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연구소 CTO로서의 첫 당부사항 공개 (2)

경영 이야기 2009.06.21 13:37
(전회에 이어)
지난 2008년 2월 CTO가 된 후에 직원들에게 보낸 메시지입니다. 그 동안 많은 변화가 이루어졌고 아직도 연구개발, 조직문화, 해외사업 등 여러 분야에서 다양한 혁신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지금은 CEO이지만 당시 CTO 시기에 직원들에게 보낸 메시지가 다른 분들에게도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에서 공개해 드립니다.

안철수연구소 CTO가 된 후 첫 메시지 공개 (1) [첫편 링크]

3. 당부사항

 

저는 개인적으로 "꿈을 꿀 수 있고 실현하고자 하는 의지를 갖춘 하드워커(hard-worker)"를 좋아합니다. Hard-worker라 함은 회사에 오래 앉아 있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열정적으로 일에 몰입할 수 있는, 끊임없이 의지를 불태우는 사람을 말합니다. 물론 여러분이 제가 좋아하는 사람이 되기를 강요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제 오랜 경험으로는 이런 분들이 보람과 행복을 많이 가져가는 것을 목격했습니다.

 

젊음, 결코 다시 돌아오지 않습니다. 이 시간을 소중하고 값지게 보냅시다. 실패도 훈련이고 좌절도 훈련입니다. 그러나, 시도도 해 보지 않은 시간은 무의미할 뿐입니다. 구글(Google)에서는 나이스(nice)하게 실패하는 것을 장려한다고 합니다 (Google encourages to fail nicely). 그만큼 창의적인 노력을 최대의 가치로 둔다는 점입니다. 꿈을 이루어가는 우리가 되었으면 합니다.

 

몇 가지 첨언하면,

1) 스스로 일류가 되도록
 
노력합시다

 

우리의 영역을 국경이 지켜주지 못합니다. 글로벌하게 하나의 시장이 되어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경쟁 상대는 한국 내의 다른 기업에 있는 친구나 선후배들이 아닙니다. 구글(Google), 시만텍(Symantec), 마이크로소프트(Microsoft)에서 일하는 사람들입니다. 실리콘밸리에서, 인도에서, 중국에서, 러시아에서 우리의 경쟁자들은 꿈을 불태우고 실력을 연마하고 있습니다. 저도 그 회사의 CTO와 경쟁해야 하고, 팀장들은 그 회사의 팀장들과기술자들은 그 회사의 기술자들과, 마케터는 그 회사의 마케터를 경쟁 상대로 삼아야 합니다여러분 각자가 일류가 되어야 안철수연구소가 일류기업이 됩니다. 일류가 되는 시간을 단축하기 위해서 안철수연구소의 동료들로부터 배웁시다. 저도 여러분들의 경험과 전문성을 열심히 배우겠습니다.

 

2) 자기의 제품과 서비스에 자신감(confidence)을 가집시다.

 

저는 지는 것을 아주 싫어합니다. 안철수연구소의 제품과 서비스가 타사보다 못하다는 얘기는 듣고 싶지 않습니다. 프라이드(Pride)가 없는 제품을 만들 생각을 하지 마십시오. 과거에 어떻게 했든 모두 잊어 버리고, 이제부터 우리가 만드는 제품과 서비스는 '명품'을 만든다는 각오로 정성을 기울여야 합니다. 남들이 하는 것 흉내내지 말고, 고객이 찡할 수 있는 가치를 전달(delivery)합시다.

 

3) 완벽을 기합시다.

 

안철수연구소의 최대 가치는 믿음과 신뢰입니다. '보안'업체이기 때문에 고객들이 믿는 것이고, 깨끗하고 투명한 기업 문화 덕택에 신뢰를 받습니다. 우리는 그에 보답하는 치밀함과 섬세함이 필요합니다. 아무리 사소한 문제라도 남에게 던지지 마십시오. 누군가 챙기겠지 하지 마시고, 여러분의 손끝에서 고객이 사용할 제품과 서비스가 탄생한다는 마음가짐으로 한번 더 파이널 터치(final touch)를 하십시오. 여러분의 노력 덕택에 고객은 편안하게 사용할 수 있고, 그 모습에서 희열을 느끼십시오. 

 

다시 한번 같이 일하게 된 계기를 소중하게 생각합니다. 저와 언제라도 대화를 원하시면 제 문은 항상 열려 있고, 이메일이든 메신저이든 환영합니다. 여러분이 신나게 일할 수 있는 것이라면, 최선을 다해서 돕겠습니다.

