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양판점에 한국 TV를 찾기 힘든 이유는?
미국과 멕시코 출장에서 돌아온 지 채 2주가 안 되어서 일본 출장을 가게 되었다. 일본에 갈 때마다 가능하면 아키하바라의 요도바시 카메라에 들른다. 최신 전자 제품 양판점에서 IT 제품의 판매 현장을 생생하게 체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행히 우리 일본 법인이 가까이 있어서, 짬을 내서 갈 수 있다는 편리함도 있다. 미국에 가도 베스트바이(Best Buy)라는 IT 양판점에 잠깐이라도 들르려고 노력한다. 마침 미국과 일본의 양판점을 2주의 시차를 두고 보게 되어 생생하게 비교할 기회가 생겼다.
미국과 일본 양판점의 공통점과 차이점
매장 전경(요도바시카메라 홈페이지)
여전히 노트북은 각종 할인 프로그램으로 디스카운트를 해 주지만, 소프트웨어는 정가대로 구매한다. 소프트웨어는 제대로 돈 주고 사야 한다는 인식이 형성되어 있는 것이 부럽다. 미국의 노트북 양판점 CEO에 따르면 영업 사원이 판매할 때마다 가져 가는 인센티브만 보면, 소프트웨어가 노트북보다 더 크다고 한다. 회사 차원에서도 소프트웨어 제품의 수익률이 더 좋고…
디지털 카메라 매장에 가 보면 캐논, 소니와 같은 일본 제품이 주류를 이루는 것도 양국이 비슷하다. 역시 렌즈 기술이 발달한 일본의 위상을 느낄 수 있다. 오디오의 경우 애플의 아이포드 계열의 제품과 각종 액세서리 매장이 붐빈다. 애플의 아이팟, 아이터치는 MP3 시장을 독식해 가고 있다. 오디오 제품에 아이팟을 꽂는 슬롯은 거의 기본 기능이 되어 간다.
iPod 슬롯이 있는 오디오
그런데, 확연한 차이를 느낄 수 있었던 곳은 가전 제품 매장이다. 미국의 베스트바이(Best Buy)에 가 보면 LCD TV중에 5-60%가 한국 제품이다. 약 10년 전에 한국 제품을 찾아볼 수가 없어서 안타까워 했던 것을 생각하면 격세지감을 느낀다. 당시 삼성전자에서 해외 영업을 담당하던 분으로부터 미국 양판점에 진열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하소연을 들은 적이 있다. 그런데, 지금은 한국 제품이 주도한다. LED TV는 아예 한국 제품밖에 없다.
Best Buy 영업 사원의 한국 기업에 대한 지식
베스트바이의 판매원에게 “삼성과 LG 제품 중에 어떤 것이 좋으냐?”고 물으니, “두 회사가 사실 같은 회사다”라고 하는 게 아닌가? 한술 더 떠서 “삼성이 LG를 조만간 인수할 것이라는 소문이 있다”라고 한다. 어이가 없기도 했지만, 한편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아는 회사에 대해 외국인은 이 정도로 무관심한가”라는 생각에 씁쓸했다. 그나마 그 판매원은 삼성과 LG가 한국 회사라는 것을 아는 게 다행이었다. 일전에 유럽에 가니 일본 회사라는 이들도 있고 대만 회사라는 이들도 있었으니까..
일본 요도바시 카메라 매장에서의 풍경은 확연히 달랐다. 일본의 유통망인 전자제품 양판점에서는 한국 제품이 안 보인다. 반면에 이름도 모르는 일본 자국 브랜드가 아주 많다. AQUOS, DIGA, VARDIA. TV에 그다지 열광하지 않는 나에게는 생소한 브랜드다. 그런데, 이런 제품들이 앞에 진열되어 있었다. 워낙 상가가 복잡해서 다 돌아 볼 수는 없었지만, 세계 어느 곳에 가도 가장 많이 진열되어 있는 한국 TV가 여기 일본 양판점에는 드물다. 세탁기, 건조기도 미국 시장에서 한국 제품의 인기에 비하면 여기에서는 천대받고 있다. 일본 시장에서는 자국 전자제품을 최고라고 생각하고 외산을 선호하지 않는다고 한다.
Best Buy 요도바시 카메라
일본 제품이 고립되어 가는 이유
TV 관련 기술을 개발하는 분과 얘기한 적이 있다. 그의 얘기에 의하면, 일본은 고객들이 아주 까다롭고 고급 사양 위주로 찾다 보니, 일반 사용자에 맞춘 보급형 제품 시장에서 근거를 잃고 있다고 한다. 일본 제품에 대한 자부심과 일본식이 세계 표준이 된다는 자만심도 작용했다. 그 위치를 삼성과 LG와 같은 한국 업체들이 파고 들어서 성공했다. 소니가 그나마 과거로부터의 브랜드 이미지로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지만, 미국인 경영 체제에서 소니의 창업 정신과 철학마저 훼손되어 가는 생각이 든다. 중국 제품은? 중국은 아무리 값이 싸도 품질 차이가 너무 나서 고객들에게 외면당하는게 적어도 현재의 실상이다.
나도 전자공학을 전공한 사람으로서 우리의 전자 산업이 이렇게 발전한 것에 대해 자부심을 느낀다. 특히 친구, 선후배들이 관련된 분야에 종사하고 있어서 남다른 애착도 있다.
잘 나가는 하드웨어 전문가들의 조언
그런데, 바로 그들이 미래에 대해 걱정을 털어 놓는다. “여기까지는 우리가 일본을 극복하는데 성공했고, 계속 집중력을 발휘하면 뒤지지는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런데, 앞으로의 경쟁은 하드웨어가 아니고 소프트웨어다. 소프트웨어와 창의적인 서비스가 사업의 성패를 결정한다. 그런데, 우리 나라는 아직도 하드웨어 잘 만들기에만 집중한다.” 이미 컨버전스(Convergence)는 진행되고 있는데...
IT 산업이 한국, 미국, 일본, 중국에 걸쳐 바뀌는 지형도는 흥미롭다. 우리도 현재까지 선전했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앞으로다. 중소기업과 소프트웨어가 받쳐 주지 못하면, 이 지형도는 다시 바뀔 것이다. 치밀하게 준비해야 하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Global View'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중국 공항에서 20년전 한국이 생각난 이유는.. (13) | 2009/09/24 |
|---|---|
| 무관심했던 일본인들이 투표장 찾은 까닭은.. (12) | 2009/09/16 |
| 일본 양판점에 한국 TV를 찾기 힘든 이유는? (43) | 2009/09/13 |
| 소비자의 불편함으로 돈 버는 얄팍한 상술 (4) | 2009/08/27 |
| 비서가 사라지는 미국, 택시에서 황당 사건 (휴먼서비스가 경쟁력) (30) | 2009/08/24 |
| 저녁 9시에 식사하는 멕시코 문화 경험해보니 (8) | 2009/08/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