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환기를 이끄는 기업가 정신

CEO 칼럼 2012.09.18 13:33

미국 실리콘밸리에 위치한 어느 벤처 기업의 최고책임경영자(CEO)와 대화를 할 기회가 있었다. 그는 그 기업의 창업자는 아니었다. 창업자가 추구했던 사업 모델은 실패해서 창업자는 이미 떠난 후였다. 대주주였던 벤처캐피털은 기업을 살리기 위해 그를 전문경영인으로 영입했다. 벤처캐피털이 그에게 요구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보통의 경우라면, 하루빨리 경영을 정상화하고 재정 상태를 흑자 구조로 바꾸라고 주문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에게 주어진 과제는 달랐다. 필요한 자금을 투자할 터이니 새로운 도전을 해보라는 것이었다. 당시 인력들의 경험을 기반으로 한 신제품이든, 기존의 기술을 향상시킨 것이든, 남과 다른 무엇(to-be-something)이 되라는 게 전부였다고 한다.

 

 

 

 

<사진출처: 구글 검색>

             

그는 기업의 전열을 다시 정비하고 열정적으로 노력한 결과, 혁신적인 제품을 출시하는 데 성공해서 주목할 만한 틈새 기업(niche player)’으로 인정받기에 이르렀다. 비록 흑자 전환은 하지 못했지만, 그 기술의 잠재력을 인정한 대기업에 의해 인수되었다. 대기업의 포트폴리오에 편입된 그 제품은 현재 전세계 시장에서 성공적으로 판매되고 있다.

 

실리콘밸리에서 이노베이션과 차별화가 기업의 가치를 얼마나 좌우하는지 잘 대변해주는 스토리다. 벤처캐피털 역시 좋은 인력과 네트워크 형성을 도와주기 위해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정보 보안 산업은 1990년대 중반부터 수많은 벤처 기업의 탄생을 촉발했다. 혁신적인 기술이 연이어 발명되었고, 투자는 활발했다. 그런데, 2006년 이후 그 열기가 크게 줄었다. 많은 전문가들은 수백 건의 인수합병이 2005년까지 대부분 마무리되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대기업 제품이 되면서 매출과 시장은 성장하고 있었지만, 이노베이션은 현저히 줄어들었다.

 

흥미로운 것은, 그로부터 1~2년 후 창업 열풍이 다시 불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오랜 친구 중에, 벤처 기업을 대기업에 성공적으로 매각해서 큰 부를 거머쥔 이도 있었다. 그는 자신의 기업을 매수한 대기업에서 고위급 임원으로 재직했다. 수많은 청중 앞에서 기조 연설을 할 정도로 유명 인사도 되었다. 그러던 그가, 어느 날 갑자기 명예와 직장을 내던지고 조그마한 벤처 기업을 창업했다.

 

일자리에 대한 불안감도 없고, 평생 먹고 살 만한 재력도 확보한 그가 다시 창업의 가시밭길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 질문을 한 게 필자뿐이었겠는가? 그의 대답은 의외로 아주 간단했다. “재미가 없다는 것이다.

 

 

카드 빚으로 컴퓨터 장만해서 사업을 시작했을 때는, 재정은 쪼들려도 세상에 보탬이 되는 제품을 만든다는 기쁨에 충만했다고 한다. 그런데, 수많은 회의와 연설, 인터뷰로 점철된 업무는 지루하고 시간 낭비처럼 느껴졌다고 한다. 그의 말에 따르면, 인수 후 대기업으로 편입됐던 직원들 대부분이 의무 복무 기간이 끝나자 창업을 하거나 작은 회사로 옮겼다고 한다.

 

이 친구의 이야기를 통해 미국의 정보기술(IT) 산업 속에서 대기업과 벤처 기업의 역할 분담을 실감할 수 있다. 수많은 창업 기업들이 혁신적인 제품 개발에 매진하고, 그 중 성공하는 기업들은 대기업에 인수된다. 대기업은 외부의 이노베이션(벤처 기업)을 수혈해서 자신들의 강점인 체계적인 사업 인프라 속에 집어넣는다. 대기업은 혁신을 위해 노력하는 한편, 이러한 신선한 피를 받아들임으로써 관료화의 함정에 빠지지 않도록 끊임없이 스스로를 자극하는 것이다.

