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가 트위터의 매력에 빠져든 이유는?

IT와 세상 2010.03.15 07:43

트위터에 대한 관심은 약 1년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어느 미국 회사에 방문해서 이런 저런 얘기를 하던 중 앞으로 트위터(Twitter)를 적극 활용하려는 마케팅 계획을 듣게 되었다.

 

미국 시장에서 톱 블로거의 지지(endorsement)가 중요하다는 것은 현지 전문가들을 통해 익히 알고 있었다. 신제품이나 신기술을 시장에 선보일 때 커뮤니케이션PR의 첫 번째 목표가 블로그 커뮤니티, 그 다음이 가트너와 같은 시장 분석기관이다. 전문지나 언론은 그 다음이다. 그래도 트위터(Twitter)는 아직 생소했다. 트위터에 대한 책도 사 보면서 개념을 깨우쳤지만 동조하는 이들이 주위에 적어서 직접 활동하지는 않았다.

100억 Tweet의 돌파 (2010. 3. 5)

최근 급증하는 트윗 숫자

 

한국에서도 언제부터인가 얼리어답터와 일부 언론인, 정치인들이 트위터를 사용한다는 뉴스를 접하게 되었다. 마침 나는 작년 초부터 시작한 개인 블로그에 한참 재미를 붙이고 있었다. 업무를 마친 밤 늦은 시간이나 새벽에 블로그를 하다 보니 별도로 시간을 낸다는 엄두가 나지 않았다. 게다가 한국에서 트위터는 일상적인 채팅이나 협소한 분야에 머무르는 것 같았다. 물론 그것도 의미가 있는 활동이지만, 그러기에는 시간이 너무 부족했다.

 

그러던 중 내부 보고 자료가 빠르고 정확하게 업데이트 되는 것을 보고 비결을 묻자 트위터 덕택이라고 하는 것 아닌가? 가벼운 메시지 위주로 시작하던 트위터가 전문 콘텐츠의 소통과 담론으로 분화되어 나가고 있었던 것이다. 전 세계의 수많은 자료가 빠른 속도로 공유되고 있었다.

 

아이폰 출시후 급성장한 트위터 사용자수

특히 스마트폰의 도입은 트위터 성장에 영향을 주었다. 10만 정도에서 소강 상태를 보이던 트위터 인구는 아이폰의 출시를 계기로 증가폭이 커졌다. 내 느낌으로는 이 통계 이상으로 영향이 있었을 것으로 생각한다.

시간과 장소에 제한없이 자투리 시간을 활용해서
, 혹은 순간순간 느꼈던 생각들을 알리기에는 트위터가 제격이다. 스마트폰으로 교체할 때 이미 나는 트위터를 염두에 두고 있었다.

트위터 세계로 들어간 과정

그러나
, 기업에서 4사분기 말과 1사분기 초는 가장 바쁜 기간이다. 사업 전략 및 계획 준비하랴, 전직원 교육하랴 정신 없는 기간을 보냈다. 그 후 더 미룰 수 없다는 생각에 2월 말에 조용히 트위터 세상에 발을 들여 놓았다 (@hongsunkim).

초반에는 트윗
(Tweet)을 보내지 않고 그냥 팔로우(follow)만 하려고 했다. 그런데 1시간이 채 되지 않아 평소 블로그로 알고 지내던 광파리(http://blog.hankyung.com/kim215) 님께서 내가 트위터에 들어온 것을 공표해 버렸다. 순간 수십 명의 팔로워가 붙어 당황스러웠다. 이렇게 된 이상 숨어 지낼 수 없어서 인사의 메시지를 트윗(Tweet)으로 날려 보았다. 그러자 반응이 오기 시작했고, 여러 지인들로부터 격려의 메시지가 쇄도했다. 예전에 알고 지냈던 이들, 옛 직원들도 팔로워로 들어 왔다. 소통의 스피드는 짜릿했다.

그렇게 나는 트위터 세상에 몸담게 되었다. 트위터는 블로그와는 다른 차원의, 그러면서도 보완적(complimentary)인 수단이다. 아직 나는 초보 단계다. 시간이 모자람도 절감한다. 왜 이리도 세상은 빨리 변하고 있는가? 지금 이 시간에도 온 세상 정보를 트위터와 블로그로 알리는 이들의 열정이 놀랍다. 그래서, 트위터의 매력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보게 되었다.

 

첫째, 글로벌 커뮤니티 속에서 입체적으로 커뮤니케이션이 이루어진다. 비록 140자 이내라는 짧은 글이지만, 오히려 단편의 문장 속에서 그 사람의 진정한 생각을 읽을 수 있다. 손정의 사장의 메시지를 어디에서 이렇게 생생하게 읽을 수 있겠는가? 사실 짧은 글 속에 중요한 요지가 더 함축되어 잘 담아질 수 있다. (아래 cartoon 참조)

The Evolution of Communication, Mike Keefe, The Denvor Post, March 27, 2009


둘째
, 타임라인(Timeline)
이라는 시간적 차원이 추가되었다. 정보는 더 이상 저장(store)되고 관리(manage)되는 정적인 요소에 그치니 않는다. 방대한 정보가 떠 돌아 다니며 타임라인이라는 시간축과 팔로워라는 소셜 네트워크 축을 통해 입체적으로 퍼져간다. 이 정보를 어떻게 잡아내어 자신의 가치(value)로 만드느냐가 열쇠다. 끊임없이 고급 정보는 역동적으로 생성되어 흘러가며, 이는 실시간(real-time)으로 소통되고 있다.

