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소 씻는 세탁기’서 읽는 중국문화

CEO 칼럼 2011.11.21 11:00

    한 대학에서 특강을 한 적이 있다. 매주 최고경영자(CEO)를 초빙해 현장의 목소리를 직접 듣는 프로그램이었다. 흥미롭게도 강의실을 가득 메운 학생들의 전공 분야가 인문계와 이공계가 절반씩 섞여 있었다. 융합이 중요하다는 생각에 의도적으로 만든 강좌라고 한다. 고등학교부터 문과와 이과로 나뉘는 우리의 교육 현실에서 보면 신선한 시도다.

 마침 주제가 정보기술(IT)이 일으키는 사회 변화였다. 모바일·클라우드·소셜네트워크·사이버 보안·프라이버시 등과 같은 시대적 키워드를 중심으로 진행됐다. 특히 지금은 고인이 된 스티브 잡스가 인문학과 기술이 교차하는 것을 설명하는 사진을 띄우자 탄성이 터져나왔다. 바로 그 강의장의 모습과 맞아떨어지기 때문이었다.

기술혁신을 통한 급격한 IT성장

    돌이켜 보면 과거 20~30년에 걸쳐 IT는 우리의 업무 생산성을 크게 향상시켰다. 그뿐 아니라 IT의 역할은 더 이상 보조적 수단이 아니라 사업의 중심으로 이동했다. IT가 일으키고 있는 변화의 미래는 이에 그치지 않는다. 삶의 구석구석에 스며들어 우리의 라이프스타일과 사회 환경을 바꾸고 있다.


 

                                            <사진출처. 네이버 블로그>

 IT는 기술혁신을 통해 급격한 성능 향상, 보급 확대, 가격 하락의 사이클을 보여줬다. 한 예로 과거 대학 전산실에서 사용하던 컴퓨터보다 현재 개인들이 가지고 다니는 컴퓨터가 더 강력해지는 데 불과 한 세대도 걸리지 않았다.

 컴퓨터와 인터넷의 덕택으로 정보를 찾는 것은 자유로움 그 자체다. 이제는 정보를 알고 있는 것보다 정보를 찾는 노하우가 더 중요한 시대가 되었다. 모바일 환경은 공간의 제약마저 없애고 있다. 태블릿과 스마트폰은 인간적인 터치로 기계적 장벽을 줄여가고 있다.

 카메라는 어떤가. 이제는 매우 보편적인 기능이 되어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누구나 수많은 사진이나 영상을 만들어낸다. 그뿐 아니라 그렇게 생성된 콘텐트는 소셜네트워크를 통해 급속도로 퍼져 나간다. 그런가 하면 무선인터넷을 대표하는 와이파이(WiFi), 위치를 알려주는 GPS 기능을 집어넣는 것은 아주 적은 비용으로도 가능하다.

 즉 지능적이고 스마트한 것을 만드는 일은 경제적 현실성 여부에 의해 좌우되지 않는다. 단지 얼마나 의지를 갖고 진지하게 실험하느냐에 달려 있다. 이러한 환경 변화로 인해 우리가 생각하고 소통하는 방식, 생활 문화, 그리고 교육 시스템에 큰 변화가 예상된다.

 이러한 변화는 산업시대처럼 후진국에서 선진국을 일방적으로 따라가는 형태로 진행되는 것도 아니다. 지역적으로나 세대별로 생각하는 방식과 문화가 다를 수밖에 없다. 감내할 수 있는 소비 수준도 천양지차다. 따라서 같은 기술이라고 해도 적용되는 형태는 다를 수 있다.

중국의 채소 씻는 세탁기 개발을 통해 배울 수 있는 점

 중국의 가전 회사인 하이얼은 유독 중국 농가에서 세탁기 고장 신고가 자주 접수되는 점에 주목했다. 그 원인을 분석해 보니 채소 찌꺼기가 기계에 끼어서 오작동하는 것이었다. 세탁기를 옷이 아닌 채소를 씻는 데 사용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하이얼은 고객을 탓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했다. 그리고 얼마 후 채소를 씻는 세탁기를 개발했다. 가위 발상의 전환이다. 우리나라에서도 한국 음식문화의 특성을 고려한 김치냉장고를 개발하지 않았는가.

 글로벌 기업 인텔에서는 인류학자가 제품 개발에 참여한다. 특히 후진국에서 기술이 어떻게 적용될지에 대해 집중적으로 연구한다고 한다. 인텔이 어떤 기업인가. 전자제품 속의 부품을 만드는 반도체 기업이다. 보통 사용자들은 직접 접하지 않는 제품이다. 그런 회사가 이러한 준비를 오래 전부터 준비하고 있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지금이 바로 인문학과 기술 융합이 필요한 시기

                                               <사진 출처. 조선일보>

 그런데 IT 강국이라고 자부하는 우리나라는 어떤가. 빠른 IT 인프라와 디지털 정보화 측면에서는 우리가 앞선 측면이 있다. 하지만 가위 혁명적이라 할 스마트 시대를 주도할 만한 준비는 하지 못한 게 사실이다. 지금은 기술이 기능적 수준에서 벗어나 우리의 삶 속에 유연하게 적용되는 스마트 시대다. 바로 인문학과 기술의 융합이 필요한 때다.

 또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이 있다. 융합은 거대 담론만으로 실현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융합은 자신의 울타리에서 벗어나 서로가 열린 마음으로 다가가는 자세에서 시작된다. 이때 자유로운 사고와 소통은 창의력의 원천이다. 거창한 구호를 앞세우는 데 익숙했던 과거의 방식으로는 이렇게 소프트하고 유연한, 그리고 세밀한 접근은 낯설고 새로운 도전이다. 그러나 이러한 사회적 공감대를 만들 수 있다면 우리의 잠재적 역량과 더불어 새로운 기회를 창출해 낼 것이다.

* 이 칼럼은 2011.11.21 일자 중앙일보에 실린 칼럼입니다. Ah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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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이 수학·과학자 영입하는 시대

CEO 칼럼 2011.10.31 11:30

인도사람들이 수학을 잘하는 이유 - 수학적 사고의 일상화

“인도인들이 수학에 대한 소질이 특출하거나 교육 방식이 유별난 것은 아니다. 다만학교 교육뿐만 아니라 일상생활 속에서도 습관처럼 늘 수학을 적용하고 살아간다. 수학적 사고가 일상화 있는 것이다.”

                                  <수학문제 푸는 사진. 출처: 네이버 블로그>

인도를 방문했을 때 만난 어느 대기업 임원의 대답이다. 그는 글로벌 사업의 경험이 풍부해 나름대로 객관적으로 인도의 경쟁력을 판단하는 통찰력을 가지고 있었다. 인도가 정보기술(IT) 강국으로 도약하고 있는 배경에는 이러한 일상화된 수학적 사고방식이 있었다.

우리나라의 수학 교육도 강도 면에서는 남부럽지 않은 수준이다. 그러나 삶의 현장에서는 별 필요 없는, 대학 진학을 위한 관문 정도로 인식되고 있다. 대입을 위한 수학은 아주 기본적인 내용이다. 그것도 단순히 답을 산출해 내는 데 초점을 두고 있다.  

수학은 ‘답을 맞히는 것’보다 ‘답을 도출하는 과정’이 더 중요하다. 정답 맞히는 데 급급한 수학 교육으로는 훗날 어려운 문제를 해결할 전문가를 키우는 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풀리지 않는 수학 문제 하나를 가지고 밤새 씨름도 해보고 여러 선인의 지혜와 고민을 자기 입장에서 반문하고 고민하는 훈련 과정이 있어야 하는데, 그런 중요한 과정이 빠져 있기 때문이다.

수학은 공학의 기초, 문제 해결 순간의 희열은 내재적 기쁨

최근 이공계 기피 현상과 함께 질적 저하도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한 공과대학 교수는 “요즘 학생들은 수학의 기초가 부족하다. 조금만 응용을 해도 전혀 문제를 풀지 못한다”고 하소연한다. 부모의 열성과 교육제도가 만들어 놓은 울타리 안에서 주어진 지식의 습득과 조련에만 의지해왔으니 조금만 문제를 꼬아놓아도 해결의 실마리를 찾기 힘든 것이다. 수학은 공학의 기초다. 과학적인 탐구 자세와 지적 호기심 없이 고등 수학을 활용한 공학으로 발전한다는 것은 요원한 일이다. 어려움이 있어도 밤새 공부하고 연구를 할 수 있는 이유는 그 자체가 즐겁고 성취감을 이룰 수 있기 때문이다. 어려운 문제를 풀어냈을 때의 희열, 새로운 것을 발견하고 만들어내는 창의력의 발휘는 누가 알아주지 않더라도 본인만은 만족할 수 있는 내재적 기쁨이다.

