는 방향에서 고려해야 진정한 의미가 있다. 커리어는 개인의 잠재적 역량을 기반으로 실용적 현장 기술(hands-on skill), 다양한 경험, 그리고 진지하게 임하는 자세에 따라 결정된다. 젊은 나이일수록 자신의 커리어를 진지하게 생각한 선택이 중요하다. 나이가 들면 점점 옵션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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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 박사와 10년전 만남을 생각하니

경영 이야기 2009.06.19 16:03

"나는 술 잘 마셨었는데 억울해요"

무릎팍 도사에서 술 얘기가 나오면서 안철수 박사가 한 얘기다. 회사 CEO를 하는 과정에서 크게 아프게 되었고, 그래서 술을 완전히 끊게 되었된 과정을 설명하면서였다. 그래서, 자신은 본래 전혀 술을 안 하는 줄로 사람들이 인식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말은 맞다. 나는 안철수 박사와 술을 해 본 증인(?)이다. 초창기에 내가 운영하던 회사와 안철수연구소는 공동 제품을 만들었다. 우리의 네트워크 보안 기술과 안철수연구소의 백신을 결합한 'V3 바이러스월'이었다. 이 제품은 새로운 개념을 열었고, 장영실상도 받는 영광을 차지했다.

▲안철수 박사와 공동으로 장영실상을 수상한 후 기념사진


공동 개발을 마치고 성공을 기원하는 회식 자리에서였다. 10년도 넘는 일이라 기억은 희미하지만, 근처 통닭집에서 생맥주를 같이 한 적이 있다. 그리고 안철수 박사가 "나는 술을 먹으면 더 또렷해지는 스타일이다. 술을 밤새워 마시고 나서 항상 내가 모든 사람 택시태워 보내고 멀쩡하게 집으로 들어간다"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 다른 이들에게도 같은 증언을 들은 바 있다.

그런데, 어느날 갑자기 안철수 박사가 과로로 인한 간염으로 병원에 입원했다는 얘기를 접하고 삼성의료원에 급히 달려갔다. 하긴 7년 동안 4~5시간밖에 안 자고 백신을 만들고, CEO가 된 후에는 유학(이때가 1차 유학으로 펜실베이니아대학 공대 공학석사를 받았다.)을 가서 공부와 경영을 병행하느라 이틀에 한 번 꼴로 밤을 새웠으니, 체력이 어떻게 버티겠는가. 그 이후로 안 박사는 술을 완전히 끊었다. 

안철수연구소의 건물에 관한 스토리

다음은 회사 사무실의 역사에 관해서다. 회사 행사에서 직원들 대상으로 퀴즈 프로그램을 진행한 적이 있다
. 문제 중의 하나가 안철수연구소가 창업부터 몇 번 이사를 다녔느냐였다. 최근에 들어온 직원들이 많아서인지 잘 맞추지 못했다. 나는 지금이 6번째인 것을 아는데..

 

첫 사무실이 있던 한판빌딩

그제서야 안철수 박사를 만난 지 벌써 10년이 넘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바뀐 건물에 적어도 한 번 이상은 가 보았으니 정확히 기억할 수밖에 없다. 체험을 통한 기억이 오래 간다는 진리를 다시 한번 느끼는 계기가 되었다. 한편 시간이 정말 빨리 지났구나하는 생각에 내 나이를 돌아보게 된다. 안철수 박사와 같은 시점에 정보 보안 사업에 뛰어든 지 어느덧 올해로 14년째가 된다.


안철수연구소의 실질적 초석이 된 오영 빌딩

내가 안철수 박사를 처음 만났던
2번째 위치는 남부 터미널 근처 건물이었다. 지금도 그 위치를 정확히 기억하는 이유는 건물 주위가 온통 모텔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서울 시내에 모텔이 그렇게 밀집해있는 지역을 처음보았다. 지금도 모텔이 상당히 많은 타운이라고 알고 있다. 우리 나라에서 모텔이라면 생각나는 부정적 인식, 그리고 그와 연관된 어두운 서비스 간판들이 많이 눈에 띄었다. 도저히 사무실이 있는 곳 같지가 않았다.