셋째, 트위터는 컨버전스 시대에 판단 기준을 삼을 수 있는 도구다. 각종 기술과 콘텐츠, 아이디어가 융합되어 가고 있다. 기존의 생각과 틀이 바뀌고 있고, 그 변화 속도는 너무나도 빠르다. 경험적이고 학구적인 이론이나 기존의 사업 모델이 적용되지도 않는다. 그럴 수록 전문가(Guru)의 통찰력과 감각이 절실하게 필요하다. 트위터에서 논의되는 전문가의 의견은 상식 수준의 정보와 차원이 다르고 맥을 잘 잡는다.

 

여러 장점 중에서 전문가의 역할이 중요해졌다는 점이 나에게는 큰 매력이다. 우리가 현재 경험하고 있는 변화는 패러다임 이동 수준이 아니다. 지축이 흔들리는 구조적 탈바꿈이다. 사업 모델의 충돌, 기술과 콘텐츠의 집합(aggregation), 여기에 소셜 미디어와 문화 코드의 복합성이 뒤엉켜 있다. 산업화 시대의 규율과 통제의 기업 문화와 훈련된 역량으로는 풀어갈 수가 없다.

 

창의력과 혁신성이 중요하고 적극적으로 소통하는 역량을 필요로 한다. 홍수처럼 떠돌아 다니는 정보와 지식의 구름 속에서 전문가와 리더의 생각을 읽는 것이야말로 아주 중요하다. 또한 스스로 전문가가 되어 세상과 소통하는 자세가 요구된다. 그런 시대에 트위터를 비롯한 소셜 미디어는 입체적으로 우리를 도와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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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폰 보안 논의에 대한 기우 몇 가지

보안 이야기 2010.02.17 10:59

스마트폰에 대한 열기가 폭발적이다. 우리 나라에서 너무 늦게 보급되기 시작하다 보니 마치 봇물이 터진 느낌이다. 금년도에 보급되는 스마트폰이 500만대에 이른다고 하니, 작년에 스마트폰이 때이르다며 반대 의견이 있었던 것이 무색할 정도다. 이미 몇 년 전부터 미국의 많은 대학생과 직장인들이 아이폰이나 블랙베리를 들고 다니는 상황에서 너무 글로벌 동향에 대해 무관심했던 것 같다.

 

Application Economy를 설명한 비즈니스위크

스마트폰은 통신업체와 휴대폰 제조업체에 의해 주도되던 산업 구조를 소프트웨어 플랫폼 기반으로 바꾸고 있다. 스마트폰은 애플리케이션 경제(Application Economy)의 한 축을 담당할 패러다임이다. 전화가 잘되는 것보다, 휴대폰 모양이 예쁜 것보다, 내가 필요한 애플리케이션(application)과 콘텐츠를 얼마나 잘 찾아서 활용할 수 있느냐가 주요 관심사다. 겉모양은 휴대전화처럼 보이지만 이를 보는 관점이 바뀌고 있는 현상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5-10년 후 모바일 기기가 어떻게 사용되고 있을지 자못 흥미 진진하다.

스마트폰의 여러 가지 문제가 얘기되면서 보안에 대해 벌써부터 많은 말이 오고 간다. 새로운 패러다임이 등장하면서 보안 문제가 먼저 제기되는 것은 반가운 현상이다. 1990년대 중반 인터넷 열기 속에 너도나도 홈페이지 제작에 열을 올리던 당시 나는 인터넷 산업에서 보안이 중추적 문제가 될 것이라고 열심히 얘기하고 다녔다. 하지만 글쎄, 중요한 것 같기는 한데 너무 과장하는 것 아니야?” 라고 무시당했던 상황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그런데, 최근에는 스마트폰, 스마트그리드, 클라우드와 같은 새로운 IT 패러다임이 나올 때마다 보안은 반드시 준비할 핵심 요소로 간주되고 있으니 격세지감을 느낀.

 

스마트폰 보안에 대한 논의는 현실 가능성에 바탕을 두어야

 

그러나, 한편으로는 보안 문제가 너무 체계를 갖추지 않은 채 제기되는 모습도 적절하지 않아 보인다. 특히 보안에 일가견이 있는 전문가일수록 차분하면서도 내실을 갖춘 논의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앞으로 스마트폰의 용도와 사용자의 행동 방식은 예측하기 어려울 정도로 전개될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이것이 스마트폰의 보안 문제다라고 단정지을 수 없을 뿐더러, 괜히 스마트폰에 대한 부정적 인식과 편견만 불러 일으킬 수 있다.