우리나라는 과학 기술을 발판으로 사회 발전과 국민 생활 향상을 이룩한 자랑스러운 역사가 있다. 과학 기술에 기반한 리더십을 발휘한 대표적 인물이 세종대왕이다.

                                      <세종대왕, 출처: 김기창 작가 작품>

세종대왕은 전 세계적으로도 가장 과학적이라고 인정받는 한글을 창제하고, 측우기·자격루·해시계 등 실생활에 유용한 과학 기구들을 발명해 우리나라 과학사에 굵직한 획을 그었다. 그는 계급을 뛰어넘어 장영실과 같은 인재를 발굴하고, 학자들이 연구개발에 몰입할 수 있도록 물심양면으로 지원했다. 이러한 업적은 백성을 긍휼히 생각하는 세종대
왕의 인간 존중 사상과, 과학 기술에 대한 확신
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오늘날 기업이나 조직의 핵심 역량은 기술이고, 기술은 수학과 과학에 기반한다. 대형 검색 서비스가 많이 있었음에도 구글이 군계일학의 독보적 위상을 구축한 것 역시 수학과 알고리즘 덕택이었다. 구글의 검색 엔진은 성능과 정확성 면에서 타 서비스와는 차원이 달랐다.

수학과 과학 - 기초학문의 흔들리지 않는 뿌리이자 마르지 않는 샘

기업들은 더 스마트하고 더욱 지능화한 기술을 개발하기 위해 더 우수한 수학자와 과학자를 영입하고 있다. 최근 급격하게 발전한 IT 덕택에 과거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연구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수학과 과학은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사고와 연구개발(R&D)의 토대가 될 뿐 아니라, 업무의 생산성과 투명성을 측정하는 잣대가 된다. 즉 기업의 능력을 가늠하는 척도라 할 수 있다.

과거 우리나라가 경제적으로 급격히 발전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교육에 대한 열정과 기술 중심의 발전 방향 설정이었다. 이 명제는 지금도 유효하다. 다만 우리가 교육 문제를 얘기할 때 본질적 요소인 ‘탐구와 몰입의 즐거움’을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 문제다. 비록 힘들고 치열한 경쟁의 나날이 계속되더라도 그러한 즐거움을 발견할 수 있고, 이를 바탕으로 세상을 움직이는 변화를 이끌겠다는 꿈과 포부를 키워갈 수 있다면 온갖 어려움을 극복해갈 수 있다.

과학 기술이 소외된 상태에서 윤택하고 활기찬 사회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나날이 발전하고 있는 첨단 과학 기술은 수학과 과학 같은 기초 학문에 뿌리를 두고 있다.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흔들리지 않고, 샘이 깊은 물은 가뭄에도 끊이지 않는다.

튼실한 뿌리가 있어야 든든한 줄기와 알찬 열매를 기대할 수 있다. 수학과 과학은 과학 기술의 뿌리이고 샘이다. 흔들리지 않는 뿌리와 마르지 않는 샘이 될 기초 학문의 발전을 기대해본다.



* 이 칼럼은 2011.10.31 일자 중앙일보에 실린 칼럼입니다. Ah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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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브 잡스가 남긴 최고의 선물은 '도전'

CEO 칼럼 2011.10.14 06:30
“스티브 잡스는 평상시엔 직원들에게 친절하다.
단 업무적인 이슈에 부닥치면 완벽할 때까지 파고들어간다.
토론할 때의 모습은 진지하다 못해 치열할 정도다.”


애플(Apple)에 근무했던 기술자는 스티브 잡스를 이렇게 회고했다.

오래된 친구를 잃은 슬픔

회오리 같은 인생 역정, 불꽃처럼 타오른 삶, 어느 날 갑자기 신제품을 내놓는 ‘외계인’ 등. 스티브 잡스를 묘사하는 표현들은 하나같이 열정적이고 이색적이다. 스티브 잡스가 유명을 달리했다는 비보에 마치 오랜 친구를 잃은 듯 안타깝다. 정보기술(IT) 분야에 몸담고 있는 이들 누구나 비슷한 상실감을 느꼈을 것이다.

하긴 그가 만든 제품을 처음 접한 게 대학 시절인 1980년대 초반이었으니 거의 30년 가까운 세월을 그와 함께 보냈다고 할 수 있겠다. 지난 30년간의 IT 역사를 볼 때 그만큼 커다란 영향력을 끼친 사람은 드물다. 토머스 에디슨이 전기 문명을 우리 역사에 남겼다면, 잡스는 IT를 통한 디지털 라이프를 우리에게 선물했다.

'스티브잡스의 프리젠테이션 모습(사진출처: 네이버 블로그)'

디지털 라이프의 선구자였던 스티브 잡스

IT 분야의 선구자였던 그는 굵직굵직한 변곡점을 만들어 냈다.

우선 개인용 컴퓨터(PC)라는 시장을 만들었다. 이전에는 컴퓨터라고 하면 으레 검은색 배경 화면에 흰색이나 녹색 글자가 떠오르는 단말기였다. 그런데 그는 밝은 색 배경에 다양한 크기와 모양의 글자, 아이콘과 그래픽이 주도하는 획기적 화면을 세상에 선물했다. 이후 모든 컴퓨터의 사용자 인터페이스는 그가 선보인 방식으로 변화했다. 그는 또 CD가 주도하던 음반 시장을 온라인 디지털 음원 위주로 바꾸었다. 음성 통신을 위한 휴대전화는 모바일 인터넷이 가능한 스마트폰으로 재탄생했다. 또 수직적 산업 모델을 수평적 모델로 바꾸는 앱스토어(AppStore) 경제를 창출했다. 모두가 안 된다고 단정했던 태블릿PC를 발매 27일 만에 밀리언셀러로 만든 이도 잡스다. 그는 자신이 연 PC 시대의 종언을 스스로 고하며 포스트PC 시대를 선언했다.

그의 영향력은 실로 엄청났다. 그가 신제품을 발표하면 세계는 숨죽이고 그 무대를 주목했다. 발표장은 환호성으로 넘쳤고 그의 연설과 어록은 두고두고 회자됐다. 개인화와 융합은 ‘인문학과 기술의 소통’이라는 그의 철학을 반영한 시대정신이 되었다. 대학을 중도 포기한 그가 스탠퍼드대 졸업생들에게 준 메시지는 그의 삶에서 우러난 것이기에 더욱 깊은 울림을 주었다. 결코 평범하다고 할 수 없는, 치열함과 굳은 의지로 일관된 삶이었기에 더 깊은 통찰력이 느껴졌다.

그는 자신이 설립하고 성공으로 이끈 회사에서, 자신이 고용한 사람으로부터 쫓겨나기도 했다. 그러나 온갖 좌절과 치욕, 실패를 뚫고 IT 세계의 지도자로 멋지게 재기했다.

인생은 격렬한 파도와 같다

한때 좌절하고 있던 필자에게 어느 선배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누구나 인생의 파도를 만나게 된다. 파고의 차이가 있을 뿐 평탄할 수만은 없다. 스티브 잡스 같은 이야말로 가장 격렬한 파도를 겪으며 살고 있지 않은가? 그보단 덜하겠지만 사업을 하려면 진폭이 큰 오르내림을 각오해야 한다.” 그 격려가 어려운 시절을 극복하는 데 큰 도움이 됐음은 물론이다.

“나는 암 진단을 받았다. 죽음은 어느 누구도 피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죽음은 삶이 만든 최고의 발명품이기 때문이다.
죽음은 낡은 것을 없애고 새로운 길을 내어준다.”


죽음을 앞두고서도 그는 이렇게 초연했다. ‘죽는다는 사실을 기억하면 정말로 잃을 게 없다’는 생각으로 끊임없이 도전한 삶이었기에 그의 메시지는 더 깊은 울림을 주었다.

'스티브잡스의 스탠포드 졸업식 연설 모습(사진출처: 네이버 블로그)'

“실패의 위험을 감수해야 예술가로 살아갈 수 있다.
늘 갈망하라, 우직하게 나아가라
(Stay hungry, Stay foolish).”


도전의 아름다움을 보여준 그의 삶은 기업가 정신이 절실한 시대에 이렇듯 우리가 놓쳐선 안 될 가치들을 새삼 일깨워준다.

*  2011.10.11 일자 중앙일보에 실린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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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 DDoS 대란 1주년에 생각해 보는 3가지 이슈

보안 이야기 2010.07.07 13:49

7.7 DDoS 대란이 난 지 어느덧 1년이 되었다. ‘벌써라는 기분이 들 정도로 바삐 지나간 한 해였다. 사실 그 동안 사회 곳곳에서 이에 대비한 준비도 많이 이루어졌다. ‘디도스’, ‘좀비 PC’와 같은 전문 용어들이 일상 뉴스에 등장할 정도로 인식도 바뀌었고, 기업이나 기관의 최고 경영층도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실질적인 투자와 준비 태세를 잘 마련한 곳도 있다. 허나 아직도 겉치레적인 준비에 머무르거나 아직 지체되어 있는 곳도 적지 않다.

