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D 업무에 한숨짓는 보안인력의 현실 : 안철수연구소 CEO가 바라본 DDoS 대란 (3)

CEO 칼럼 2009.07.17 11:28

매번 보안 사고가 터질 때 마다 여러 가지 대책이 논의된다. 각 기관은 대책을 마련하고, 위원회를 만들고, 보안이 중요하다고 구호를 외친다. 언론사들은 경쟁적으로 세미나를 주최하고, 새로운 포럼과 협의회가 생겨 난다. 이번에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업계는 어떠할까? 혹시 특수는 있지 않을까, 이 기회에 어떻게 돈을 벌까 혈안이 될 것임은 불 보듯 뻔하다. 무늬만 보안인 업체들이 나올 것이고, DDoS 전용 장비라고 그럴듯하게 포장을 한 제품들이 봇물을 이룰 것이다. 물론 이익을 추구하는 기업의 속성상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공격을 제대로 막지 못하고 안전을 지킬 수 없는 허위 제품도 많이 보아 왔다.


오늘 투자 설명회(IR)에 갔더니 "공익적인 일을 많이 한 반면, 돈은 엉뚱한 이들이 벌어가는 것 아닙니까?"하고 애널리스트들이 걱정을 한다. 보안 업체들이 무료로 봉사하는 공공재처럼 일하는 것에 대한 투자가의 우려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보안 사고를 막기 위한 근본 대책은 무엇일까? 정보보호산업을 지원해야 한다, IT 보안의 투자를 늘려야 한다, 처벌할 규제를 강화해서 의무화해야 한다, 등등. 그러나, 이러한 백화점식 처방을 나열한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문제의 본질은 단순할 수 있고, 이를 정확히 짚어야 한다.

보안을 구축해야 하는 기업과 기관 측면에서 생각해 보면, 나는 보안 산업에 뛰어든 초창기부터 문제의 핵심은 보안 전문 인력의 태부족이라고 생각해 왔다. 우수한 전문 인력만 충분하면 정보 보안 문제는 해결이 된다. 제품, 솔루션, 정책 실행 모두가 전문 인력에 달려 있다. 보안의 중요성을 외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다. 문제는 누가 그 일을 수행하는 해결사인가 하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기술적 기반이 탄탄한 보안 전문 인력이다.

 

물론 보안 인력 양성10년 전부터 모든 정책 프로그램과 보안 이벤트의 인사말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했다. 그러나, 의지를 가지고 실행하지 못했기에 오히려 후퇴하고 있다. 오늘날 보안 인력, 크게 보아 소프트웨어 인력의 이탈과 사기 저하는 아주 심각하다. 심하게 말해서 하드웨어적 사고와 기업 문화 속에서 정보화 사회의 기반인 소프트웨어는 급격하게 허물어지고 있다. 소프트웨어가 무너지는데 보안이 논의될 수는 없다. 이런 상황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 없이 문제의 해결은 요원하다.

 


왜 보안 전문 인력이 부족한가?

 

왜 보안 인력이 부족한가? 왜 보안 인력이 되려고 하지 않는가? 한 마디로 비전이 없고 힘들기 때문이다. 업무의 난이도와 양에 비해 보수도 적고 사회에서 인정도 받지 못한다. 그러다 보니, 이제는 정말 보안이 좋아서 하는 사람이나 사명감을 갖고 보안전문가의 길을 걷는 사람을 제외하고는, 오래 몸담고 싶은 마음이 적다. 이러한 근원적 요소를 해결하지 않으면, 전문 인력이 태부족인 상황에서 사이버 테러는 계속 발생할 수 밖에 없다. 그 원인을 몇 가지 생각해 본다.

첫째, 우리 나라에서 소프트웨어 인력과 기업은 수직적 가치 사슬에서 가장 밑바닥에 있다.의 절대적 파워 속에 의 업무 범위는 한정되어 있지 않다. 대형 IT 서비스 업체는 고객에게 시달리고, 중소기업은 IT 서비스 업체에 시달린다. 보안은 소프트웨어 중에서도 보이지 않는 부분을 다루는 밑바닥 일이기 때문에 더욱 시달리게 된다. 문제는 그러한 지적 노동이 제대로 가치를 인정받지 못한다는 것이다.

 

미국에서는 보안 소프트웨어를 판매할 때 제품만 제공한다. 만일 설치를 원하면 출장비에 추가 설치료가 부과되기 때문에, 대부분 고객들이 직접 설치한다. 그런데, 우리 상황은 어떠한가? 한밤중에 잠도 못 자고 설치를 하고 나오지만, 그 비용을 별도로 받겠다는 것은 언감생심(焉敢生心)이다.

 

실제로 우리가 멕시코의 어떤 은행에 소프트웨어를 팔고 지원을 하는데, 국내에 비해 몇배 더 받는다. 원격 지원으로 한계를 느낀 고객사는 기술자의 항공편을 비즈니스 클래스로 보내왔다. 물론 서비스 비용은 별도다. 한국에서 고객이 부르면 한 밤중에도 들어가곤 했던 담당 기술자는 어리둥절해 했다. 우리보다 못하다고 생각하는 멕시코가 그렇다.