 

일부 부서는 오늘부터 주말 기간에 이사를 준비하느라 바쁘시겠습니다. 편안한 주말 보내시고 월요일 아침부터는 새로운 각오로 재미있게 일해 봅시다. 10층에서 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 김홍선


이 메시지 하나로 기업 문화가 하루 아침에 바뀌기는 힘들겠지만, 적어도 나는 이런 변화가 필요하다고 확신했고, 현재도 그런 원칙으로 경영에 임해왔다. 나는 조직의 관료화는 반드시 도려내야 할 암적인 존재라고 생각한다.

회의 문화가 첫번째 개혁 대상이었다. 우선 내가 주재하는 회의 시간을 30분으로 조정하고, 준비 자료는 3 페이지가 넘지 않도록 했다. 절대로 파워포인트 잘 만드느라 시간 낭비하지 않도록 당부하며.. 그 후 안철수연구소에는 회의실마다 다음 그림과 같은 표어와 시계가 비치되어 있다. 


굳이 여러 부서가 다함께 모여야 하는 안건을 제외하고는 직원들의 자리에서 선 채로 바로바로 결정이 되도록 유도했다. 나는 직원들을 사무실로 불러서 보고받는 스타일을 좋아하지 않는다. 사무실에 돌아다니면서 실무자의 자리에서 서서 결정하는게 가장 정확할 수 있다. 그래서인지, 항상 모자랐던 회의실이 지금은 여유가 있다. 점차 회의실 공간을 더 효율적인 방안으로 활용하고 있다. 

안철수연구소는 고객으로부터 외면을 받고 불평을 들었던 이유를 처절하게 깨달아야 했다. 나는 고객을 모르는 엔지니어는 프로가 아니라는 철학을 가지고 있다. 직장은 자기가 원하는 것을 만들어 자족하는, 그런 취미 생활하는 곳이 아니다. 

한편 연구개발(R&D) 직원들도 현장의 고객 사이트로 나가도록 독려했다. 영업부에서는 R&D의 반발이 클 것이라고 우려를 표명했지만, '자신이 만든 제품이나 기술을 다른 사람이 사용하는 것을 보았을 때의 기쁨' [관련 블로그 링크]을 느낄 줄 알아야 진정한 엔지니어라는 내 소신을 바꾸지 않았다. 내가 만난 톱클래스 엔지니어들은 모두가 고객의 목소리에 적극 귀를 기울이는 자세를 가졌다.


아직도 안철수연구소의 개혁은 진행형이며, 앞으로 영원한 미래형이 될 것이다. 안랩의 핵심가치를 직원들이 체화(體化)시키면서 세계 시장에서 실력으로 승부하겠다는, 아니 해야만 한다는 현실을 철저히 깨달을 깨닫도록 계속 매진해야 한다. 

내가 얼마나 안철수연구소의 CEO로 있을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적어도 CEO로 있는 동안 CTO로서 보낸 첫 메시지를 간직하며 살 것이다. 안랩을 글로벌하게 성공한 기업으로 만들고 싶다는 나의 소망을 이루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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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이 원하는 엔지니어는 현장의 터치 감각

IT와 세상 2009.04.06 00:06

미국 유학 시절에 미국 친구들을 보면 기계를 만지고 조작하는데 있어서, 무언가 우리보다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원인이 무엇일까 하고 고민하던 차에, 어떤 선배가 미국에서는 어린 시절부터 집에서 아버지와 같이 자동차를 만지면서 자란 것이 원인인 것 같다는 얘기를 해 주었다. 그 순간 나도 손뼉을 치며 바로 그거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집에서 차를 수리하는 모습 (www.marketingconcepts.org)

미국에서는 자동차 서비스를 받는 비용이 엄청 비싸다. 자동차 수리점에 가기만 해도 일단 2-30불을 지불해야 한다. 단지 엔지니어가 점검(inspection)하는 비용이다. 여기에 수리를 맡기면 시간당 붙는 비용(labor charge)이 부과된다. 당연히 부품비는 별도다. 땅덩어리가 넓으니 자동차 없이는 살 수 없고, 돈을 절약하기 위해 집에서 직접 수선할 수밖에 없다.