 

게다가, 사이버 공격의 진원지인 악성코드나 위협의 강도도 세진 것이 현실이다. 다음 단계로 진화하고 있는 악성코드를 볼 때에 고민의 무게는 더해진다. 사회공학적 기법은 기본이고, 전문가도 속아 넘어갈 정도로 악성코드의 유형은 교묘해지고 배포 방식은 다각화하고 있다.

 

7.7 DDoS로 인해 언론 출연, 국정감사 증인 출석, CNN의 라이브 인터뷰 등, 기업인으로서는 색다른 경험도 많이 했다. 그러한 활동으로 인해 부러움과 시샘(?)의 눈초리를 받기도 했다. 여러 곳에 불려 다니는 것을 보면 충분히 그런 생각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수 차례 외침이 허공 속에서 사라지는 것을 보았을 때의 허탈함은 결코 즐거운 경험이 아니었다.



보안 전문 인력에 대한 논의가 빠지면 소용 없어 


과거부터 보안 사고가 피상적인 문제점만 노출된 채 넘어간 경우를 숱하게 보아 왔다
. 특히 보안에 대한 대비책을 세우고, 모의 훈련을 하고, 새로운 법과 정책을 만들어야 한다는 논의가 활발한 가운데, 정작 이러한 프로그램의 가장 중요한 요소가 빠져 있었다. 바로 보안 전문 인력 부족 문제다. 실제로 일을 할 인력이 없다면 백방의 대책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어떤 IT 기업 임원이 보안 업체들은 괜히 겁 주어서 돈 벌려고 하는 것 아니야?”라고 하자, 그 옆에서 어떤 분은 사고가 나야 보안 업체들이 좋잖아?”라고 맞장구 친다. 그런 광경을 보게 되면 15년을 정보보안에 종사한 이로서 자괴감마저 느낀다.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 회사 24시간 관제 센터에서는 분, 초 단위로 침해 위협의 가능성이 있는 이벤트가 티켓 형태로 끊임없이 올라온다. 10년 경력의 악성코드 분석가가 더욱 정교화되어 가는 악성코드에 난감해 하는 모습을 보면 안타깝다. 하도 답답해서 글로벌 기업의 CEO나 경영진도 만나 봤다. 어느 누구도 이제 보안 기술은 어느 정도 안정화되었다라고 하는 이들은 없다. 악성코드에 대비하는 기술과 아키텍처를 위해 끊임없이 투자하고 연구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7.7 DDoS 1주년을 맞이해서 키워드가 될만한 3가지를 생각해 보았다.

첫째, 보안 위협은 진행형이다. 이미 사이버 위협은 범죄 행위의 영역으로 들어갔다. 테러, 공격, 협박, 사기, 도둑질 - 모두가 범죄 용어 아닌가? 역사적으로 어느 누구도 범죄 행위의 발생 자체를 막을 수는 없었다. 범죄를 줄이기 위한 법과 제도, 교육은 가능해도 범죄는 인류 역사상 영원히 같이 가야 할 숙제다. 오히려 기술이 발달하고 복잡다단한 사회가 될수록 더욱 지능화되고 조직적 형태를 띄는 것이 범죄의 속성이다. 따라서, ‘이제 디도스는 해결되었다라는 표현은 적절치 않다. 아무도 그런 단언을 할 수는 없다. 기술, 프로세스, 사람의 측면에서 항상 준비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둘째, 사이버 공간에서도 일반 사회 생활과 같은 인식이 필요하다.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에는 우범지역도 있고 소매치기도 있다. 법과 제도도 중요하지만 시민 의식이 받쳐주어야 한다. 소매치기로부터 자신의 지갑이나 가방을 지키는 심정으로 사이버 위협으로부터 자신의 PC를 다루면 안 될까? 우범지역을 피하듯이 검증되지 않은 사이트나 콘텐츠를 피하면 안 되는가? 자동차를 가지고 일반 도로에 나오는 마음가짐으로 PC를 통해 인터넷에 들어가면 안 될까? 이미 인터넷은 일반인에게 보편화된 지 오랜 세월이 흘렀고 그 가운데 사이버 위협은 우리 생활 속의 한 요소다. 이를 백분 인정하고 스스로를 지키는 시민 의식이 아쉽다.

 

셋째, 보안 전문가가 인정 받아야 한다. 현재 발생하는 악성코드는 10-20년 전 컴퓨터 바이러스 잡던 시대와는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차원이 다르다. 돈을 벌기 위해 혈안이 된 프로 해커들이 악성코드를 만들고 있다. 신형 악성 도구를 유통시키고 청부 공격도 자행한다. 가짜 백신은 웬만한 소프트웨어보다 더 많은 다국어 버전으로 제작되고 있다. 그만큼 암시장이 형성되어 있다는 얘기다. 프로의 상대는 프로일 수 밖에 없다. 그래서 보안에서 스페셜리스트의 역할과 존재가 아주 절실하다. 우수한 보안 전문가를 얼마나 보유하고 있는가가 우리 사회의 사이버 안전도의 척도다.

 


안타깝게도 보안 인력이 되고자 하는 이들은 계속 줄고 있고, 기존 인력들마저 보안 전문가의 길을 떠나고 있다. 아주 심각한 상황이다. 내가 어느 회의에 가든지 한 가지만 얘기하라면 서슴지 않고 보안 전문가의 부족 사태를 꺼낸다. 보안의 중요성을 외치는 수많은 추상적 논의보다 1명의 스페셜리스트가 더 소중하다. DDoS 1년이 지나는 시점에 여전히 아쉬운 부분이다.

IT는 이제 스마트폰, 컨버전스, 클라우드, 소셜네트워크로 지축이 바뀌는 패러다임 변화를 겪고 있다. 그럴수록 인터넷을 중심으로 한 개방형 환경은 사회적 인프라가 될 것이다. 보안은 그 속에서 신뢰와 안전이라는 틀을 지키는 핵심 요소다. 그런 점에서 실력을 갖춘 보안 전문가는 이 사회에 여러 형태로 공헌한다고 확신한다. 가장 큰 투자는 사람에 대한 투자임을 다시 한번 진지하게 호소한다. Ah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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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바타'는 SW와 콘텐츠의 중요성 경고였다

IT와 세상 2010.04.03 07:55

컨버전스 시대를 사는 지혜


아바타를 제작한 제임스 카메론 감독은 트위터의 공동 설립자 비즈 스톤과 한 대담에서 불법 복제에 대한 견해를 피력했다. “사람들이 복제물을 보지 않고 극장에 가는 이유를 제공해야 한다. 동일한 콘텐츠라 하더라도 사람들은 3D 초대형 스크린에 기꺼이 10불을 지불할 용의가 있다.”라며 이노베이션을 강조했다.

오래 전 나온 3D 기술은 이미 70-80년대에 영화로 선을 보였다. 그러나, 신기함은 있을지언정 뭔가 허접하고 불편한 느낌이었다. 그러면, 2010년의 3D 영화 아바타는 무엇이 다르기에 성공했는가? 이유는 환경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디지털 기술의 발전으로 영화 제작은 점점 리얼한 영상미를 실현하고 있다. 대부분의 작업이 컴퓨터로 이루어지니 가격이나 기술적 접근성도 뛰어나다. 머리 속에서 상상한 장면을 거의 그대로 CG로 실현할 수 있다. 이렇게 성숙한 CG 환경에 3D 기술이 접목되니 엄청난 상승 효과가 작용했다. 봇물 터지듯 나오는 3D 애니메이션의 출시는 이를 입증한다.

아이폰이 성공하고 스마트폰이 돌풍을 일으킨 배경에도 환경적 성숙함이 한몫 했다. 애플은 뉴튼이라는 PDA를 만들었지만 성공했다고 보기 어렵다. 모뎀과 텍스트 중심의 개인용 기기로는 PDA가 전자수첩의 범주를 벗어나기 힘들었다.

애플사의 Newton

Email을 모바일화한 블랙베리

디지털 음반 판매시장 iTunes


그러나, 상황이 바뀌었다. 성숙해진 인터넷 덕택에 이메일과 웹 검색이 보통 사람들의 생활 깊숙이 자리잡고 있다. RIM사의 블랙베리는 이메일을 손안으로 가져다 주었다. 또한 광범위하게 구축된 무선랜 환경은 통화료에 대한 부담을 떨어 버렸다. 아이튠스는 최대의 디지털 음악 유통 시장이 되었고 유튜브에서는 전세계인들의 동영상이 소통된다.