 

<안철수의 생각>에서 저자 안철수 원장은 대기업과 함께 탄탄한 중소기업과 벤처 기업들이 육성된다면 이 축이 국가 경제의 리스크를 낮추고 안정성을 높여줄 것이라며 경제를 포트폴리오관점에서 바라보았다. 또한 5천만 국민 중 대기업에 종사할 수 있는 사람은 200만 명밖에 없기 때문에 2천만 명 이상의 일자리는 중소기업 또는 벤처 기업에서 나올 수밖에 없다는 현실을 지적했다.

 

실제로 미국 인구조사 통계국의 데이터에 따르면 1980년부터 2000년까지 대부분의 고용 상승은 설립한 지 채 5년이 안 된 기업들이 만들어 냈다. (출처 : '창업국가'). 그만큼 벤처 기업과 중소기업은 양질의 일자리 창출의 핵심 동력이다.

 

               <창업국가, 사진 출처: 구글 검색>

 

우리는 기업의 가치가 혁신성에 의해 크게 좌우되는 시대에 살고 있다. 혁신, 즉 이노베이션은 호기심과 도전 정신을 통해 이루어진다. 내가 만든 제품을 다른 사람이 사용하는 것을 볼 때의 희열은 경험한 자만이 알 수 있다. 도전 정신을 가진 많은 사람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기대감에 힘들어도 기업가의 길을 걷는다. 기업가 정신은 전환기에 놓인 우리가 반드시 추구해야 할 시대정신이 아닐까.


[중앙일보 컬럼 기고 내용을 일부 수정해서 포스팅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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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폰 열풍에 벤처 거품이 떠오른 까닭은?

IT와 세상 2010.02.23 13:30

슈퍼 앱스토어 창설

수십만개의 앱(App)을 유치하겠다

앱스(Apps) 개발로 꿈나무 육성

 

스마트폰 열풍은 애플리케이션(Application)이라는 소프트웨어 용어를 일반화시켰다. 아마도 금년 연말에 2010년도를 풍미한 키워드로 (App)’이 한 자리를 차지할 것이 확실시된다. 모바일 벤처가 우리의 미래라는 얘기가 기업, 정부, 언론, 학계를 가릴 것 없이 봇물처럼 터져 나오고 있다.

 

아이폰의 출시를 환영한다는 블로그(http://ceo.ahnlab.com/81)를 통해 스마트폰이 소프트웨어 산업이 살아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희망한 나로서는 이런 움직임이 반갑기 그지 없다. 스마트폰이 불편하다느니 별게 아니라는 언론의 흐름이 불과 몇 달 사이에 바뀐 것이 어리둥절할 정도다. 어쨌든 소프트웨어의 후진성이 우리의 미래를 발목 잡고 있기에 아이폰 충격은 긍정적 소식이다.

스마트폰 개발자 컨퍼런스 현장 (devmento.co.kr)


벤처 열풍과 비슷한 구호

그러나
, 한편으로 찝찝한 느낌이 드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런 열풍 속의 분위기와 구호가 과거 벤처 거품 때와 비슷한 분위기라서 그런가?

'벤처 몇 만개는 만들어야 한다'
'벤처가 우리의 희망이다'
'교수와 대학생들의 창업을 적극 권장한다'


벤처 열풍의 상징 테헤란로

바로
10년 전 벤처 열풍 당시에 풍미하던 구호이자 메시지다. 너도 나도 창투사를 만들었고, 벤처로 포장만 하면 묻지마 투자가 성행했으며, 사업 모델도 빈약한 회사가 몇 백억 가치로 인정 받던 시절이었다.

물론 과거의 쓰라린 실수를 반복할 정도로 우리가 어리석지는 않다
. 그러나, 스마트폰의 본질적인 요소는 제쳐 두고 벌써부터 의 문화로 흐르는 분위기는 심히 걱정스럽다. 풍성한 앱(App)의 시대가 전개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정작 소프트웨어의 라이프사이클을 제대로 거치는 기본에 취약한 우리의 현실을 도외시하고 있다. 