 

주말에 미국 주택가를 지나다 보면 여기 저기서 차를 손 보거나, 심지어는 오일 교환을 직접 하거나, 온 가족이 세차를 하는 모습을 흔히 본다. 우리 나라처럼 카센터에서 원스톱(one-stop)으로 서비스를 받으면 시간도 많이 걸리고 돈도 많이 지불해야 한다. 한술 더떠 어떤 친구들은 1950년 대 구형 모델의 차에 최신 엔진과 오디오 시스템을 설치하는 실험도 해 본다.

 

집 안의 크고 작은 수리도 마찬가지다. 전국 체인을 가지고 있는 홈 디포(Home Depot)라는 대형 마켙에 가 보면 스스로 집안 일을 하는 이들을 위해 수많은 부품과 도구들이 진열되어 있다. 목재, 정원 도구, 전기 시설, 부엌 싱크대 등 분야별로 잘 정돈되어 있다. 이 상점의 키워드는 'self-improvement'다. 워낙 초기 개척 시대부터 스스로 A부터 Z까지 해결해야 하다 보니 셀프엔지니어링(self-engineering)이 미국의 문화로 자리 잡았다.

홈 디포((Home Depot)의 내부모습

 

유학생들은 바쁜 시간 속에서도 이러한 생활 속의 엔지니어링에 부딪치게 된다. 게다가 돈이 없어 오래 된 중고차를 사다 보니 운이 나쁘면 내내 골치 아프다. 한국에서 변변히 만져 본 기계가 없었던 이들도 꼼짝없이 기계와 씨름을 해야 했다. 오죽하면 박사를 받는 순간 자동차 전문 수리 자격증도 받는다는 조크가 나올 정도다. 공대를 나온 이들도 고등학교까지는 책으로만 공부한 경우가 태반이었기에 우리가 진짜 공대 출신 맞아?’하며 한심해 했던 기억이 있다.

 

현장과의 터치(touch)가 엔지니어의 참모습

 

이런 생활 속의 터치와 경험이 기술(technology)을 개발하는 엔지니어의 기본 자세다. 생활 속에서 호기심이 싹트고, 호기심이 집중력으로 연결되면 위대한 기술도 탄생하게 된다. 토머스 에디슨은 공부를 많이 한 사람이 아니다. 그러나, 호기심과 노력으로 우리 생활 속에 유용한 발명품들을 아주 많이 만들어냈다. 그가 한 평생 연구원들과 각종 아이디어를 실험한 그의 연구소는 이런 터치(touch)의 협력 시스템이다. 피뢰침과 다초점렌즈(bifocals)를 발명한 벤자민 프랭클린은 계몽사상가이면서도 과학적 아이디어를 생활 속에 접목한 엔지니어이기도 하다. 현장과의 터치(touch)가 엔지니어의 참모습이다.

벤자민 프랭클린(좌)과 토머스 에디슨

 


우리는 책을 통해서 이론과 개념을 터득하고 깨우칠 수 있다
. 그러나, 엔지니어는 자신에게 필요한 것을 더 빠르게 배우는 비결이 있다. 목적을 위해서 집중적으로 파고드는 호기심, 그리고 다양한 경로를 통해 주위 친구나 동료, 온라인에서 만난 커뮤니티를 통해 배우는 것이다. 책을 통해 깨닫는 것보다 몇 배, 몇 십 배 빨리 깨닫게 된다.

 

주워듣는게 책보다 빠르다

예를 들어
, 소프트웨어를 잘 만들려면 도서관에서 책에 파묻히는 것이 정도(
正道)가 아니다. 물론 기본적인 틀은 터득해야 하지만, 기술을 더 잘 아는 친구들로부터 주워 듣고, 서로 상의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다. 게다가 기술의 발전 속도를 책은 따라 가지 못한다. 때로는 일단 현장에서 여러가지를 정신없이 깨우치고, 후에 책으로 전체적인 틀을 정리하는게 효과적일 수 있다.
 

그래서, 전문가들이 모이면 짧은 시간에 많은 기술과 정보를 파악할 수 있다. 나는 보안 전문가이기는 했지만 안철수연구소에 들어오기 전까지 PC와 악성코드에 대한 지식은 깊지가 않았다. 그러나, 1년도 채 안 되어서 누구보다 자신있게 PC 보안에 대해 얘기할 수 있을 정도로 지식과 경험을 얻게 되었다. 내가 능력이 뛰어나서가 아니다. 이 분야의 전문가들이 같은 공간에 있기 때문에, 그들과 커피 마시면서, 식사하면서, 중요한 개념과 트렌드를 깨우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원하면 얼마든지 깊이있는 부분까지 들어갈 수도 있다.