모텔 타운 한복판에 있던 오영빌딩

그런데, 이 건물은 안철수연구소의 중요한 초석이 된다. 안철수 사장이 미국 유학을 마치고 복귀한 시점이었다. 또한 대주주인 한글과컴퓨터에 마케팅을 의존하고 있던 사업 모델에서 탈피해서, 비로소 안철수연구소 (당시 이름으로 안철수컴퓨터바이러스연구소)가 독자적으로 영업 조직을 갖추고 회사의 모양을 갖추었다. 현재 안철수연구소의 권영찬 차장이 1호 영업 사원이었다. 비록 직원들 월급주기 빠듯한 상황이었지만

 

규모가 20명도 채 안 되었던 것 같다. 내가 하던 회사도 20명 내외였으니까 비슷한 규모여서 동병상련의 처지를 얘기했던 기억이 난다. 정보 보안사업을 한다고 하면 돈이 되겠느냐?’며 주위에서 한심하다는 눈길을 받을 정도였으니.. 벤처 기업이라는 개념도 없었고, 중소기업은 대기업 계열사의 하청업체 정도로 받아들여지는 분위기였다. 게다가 소프트웨어 산업에 대한 인식은 지금보다도 훨씬 열악했다. 그 곳에서 안철수연구소의 주춧돌이 탄탄하게 놓여진다.


미국 기업의 거액 인수 제안을 거절한 시점이 이때이며, 인간 안철수가 TV를 타게 된 계기인 '성공시대'가 바로 여기에서 촬영된다. (나도 동종업계 기업인으로 인터뷰를 하면서 TV에 최초로 출연하는 영광을 얻었다)

도약의 발판 우영 벤처 타워

CIH 바이러스 대란을 통해 도약한 우영 벤처 타워

그 다음 옮긴 곳이 강남역에서 양재역 쪽으로 내려가다 보면 우성아파트 근처에 있던 건물이었다. 내가 찾아가려고 하니까 안 사장이 찾기 쉬울 거예요. 바나나클럽이라고 하면 모르는 사람 없대요.”라며 설명해주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 건물은 술집 네온사인이 휘황찬란한 그 가운데 있었다. 지나쳐 보기는 한 지역인데 정말 부근에서 바나나클럽을 물어보니 바로 가르쳐 준다.

그 건물이 안철수연구소가 본격적으로 도약하는 공간이 된다. CIH 바이러스가 터지고 망가진 PC를 들고서 번호표 들고 기다리던 곳이 바로 그 곳이다. 마침 나도 길 건너편에 있었기에 같이 만나서 식사를 한 적이 있는데, 과거보다 훨씬 여유가 생기고 CEO다운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이와 같이 모텔 타운에서 기초를 만든 2번째 건물을 거쳐 술집 한가운데 있는 우영 벤처 타워에서 보안 업계 처음으로 매출(수주액) 100억원을 돌파했.


그 후에서야
IT 기업들이 주로 있던 강남 테헤란로 부근과 수서 시대를 거쳐 지금 여의도에 위치하게 되었다. 모텔 타운에서 초석을 다지고, 술집 타운에서 도약의 발판을 마련한 후, 벤처 타운에서 코스닥 상장을 이루었다. 그리고 나서 지금은 순복음교회 부근의 교회 타운이다.

이 곳을 우리가 글로벌하게 도약하는 계기로 삼고 싶은게 안철수연구소 CEO인 나의 꿈이다. 2년 뒤에는 판교 사옥으로 들어가게 된다. 그 때에는 세계에서 인정받는, 세계 각지의 파트너와 고객을 상대로 하는 진정한 글로벌 기업의 위상으로 입주하고 싶다. 그래서, 영혼이 있는 기업, 정직하고 투명한 기업의 철학을 이어 갈 것이다.


무릎팍 도사에서 안철수연구소의 역사를 설명하는 녹화 과정에서 건물 얘기가 있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최종 방영에서는 제외되었던 것 같다. 그래서, 안철수연구소의 역사에 대해
 몇 자 적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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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가 말한 '탈권위주의' 시대의 도래

Global View 2009.06.17 11:08
빈부의 격차가 심화된다는 점에서 세계화에 반대하는 움직임이 많지만, 정작 후진국이나 개발 도상국에서 세계화를 원하는 여론이 훨씬 우세하다는 통계도 있다. 세계의 경제권에 편입됨으로써 개인의 삶의 질을 향상시킬 가능성이 커진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글로벌화가 가진 자와 못가진 자의 격차를 더욱 크게 만든다는 것은 맞다. 그런 점에서 국가와 사회가 갖추어야 할 분배의 정책, 공정한 기회가 주어지는 환경, 개인의 권한 보장이 아주 중요하다.