소셜네트워크와 스마트폰의 시너지

여기에 화룡점정을 한 것이 소셜 네트워크다. 우리 나라에서도 정체 상태를 보이던 트위터 가입자가 아이폰 출시를 계기로 성장세를 탄 것만 봐도 소셜 네트워크와 스마트폰의 연관 관계를 엿볼 수 있다. 사용자의 위치를 감지할 수 있는 스마트폰에서 소셜 네트워크와 연관된 애플리케이션이 속속 나온다. 각종 기술과 콘텐츠가 엄청난 시너지를 발휘하는 현장인 것이다.

향후 5-10년은 컨버전스 시대다. 컨버전스는 스마트폰에 국한되지 않는다. 오히려 거대 사업 영역인 유무선 전화와 TV가 일개 인터넷 서비스 정도로 위축되는 양상이다. 고정 통신 채널을 장악한 인프라만으로 시장 지배력을 유지하던 시대는 종언을 고하고 있다. 이제는 양질의 콘텐츠를 누가 어떤 형태로 제공하느냐가 사업의 승부처가 되었다.


이런 변화를 논의하면서 기술력이 뒤진 것만 한탄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 산업 시대에는 기술이 격차를 일으키는 주요 요소였기에 그런 생각을 하는 것도 당연하다. 그러나, 설사 R&D에 집중 투자해서 기술을 따라갔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될 수 있을까? 비교적 목표가 명확하고 기술 극복이 열쇠인 반도체나 제약같은 분야는 가능하다.

우리가 고민해야 하는 것은

그러나, 소프트웨어는 다르다. 한마디로 소프트웨어는 역동적으로 변하기 때문에 하드웨어 마인드로 접근하면 기술적 포인트도 파악하기도 어렵다. 이를테면 앞으로 5년 뒤에 스마트폰의 소프트웨어 플랫폼을 정확히 예측할 수 있는가? 기술이 좋다고 해서만 결정되는게 아니지 않은가? 좋은 기술을 개발하는 것과 더불어 자신의 생태계를 구성하기 위해 부지런히 소통하고 같은 편을 확보해야 한다. 아울러 여기에 창의적 서비스를 엮어낼 수 있는 아이디어와 소프트 마인드가 없다면 헛수고할 수 있다.

또한 주위를 보면 의외로 좋은 기술이 오래 전부터 많이 준비된 것임을 발견하게 된다. 이를테면 패턴 인식, 인공지능, 감지 기술 등이다. 이미 이런 기술들이 유기적으로 연동이 되어 유용한 애플리케이션이 많이 나오는 것을 우리는 현장에서 목격하고 있다. 결국 이러한 기술을 어떻게 적용해서 가치를 만들어 내느냐가 관건이다. 

정작 우리가 심각하게 걱정해야 하는 것은 뒤떨어진 비즈니스 플랫폼이다. 클라우드, 소셜 네트워크, 스마트폰과 같은 패러다임은 이미 전세계에서 통용되는 대표적 패러다임이다. 그런데, 우리는 그 기반이 되는 소프트웨어 생태계부터 걱정해야 하는 처지다.

창의적인 사업 모델이 장려되고 소규모 기업이 대등하게 사업할 수 있는 기본 환경부터 차근차근 조성해야 한다. 그런 기반이 갖추어져야 소프트웨어와 콘텐츠가 융성할 수 있다. 우리의 문화 코드와 라이프 스타일에 적합한 참신한 아이디어가 꽃을 피울 날이 오기를 고대한다.


                                                                       (전자신문 미래포럼 기고를 일부 보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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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랩 CEO로서 신사옥 착공이 갖는 의미는?

CEO 칼럼 2009.11.22 07:14

안철수연구소의 CEO가 되고 나서 크고 작은 각종 프로젝트와 사업에 관여하게 되었다. 그 중에서 전혀 다른 분야가 있었으니 판교에 사옥을 만드는 프로젝트다. 한평생 IT에 종사했던 나로서는 모든 내용이 생소했다. 건설업계는 IT와는 분야도 완전히 다르지 않은가? 게다가 IT 기업으로서 거래되던 규모와는 차원이 다른 자금이 동원된다.

 

공사장 전경 (1)

공사장 전경 (2)

이미 부지 선정에서 기초 작업들은 잘 준비되어 있었다. 그렇다 하더라도 나의 CEO 임기 중에 조감도 확정, 시공사 선정, 착공에서 실제 건설이 모두 이루어져야 한다. 건물을 완공하고 들어섰을 때에 이 건물에 입주하는 직원은 물론 방문하는 분들이 이 건물에 대해 어떤 인상을 가지게 될까 하는 생각을 하면 많은 부담과 책임감을 가지게 된다. 나의 인생에 있어 예상하지 않았던 작품 중의 하나가 되는 것이다.

사옥 내역을 설명하는 장면

현관의 대리석, 천장 및 바닥재, 레이아웃 등 크고 작은 결정을 앞에 놓고서 아무래도 공부를 해야 하겠다는 생각에 아예 날을 잡아서 벤치마킹할만한 건물들을 돌아다녀 보았다. 평소에 많은 건물을 드나들었지만 사옥을 짓는다는 생각에서 전혀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니 각 건물들의 철학과 가치를 느낄 수 있었다.

여러 건물을 돌아 다니다 보니 의외로 서울 시내에 진정한 사옥으로 설계한 건물이 별로 없다는 실상을 깨달았다
. 부동산이나 임대 수입에 목적을 둔 건물은 사옥과 판이하게 달랐다. 우리의 사옥은 직원들이 사용할 공간이다. 또한 우리 회사는 연구소가 주축이고 24시간 깨어 있어야 하는 장소다. 그래서 직원들이 일하기 좋은 환경, 안철수연구소가 오랜 기간 자리 잡을 장소를 만드는 것이 최우선 목표가 되었다. 일단 그렇게 원칙을 세우고 나니 의외로 많은 결정들은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공정성과 투명성에 원칙을 둔 선정 과정

안철수 의장과 쏠리테크 사장과의 환담

7.7
디도스 대란으로 정신 없이 바쁘게 뛰던 7월 달에 최종 시공자를 결정했다. 건설 규모가 대형빌딩에 비해 그다지 크지 않다고 스스로 생각하고 있었음에도 의외로 많은 건설사가 적극적으로 참여해서 치열한 경쟁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안철수연구소의 브랜드 가치와 현금 안정성 때문에 수익을 떠나서 의미가 크다는 얘기를 공공연하게 한다.

어떻게 보면 영업적 멘트일 수도 있고 경제가 안 좋은 상황이라 더 그럴 수도 있다. 어쨌든 수주전이 치열하다 보니 부담도 되었고 또다른 시험이라는 판단에서 중심을 잡아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일단 최우선 원칙을
투명하고 공정한 선정 과정에 두었다. 안철수연구소의 이름을 걸고 깨끗한 선례를 만들겠다는 목표를 설정했다.

어느 탈락한 기업으로부터
떨어지기는 했지만 과정이 워낙 깨끗해서 기분이 찝찝하지 않다라는 얘기를 전해 듣고 나서, 소기의 목적은 이루었다고 자부심을 가진다. 영업을 위해 여러 채널을 동원해서 우리 회사에 접근하다가 오히려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는 얘기가 공공연하게 건설업계에 떠돌았다고 한다. 그래서, 선정 과정이 투명하고 공정해야 실력에 초점을 맞출 수가 있었다. 시작이 깨끗해야 그 다음에 후탈이 없게 된다.

 

안철수연구소 신사옥을 짓는 첫 삽을 뜨면서

드디어 지난 주에 착공식이 있었다
. 땅을 둘러보면서 아 이 곳에 우리의 둥지를 트겠구나하는 생각에 가슴이 벅차 올랐다. 착공식이라는 행사에 처음 간 나로서는 모든 것이 생소했다. 테이프 커팅, 시삽을 하면서 바로 옆에 서 계신 안철수 의장이 많은 행사에 가 보았지만 우리가 주인인 것은 처음이네요라며 감회에 젖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테이프커팅

시삽


‘벤처 기업이라는 말이 나오기도 전인 시절, 서초의 작은 사무실에서의 3명의 출발은 무모한 도전이었습니다. 당시 외부 환경은 마치 지금 이곳처럼 춥고 메마른 바람이 부는 황량한 벌판과도 같았습니다. 그렇게 불모지와 다른 없는 척박한 환경에서 불확실한 미래의 위험을 안고 첫 발을 내딛은 안철수연구소가 성공과 도약을 거듭해 오늘 자신의 사옥을 짓게 되었습니다고 과거를 잠시 회상한 뒤 이 사옥은 글로벌 기업으로서 도약하는 안철수연구소의 모태가 될 것이라는 의지를 천명하면서 연설을 마쳤다.
(연설 전문 http://blog.ahnlab.com/ahnlab/736)

마침 추운 날씨에도 많은 직원들이 참석해서 높은 관심을 나타냈다. 사실 여의도에서 판교로 움직이게 되면 삶의 공간을 옮겨야 할 직원들이 많다. 그런 점에서 단순히 사무실을 이동하는 그런 단순한 문제가 아니라 임직원의 가족까지 관련된 2년 프로젝트다.