이것이 전문 기업의 무서운 경쟁력이다. 그 기반은 현장에 중심을 둔 엔지니어들의 실용적인 경험과 네트워크다. 반드시 같은 조직에 있을 필요도 없다. 오늘날 실력있는 엔지니어는 세계 어느 곳에 있더라도 파악할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이런 현장 속에서의 터치(Touch)와 협업(Collaboration) 문화가 오픈 소스, 인터넷, IT의 급격한 기술 발전의 원동력이다.

 

직접 해 보지 않으면 자격증도 필요 없다

 

신입 사원을 면접하다 보면 성적도 좋고 여러 자격증을 가지고 있음에도 기본 개념이 흔들리는 이들을 보게 된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직접 해 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손수 PC를 뜯어 고칠 수 있는지, 이런 저런 장비를 직접 연결해서 OS를 다시 설치할 수 있는지, 리눅스의 소스를 변형해서 다른 하드웨어에 올릴 수 있는지...  여러 환경에서 PC 하나라도 자유자재로 가지고 놀 수 있어야 기본적인 자격을 갖추었다고 할 수 있다.

 

기업이 선호하는 특정 대학들이 있다. 기숙사에 거주하는 이들 학교의 학생들은, 시간의 제약 없이 하고 싶은 개발과 경험을 마음껏 하는 편이다. 커뮤니티를 통해서, 선배를 통해서, 또는 Lab의 프로젝트를 통해서.. 이런 환경에서 지낸 이들은 빠른 속도로 업무에 적응할 수 있다.  자유로운 소통의 환경 속에서 스스로 깨우치게 함으로써, 엔지니어의 꿈틀거리는 끼와 호기심을 살려내게 된.

 

교수의 강의와 성적표만으로 대학 생활이 구성되는게 아니다. 이런 hands-on skill과 실험 정신이 훨씬 소중한 자산이다. 또한 나의 채용 기준이기도 하다.


이 사회를 이끄는 지도자들은 이런 엔지니어의 속성을 이해해야 한다. 그런데, 기술(Technology), 특히 IT의 경우 직접 사용해 보지 않으면 감을 잡기 어렵다. 컴퓨터나 인터넷을 접하면서, 블로그를 직접 해 보고, 온라인으로 물건을 사 보고, 전자결재를 손수 하면서, 손 끝의 느낌이 오고 몸 전체로 느낄 수 있다. 끊임없이 체험하는 터치(touch)를 경험하지 않고 이해할 수 없는 것이 하이테크의 세계다.

 

인력 양성이라면 의례 석박사에만 초점을 기울인다. 물론 고급 인력과 장기적 R&D는 필요하다. 그러나, 기업이 절실하게 바라는 인력은 현장 감각을 지닌 엔지니어고, 이들이 이 사회의 모든 실질적 문제의 해결사다. 엔지니어로서의 능력은 현장의 터치(touch)에서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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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지니어를 면접할 때 묻는 CEO 단골 질문

CEO 칼럼 2009.04.03 11:37

내가 엔지니어를 면접할 때 물어보는 단골 질문이 있다. 왜 이 길을 택하셨지요? 5, 10년 뒤에는 무엇을 하고 있을 것 같아요?” 엔지니어로서 길을 걸어온 나로서는 어떠한 배경으로 이 길을 선택하였으며 어떤 계획으로 살 건지가 가장 궁금하기도 하고 채용의 중요한 기준이기도 하다.

 

우리 나라 엔지니어들의 인센티브는 적다. 실리콘 밸리에서 대박을 거머쥔 벤처 기업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선진국의 경우 IT 전문가로서 인정을 받으면 젊은 나이에도 1억이 넘는 연봉을 받는다. 또한 지금 이 순간에도 인도에서는 수많은 컴퓨터공학 졸업자가 대학 문을 나서고 있고, 중국은 그보다 더 많은 숫자가 기술직을 선택하고 있다. 이 사회가 기술을 필요로 하고, 성공의 옵션이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엔지니어는 통속적인 성공의 개념, 이를테면 돈을 많이 벌거나 명예를 얻는다는 성취와는 차원이 다른 특별한 보상(reward)이 있다. 바로 자신이 만든 제품이나 기술을 다른 사람이 사용하는 것을 보았을 때의 기쁨이다. 이것은 다른 어떤 직업도 만족시켜 주지 못하는 엔지니어만의 특권이요 보람이다. 엔지니어로서 이런 기쁨을 느끼지 못했다면 불행한 일이다.