정보통신과 IT의 발달은 정보력의 격차를 크게 줄였다. 아니, 역전시킨 경우도 있다. 아무리 권위있는 기관이라 하더라도 폐쇄적인 구조로 경직된 방식으로 운영된다면, 보통 사람들보다도 정보력이 떨어질 수 있다. 오랜 기간 생각을 했더라도 후발 주자가 더 빨리 정보와 아이디어를 사업화할 수 있다.

안철수 박사는 21세기 키워드를 한 가지만 선택하라면탈권위주의라는 단어를 택하겠다고 하였다.


참으로 적합한 표현이다
. 국가와 기득권자의 권위가 줄고 개인의 권위가 커지고 있다는 말이다. 이 지구 상의 수많은 사람들이 삶의 공간을 확보하고 생존하기 위해서, 더 나아가 성공의 열망을 위해서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또한 그들에게는 인터넷과 통신이라는 도구가 아주 저렴한 가격에 제공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더 이상 기업과 국가나 어떤 공동체도 자신들의 규범과 이데올로기를 강요할 수 없다. 개인의 선택이 중요해지고 있으며, 그들은 인터넷이나 소셜 네트워크로 거미줄처럼 문화와 공감대를 형성해 간다.

문화 스페셜리스트 김지룡 씨의 표현처럼 지금은 개인이 국가를 선택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안전이 보장되고, 세금을 적게 내고, 자녀를 좋은 환경에서 교육할 수 있고, 인간다운 삶을 영위할 수 있고, 자신의 능력을 발휘할 가능성이 높은 국가를 선택한다. 각 개인의 가치관과 인생 계획이 국가의 어젠다보다 우선한다. 우리 나라에만 존재하는 기러기 아빠의 현실은 우리 국가가 교육 서비스에는 실패했음을 여실히 입증하고 있다. 더욱 좋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국가로 능력이 있는 사람들은 움직이게 되어 있다.

누가 진정한 영향력을 지니고 있는가?

정보통신과 IT의 발전은 각 개인이 선택할 수 있는 삶의 공간을 글로벌화시켰다. 다른 나라는 어떻게 살고 있고, 그들이 나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도 인식하게 된다. 또한 능동적으로 신속하게 새로운 정보를 파악해야 생존할 수 있다. 더 이상 국가나 일부 지도자가 통제된 정보력으로 권위를 유지하고, 국민들은 그에 의존하던 시대는 종언을 고했다. 

미디어의 영향력은 신문이나 TV에서 블로그, 웹, 트위터(Twitter)로 빠른 속도로 움직이고 있다. 어떤 글로벌 PR 업체에서 일하는 파트너와 대화를 나눈 적이 있는데, PR에서 가장 영향력있는 매체로 파워 블로거와 애널리스트(전문가 집단, IT의 경우 가트너나 IDC), 그 다음이 보도자료를 통해 활자화하는 언론이라고 한다. 이렇게 세상은 바뀌고 있다. 탈권위주의의 시대적 현상을 보여주는 예다.
 
배움에서 세대가 뒤바뀌는 현상

선생(先生)이라는 표현은 오래 살수록 배워줄게 많다는 점을 의미한다. 그런데, 기술이 발달한 현실에서 젊은이들이 나이든 사람을 가르치는 상황이 늘고 있다. 손주들이 할아버지, 할머니를 가르치는 휴대폰 광고를 보면 빠르게 발전하는 하이테크의 생활화를 체감할 수 있다. 또한 디지털 세대는 불연속적 기술(Disruptive Technology)의 지속적인 출현으로 더욱 세분화되고 있다. 먼저 태어난 사람이 선생이 아니고, 먼저 알고 이해한 사람, 응용할 수 있는 사람이 선생이다.