 

물론 PC에서의 위협 형태가 스마트폰에서도 비슷하게 발생할 개연성이 크다. 또한 스마트폰 만의 구조적 취약점도 충분히 예견된다. 그러나, 보안 위협은 현실에 바탕을 두고 판단해야 한다. 기술적으로 해킹이 가능하다고 해서 반드시 위협이 되는 것은 아니다. 사용자가 웬만큼 관리하거나 제도적으로 보완된다면 해킹을 해도 실익이 없게 되고, 그렇다면 그것은 더 이상 위협이 아니다.

 

그런 점에서 해킹이 될 수 있다고 소란스러워 하는 것은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픈 소스의 운영 체제나 급조된 애플리케이션을 해킹하는 것은 그다지 뉴스 거리도 아니다. 보안의 범위와 목적을 정해놓지 않은 상태에서 기술적으로 왈가왈부하는 것이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어떤 환경에서, 어떤 애플리케이션을 어떻게 사용한다는 경우에 대한 위협 시나리오를 설정해 놓고 차분히 보안 대책을 논의하는 자세가 바람직하다.

 

스마트폰의 사상에 충실해야

 

Home button의 의미는?

우려스러운 것은 이미 PC와 인터넷에서 익히 알고 있는 보안 제품과 기술을 그대로 스마트폰에 적용하려는 시도다. 물론 보안의 개념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나, 고객의 사용 행태를 고려하지 않은 처사는 스마트폰의 본질적 차이를 무시한 것이다.

이를 테면 스마트폰은 PC보다 상대적으로 적은 컴퓨터 자원으로 동작한다. 반면 모바일 사용자는 PC만큼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릴 수 없다. “사용 중 잘 모르겠으면 언제든지 우리의 Home' 버튼을 누르고 스티브 잡스가 홈 버튼의 중요성을 설명한 적이 있다. 이 버튼을 가장 접근하기 좋은 위치에 놓은 것은 모바일 사용자의 조급성과 불안함을 해결해 주기 위한 최소한의 배려다. 일종의 스마트폰의 사상에 충실한 조치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 보안 문제로 사용자가 불편함과 인내심을, 그리고 기술적인 마음가짐을 강제적으로 갖추기를 요구한다면 보편화를 모토로 한 스마트폰 사상의 틀은 깨진다.

 

또한 기술이 적용된 후의 서비스 인프라는 고려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소프트웨어는 하드웨어와

스마트폰에 최적화된 기술이 되어야

달리 고객에게 상품이 전달된 순간부터 고객과의 교감이 시작된다. 업그레이드, 버그 수정, 확대된 기능, 보안 패치 등. 그런데, 일단 돈만 된다면 출시하는데 급급해서 무늬만 소프트웨어인 상품이 범람하지 않을까 우려된다.

검증되지 않은 소프트웨어가 쏟아져 나올 때 그 피해는 고스란히 사용자에게 간다. 이미 PC에서도 스파이웨어나 애드웨어처럼 동작하는 허위 제품이 무수히 거래되고 있다. 소프트웨어 간의 충돌로 인한 장애, 보안성의 결여로 인한 정보 유출 등 상품화 단계에서 걸러져야할 문제는 한 두개가 아니다. 홍수처럼 몰려오는 애플리케이션이 전문성과 검증성, 신뢰성에 기반하지 않는다면 앱스토어도, 스마트폰도 모래 위에 지은 집과 같다. 스마트폰 산업은 소프트웨어와 콘텐츠의 생태계가 신뢰를 바탕으로 굳게 서야 한다.

 

스마트폰의 핵심은 애플리케이션 산업이고 이를 받쳐주는 것은 소프트웨어 플랫폼이다. 정보 보안은 바로 이 소프트웨어 플랫폼에 녹아 들어야 한다. 이 플랫폼을 어떻게 설계하고 어떻게 공유하느냐에 따라 많은 보안 문제를 구조적으로 줄일 수 있다. 지혜를 모아서 안전하면서도 사용하기 편리한, 그러면서 글로벌 시장의 표준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설계해야 한다. 보안은 그러한 프레임워크(framework)의 한 요소가 될 것이다.

 

스마트폰의 킬러 소프트웨어가 게임, 인터넷 금융, 소셜 네트워크 같은 것이 될 것이라고 한다. 아울러 기업 사용자는 업무 용도로 많이 사용하게 될 것이다. 이런 소프트웨어를 아우를 수 있는 골격의 설계가 필요하다. 이런 골격과 플랫폼에 보안의 개념이 자리잡아야 한다.

 

급속도로 성장하는 정보화 물결 속에 수많은 IT 패러다임들이 생성되고 소멸되었다. 시장의 활성화를 위해 어느 정도의 들뜸도 나쁘지는 않다. 그러나, 보안과 같은 규제적 요소가 너무 무성하게 논의되면 초점을 놓칠 수가 있다. 보안 문제는 전문가의 시각으로 내부 구조를 바라보는 신중함과 통찰력을 가졌으면 한다. 정보 보안은 IT를 편하고 안전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조연의 역할에 충실해야지 무대 전면에 나서는 주연이 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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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가 취업을 준비하는 젊은이들에게(4) - 갑 vs 을 시대착오적 세태

CEO 칼럼 2009.10.05 12:36

먼저 두 가지 사례를 들어 보겠다.