한편 사업 모델의 변화는 우리의 산업 구조를 바꾸고 있다. 애플과 같은 소프트웨어 플랫폼 업체의 시장 장악으로 통신 사업자가 소외되고 있다
. 단말기도 HTC같은 대만의 벤처 기업이 글로벌 리더로 뛰어 오르는 지각 변동이 일어났다. 그러나, 우리 나라에서는 정반대로 기득권을 지닌 대기업이 주도하는 형국이다. 그만큼 중소 소프트웨어 기업들이 몰락했거나 뛰쳐 나갈 힘을 상실했다는 점을 반증한다.

소프트웨어는 창의력과 혁신성이 핵심적 요소다. 그런 점에서 규율과 프로세스에 의해 움직이는 대기업보다 아이디어와 열정에 의해 움직이는 중소기업에 적합하다. 물론 대기업이 못할 것은 없다. 그러나, 애플과 구글처럼 유연함과 혁신(innovation)의 생존 코드를 가지고 있는 기업이 아니면 경쟁력을 가질 수 없다. 수직적 사업 모델보다 수평적 윈윈이 혁신적 사업 모델로 정착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앱스(Apps)가 진정한 일자리 창출로 연결되려면
 

앱스(Apps) 산업이 정착하려면 창의적인 아이디어와 열정으로 무장한 중소기업이 사업을 할 수 있는 기반을 갖추어야 한다.  정부나 대기업에서 이런 기업을 지원하겠다고 공언하고 있지만, 그 자체가 성공을 이끄는 열쇠가 되는 것은 아니다. 안철수 카이스트 석좌교수가 지적했듯이 그 비결은 공정한 거래 질서다. 시장 자체가 불공정하고 왜곡돼 있는 구조 속에서는 아무리 좋은 아이디어가 있더라도 기업들이 제대로 탄생해서 성장해 갈 수 없다.(아이뉴스 24 기사 연결, http://bit.ly/a9S0Zq )

정부가 지나치게 관여하는 것은 또 다른 부작용을 낳는다
. 시장 지배력을 지닌 대기업의 지나친 관심도 시장을 왜곡시킬 수 있다
 생태계는 본래 자연적으로 형성되기 마련이다.

NHN, 다음커뮤니케이션의 기업 가치가 어떻게 급성장했는지 우리는 익히 알고 있다. 온라인 게임 업체들은 아예 글로벌 시장을 이끌고 있다. 이들은 정부의 지원없이 성공했다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일부 게임 센터와 같은 지원이 있었지만 엔씨소프트, 넥슨과 같은 회사가 정부의 지원이나 대기업의 비호로 성공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App)의 글로벌 경쟁력을 키우고 현재 뒤떨어진 소프트웨어 산업을 살리는 방법은 명확하다. 공정한 거래와 생태계가 유지될 수 있도록 해 주면 된다. 이 단순한 원칙이 형성되지 않고 있기 때문에 껍데기 IT 강국이라는 오명을 쓰고 있는 것이다.

 
스마트폰과 앱스 열풍이 소란스럽기만 하다가 다시 대기업의 시장 지배력으로 마무리될 수도 있다. 그럴 경우 한국에서는 통할 지 모르지만 글로벌 시장에서는 철저히 소외될 것이다. 그것은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하는 대기업에게도 불행이다. 우리의 미래는 혁신 기업의 양성에 달려 있고, 그런 기업들이 진정한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해 내는 선도적 역할을 담당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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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용없는 성장, 청년 일자리 해법은 없나?

IT와 세상 2010.01.09 09:15

일자리 창출은 중소기업과 소프트웨어에 달려 있다

신년 연휴에
KBS 특집 프로그램을 보았는데 국내 대기업 자동차에 대한 이야기가 눈에 띄었다. 매출은 성장하고 있는데 국내 생산은 제자리라는 점이 지적되었다. 해외 생산 비중이 국내 생산과 거의 맞먹는 수준으로 육박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 공장 직원의 얘기로는 잔업이 없는 시절이 올 것이라며 상당한 불안감을 느끼고 있었다. 고용없는 성장일 뿐이다. 어디 자동차만 그렇겠는가

 

현대자동차 울산공장(오마이뉴스)

기아자동차 체코공장 (현대중공업제공)