판교 테크노밸리의 랜드마크가 되기를 기대하며

많은 기업들이 사옥에 입주하면서 운명이 두 갈래로 바뀐다고 한다. 도약의 발판을 마련해서 비상(飛上)하거나 무리한 자금 동원과 초점을 잃은 사업으로 추락한다고 한다. 안철수연구소는 부동산이나 원칙에 어긋는 사업은 아예 고려하지 않을 것이므로 후자가 될 가능성은 적다. 그러나, 신사옥에 둥지를 틀어서 도약하기 위해서는 더욱 각고(刻苦)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직원들과 함께


작년에 CEO가 되고 나서 금년도에 많은 씨를 뿌리기 시작했다. 앞으로 3-5년 내에 많은 신사업과 프로젝트의 결실을 기대하고 있다. 신사옥에 입주하는 2년 뒤에는 가시적인 부분이 구체화된다. 그런 점에서 판교 신사옥은 안철수연구소의 성장 발판을 다지는 시점과 같은 시대를 걷게 된다. 다시 한번 경영에 대한 의지를 불태우게 된다.

이 건물이 안철수연구소의 마지막 건물이 아닌 첫 건물이 되었으면 좋겠네요”라는 설립자 안철수 박사의 기대감은 CEO인 나의 목표이자 우리 임직원들의 목표이기도 하다. 안철수연구소의 새로운 모멘텀인 판교 신사옥의 주춧돌을 놓는 소임을 담당하게 된 것도 나에게는 큰 행운이다. 이 사옥이 판교 테크노밸리의 랜드마크가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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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서가 사라지는 미국, 택시에서 황당 사건 (휴먼서비스가 경쟁력)

Global View 2009.08.24 11:38

미국 출장 시에 어떤 회사를 방문할 때에 일어난 해프닝이다. 대도시였기 때문에 렌터카를 빌리지 않고 택시로 이동하려고 했다. 택시 운전사는 길을 잘 모르겠다며 그 회사에 전화를 했다. 기계로부터 자동 응답이 나왔다. 계속 몇 번 지시에 따라 버튼을 누르다가, 웬지 이 운전사가 갑자기 전화를 집어 던지면서 제기랄(Damn It)! 이러니까 미국이 망하고 있지!”라고 하지 않는가?

 

왜 그러느냐고 물으니 몇 번 어떻게 누르라고 하더니, 결국 회사 내부에서 아무도 전화를 당겨 받지 않으니까 초기 메뉴로 돌아갔다라며, “도대체 외부에서 길 하나 물어 보려고 하는데 이렇게 불편해서 어쩌란 말인가?”라며 투덜거렸다. “미국에서 서비스는 기대하기 어려운 단어가 되었다라며 그 이후 내내 미국의 문제점을 10분 이상 토로하는 것을 들어준 기억이 있다.

 

커뮤니케이션의 윤활제 역할 비서(Secretary)

 

15년 전 내가 미국 회사에 근무할 시절에는 모든 직원들의 전화를 받아 주는 비서가 있었다. 회사 직원들에게 걸려오는 전화를 확인 후 연결해 주는 형태였는데, 내 전화를 받아 주던 비서는 아주 나이도 많고 친절한 할머니였다. 그 분은 돈도 아주 많아서 나는 꿈도 못 꾸는 동네에서 살고 있었는데, 소일거리로 회사에 나와서 전화도 받고 안내도 했다.

 

아무리 비서라도 어머니 연배가 되는 분에게 이것 저것 지시하자니 불편하기 그지없었다. 하도 미안해서 내가 직접 복사를 하려고 하면, 이건 내가 여기에 있는 이유(That’s why I am here)”라며 친절하게 내 서류를 가져 가곤 했다. 물론 이 분이 유난히 친절한 성격이기도 했지만, 회사에서 이 분의 역할은 아주 유용했다. 게다가 웬만한 고객이나 파트너의 목소리를 전화를 통해 잘 알고 있어, 그들에게서 전화가 오면 사적인 농담과 인사를 몇 분 하고 나서 나에게 전화를 넘겨준 적도 허다했다.
 

무엇보다 전화 연결에 있어서는 아주 편리했다. 당시는 휴대폰이 보편적으로 사용되기 전이라서, 대부분의 통화는 안내를 통해 이루어졌다. 지역이 넓어서 서로 만나기가 힘이 든 미국에서의 비즈니스는 대부분 전화와 이메일로 진행된다. 그럴 때마다 전화 메시지 전달, 전화 컨퍼런스 연결, 불필요한 통화 차단 등의 비서 업무는 아주 효율적이다. 오죽하면 미국 사회에서 비서의 날(Secretary's Day)이 있을까?

 

그런데, 서서히 안내 전화가 자동 응답기로 바뀌더니, 이제는 대부분의 회사가 아예 음성 안내(Voice Mail)로 대체해 버렸다. 한국에서도 많이 도입되었지만, 그 용도가 주로 안내로 연결되기 전에 방향을 잡아 주는 수준이다. 그런데, 미국에서는 아예 비서를 대체해 버렸다. 문제는 지극히 개인적이고 조직 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미국인들이 자기와 관련없는 전화를 구태여 잘 받으려고 하지 않는 다는 점이다. 적절한 전화 예절도 교육받은 적이 없다.

아무리 비서를 고용하는데 드는 비용이 만만치 않더라도, 절약이라는 명분 속에 놓치는 것은 없는지 생각해 볼 만하다. 오히려 인간적 커뮤니케이션의 상실로 중요한 기회를 놓치는 것은 아닐까? 물론 대부분의 업무는 휴대폰과 블랙베리, 이메일로 충분한데 웬 구석기 시대 얘기를 하느냐고 할 지 모른다. 그러나, 이런 도구는 본래 알고 지내는 사람들에게는 편리하지만, 새롭게 접근하려는, 혹은 오랫만에 연결되려는 이들에게는 불편하기 그지없다. 신기술을 일반인들이 수용하기까지 들어가는 절대적 시간도 필요하다.

 

애프터 서비스를 받기 힘든 미국 제품

 

미국에서 제품을 구매하고 나서 서비스를 받기 위해 전화하는 것은 골치거리다. 미국 표현에 의하면 소위 ‘골칫덩이(pain in the ass)’이다. 물론 어느 지역에 있든지 무료로 전화할 수 있는 번호 (Toll-free Number)는 있다. 그러나, 일단 전화를 해서 안내원과 직접 연결되는 것은 언감생심이다.


미국 제품의 안내를 하는 자동 응답 내용을 곰곰히 들어 본 적이 있다
. 그랬더니 자신들에게 도움이 되는 것은 선택하기 쉽게 해 놓고, 자신들이 지원해야 하는 항목은 아주 찾기 어렵게, 그것도 몇 단계를 거쳐서 찾게 되어 있었다. 자신들의 이익(profit)에 결부되는 항목은 찾기 쉽게, 비용(cost)에 해당하는 것은 찾기 어렵게 잘 설계된 시나리오였다. 비즈니스 적으로는 교활할 정도로 이익에 맞게 구성되었다고 자랑할지 모르지만, 중요한 고객의 마음을 잃고 있다는 점에서는 빵점이라는 생각이 든다.

 

안철수연구소 고객지원팀의 전문 상담원


소프트웨어 서비스 품질의 차별화

우리 나라에서도 서비스 품질에 대한 불만은 많지만 미국과 비교하면 천양지차이다. 우리 회사 고객 지원센터로 걸려오는 전화의 반 이상은 우리 제품과 관련 없는 항목이다. 물론 PC의 증상을 보고 원인을 정확하게 알 수 없는 이유도 있지만, PC용 외국 소프트웨어에 대해 지원을 받기 어려워서, 연결이 잘 되는 우리 고객 센터로 전화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래도 우리에게는 소중한 고객이라서, 비용보다 고객 응답 속도가 경영 평가의 가장 최우선 항목이다.