 

사례 1

대기업 부장이었던 분이 있었는데, 어느 날 독립했다고 연락이 왔다. 그 동안 닦아 놓은 인맥을 바탕으로 사업을 하려고, 마침 명예퇴직 프로그램이 좋아서 퇴직금 두둑하게 챙겨 나왔다고 한다.

 

그를 잘 아는 이들은 어리둥절했다. 그 분은 을 괴롭히는 전형적인 인물이었다. 항상 의 요구에 무조건 응하도록 압력을 가하고, 계약을 차일피일 미루고, 그러면서 심한 접대 요구는 유명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회사에서도 그를 좋게 평가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데, 그는 그렇게 알게 된 기업들이 자신을 도와줄 것이라고 착각했던 것이다. ‘슈퍼 갑앞에서 잘 보이는 것 이외에 의 옵션이 얼마나 있겠는가? 그러나, 회사를 나온 그에 대한 예우는 이전과 달라질 수 밖에 없다. 결국 모두가 냉랭하게 대했고 그 후 소식은 잘 모른다.

 

사례 2

공무원을 오래 하시다가 도중에 모 회사의 임원으로 가신 분이 있다. 그가 한참 잘 나갈 때에는 업체들이 눈 밖에 나지(?) 않으려고 눈도장을 찍느라 바빴다. 그가 행사할 수 있는 예산과 결정권은 막강했다. 전문가가 적던 시절이어서 그의 발언권은 아주 컸고, 이에 힘입어 그는 승승장구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고 전문가들이 많아지면서 그의 실력은 한계를 드러냈고, 내부에서도 견제의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그나마 늦기 전에 회사로 옮긴 것은 괜찮은 결정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이 분이 회사에 가서도 목에 힘을 빼지 못하고 지냈다. 고객의 목소리를 겸허히 듣는 것이 익숙하지 않았고, 그러다 보니 접대를 나가서도 훈계조로 얘기하거나 자신이 주도하려는 모습을 보였다. 결국 적응을 하지 못하고 회사를 관두었다.

 

갑과 을의 관계는?

갑과 을은 평등한 관계인가?

직장을 선택하면 업무의 형태가 의 어느 한쪽에 속하게 마련이다. 이를테면 회사 자체가 의 역할, 즉 제품이나 서비스를 구매하는 역할이 큰 업종일 수 있다. 아니면 의 역할을 담당하는 부서에서 근무하게 될 수 있. 모두가 그 회사를 위해서는 중요한 일이기에 어디서든지 성실하게 임한다면 전문가로서 중요한 커리어를 쌓을 수 있다.

그런데
, 우리 나라는 의 불평등이 심각한 문화라는 점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어느 나라나 물건을 사는 쪽보다 판매하려고 하는 입장이 항상 아쉬운 법이다. 특별히 공급이 부족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구매자가 비즈니스의 열쇠를 쥐게 된다.

그렇지만, 입장을 바꾸어 생각하면 좋은 제품과 서비스를 해 주기 바란다는 갑의 마음도 있을 수 있다. 거래는 상품과 용역을 재화로 교환하는 공정한 개념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한쪽으로 치우쳤을 때의 불투명성과 불합리성의 문제다.

 

왜 유독 우리 나라에서는 의 권한이 강할까? 
필자의 생각에는 과거에 장사를 하는 사람들을 낮추어 보는 사농공상(
士農工商)’의 전통과 유교적 문화가 잠재적 원인중의 하나인 것 같다. ‘상도(商道)’라는 소설과 드라마를 보면 겉으로는 고상한 척하면서 뒤로는 상인들의 이문(利文)을 갈취하는 양반들의 위선적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상인을 이기적이고 돈만 밝히는 장사치로 간주하는 가운데, ‘내가 당신의 물건을 사 준다’, ‘베풀어준다라는 우월적 인식이 자리잡지 않았을까? 이런 인식이 현대 산업 사회로 오면서 투명한 거래로 진화했어야 하는데, 불행히도 정부와 대기업 위주의 경제 성장 속에서 그런 문화의 형성은 미루어져 왔다. 시간이 가면서 나아지고는 있지만, 여전히 불평등은 심각하다.



그런 상황에서 직장에 취직해서 어떤 종류의 업무를 맡느냐는 나중에 그의 커리어에도 영향을 미치는 것을 많이 목격했다. 이를테면 만일 의 업무로 몇 년을 지내고 나면, 훗날 직장을 옮기거나 업무가 바뀌어서 의 입장에 처했을 때 잘 적응을 못 하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된다. 앞의 사례에서 보듯이 사회에서의 자신의 위상을 완전히 착각하기도 한다.

20년이 넘도록 편안하게 직장을 다니신 분이 있다. 연봉도 다른 업종의 친구들보다 높은 편이었고 시간적 여유도 많았다.억세게도 운이 좋구나라는 생각에 부러움이 들었다. 본인 스스로도 운이 좋아서 편하게 지낸다고 자랑하곤 했다. 그러나, 그 조직도 구조조정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고 그는 커리어의 전환점에 서게 되었다. 그는 내가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지?”하고 심각한 무력감을 느끼게 되었다고 한다. 자신의 가치는 그 조직이 만들어 준 것이지 자신이 만든 것이 거의 없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조직 속의 내가 아니라, 진정한 나의 가치가 필요
 
'
일을 시키는 입장일을 직접 수행하는 자세의 차이는 엄연히 존재한다. 물론 일을 시키면서도 철저히 분석해서 전문가가 될 수는 있다. 그러나, 겉에서 보고 판단하는 것과 실제로 부딪히면서 경험하는 것은 천지차이다. 안철수 박사가 직접 숙제도 하고 시험도 보면서 해야 자기 것이 된다라며 CEO를 관 두고 고행의 MBA 프로그램에 들어간 이유와 일맥상통한다.