물론 인생의 경륜은 중요하고, 어른들의 가르침은 여전히 중요하다. 그러나, 어떤 가치 판단을 자의적 잣대로 결정해서는 공감대를 얻기 어렵다. 이를 테면 젊은이들의 인터넷 사용을 건전하게 계몽해야 한다는 어른들의 걱정이 크다. 폭력적이고 천박한 언어, 사행성을 조장하는 이들은 인터넷 공간을 어지럽힌다. 그러나, 이것을 강화된 제도나 처벌에 의해 해결된다고 믿는다면 너무 단순한 생각이다. 

적극적이고 열린 대화를 통해 스스로 정화되는 것이 인터넷의 철학이고 정신이다. 열린 공간과 커뮤니티를 통해 많은 오피니언 리더들이 적극 참여함으로써 많은 문제가 걸러질 수 있다. 법과 규제는 항상 최소한에 머무르는 것이 바람직하다. 인터넷이 사회에서 인정하는 권위가 인정되지 않고, 막말로 계급장 띄고 얘기하는 공간이다 보니 혼란스럽게 비칠 수 있다. 그러나, 그럴수록 건강한 커뮤니티가 형성될 수 있는 잠재력이 있는 것이고, 그렇게 만드는 것이 이 시대를 사는 우리들의 숙제다.

인터넷을 괴물처럼 생각할 이유도 없고 그렇게 만들어서도 안 된다. 진정으로 인터넷이 위험하다고 생각한다면, 보다 적극적으로 여기에 뛰어드는 용감한 자세가 필요하다. 건강한 인터넷 세계는 각 개인의 의견을 존중하고 경청하는 합리적 마인드가 우선해야 한다.


권위의 개념부터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시점이다. 21세기는 탈권위주의 시대, 개인주의, 글로벌화의 흐름으로 진행될 것은 자명하다. 기존의 국가나 정부의 역할은 권위의 주체에서, 개인의 권리와 기회를 보장할 수 있는 지원자(Supporter)의 형태로 변신해야 한다. 또한 각 개인의 권한이 존중될 수 있는 사회를 같이 만들어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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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와 강호동 '무릎팍' 녹화장 가보니

CEO 칼럼 2009.05.02 12:26

안철수와 강호동. 누가 보아도 잘 어울리지 않는 한 쌍(pair)이다. 그런데, 안철수 박사가 강호동이 진행하는 무릎팍 도사’ 제작진의 끈질긴 섭외에 의해 출연키로 했다.

 

나는 안 박사가 무릎팍 도사에 출연하기로 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처음에는 농담인 줄 알았다. 평소에 안 박사가 그런 예능 프로를 안보는 것으로 알고 있는 나로서는 무릎팍 도사 보신 적 있어요?” 하는 질문이 저절로 나왔다. “한 번도 없어요”. 순간 이 분이 도대체 이 프로가 어떤 건지 알고 나가려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버라이어티 쇼 출연을 결정한 안철수 


나는 버라이어티 쇼를 자주 보는 편이다
. 머리가 꽉 찼을 때 이런 프로는 잠시나마 다른 곳에 집중하게 해 주고 웃음을 주기 때문이다. 그 중에서도 해피투게더무릎팍 도사는 내가 시간만 허락되면 빠지지 않고 본다.

시간대도
집에서 휴식중인 11시라서 피곤하지만 않으면 볼 수 있다. 특히 연예인이 아닌 사람들이 등장할 때는 독특한 느낌을 가질 수 있었다. 성악가 조수미, 발레리나 강수진, 만화가 허영만, 역도 선수 장미란, 골프 선수 신지애 이야기는 기억에 남는다. 또한 연예인 중에서도 이문세, 이순재, 장서희 코너는 진한 감동과 잔잔한 즐거움을 느낄 수 있었다.

 

그렇지만 안철수 박사는 평범 이상으로 조용하고 모범적인 삶을 사는 분이다. 아무리 강호동이라 하더라도 유머와 웃음으로 엮어내기는 한계가 있지 않을까? 그런데, 배경을 들어보니 5월 가정의 달을 맞이하여 자라나는 청소년과 부모들에게 교훈적인 내용이 되도록 프로의 목적을 삼았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집요한 섭외 요청이 있었다고 한다.