 

때로는 계약에 없는 사항인데도 고객이 부르면 바로 달려 가야 하는 우리의 문화는 불공평하기까지 하다. 그래도, 미국의 사라져가는 인간적 터치를 우리의 서비스 정신으로 매꿀 수 있다면, 먹혀 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해외 시장에 진출하면서, 서비스가 중요한 차별점이 될 수 있다는 나의 생각은 너무 순진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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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연구소 CEO가 바라 본 DDoS 대란 (1)

보안 이야기 2009.07.15 11:30

마치 쓰나미가 밀려왔던 것처럼 DDoS 대란은 우리를 몰아쳤다. 주말의 대응 체제를 마무리하고 나서 기자 회견과 내부적인 마무리를 하고 나니, 순간 기가 쭉 빠져 나가는 느낌이었다. 집으로 돌아오면서 운전하는데 여러 생각에 혼란스러웠다.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한 탓에 피곤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음에도 잠이 오지 않았다.

 

일본 출장 중에 이 소식을 접하게 되었고, 비행기를 타고 오는 내내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수요일 오후에 귀국해서 회사로 돌아오는 도중 모 일간지 기자와 전화 인터뷰를 하면서 나의 DDoS 여정은 시작되었다.


신속한 정보 공유가 위기에 대응하는 핵심


국민적 관심사이다 보니 회사가 많은 언론에 노출되는 계기가 되었다
. 나는 개인적으로 TV 방송 인터뷰를 아주 싫어한다. 짧은 몇 초의 시간에 적합한 말을 찾아 표현하는 것은 스트레스 받는 일이다. 그러니, TV 인터뷰를 하고 나면 항상 찝찝하다. 게다가 피곤해서 푸석푸석한 얼굴을 TV에 내보이는 것도 유쾌하지는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보를 정확히 알리고 추가 피해를 막는 것이, 더 나아가 보안 인식이 개선되도록 알리는게 보안업체 CEO인 나의 소임이라고 항상 생각해 왔기에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다. 이런 위기일수록 침착하고 명확한 커뮤니케이션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게 여러 번의 사고로 얻은 교훈이다. 모든 위기 대응의 기본이 신속한 정보 공유가 핵심이라는 것은 역시 진리에 가깝다.

 

이번 DDoS 공격에 대응하느라 연구원들을 비롯한 전직원들이 잠도 못자고 밥도 제대로 먹을 시간이 없었다. 게다가 밀려드는 국내외 언론들의 취재 요청을 소화하기도 힘들었다. 이번 대란 기간 내내 수많은 취재 요청으로 회사가 북새통이었으나 언론의 사명도 이해하기에 가능한 언론 요청에 응대를 했다. 한번은 방송통신위원회에 회의를 하러 갔다가 기자 브리핑 룸에 끌려 내려가기도 했다. 그 곳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몇 가지 답했던 장면이 9 TV 뉴스에 톱으로 나왔다는 사실을 듣고 적지 않게 당황했다. 어쨌든 내 생애에 그렇게 짧은 시간에 가장 많은 언론 인터뷰를 한 적은 없었다.

 



연일 역시 안철수연구소라는 칭찬 일색이었다. 물론 안철수연구소의 직원들은 자기 희생을 무릅쓰고 열심히 했다. 어떤 직원이 우리가 마지막 공격을 예측한 것을 보고 우리 스스로의 실력에 뿌듯했다고 하는데, 나도 같은 기분이었다. CNN 인터뷰에서 앵커가 그렇게 빨리 해독한 것에 대해 가장 신기해 했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스스로 일을 찾아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직원들을 보면서, 이들과 같이 일한다는데 무한한 자부심을 느낀다.
 
 

정부의 전문가들에 대한 인색한 평가

 

그러나, 한편으로 마음이 무거웠다. 실제로 정부 기관에 있는 전문가들, 특히 국정원과 한국정보보호진흥원의 직원들도 밤새 우리처럼 열정을 바쳤음에도 정반대의 평가, 오히려 지탄을 받는데 대해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었다. 악성코드가 마지막으로 파일을 파괴한다는 것을 밝힌 것은 우리였지만, 그것이 12시일 수 있다는 단서를 제공한 것은 국가사이버안전센터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대적으로 정부 기관이 비판을 받는 것은 아마 세금을 받는 국가 공무원들에 대한 잣대가 민간기업과는 다름을 인식할 수 있다. 어쨌든 주어진 상황에서 음지에서 최선을 다했던 정부 기관의 보안 담당 전문가들에게도 격려의 박수를 보낸다. 적어도 우리는 그들의 수고를 안다. 이번 사태로 나타난 조직 구성과 프로세스와 같은 구조적 문제점에 집중해야 우리가 진정한 해결책을 얻을 수 있다.

 

사실 일반 사용자의 PC가 해커의 무기로서 사용된다는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이런 형태의 DDoS 공격과 금전을 목적으로 한 사이버 범죄는 IT 현장에서 비일비재로 발생하곤 한다. 보안전문가에게는 매일 매시간이 전쟁 그 자체다. 몇 년 전부터 현장에서 이를 피부로 느끼기에 현재의 위협과 공격 양상은 너무나도 심각하다고 수차 경고해 왔다. 정보 보안 분야에 종사한지 꽤 오래되었지만, 지금처럼 위험한 불구덩이 가운데 산 적은 없었다.

 


우리는 어떤 사고가 터지면 들썩거리곤 한다. CIH 바이러스 사고가 났을 때, 1.25 대란이 터졌을 때, 개인정보유출 문제가 불거졌을 때 많은 이들의 보안 인식이 바뀔 것으로 기대했다. 2000년 초에 세계를 휩쓴 DDoS 공격은 TV에서 톱뉴스에 정보 보안이 등장하는 계기였고 100개가 넘는 보안 업체가 생길 정도로 거품이 심했다. 그 외에도 크고 작은 사고는 빈번히 발생했다. 그러나, 보안 대책과 투자, 그리고 사용자의 인식은 항상 크게 부족했고 이번에도 보기 좋게 당했다. 이런 사건이 한번 휩쓸고 나면 허탈감에 빠지곤 하는데, 이번도 예외는 아니었다.

사태의 본질을 인식하고 실질적 대책을 실행해야

남의 속도 모르는 이들은 "보안업체는 이런 사고가 펑펑 터져야 좋은 것 아니야?"하고 부러움의 눈길을 보낸다
. 주가도 상종가를 치고, 주문도 크게 늘것 같고, 속된 말로 언론에서도 뜨고  주가 문제는 단기적인 관심에 그칠 뿐이었고, 실제 비약적인 매출 상승을 경험한 적은 별로 없다. 만일 그랬다면 왜 보안업체들이 이렇게도 열악한 상황이며, 뛰어난 인재들이 보안 업계를 떠나겠는가? 또한 3자의 눈에는 언론에 비치는 모습만 보면 부럽게 보일 수도 있다. 솔직히 아무것도 모르던 젊은 사업가 시절 그런 기분에 우쭐하기도 했던 못난 나를 발견하게 되니까.

그러나, 정보 보안에 15년 가까이 몸담아 온, 소위 보안 1세대라고 불리우는 나에게는 이런 들썩거림이 결코 즐겁지가 않다. 여러 번 같은 말을 해도 반영이 안 되고 또다시 사건이 발생하게 되면 착잡한 기분밖에 들지 않는다. 보안의 중요성을 알리기 위해 여러 곳에서 발표를 통해 실상을 알리고, 회의도 셀 수 없을 정도로 참여하고, 직원들과 머리를 싸매고 연구해온 결과가 이렇게 나타나니 참담한 심정이다.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는 무력감이 나의 지금의 심정을 나타내는 가장 적합한 표현이다.

 


사고가 터지면 문제의 근본적 원인은 외면한 채, 피상적인 면만 보고 시끄럽다가 잠잠해지곤 했다. 이번 사건 과정에서도 여러 사람, 특히 기자와 정부 관계자들을 만나다 보니 문득 떠오르는 장면이 있다. 나는 가만히 앉아서 같은 말을 하고 있는데, 마치 내 앞에 앉은 분들이 계속 파노라마처럼 바뀌어가는 광경이 전개되는 느낌이다. 그들은 보안 담당을 길어야 2-3년 할 뿐이다. 담당자가 바뀌어 새로운 이들이 오면 무엇이 문제인지 다시 쉽게 설명해 주어야 하고, 그들이 알만 하면 다시 떠나곤 했다.
 

정보 보안에서 무엇이 중요하고 왜 사고가 나는지에 대한 나의 견해는 크게 바뀐 적이 없다. 내가 아니라 정보 보안에 오랜 기간 종사한 분들은 대체로 비슷한 말을 할 것이다. 그러나, 그 말은 듣는 이들을 통해 깊숙이 우리 사회와 문화 속으로 스며드는 것이 아니라, 일부는 씨를 뿌리고 대부분은 연기처럼 날아갔다. 결국 문제의 본질을 정확하게 파악해서 중심을 가지고 실행(execution)을 해야 하는데 항상 논의 과정에서 수그러들었다. 