 

사실 '갑'과 '을'을 단순히 수직적 관계로 보는 발상은 시대착오적이다. ‘’의 역할은 큰 목표를 실현해 가는 과정에서 '을' 즉 파트너의 도움을 필요로 할 뿐이다. '을'의 상품을 사 주거나 일거리를 주는게 아니다. 그런데, 이러한 파트너쉽을 자신의 파워(power)로 착각하고 즐기려는 이들이 있다.

은 항상 아쉽고, 머리 조아려야 하고, 고객이 부르면 달려가야 한다. 허나 ’로 오랜 경험을 쌓을 경우 자기 독립심이 강해지고, 자신의 역량에 대해 냉정하게 판단할 수 있다. 조직에 의해 내가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만의 현실적 가치를 보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이냐 이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사회에서의 삶을 태하는 진지한 자세가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보통 사회생활에 임하는 자세는 초기 몇 년의 직장 생활에서 자리잡히기 때문에 커리어에 있어서 중대한 기로다. 초반에 자신을 연단하는데 더 투자한다는 자세로, 직접 일을 수행하는 경험을 많이 쌓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 경험을 통해 업무에 대한 통찰력이 생기게 되고, 그것이 진정한 자신의 실력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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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와 권력이 세습되는 사회는 경쟁력없다 : 사교육 논의를 바라보는 시각 (1)

CEO 칼럼 2009.05.05 08:34

최근 사교육 문제를 놓고 시끄럽다. 공교육과 사교육의 불균형을 해소하는 방안에 대한 논의는 어제 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정부 내부에서도 서로의 영역 싸움과 갑론을박으로 요란하다.

 

어느 나라에서나 교육 문제는 또렷한 방안이 만들어지기 힘든 것 같다. 다양한 스펙트럼의 인력 수요에 맞추어 절대적인 교육 제도를 만드는 것이 어렵고, 교육 프로그램에 대한 결과가 워낙 주관적인 판단에 의해 좌우되기 때문이다. 민이라면 모두가 교육의 대상이라서

영어마을(pungnap.sev.go.kr)

교육자, 정치인, 관료 모두가 조심스럽게 마련이다. 특히 지식 기반 사회에서는 창의력과 전문성을 갖춘 인재가 절실하기에 산업 시대의 교육 체계가 적합하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또한 글로벌 사회가 되면서 교육은 국가에서만 관리되던 단계를 벗어났다. 기러기 아빠, 영어 마을, 연수 캠프와 같은 다양한 글로벌 교육 옵션은 부모의 재산과 정보력이 자식의 장래에 영향을 주는 요소임을 여실히 보여 준다. 이는 우리가 간직했던 습속과 문화에 영향을 줄 뿐더러 가정을 해체하는 위기의 상황마저 발생시키고 있다. 그런 점에서 교육은 사회적, 심리적, 산업적으로 가장 큰 충격을 주는 요소다.


공정한 경쟁과 실력이 보장되는 사회를 위해 


우리 나라의 사교육이 기형적이고 궁극적으로 학생들에게도 도움이 안 된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 무엇보다 공정한 경쟁을 방해하고 있다. 아이 둘의 엄마인 어느 직원이 아이가 좋은 학교를 가는 요건이, 첫째가 부모의 정보력, 둘째가 부모의 경제력, 그리고 나서 다음이 아이의 실력이라는 요즘 회자되는 얘기를 하면서 맞벌이를 하는 주부의 애환을 토로한 적이 있다.

 

개인의 실력과 노력보다 부모의 물질적 능력이 우선되는 우리의 사회 모습은 아주 심각하다. 교육이야말로 돈이 많고 적고를 막론하고 노력과 실력에 의해 공정한 기회를 보장하는 이 사회의 근간(根幹)이기 때문이다. 부와 권력이 세습되는 사회는 건강하지도 않고 경쟁력도 없다. 개인이 국가를 선택할 수 있는 현실에서 그러한 국가는 경직된 기득권층에 의해 성장 동력을 상실한 채 정체될 뿐이다. 한 마디로 희망이 없는 사회다.

 

그런 점에서 교육이 국가의 대계임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결국 사람이 있으면 모든 것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변변한 자원 하나 없는 대한민국의 자랑은 사람이다. 나는 국가 지도자들의 국정 최고 우선 순위는 교육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최근의 논의를 지켜 보면 정작 본질적인 문제는 제쳐 두고 지엽적 방법론에 대해서만 왈가왈부하는 느낌이다

 

donga.com

ohmynews.com



교육의 목표는 국민들이 이 시대에 적응해서 살아가기 위한 방편을 갖추도록 하는 것이다
.
적절한 전문 실력도 갖추어야 하지만, 사회의 구성원으로 살아가기 위한 인성과 능력, 지식을 양성해야 한다. 또 하나의 변수는 현재와 미래 사회의 변화 속도다. 그렇기에 미래 산업과 사회의 모습을 예측하고 그에 필요한 인력이 양성하는데 교육의 목표가 정조준되어야 한다.