우리 나라의 요즈음 최대 화두는 청년 실업과 일자리 창출이다. 아무리 GDP가 성장해도 양질의 일자리가 창출되지 못하면 의미가 없다. 그러나, 대기업과 하드웨어 기반으로만은 일자리 창출에 한계가 있다는데 우리의 구조적 문제점이 있다


중소기업의 허약함이 일자리 창출의 장벽

제조업은 비용이 저렴한 방향으로 움직일 수 밖에 없는 특성을 지니고 있다
. 그런 점에서 인건비나 환경 측면에서 가장 매력 있는 중국이 세계의 공장을 빨아들이고 있는 것은 당연하다. 요즈음은 중국으로 옮기지 않으면 이상해 하는 분위기다기술집약적 산업이라서 아직 중국의 기술이 아직 안 된 다든가, 다른 산업과의 클러스터링(clustering)이 필요한 경우를 제외하면 일단 중국에서 생산 기반을 가지려고 한다. 중국이 아니더라도 마케팅적으로나 원가 측면에서 효율적인 곳으로 자원을 분산하려고 한다. 따라서, 과거에 수출 중심으로 밀어 부치던 산업 경제 시대와는 다른 상황임을 인식해야 한다.

또 다른 문제점은 기를 펴지 못하는 중소기업들이다. 우리 나라의 대기업이 세계적 경쟁력을 가진 배경은 글로벌 브랜드와 마케팅 역량 등 여러 가지 요소가 있지만 가장 핵심은 탄탄한 공급사슬관리체계, SCM(Supply Chain Management)이다. 다양한 요구 사항을 기민하게 반영해서 공급할 수 있는 일사불란한 체계, 여기에 재고를 최소화할 수 있는 SCM은 한국 대기업이 자랑하는 경쟁력이다.

 

이런 시스템을 구축하기까지 그동안 치밀하게 프로세스 혁신을 이룬 공이 크다. 그러나, 한편으로 수많은 하청 업체들이 대기업의 주문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움직여 주는 시스템도 한몫한다. 결국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수직적 역학 구조가 잘 동작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체제가 고착되어 중소기업이 특정 대기업 의존도가 심하게 될 경우 혁신적으로 도약하는 사례가 나오기 힘들다.


12년 만에 2명에서 5500명의 일자리를 만든 HTC
 

HTC와 Android 광고

최근 스마트폰에서 눈에 띄게 성장한 기업이 대만의 HTC이다. 1997년에 불과 2명의 인원으로 시작한 이 회사는 현재 노키아, 블랙베리, 애플 다음으로 당당히 4위의 스마트폰 기업의 위상을 차지하고 있다. 이 회사도 초기에는 글로벌 대기업과 이통사의 하청 업체로 노하우를 구축했다. 그러나, 스마트폰에 대한 집요한 집중력으로 도전의 고삐를 놓지 않았다.

드디어 구글의 안드로이드에 승부수를 띄워 구글 캠퍼스에 무려
50명의 인원을 파견했다. 그 결과 안드로이드 기술을 가장 잘 동작시키는 스마트폰 업체로 굳게 자리매김했다. 결국 스마트폰의 원천은 소프트웨어 플랫폼에 있다는 선견지명과 과감한 도전 정신이 빛을 발한 것이다. 무엇보다 구글이 이런 조그마한 업체와 윈윈 전략을 취한 자세, 이를 적극 이끌어낸 HTC 경영진의 열정이 생각해 볼 대목이다. 중소기업이 탄탄한 대만이었기에 이런 혁신형 사업 모델이 나오지 않았을까?


현재
HTC는 직원수 5500명이 넘는 대기업으로 성장했다. 물론 이 모두가 대만에서 만들어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래도 HTC를 통해 수많은 대만의 협력업체의 일자리가 생겼음은 안 보아도 짐작할 만하다. 이러한 일자리 창출이 진정 우리가 본 받아야 하는 것이 아닐까?

소프트웨어의 낙후가 일자리 창출의 장애

우리 나라는 하드웨어 분야에서 뛰어난 능력과 경험을 보유하고 있다. 그러나, 소프트웨어를 하드웨어 제품의 일부 비용 정도로 간주하는 인식에 머무르면 제품이 생명력을 가질 수가 없다. 소프트웨어는 스피드, 창의력 그리고 혁신이 생명이다. 그렇기 때문에 소프트웨어를 우선적으로 생각하는 마인드가 이 시대가 요구하는 경영층의 덕목이다.