과거의 경험에 비추어 아마 이번에도 크게 다르지도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미 너도나도 소리 높이던 분위기가 한풀 꺽이는 것을 감지할 수 있다. 제발 이제는 악순환의 고리가 끊어졌으면 한다.


(다음에 이어서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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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연구소 CTO로서의 첫 당부사항 공개 (2)

경영 이야기 2009.06.21 13:37
(전회에 이어)
지난 2008년 2월 CTO가 된 후에 직원들에게 보낸 메시지입니다. 그 동안 많은 변화가 이루어졌고 아직도 연구개발, 조직문화, 해외사업 등 여러 분야에서 다양한 혁신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지금은 CEO이지만 당시 CTO 시기에 직원들에게 보낸 메시지가 다른 분들에게도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에서 공개해 드립니다.

안철수연구소 CTO가 된 후 첫 메시지 공개 (1) [첫편 링크]

3. 당부사항

 

저는 개인적으로 "꿈을 꿀 수 있고 실현하고자 하는 의지를 갖춘 하드워커(hard-worker)"를 좋아합니다. Hard-worker라 함은 회사에 오래 앉아 있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열정적으로 일에 몰입할 수 있는, 끊임없이 의지를 불태우는 사람을 말합니다. 물론 여러분이 제가 좋아하는 사람이 되기를 강요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제 오랜 경험으로는 이런 분들이 보람과 행복을 많이 가져가는 것을 목격했습니다.

 

젊음, 결코 다시 돌아오지 않습니다. 이 시간을 소중하고 값지게 보냅시다. 실패도 훈련이고 좌절도 훈련입니다. 그러나, 시도도 해 보지 않은 시간은 무의미할 뿐입니다. 구글(Google)에서는 나이스(nice)하게 실패하는 것을 장려한다고 합니다 (Google encourages to fail nicely). 그만큼 창의적인 노력을 최대의 가치로 둔다는 점입니다. 꿈을 이루어가는 우리가 되었으면 합니다.

 

몇 가지 첨언하면,

1) 스스로 일류가 되도록
 
노력합시다

 

우리의 영역을 국경이 지켜주지 못합니다. 글로벌하게 하나의 시장이 되어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경쟁 상대는 한국 내의 다른 기업에 있는 친구나 선후배들이 아닙니다. 구글(Google), 시만텍(Symantec), 마이크로소프트(Microsoft)에서 일하는 사람들입니다. 실리콘밸리에서, 인도에서, 중국에서, 러시아에서 우리의 경쟁자들은 꿈을 불태우고 실력을 연마하고 있습니다. 저도 그 회사의 CTO와 경쟁해야 하고, 팀장들은 그 회사의 팀장들과기술자들은 그 회사의 기술자들과, 마케터는 그 회사의 마케터를 경쟁 상대로 삼아야 합니다여러분 각자가 일류가 되어야 안철수연구소가 일류기업이 됩니다. 일류가 되는 시간을 단축하기 위해서 안철수연구소의 동료들로부터 배웁시다. 저도 여러분들의 경험과 전문성을 열심히 배우겠습니다.

 

2) 자기의 제품과 서비스에 자신감(confidence)을 가집시다.

 

저는 지는 것을 아주 싫어합니다. 안철수연구소의 제품과 서비스가 타사보다 못하다는 얘기는 듣고 싶지 않습니다. 프라이드(Pride)가 없는 제품을 만들 생각을 하지 마십시오. 과거에 어떻게 했든 모두 잊어 버리고, 이제부터 우리가 만드는 제품과 서비스는 '명품'을 만든다는 각오로 정성을 기울여야 합니다. 남들이 하는 것 흉내내지 말고, 고객이 찡할 수 있는 가치를 전달(delivery)합시다.

 

3) 완벽을 기합시다.

 

안철수연구소의 최대 가치는 믿음과 신뢰입니다. '보안'업체이기 때문에 고객들이 믿는 것이고, 깨끗하고 투명한 기업 문화 덕택에 신뢰를 받습니다. 우리는 그에 보답하는 치밀함과 섬세함이 필요합니다. 아무리 사소한 문제라도 남에게 던지지 마십시오. 누군가 챙기겠지 하지 마시고, 여러분의 손끝에서 고객이 사용할 제품과 서비스가 탄생한다는 마음가짐으로 한번 더 파이널 터치(final touch)를 하십시오. 여러분의 노력 덕택에 고객은 편안하게 사용할 수 있고, 그 모습에서 희열을 느끼십시오. 

 

다시 한번 같이 일하게 된 계기를 소중하게 생각합니다. 저와 언제라도 대화를 원하시면 제 문은 항상 열려 있고, 이메일이든 메신저이든 환영합니다. 여러분이 신나게 일할 수 있는 것이라면, 최선을 다해서 돕겠습니다.

 

일부 부서는 오늘부터 주말 기간에 이사를 준비하느라 바쁘시겠습니다. 편안한 주말 보내시고 월요일 아침부터는 새로운 각오로 재미있게 일해 봅시다. 10층에서 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 김홍선


이 메시지 하나로 기업 문화가 하루 아침에 바뀌기는 힘들겠지만, 적어도 나는 이런 변화가 필요하다고 확신했고, 현재도 그런 원칙으로 경영에 임해왔다. 나는 조직의 관료화는 반드시 도려내야 할 암적인 존재라고 생각한다.

회의 문화가 첫번째 개혁 대상이었다. 우선 내가 주재하는 회의 시간을 30분으로 조정하고, 준비 자료는 3 페이지가 넘지 않도록 했다. 절대로 파워포인트 잘 만드느라 시간 낭비하지 않도록 당부하며.. 그 후 안철수연구소에는 회의실마다 다음 그림과 같은 표어와 시계가 비치되어 있다. 


굳이 여러 부서가 다함께 모여야 하는 안건을 제외하고는 직원들의 자리에서 선 채로 바로바로 결정이 되도록 유도했다. 나는 직원들을 사무실로 불러서 보고받는 스타일을 좋아하지 않는다. 사무실에 돌아다니면서 실무자의 자리에서 서서 결정하는게 가장 정확할 수 있다. 그래서인지, 항상 모자랐던 회의실이 지금은 여유가 있다. 점차 회의실 공간을 더 효율적인 방안으로 활용하고 있다. 

안철수연구소는 고객으로부터 외면을 받고 불평을 들었던 이유를 처절하게 깨달아야 했다. 나는 고객을 모르는 엔지니어는 프로가 아니라는 철학을 가지고 있다. 직장은 자기가 원하는 것을 만들어 자족하는, 그런 취미 생활하는 곳이 아니다. 

한편 연구개발(R&D) 직원들도 현장의 고객 사이트로 나가도록 독려했다. 영업부에서는 R&D의 반발이 클 것이라고 우려를 표명했지만, '자신이 만든 제품이나 기술을 다른 사람이 사용하는 것을 보았을 때의 기쁨' [관련 블로그 링크]을 느낄 줄 알아야 진정한 엔지니어라는 내 소신을 바꾸지 않았다. 내가 만난 톱클래스 엔지니어들은 모두가 고객의 목소리에 적극 귀를 기울이는 자세를 가졌다.


아직도 안철수연구소의 개혁은 진행형이며, 앞으로 영원한 미래형이 될 것이다. 안랩의 핵심가치를 직원들이 체화(體化)시키면서 세계 시장에서 실력으로 승부하겠다는, 아니 해야만 한다는 현실을 철저히 깨달을 깨닫도록 계속 매진해야 한다. 

내가 얼마나 안철수연구소의 CEO로 있을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적어도 CEO로 있는 동안 CTO로서 보낸 첫 메시지를 간직하며 살 것이다. 안랩을 글로벌하게 성공한 기업으로 만들고 싶다는 나의 소망을 이루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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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연구소 CTO가 된 후 첫 메시지 공개 (1)

경영 이야기 2009.06.20 15:39

내가 안철수연구소에서 임원진으로 선임된 것은 작년(2008년) 2월이다. 안철수연구소는 조직이 커지면서 비대화, 관료화의 성장통을 앓고 있었다. 매출 구조는 V3 위주에 머물러 있는 상황에서 신제품 사업과 새로운 수익원 발굴이 부진했고, 대표 제품 V3의 경쟁력도 흔들리고 있었다. 특히 고객이 많아지면서 고객과 멀어지게 되는 심각한 문제점이 드러나고 있었다.

설상가상으로 바로 외국산 엔진을 수입해 한글 포장만 해서 무료로 무차별하게 배포하는 새로운 풍속도가 나오면서, 혼란에 빠진 V3 사업도 재정립이 필요했다. 해킹과 악성코드는 급증하는 상황에서, 정작 중요한 정보 보안이 본질을 벗어나 마케팅 용도로 전락해갔다. 안철수 박사가 지적한 바와 같이 정보 보안의 생명인 '사명감'보다 돈벌이로 비추어지는 현실이 안타까웠다. 어쨌든 정보 보안 기업의 대표로서 책임감있는 실력을 보여 줌과 동시에 성장 엔진을 만들어야 할 과제가 눈 앞에 있었다.