 

그러나, 정작 미래의 우리 사회의 미래 모습에 대해서는 아직 공감대가 이루어지지 않은 것 같다. 설사 목표가 있더라도 추상적이고 선언적이라서, 목표에 도달하기 위한 구체적 방안은 없이 구호적인 탁상공론에 그치는 양상이다. 그래서인지 현실성을 느낄 수가 없고 구성원들이 확신을 가지기 어렵다. 그러니, 교육 프로그램은 필요한 인력을 어떻게, 얼마나 양성해야 할 지 대한 본질적 고민은 빠진 채, 기존 제도와 규제에 대한 논의에 머무르고 있다. 그러니, 인력의 수요 공급에 관한 한 산업과 학교의 괴리는 깊어만 간다.

 

핵심이 빠진 미래 산업에 대한 논의

이를 테면
, BT(Biotechnology), NT(Nacotechnology), IT(Information Technology)가 융합을 이루는 산업이 미래의 성장 엔진이라고 한다. 다양한 사업 모델과 일자리가 창출될 것이라고 한다. 산업의 트렌드를 볼 때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런데, 이런 융합을 만드는 근본적 요소에 대한 진지한 성찰은 찾기가 힘들다. 결국 모든 것이 사람이 하는 일인데, 정작 일을 수행할 사람이 없다면 이 목표는 그림의 떡일 뿐이다.

 

그러면 그 융합의 원천은 무엇인가? 이 세 단어에 공통적으로 들어간 ‘T’, Technology(테크놀러지)는 과학과 기술, 그리고 탄탄한 엔지니어링을 의미한다. 3가지를 담을 그릇은 다양한 사업 모델이지만, 이들의 결합을 가능하게 하고 부가 가치를 창출해 내는 핵심 요소는 기술(Technology)이다. 투자 자금, , 규제, 사업 모델은 기술을 만들 사람이 있고 나서의 문제다.



그런데, 오늘날 공교육, 사교육을 막론하고 과학과 기술은 소외되고 있다. 숫자 측면에서도 과학과 기술을 전공하겠다는 소위 이과(理科) 인력이 법대, 경영대, 인문계열과 같은 문과(文科) 인력보다 적다. 어떤 이는 이과, 문과의 구분이 적절하지 않다고 한다. 그러나, 그것은 광범위한 역량을 갖추어야 한다는 것이지, 개인의 전공적 자질과 적성을 무시해도 된다는 것은 전혀 아니다. 오히려 제너럴리스트(Generalist)보다 전문가(Specialist)가 이 시대가 필요로 하는 덕목이다.

 

오늘날 기술(Technology)과 실력을 갖추지 못하면 제대로 대접받지 못한다. 아예 대화에 끼지도 못하는 수모를 당하기도 한다.


그런데
, 우리는 시대를 역행하고 있다. 사농공상(
士農工商)의 망령이 살아나서 공(工)과 상(商)이 무시되는 사회 분위기다.

이 시대의 선수는 과학과 기술 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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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직면한 여러 가지 문제를 극복하고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내는 선수들은 과학과 기술에 종사하는 전문가들이다. 변호사, 의사, 공무원은 모두 스태프다. 운동 경기에서 감독과 스태프의 영향력은 중요하다. 그러나, 정작 풍부한 선수 자원이 갖추어지지 않으면 게임 자체가 되지를 않는다.

히딩크 감독이 첼시에서 좋은 성적을 내는 배경에는 그의 출중한 능력도 있지만
, 세계 각지에서 뽑은 탄탄한 선수층이 있기에 가능하다. 그의 강점이라는 용병술(
用兵術)은 일단 선수들이 있을 때 가능한 용어다.

 

또한, 훌륭한 감독과 스태프도 선수 출신들이 많다. 비록 선수로서 성공할 수는 없었더라도 명장(名將)이 된 이들을 많이 본다. 그러나, 선수 생활을 전혀 해 보지 않은 명장을 보기는 힘들다. 왜냐 하면, 선수들과 같이 호흡해 보았어야 그들의 고민과 생각을 이해할 수 있고 다룰 수 있기 때문이다.

요컨대 과학과 기술을 잘 아는 선수들이 좋은 지도자나 스태프도 될 수 있다는 얘기다. 기술을 알아야 기업, 정부, 학계 각 분야에서 휼륭한 지도자가 될 수 있다. 그래서,
교육의 목표는 선수들의 저변을 확대하는데 초점이 맞추어져야 한다.


과학 기술의 저변 확대가 교육의 초점이 되어야

BT, NT, IT
산업은 공히 기초 과학과 광범위한 R&D가 든든하게 받쳐 주어야 한다. 그런데, 장미빛 그림과 장대한 기획 속에서 기술 인력, 즉 선수들을 양성할 방안에 대해서는 정작 심각하게 고민하는 흔적을 보기 어렵다
. 전략적으로 인재를 양성하는 국가적인 어젠다와 컨센서스가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똑 같은 대학입시 제도에 지식을 습득하는 교육 콘텐츠에만 매달리고 있다.