 

그 목적이라면 안철수 박사가 적격이다. 누구보다 정직하고 소신대로 사는 모습으로 귀감이 되기 때문이다. 또한 중소 기업을 이끄는 기업가들에게 희망의 불빛을 살리는 계기도 되었으면 했다. 아무리 그래도 프로그램의 성격이 워낙 엔터테인먼트 성격이 강해서 잘 맞을지 걱정이 되었다. 어쨌든 결정은 내려졌고 지난 주 수요일(4/29) 녹화가 있었다.

 

안철수 박사의 개인적인 일이지만, 그의 인생에 있어서 그가 설립한 안철수연구소의 회사 이야기가 나오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안철수연구소 CEO로서 회사 이야기가 어떤 형태로 비추어질지 궁금하기도 했고, 한편 수고하시는데 개인적으로 격려도 할 겸 해서, 오랜 기간 우리 회사에 근무해서 누구보다 세세한 역사를 잘 아는 임원과 같이 녹화 현장을 방문했다.

 

MBC 녹화장에 들어가면서


MBC에 도착했을 때에는 이미 2시간 녹화를 마치고 휴식 시간이었다. 출연자 대기실에 들어서니 안철수 박사가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괜찮으시냐고 하니 그런대로 할 만 하다고 한다. 처음 시작할 때에 강호동 씨가 큰 소리로 말하는데 많이 놀라지 않으셨냐고 물으니, “생각보다 강호동 씨가 별로 크지 않더라고 한다. 나도 나중에 녹화장에서 직접 보니 천하장사 이름에 걸맞는 우람한 체격보다는 작아 보였다. 내 상상이 지나쳤었나 보다. 아니면 다이어트를 했든지..

 

강호동 씨나 그 스태프들이 프로그램을 재미있게 하려고 유도질문을 하지 않느냐?”고 물으니 계속 같은 톤으로 답변하니 답답해 하는 것 같다고 한다. 이 프로를 보면 항상 강호동 씨가 무언가 화제나 소재 거리를 잡으려고 하는 것을 알 수 있다. 하긴 그런 게 시청자들에게는 재미니까. 그런데, 안 박사는 페이스에 말려들지 않고 평상시 대로 대답하니 답답하기는 할 거다.

 

소문에는 녹화 전반에는 보통 진이 빠지게 하고 후반에서 주로 방송 분량을 많이 딴다고 하니, 이제 본 게임이 시작하는 거다. 휴식 시간을 마치고 녹화장으로 같이 들어섰다.


TV 녹화장 분위기
 

녹화장은 조그마한 방 주위로 카메라와 스태프가 모여있는 단촐한 분위기다. 젊은 작가들(주로 여성)이 무대 바로 앞에 나란히 앉아서 계속 도화지로 진행 방향을 코치하는 것을 제외하고는 전반적으로 차분한 분위기다. 최근에는 편집 기술이 발달해서인지 자연스럽게 물 흐르듯 대화가 진행되게 하나 보다. 그래야 출연자도 진솔하게 자기 얘기를 할 수 있으니까. TV에서 보는 스틸 컷이나 음향, 자막이 전혀 없으니 밋밋할 정도다.

 

녹화 현장


방송 대화 내용은 아직 방영일정이 미정이라
여기에서 언급할 수는 없지만, 대략 내가 알던 안철수 개인의 얘기가 주류를 이루었다. 사실 안철수 박사의 삶은 평범하다고는 할 수 없다. 15년 가까이 공부한 의사를 관두고 벤처 기업을 창업한 과정, 잘 나가던 벤처 기업 CEO를 스스로 물러 나서 미국에 공부하러 간 결정, 그 후 KAIST 교수로 변신해서 이 나라 중소 벤처 기업의 정신을 살리기 위해 노력하는 그의 열정이 하나씩 그의 입으로 설명되었다. 그 외에도 외국기업에서의 1,000만불에 매각 제의 거부, 혼자서 V3 백신을 개발할 때 3~4시간 밖에 잠을 못잔 얘기 등 이미 책이나 연설을 통해 들은 얘기가 개인적 터치(personal touch)로 전개되었다.