(그 이후 연구개발에 집중한 결과 V3 경쟁력 전반에서 변화와 발전의 전환점을 맞이했다. 고객과 시장의 요구에 맞는 신개념의 V3 신제품의 연구 개발에 주력한 결과, 작년 하반기부터 올해 상반기까지 계속적인 신제품 출시를 하고 있다. 아울러 신기술 개발, 조직문화, 해외수출 등 전반에 큰 변화를 도모하고 있다.)

올해 4월말 세계 최경량 신개념의 통합백신 V3 IS 8.0 발표


무엇보다 내부적으로 혁신적인 변화와 신속한 실행 문화가 절실했다. 지난해 초반 당시에 백신 위주 사업에 안주해왔던 기업 분위기는 위기 상태였다고 진단했다. (지난해 10월 CEO가 된 이후에도 지금까지 위기경영의 기조는 계속 유지되고 있다. 내 기준에는 여전히 위기 상태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경영 속도와 체질 개선을 위해 경영체제를 CEO / CTO / CLO 구조로 바꾸고, 전체 조직을 5 계층(tier) 구조에서 3 계층(tier) 구조의 신속한 의사결정 체제로 바꾸었다. 또한 스태프 조직은 과감히 제거하거나 군살을 크게 줄이는  큰 수술이 시작되었다.

당시 연구소, 악성코드 분석센터(ASEC), 제품 기획, 인터넷 사업을 포함해서 12개 팀, 300명 이상의 인원을 담당한 CTO의 중책을 맡은 나로서는, 이 변화를 이끌기 위해 어떻게 직원들과의 소통해야 할  지에 대해 많은 고민을 했다. 

다음 메시지는 2008년 2월 22일 CTO로서 직원들에게 보낸 첫 메일로서 당시 변화의 당위성을 설득하고자 하는 나의 고민을 담고 있다
. 그 이후 안철수연구소의 변화 과정과 앞으로의 행보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까하여 여기에 게재한다. (내용이 길어서 2회에 걸쳐서 내 보낸다.)

직원 여러분,

 

CTO로서 여러분들과 같이 꿈을 이루어나갈 김홍선입니다. 여러분과 같이 일하게 된 것을 무척 기쁘게 생각합니다. 저에 대해서 잘 모르시는 분들도 있겠지만, 앞으로 같이 생활하면서 알게 될 기회가 많을 겁니다. 몇 가지 저의 생각을 공유하고자 합니다.

1. 운영 철학

       

1) Fun - '재미있게 일하자'입니다. 비즈니스 마인드(Business mind)로 일할 때, 오너쉽을 가지고 일할 때 가장 재미 있습니다즐겁게 일을 찾아서 하는 태도(attitude)로 일 자체에서 재미를 만끽하는 문화를 만들어 갑시다.

2) Creativity - 창의력은 기업과 개인을 위해서 가장 가치가 큰 일입니다. 꿈을 꾸는데 제한을 두지 마십시오. 우리의 아이디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수많은 방법이 있습니다. (자체 구현, M&A, Alliance ). '보안'으로만 국한하지도 마십시오. 꿈을 만들어가는데 우리의 비젼이 있습니다.

3) Innovation - 모든 것은 혁신(innovation)의 대상입니다. 제품 혁신(Product innovation), 기술 혁신(Technology innovation), 프로세스 혁신(Process innovation) 등. 프로세스와 규정은 우리가 합리적으로 일하기 위한 도구일 뿐입니다. 시대에 안 맞고, 우리 환경에 안 맞고, 우리가 일하는데 방해가 되면 과감히 개혁해야 합니다.  혁신(innovation) 창의성(creativity)이 합쳐질 때 차별화의 길이 보입니다.

 

2. 조직 변화에 대해

 

이번 조직 변화에 어떤 분들은 너무 성급하게 추진해서 부작용이 있지 않을까 우려를 하더군요. 본래 이런 구조적 개혁은 전광석화처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본래의 정신에 맞게 정착할 수 있습니다. 짧은 시간이지만 치밀한 업무 분석과 자원 배치가 고려되었습니다. 그리고, 시장 변화에 맞추어, 여러분들의 니즈에 맞추어 유연(flexible)하게 운영할 겁니다. 절대로 고정된 개념으로 받아들이지 마십시오.

 

금번 조직의 정신은 역동적인 변화 의지입니다. 외부 시장은 크게 요동치고 있고 환경 변화가 극심합니다. 개방화되는 사회, 글로벌 대기업의 무차별 확장, 개인화로 인한 고객 니즈의 다양성 등. 사회 어느 위치에 있든지 빨리 변화할 수 있고 적응할 수 없으면 도태될 수 밖에 없습니다. 항상 위기는 기회가 같이 옵니다. 우리에게는 무한한 가능성도 열리는 시대인 것입니다. 안철수연구소가 앞서 이런 변화를 추진한다고 생각하십시오. (이미 글로벌 기업들은 이런 변화를 앞서 수행하고 있습니다).
 

이번 조직 변화를 통해 슬림화된 구조를 느끼실 겁니다. 무엇보다 커뮤니케이션 채널이 급격하게 줄었습니다. 바꾸어 생각하면 여러분 각자의 업무가 회사의 결과(output)에 직결되는 것을 체험하게 될 겁니다. 한편 수평적 구조가 되었기 때문에 여러분이 어느 위치에 있든지 책임있게 일을 처리해 주어야 회사가 제대로 돌아갑니다. 따라서, 여러분 개개인의 의식의 변화를 부탁 드립니다.

 

1) 커뮤니케이션 시간 단축

 

모든 내부 커뮤니케이션(internal communication)과 정보 공유는 극대화하되 그 절차와 형식은 최대한 줄여서 효율의 극대화를 꾀합시다. 회의 시간 줄이고, 회의 자체를 줄이고, 회의 기다리는 시간도 줄이고, 회의를 위한 과도한 준비도 줄이십시오. 저는 내부 보고서를 작성하느라 시간을 허비하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예쁘게 준비된 자료, 즉 pretty graphics보다 내용 자체가 중요합니다. 물론 고객에게 제공하는 자료는 최대한 정성을 해서 준비해야 하지만, 우리 내부에서는 서로가 정확하게 커뮤니케이션을 하기 위한 도구일 뿐인데 지나친 정성은 낭비입니다.

 

2) 실무자의 목소리 적극 반영

 

고객의 목소리를 듣고 판단하는 기준은, 즉 제품과 사업 방향에 대한 정확한 판단은 실무자들이 누구보다 잘 압니다. 여러분들의 목소리가 적극 반영될 수 있도록 시스템을 바꾸겠습니다. 팀장(관리자)는 이를 사업화시키는 주체이지, 단순히 각 직원의 업무를 관리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관리'보다 고객을 향하는 가치를 창출하는 '시스템' '의지'에 의해 움직일 수 있도록 합시다.

 

3) Transparency(투명성)

 

이슈(Issue)가 없는 회사가 없고, 이슈가 없는 프로젝트가 없습니다. 문제는 이런 이슈들을 피하고 정확하게 사실 공개(fact-finding)를 하지 않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실수는 하게 마련입니다. 그런 경우에도 항상 솔직하게 사실들(facts)를 전부 공개해야, 해결책이 나옵니다. 먼저 이슈를 밝히는데 있어서 빠르면 빠를수록 해결책이 빨리 나오고 문제로 인한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투명한(transparent) 업무 진행, 투명 커뮤니케이션의 정착이 회사 업무에서 중요한 것입니다.

 

4) Flexibility(유연성)

 

수직적 문화에서 플랫(flat)한 구조로 갈 때 가장 힘들어하는 변화가 유연성(flexibility)에 대한 적응입니다. 회의 시간 줄이라고 커뮤니케이션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활발한 정보 공유를 하되 그 틀을 바꾸라는 것입니다. 자리에서 얘기할 수 있고, 메신저로 상의할 수 있고, 커피마시면서도 중요한 결정을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인력 구조, 업무 조정, 모두 유연한 사고로 움직이기 바랍니다. 어떤 업무가 특정 부서에서만 하는 것도 아닙니다. 회사에 도움이 된다면 어느 위치에 있든지 아이디어를 내고 실현하고 만들어갈 수 있습니다. 유연한 사고와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살아날 수 있는 기업 문화, 저희가 우선적으로 바꾸어 나가야 할 자세입니다.


안철수연구소 CTO로서의 첫 당부사항 공개 (2) [다음 회 연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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