 

수능 과목을 위해 필요한 수학은 아주 기초적인 내용일 뿐이다. 단순히 답을 산출해 내는 정보력에 의존한 수학/과학 교육으로는, 어른이 되어서 창의적 돌파구를 찾아낼 수 없다. 공대 교수들이 하소연하는 말이, “요즘 들어오는 학생들은 미적분과 초월함수를 결합하면 전혀 손을 못 대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한다. 전자공학, 기계공학, 재료공학과 같은 공학에서 고급 수학은 전공을 하기 위한 기초중의 기초다. 평소에 수학과 과학 문제를 푸는 것을 즐기고 탐구하는 지적 호기심이 바팅이 되어야 과학 기술을 궤도에 올릴 수 있다.

 

구글(Google)의 뛰어난 검색 엔진은 뛰어난 수학과 알고리즘 덕분이다. 하이테크 기업들이 수학과 과학자를 스카우트하는 배경을 주목해야 한다. 실리콘 밸리에서는 차별있는 기술과 아이디어가 없으면 아예 만나 주지도 않는다. 우리 회사(안철수연구소)에서도 기술(Technology)이 모든 논의의 중심이다. 좋은 아이디어와 기회가 있더라도 이를 실현하는 Enabler의 역할은 기술(Technology)이 담당하기 때문이다. 경쟁력있는 기업의 CEO들은 기술에 대한 아쉬움과 중요성을 누구보다 잘 안다.


어느 시점부터 공대를 나온 우수 인력들이 고시를 봐서 변호사나 공무원이 되려고 하고
, 순수 과학을 전공하더라도 의대나 한의대로 가려고 한다. 물론 그것이 자신의 적성에 맞을 수도 있고 그런 전문가도 많이 필요하다. 그러나, 그것은 두터운 선수층을 형성된 차후의 문제다. 기술이 많아야 특허 전문 변호사도 많이 필요할 거고, 생명 과학이 발전해야 새로운 의료 기술을 의사들이 적용하지 않겠는가?

선수들 없이는 그 팀이 경기장에 아예 들어설 수도 없다. 감독과 스태프 없이 경기를 할 수 있어도, 선수들 없이는 경기가 이루어지지 않는다. 선수들도 충분히 예비 인력까지 갖추어야 한다. 선수보다 코치가 많으면 비정상이다.
교육 전문가들은 이런 현실을 모르는 것인가 아니면 무시하는 것인가?


(다음 회에 "창의력과 콘텐츠"에 대한 논의를 중심으로 이어서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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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일본 콤플렉스에서 벗어난 이유

CEO 칼럼 2009.04.20 03:37

과거 새마을 운동이 한창이던 시절에는 공단지역에 활기가 넘쳤다. ‘잘 살아보세라는 표어를 벽에 걸어두고 선진국이 되고자 하는 뚜렷한 목적 하에 열심히 일하고 열심히 배웠다. 공장들은 쌩쌩 돌아가고 빼곡히 들어앉은 교실에는 학구열이 넘쳐났다. 이를 통해 우리는 자랑스럽게 발전했고 교육을 기반으로 한 탄탄한 중산층을 형성하기에 이르렀다.

 

새마을운동 당시의 모습(좌)과 수출 중소기업 내부 사진(출처:디지털타임스)



그러나
, 작금의 현실은 이렇게 통합되고 안정된 풍경을 찾기 어렵다. 대기업의 생산 기지는 해외로 나갔고, 인건비를 감당할 수 없는 중소기업들도 중국으로 나갔다. 산업 생태계가 무너지게 된 것이다. 교육은 어떠한가? 비정상적으로 커져버린 사교육 시장과 날로 늘어나는 기러기 가족들. 이 모든 것들은 중심을 잃어버린 채 허상만 쫓아다니는 우리의 모습이 아닌가 한다. 이제 현실을 직시하고 뚜렷한 목표와 구체적인 문제 해결에 나서야 할 때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중심은 무엇이 되어야 할까
?
 

자타가 공인하는 한국의 경쟁력은 사람이다. 아이디어도 많고 손재주도 있으며, 목표가 주어질 때의 집중력은 높이 인정받는다.


특히 과학과 기술 분야에 씨를 뿌린 것은 성장의 밑거름이 되었다. 오늘날 세상에서 인정하는 굴지의 기업을 받쳐주는 기술력이 어디에서 나왔겠는가? 60년대부터 시작해 7-80년 대에 피크를 이루어 이공계 전공으로 몰려든 인력들의 활약이 아닌가?

 

이러한 기술력의 바탕은 인력 양성 체계인 교육이다. 하지만 이공계보다 의사, 변호사, 공무원을 선호하게 되는 시점부터 우리의 중심은 허물어지기 시작했다. ()과 상()이 중심에서 밀리면서 인력의 수요 공급의 균형이 무너지게 된 것이다. 글로벌 시장에서 본격적인 게임을 하기 전에 스스로 선수들의 정족수도 채우지도 못하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이처럼 기술이 대우를 못 받는 현실은 산업 기반과 중소기업의 어려움으로 이어진다. 기술(technology)이 핵심인 시대에 기술자가 무대에서 밀려난 것이다.