 

편집 과정에서 어떤 얘기들이 TV에 최종 방영될 지는 알 수는 없지만, 이미 10년 이상 안철수 박사를 알고 지낸 나로서는 90% 이상이 아는 얘기였다. 그런데, 엔터테인먼트 분야의 인기 최고급의 진행자와의 대화를 보면서, 그의 스토리가 묘하게 무릎팍 도사 프로그램에 맞게 잘 들어맞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한 마디로 재미있었다. 끝나고 나니, “아 이 프로 재미있겠다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PD아주 잘 되었다고 만족스러운 표정이 역력했다. 단순히 통상적인 인사 치레는 아니었다. 기대했던 이상의 콘텐츠에 만족감을 표시했다.

 

특히 20대 젊은 작가들이 재미있다고 얘기하는 것을 보고 약간 놀랐다. 사실 우리는 세대차가 많이 존재한다고 얘기한다. 특히 디지털 세대, 감성 세대는 현재 지도층의 삶에 대해 이해를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40대 후반의 한 대학 교수의 얘기가 재미있다는 것은 그만큼 인생을 바라보는 관점에 있어서는 큰 차이가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진정한 유머는 치열한 삶의 현장에서 발견할 수 있어 


나는 그 이유가
치열한 삶의 모습에 있다고 본다. 남들의 이론을 내세우며, 배후에 자기 이익을 숨기며 얘기하는 일부 기성 세대 지도자들과 달리, 자신의 얘기, 자신의 고뇌와 결정, 성공과 실패, 소신에 따른 인생 역정은 세대를 막론하고 누구에게나 와 닿기 마련이다. 나는 자신의 커리어를 고민하는 젊은이들이, 올바른 가치관을 가지고 자라나야 하는 청소년들이, 또한 이들을 교육하는 부모들이 같이 고민해야 할 문제라고 생각한다.

 

온갖 거짓말과 위선으로 가득 찬 속칭 지도자들의 얘기는 그 자체가 허구일 수 밖에 없다. 그런 이들의 이야기는 자기 합리화이며, 유머 그 자체도 만들어진다. 그러한 가공의 유머는 일시적일 뿐이다.

그러나, 무에서 유로 벤처 기업을 일구어낸 창업가의 얘기, 원칙에 따라 정직하고 투명하게 살아온 스토리는 밋밋해 보일 수 있지만, 굴곡의 과정 자체가 즐거운 교훈과 감동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안철수와 강호동의 만남은 그런 점에서 성공작이라고 생각한다.

이제 편집과 특수 효과를 가미해서 어떤 모습으로 TV에 방영될지 벌써 궁금하다. 한편 자라나는 아이들과 부모들 그리고 시청자들을 위해 이런 희생(?)을 한 안철수 박사의 결정에 찬사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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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지니어를 면접할 때 묻는 CEO 단골 질문

CEO 칼럼 2009.04.03 11:37

내가 엔지니어를 면접할 때 물어보는 단골 질문이 있다. 왜 이 길을 택하셨지요? 5, 10년 뒤에는 무엇을 하고 있을 것 같아요?” 엔지니어로서 길을 걸어온 나로서는 어떠한 배경으로 이 길을 선택하였으며 어떤 계획으로 살 건지가 가장 궁금하기도 하고 채용의 중요한 기준이기도 하다.

 

우리 나라 엔지니어들의 인센티브는 적다. 실리콘 밸리에서 대박을 거머쥔 벤처 기업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선진국의 경우 IT 전문가로서 인정을 받으면 젊은 나이에도 1억이 넘는 연봉을 받는다. 또한 지금 이 순간에도 인도에서는 수많은 컴퓨터공학 졸업자가 대학 문을 나서고 있고, 중국은 그보다 더 많은 숫자가 기술직을 선택하고 있다. 이 사회가 기술을 필요로 하고, 성공의 옵션이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엔지니어는 통속적인 성공의 개념, 이를테면 돈을 많이 벌거나 명예를 얻는다는 성취와는 차원이 다른 특별한 보상(reward)이 있다. 바로 자신이 만든 제품이나 기술을 다른 사람이 사용하는 것을 보았을 때의 기쁨이다. 이것은 다른 어떤 직업도 만족시켜 주지 못하는 엔지니어만의 특권이요 보람이다. 엔지니어로서 이런 기쁨을 느끼지 못했다면 불행한 일이다.