2년 전 나와 같이 네트워크 보안 사업에 몸담았던 직원들이 안랩에 사업 인수를 통해 합류했다. 그 후 나는 조직에 관여하지는 않고 고문이라는 형태로 전반적인 자문을 맡았다. 3개월 지나서, 연구소를 지나가다가 어떤 개발자에게 재미있어?’ 하고 물어본 적이 있다. 그러자 단박에 하는 얘기가 ‘별루였다.

원인은 간단했다. 어느 회사나 초창기에는 R&D, 기술지원, 영업이 구분없이 끈끈한 정으로 목적 달성을 위해 전념한다. 그러나, 회사가 성장하고 조직이 커지면서 연구소와 사업부가 분리되는 과정을 거친다. 그러면서, 엔지니어가 고객이 제품을 사용하는 모습을 보는 기회가 적어지게 된다. 여기에 경험이 많은 임원들이 영입되면서 조직의 논리가 더해진다. 물론 체계적, 효율적이라는 관리라는 장점이 분명히 있다. 그러나, 반면 재미와 보람은 반감되게 마련이다. 이 과정을 얼마나 슬기롭게 극복하느냐, 양쪽 장점을 어떻게 살리느냐가 벤처 기업의 과도기다.

 

우리 회사도 R&D가 워낙 큰 조직이다 보니 그렇게 운영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니 R&D와 영업이 밀착되어 움직이던 조직이 적응하는 과정에서 엔지니어들이 흥미를 잃을 수 있다. 특히 나는 R&D가 고객의 현장을 잘 알아야 한다는 철학을 지니고 있었기에, 그런 방식에 익숙해있던 직원들이었다.

 

작년에 CEO가 되면서 사업부 체제로 조직을 바꾸었다. 밖에서 보기에는 그냥 그러려니 하고 받아들일지 모르지만, 우리 회사로서는 처음 시도하는 일이다. 게다가 몇 년간 만들어온 프로세스와 문화가 있었기에 직원들의 공감대와 참여를 필요로 했다. 내가 그렇게 한 원인은 단 하나, “고객과 멀어진 것을 우리 회사가 고쳐야 할 최우선과제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고객이 자신의 상품을 사용하는 것을 보는 즐거움 
 

여기에 더해 나는 R&D 기술자들이 고객과 파트너를 직접 만나도록 했다. 간부급 이상은 영업이 언제든지 데리고 나가도록 했다. 의외로 직원들이 아무런 불만없이 응해 주었고, 오히려 고객을 만나고 와서는 더욱 소통이 잘 되고 생기가 있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물론 체력적으로나 시간적으로는 힘들지만, “엔지니어가 자신의 제품을 사용하는 것을 보고 보람을 느낀다는 평범한 철학을 다시 한 번 되새기는 계기가 되지 않았을까?

 

세상에는 수많은 기술과 상품이 만들어지고 사라진다. 나는 '고객이 알아주지 않는 상품이나 기술은 쓰레기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공학은 이론을 연구하는 순수 과학이 아니다. 어떤 형태로든 기술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있고 엔지니어는 상품이나 서비스의 가치(value)를 통해 공급(delivery)하는 것을 소명으로 하는 직업이다. 나는 '우리 기술이 이렇게 좋다'는 식으로 기술로만 설명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 기술을 누가 어떻게 사용하느냐가 중요한 포인트이기 때문이다.




고객이 제품을 사용하는 모습을 보면서 보람을 느낄 수 있어야 진정한 엔지니어다
. 이것은 엔지니어간에는 불문율처럼 공감대를 이룬 문구다.

 

부(富)만을 추구해서 성공한 엔지니어는 거의 없다. 자기가 좋아하는 일에 몰입하다가, 고객이 자기가 만든 것을 인정하고 사용하는 것을 보는 보람에 심취하다 보면 보상이 따르게 되는 것이다. 애플을 만든 Steve Jobs, 구글을 만든 Larry Page와 Sergey Brin , HP를 만든 Bill Hewlett Dave Packard. 모두가 이 간단한 원리에 충실했던 사람들이다. 기계와 씨름하면서 당신 스스로에게서 행복을 느낀 사람들이다. 경제 위기일수록 본질에 충실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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