 

오늘날 기술은 힘이다. 돈 만으로 기술을 살 수 있던 시대는 끝났다. 다른 기술을 얻으려면, 실력이 있어야 한다.


아무리 돈이 많은 대기업이라도 기술이나 명확한 윈윈 사업 모델이 없으면 글로벌 전문 기업과 일을 할 수 없다. 그렇지만 몇 명의 작은 기업도 기술과 아이디어만 좋으면 구글이나 애플 같은 글로벌 기업의 파트너가 될 수 있다. 지구 반대편의 한국의 지방에 있는 작은 사무실에 있더라도 전혀 문제가 될 게 없다. 이것이 네트워크 경제의 결정적인 특성이다.

 

그런 점에서 기술이 산업과 사회의 기반이 되고 우수한 인력이 이 분야로 진출하는 비전을 주어야 우리의 근본적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이러한 인력의 양성은 실용적이고 지속적이며 유연한 교육 시스템에 달려 있다.


교육을 통한 미국의 경제대국 일본에 대한 패배감 극복
 

빌 클린턴 대통령

미국의 클린턴 대통령의 업적 중 하나가
교육을 키워드로 삼았다는 점이다. 그의 연설 중 인상적이었던 것은 대학 가고 싶은 누구나 대학을 가는 세상으로 만들겠다는 공약이었다. 사실 그가 백악관에 들어설 때 미국은 일본에 대한 패배감과 콤플렉스에 싸여있었다. 그러나, 교육에 대한 열정은 그의 또다른 키워드인 정보기술(IT)과 더불어 미국을 다시 일으키는 계기가 되었다.

 

실제로 오늘날 미국에 가 보면 전문 대학(Junior College)이 상당히 많고 커진 것을 목격할 수 있다. 이는 종합대학을 가기 위해 내실을 다지는 과정이기도 하지만, 산업의 패러다임 변화에 적응하기 위한 일반인들에게 평생 교육을 제공하는 장으로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현재 미국이 경제 위기라고 해서 이런 입체적인 교육 시스템을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

 

반면 우리의 교육은 어떠한가? 모든 관심이 대학 입시에만 매달리고 있다. 우수 인력들이 사교육시장의 강사로 또 사업가로 뛰어드는 현실이 얼마나 국가적으로 비생산적인가? 한참 일하고 배워야 할 젊은이들도 사교육 시장으로 뛰어든다니 정말 한심하다. 

학원가 현장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 사회에서 다양한 형태로 공헌하고 가치를 창출해야 플러스가 되고 발전의 원동력이 되는데, 소비적이고 안정 지향의 사회로 가는 현상이 개탄스럽다.

교육은 치열한 삶의 현장에서 살아남기 위한 인력을 양성하는 데 초점이 맞추어져야 한다
. 그런데, 아직도 대학 입시가 모든 교육 정책인양 비추어지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다. 산업 시대에는 사회가 요구하는 전문 지식이나 교육 커리큐럼도 비교적 단순했다. 그러나, 지금은 기술도 급변하고 창의력이 성공의 키워드가 되는 세상이다.

지도자가 되고 전문가로 성장하는 길은 사회에서 통하는 진정한 실력이지, 학교에 들어가는 시험 자체는 아니다. 이미 오래 전부터 산업 현장에서는 어느 학교에서 어떤 성적으로 졸업했느냐 보다 어떤 실력과 잠재적 능력을 가지고 있느냐로 직원을 선택한다. 특히 과학 기술과 이공계는 어느 대학을 나왔는지가 중요한게 아니다. 문제의 해결 능력, 창의력과 열정, 즉 실력으로 판가름난다. 물론 학교 교육으로 전문성을 갖춘다면 더 바랄게 없다. 요컨대 학교 성적이나 자격증보다 중요한게 실력 그 자체라는 것이다.

지금이 어느 시대인데 고시열풍인가? 라이센스나 자격증만으로 편안한 삶을 기대한다면 이 시대의 키워드를 놓친 거다. 오히려 평생 공부해서 전문가가 되어야 생존할 수 있는 사회인데, 대학 입시나 고시 통과로 그 사람의 인생이 결정된다면 그 사회가 경쟁력이 있겠는가? 그런데, 정작 우리의 교육 체계는 한참 일할 나이인 30 - 50세 산업인들이 새로운 패러다임에 적응할 수 있는 재교육 방안에 대해 아주 취약하다.

지금은 대학 입시 위주의 단면적 교육이 아닌 입체적인 스펙트럼의 교육 프로그램이 전개되어야 한다. 그래야 다양하고 급변하는 시대적 변화에 각 개인들이 적응할 수 있다. 잘 훈련된 인력들에 의해 기술(technology)이라는 전문성을 중심으로 공감대가 정립되어야 중심을 가지고 산업과 사회의 미래를 설계할 수 있다.

 

한경이코노미 (4. 20) 'CEO 에세이' 활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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