 

또한 우리 나라 IT 인력 구성에서 가장 많은 비율이 소프트웨어 개발자다. 지식 기반 사회는 더욱 많은 소프트웨어 인력을 필요로 하게 된다. 그런 점에서 소프트웨어에서 많은 일자리가 창출된다는 예상은 명약관화하다.

안타깝게도 소프트웨어를 해서 성공하고 비전을 가질 수 있도록 산업의 생태계가 정착되지 못하고 있다. 비전이 없으니 인력이 오지 않고, 인력이 부족하니 소프트웨어 경쟁력이 떨어지는 악순환이 거듭되고 있다. 이를 반전하지 않으면 우리에게 희망이 없다. 소프트 마인드가 존중되고 유연한 사고의 중소기업이 마음껏 도전하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일자리 창출과 질적인 경제 회복을 위한 최선의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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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개발자 프로그래밍은 군인의 사격이다?

IT와 세상 2009.06.23 11:39

실용적인 교육 시스템이 일자리 창출의 요건

미국에서 박사 과정을 밟고 있을 때 학부의 프로그래밍 강의를 들어가 본 적이 있다
. 당시만 해도 우리나라의 컴퓨터 환경은 아주 열악했고, PC가 막 사용되기 시작하던 아주 초창기 시절이었다. 프로그램을 마음껏 돌릴 환경 자체가 부족했다. 그러다 보니 프로그래밍 기초가 부실하기도 했거니와, 우리 나라 교육과 어떻게 다른지 궁금하기도 했다.

프로그래밍 실습현장 (article.joins.com)

일단 대학 교수가 아닌 대학의 시스템 관리를 부업으로 하는 대학원생이 강사를 한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첫 수업 시간, 강사가 강단에 서자 마자 여기저기서 수많은 질문이 쏟아졌다. 어리둥절하던 차에 알게 된 것은 이미 첫 숙제가 이메일로 학생들에게 전달되었고, 쏟아진 질문은 숙제를 하기 위해, 소프트웨어 설계를 위해 필요한 내용이었다. 체계적으로 노트 필기하면서 차분히 정리해 주기를 바라는 것은 아예 기대하기가 어려웠다. 사실 프로그래밍은 규칙이기 때문에 스스로 깨우치는게 맞다는 생각도 든다.

실무적 기초에 대한 훈련은 선택 과목이 아니다

그 과목은 졸업을 위해 필수로 이수해야 했는데, 시험 대신에 7개의 프로젝트를 제출해야 했다. 학기말이 다가올수록 프로젝트는 어려워졌고, 마지막 과제는 여러 명이 팀을 이루어 시연을 직접 해야 함은 물론 방대한 상세 설계서도 제출해야 했다. 이 과목은 매 학기말만 되면 과제를 끝내기 위해 밤새 전산실이 북적거리는 것으로 유명했다.  

무엇보다 가장 인상적인 풍경은 학생들이 강사와 적극적으로 토론을 벌이는 모습이었다.
대화와 토론이 거의 없던 우리 나라 강의와 비교해서 큰 충격을 받았음은 자명하다. 또한 마지막 리포트는 거의 책 한 권에 해당할 만큼 잘 구비되어야 한다. 설계부터 기술문서, 품질 보증 단계까지 한 개의 전반적 프로젝트를 체험하는 교육이었다.

IT 
종사자들에게 프로그래밍은 군인에게 사격과도 같다. 그만큼 IT의 기초이기 때문에 필수 과목인 것이고, 실전에 가까운 무자비한 훈련이 바탕이 되고 있었다. 그러니 졸업생들이 회사에 가도 바로 업무에 투입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채용을 할 때에 프로그래밍 능력에 대해 걱정을 해야 하는 우리의 현실은 안타깝다. 프로그래밍은 기초일 뿐인데..

미국 대학 시스템에서 배워야 할 점

취업이 힘들어진 경제 상황에서도
IT 기업은 원하는 인력을 구하지 못한다는 지적이 많다. IT 인력의 수요 공급의 괴리는 실무적 기초에 기인하고, 그러한 기초는 학부 과정에서 얻게 된다. 그래서, 미국 대학의 꽃은 학부라고 불리운다. 미국적인 것이 반드시 옳다고는 할 수 없지만 실용적인 학부 시스템은 배울만 하다.