2년 전 나와 같이 네트워크 보안 사업에 몸담았던 직원들이 안랩에 사업 인수를 통해 합류했다. 그 후 나는 조직에 관여하지는 않고 고문이라는 형태로 전반적인 자문을 맡았다. 3개월 지나서, 연구소를 지나가다가 어떤 개발자에게 재미있어?’ 하고 물어본 적이 있다. 그러자 단박에 하는 얘기가 ‘별루였다.

원인은 간단했다. 어느 회사나 초창기에는 R&D, 기술지원, 영업이 구분없이 끈끈한 정으로 목적 달성을 위해 전념한다. 그러나, 회사가 성장하고 조직이 커지면서 연구소와 사업부가 분리되는 과정을 거친다. 그러면서, 엔지니어가 고객이 제품을 사용하는 모습을 보는 기회가 적어지게 된다. 여기에 경험이 많은 임원들이 영입되면서 조직의 논리가 더해진다. 물론 체계적, 효율적이라는 관리라는 장점이 분명히 있다. 그러나, 반면 재미와 보람은 반감되게 마련이다. 이 과정을 얼마나 슬기롭게 극복하느냐, 양쪽 장점을 어떻게 살리느냐가 벤처 기업의 과도기다.

 

우리 회사도 R&D가 워낙 큰 조직이다 보니 그렇게 운영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니 R&D와 영업이 밀착되어 움직이던 조직이 적응하는 과정에서 엔지니어들이 흥미를 잃을 수 있다. 특히 나는 R&D가 고객의 현장을 잘 알아야 한다는 철학을 지니고 있었기에, 그런 방식에 익숙해있던 직원들이었다.

 

작년에 CEO가 되면서 사업부 체제로 조직을 바꾸었다. 밖에서 보기에는 그냥 그러려니 하고 받아들일지 모르지만, 우리 회사로서는 처음 시도하는 일이다. 게다가 몇 년간 만들어온 프로세스와 문화가 있었기에 직원들의 공감대와 참여를 필요로 했다. 내가 그렇게 한 원인은 단 하나, “고객과 멀어진 것을 우리 회사가 고쳐야 할 최우선과제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고객이 자신의 상품을 사용하는 것을 보는 즐거움 
 

여기에 더해 나는 R&D 기술자들이 고객과 파트너를 직접 만나도록 했다. 간부급 이상은 영업이 언제든지 데리고 나가도록 했다. 의외로 직원들이 아무런 불만없이 응해 주었고, 오히려 고객을 만나고 와서는 더욱 소통이 잘 되고 생기가 있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물론 체력적으로나 시간적으로는 힘들지만, “엔지니어가 자신의 제품을 사용하는 것을 보고 보람을 느낀다는 평범한 철학을 다시 한 번 되새기는 계기가 되지 않았을까?

 

세상에는 수많은 기술과 상품이 만들어지고 사라진다. 나는 '고객이 알아주지 않는 상품이나 기술은 쓰레기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공학은 이론을 연구하는 순수 과학이 아니다. 어떤 형태로든 기술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있고 엔지니어는 상품이나 서비스의 가치(value)를 통해 공급(delivery)하는 것을 소명으로 하는 직업이다. 나는 '우리 기술이 이렇게 좋다'는 식으로 기술로만 설명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 기술을 누가 어떻게 사용하느냐가 중요한 포인트이기 때문이다.




고객이 제품을 사용하는 모습을 보면서 보람을 느낄 수 있어야 진정한 엔지니어다
. 이것은 엔지니어간에는 불문율처럼 공감대를 이룬 문구다.

 

부(富)만을 추구해서 성공한 엔지니어는 거의 없다. 자기가 좋아하는 일에 몰입하다가, 고객이 자기가 만든 것을 인정하고 사용하는 것을 보는 보람에 심취하다 보면 보상이 따르게 되는 것이다. 애플을 만든 Steve Jobs, 구글을 만든 Larry Page와 Sergey Brin , HP를 만든 Bill Hewlett Dave Packard. 모두가 이 간단한 원리에 충실했던 사람들이다. 기계와 씨름하면서 당신 스스로에게서 행복을 느낀 사람들이다. 경제 위기일수록 본질에 충실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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