학생은 스스로 장래를 결정하기 위해 전공 분야의 기초를 다지고
, 캠퍼스 문화와 인프라를 통해 사회를 간접적으로 체험한다. 필요하다면 근처 전문대학에서 특정 과목을 이수해서 기초를 보강한다. 클러스터 형태의 입체적 교육 시스템이라고 할 수 있다. 어느 대학을 들어 갔느냐가 중요한게 아니라, 얼마나 알차게 자기 자신을 교육시켰느냐에 따라 향후 커리어(career)가 결정된다. 직장에 들어가는 순간 어느 학교 출신인가 하는 것은 전혀 중요하지가 않다. 누구나 동일한 선상에서 스타트하게 되고, 그 이후는 그 사람의 실력에 의해서만 결정되기 때문이다.

산학협력의 현장 (etnews.co.kr)

우리 나라에도 외국 유학을 다녀온 사람이 많지만, 의외로 이런 시스템을 이해하는 사람은 적다. 그 이유는 대부분 대학원 과정에만 다녔기 때문이다. 따라서, 미국에서 공부를 했다고 하더라도 전체 산업 구조가 교육 시스템과 어떻게 맞물려 돌아가는지에 대한 통찰력이 부족할 수밖에 없다.

또한 대학과 산업간의 인적 교류가 적다. 미국의 이공계 대학에서는 교수와 산업체를 오가는 학자들도 많다. 자문 위원 수준이 아니라 아예 풀타임으로 직업을 바꾸는 경우라는 얘기다. 당연히 산업에 대한 이해력이 빠를 수밖에 없다.

반면 우리의 경우는 어떤가? 폴리페서라는 비난을 받으면서도 정치나 관료 사회에는 학자의 참여가 많은 편인데, 산업계와의 교류는 극히 적다. 그나마 중소기업 현장을 배움의 자세로 의욕적으로 찾아 다니는 젊은 교수들을 보면 신선한 느낌이 든다. 열악한 여건에서도 교육의 열정을 보이는 분들이 있기에 희망이 있다.

인재의 경쟁력이 가장 중요한 이유

인재의 경쟁력은 그 나라의 산업과 국가의 경쟁력을 결정한다. 그런 점에서 입체적이고 실용적인 교육 시스템이 절실하다. 대학 교육은 교수의 강의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특히 지식기반 시대에는 스스로 깨우치는 교육이 가장 효과적이다. 그런 점에서, 학생들간의 커뮤니티, 각종 아이디어를 실험할 수 있는 분위기, 자유로운 토론이 창의력있는 인재를 양성하는 기반이 된다.

연구 중심의 대학을 표방한다고 한다. 물론 대학에서의 장기적 연구는 매우 중요하고, R&D(연구개발)는 국가의 성장 엔진을 창출한다.  그러나, 한편으로 우리 나라 기업은 잘 훈련된 인력에 더욱 목말라 한다. 따라서 사회 저변을 구성하는 양질의 인력을 육성하는 시스템을 갖추는 것이 시급한 과제다. 그러기 위해서는 주입식 강의보다 자율적 시스템과 실용적 인프라에 초점을 맞추어 접근해야 한다

장기적 R&D도 교수들의 의지 뿐만 아니라 기초 소양이 갖추어진 학생들이 많아야 가능한 것 아닌가? 미국처럼 탄탄한 학부 시스템이 저변에 깔려 있으면 연구 중심이 가능하다. 그러나, 부실한 학부 교육으로는 제대로 된 R&D가 나올 수가 없다. 그래서, 전공 분야의 이론과 실무를 겸비한 기초가 중요하다.

일자리 창출은 경제만 살아나서 달성될 문제가 아니다. 기업이 잘 된다고 해서 바로 국내 일자리로 연결된다고 단정하기 어렵다. 기업들은 양질의 인력을 찾아 글로벌하게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기업에서 공헌할 수 있는 실력과 소양을 갖추도록, 실용적인 교육 시스템에 투자와 관심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한국일보 컬럼 기고문에서 활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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