 

둘째, 정보 보안을 누군가가 담당해 주기를 바라는 귀찮은 존재로 인식한다. 사업 계획을 짤 때는 보안 투자 비용을 삭감하면서 정작 문제가 터지면 사고가 나도록 뭐하고 있었느냐?”고 담당자에게 불호령을 내리는 최고책임자의 후진적 사고는 여전히 많이 발견된다. 어떤 IT 보안 담당자는 매일 아침 일찍 보안 상황을 보고서로 만들어 보고할 때마다 항상 조마조마 하다고 한다. 두려움이 있으면 숨기게 마련이고, 숨기면 사실 공유가 되지 않고, 정확한 정보 공유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대처가 늦어져서 보안 사고를 키운다.

 

또한 자신들이 일을 시키기 위해 보안 업체들의 현장 지원을 요구하는 경우도 많다. 말이 파견이지 보안에 관련된 귀찮고 힘든 업무를 던지는 것이다보안 기업 CEO들이 모이면 이런 형태를 노예 계약이나 다름없다고 한탄하면서 술잔을 기울인다. 부르면 언제라도 달려갈 수 있어야 그나마 생존할 수 있는 열악한 상황이 오늘날 IT 강국의 단면이다. 어떤 보안업체 기술자는 정신적 스테레스가 심해서 병원에 입원했다고 한다. 문제는 더 이상 이런 3D 업무를 하려는 인력이 없다는 현실이다. 하긴 이런 상황에서 누가 보안 전문 인력을 하려고 하겠는가? 보안은 밑바닥부터 실행(execution)하는 것이지 우아하게 앉아서 시키는(order) 것이 아니다. 

 

예전에 대책회의를 갔을 때 정책 담당자가 이런저런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방대한 계획을 발표하는 것을 들었다. 하도 답답해서 그런데 그런 일을 누가 하지요? 보안 인력은 절대적으로 부족한데. 정작 필요한 기술자는 없이 정책만 있으면 어떡합니까?”라고 업계의 현실을 토로한 적이 있다. 법이나 규제를 만드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러나, 그것을 지킬 수 있는 체제는 기술 전문가 없이는 불가능하다. 기술을 모르는 논의는 탁상공론일 뿐이다.

 

셋째, 소프트웨어가 제 값을 받지 못한다. 하드웨어 장비를 사는 것은 투자로 인정받지만, 소프트웨어를 사거나 개발을 맡기는 것은 값을 쳐 주기 아깝다는 인식이 여전하다. 조직의 상사들도 눈에 보이는 제품을 사야 마음이 든든하다. 그러다 보니, 해커의 공격은 눈에 보이지 않고 역동적으로 변화하는 소프트웨어인데, 수비는 하드웨어 장비와 마인드에 머무른다. 그 결과는 뻔하다.

 

이를테면, 단일 DDoS 전용 장비 만으로 공격을 막겠다는 것은 지극히 하드웨어적 발상이다. 물론 DDoS 전용 장비는 필요하다. 그러나, DDoS는 장비만으로 막을 수 없다는 것은 엄연한 기술적 사실(fact)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네트워크 환경을 24시간 운용할 수 있는 체제와 전문 인력이다. 다단계 네트워크 방어 계층 구축, 서버의 유연한 분산 능력, 악성코드 동향의 실시간 모니터링과 신속하게 대처하는 운용 능력이 결합되어야 실질적인 대책이 된다.


보안을 하면 돈을 벌 수 있다는 확신을 줄 수 있어야 한다


국내 보안산업을, 더 나아가 소프트웨어 산업을 키워야 한다. 기업들이 돈을 못 벌면 직원들에게 희망이 생길 리 없다
. 결국 보안 소프트웨어의 공정한 거래가 이루어지고, 서비스가 공정히 대가를 받아야 한다. 밤새 일에 시달려도 존중 받지 못하고 야단만 맞는 현실에서 우수한 인력들이 올 리가 만무하다.

보안 전문성이 높은 가치로 인정되지 않는 한 보안은 또다시 헛구호가 될 뿐이다
. 우수한 인력이 자조의 웃음을 지으며 편한 직장으로 옮기는 것을 계속 보아 온 필자의 마음은 너무나도 아프다. 
 그나마 포털이나 게임사로 가는 것은 전공을 살린다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왜 일류 보안 인력들이 한의사로, 치과 의사로, 보험회사 직원으로, 금융 담당 직원으로 옮기는 지에 대한 진지한 반성이 필요하다. 고생하는 만큼 기술자가 대우를 받지 못한다는 현실을 젊은이들은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전세계적으로도 보안 인력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그러나, 공급이 부족하면 당연히 값이 오르는게 원리다. 그런데, 우리는 실제 보안을 할 수 있는 인력은 점점 줄어드는 현실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전문 기술에 대한 가치는 제대로 인정받지 못한다.

 

국가적으로 아주 심각한 상황임을 모두가 인지해야 한다. 이를 반전하는 열쇠를 찾는 것에 향후 우리 사이버 공간의 안전성 여부가 달려있다. 국가적으로 필요한 것은 보안 기술 인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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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가 강마에 독설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

IT와 세상 2009.04.13 21:46

? 그게 어떻게 네 꿈이야? 움직이질 않는데? 그건 별이지. 하늘에 떠 있는, 가질 수도 없는 시도조차 못하는 쳐다만 봐야 하는 별. 네가 뭔가를 해야 될 거 아냐. 조금이라도 부딪히고 애를 쓰고 하다 못해 계획이라도 세워봐야 거기에 네 냄새든 색깔이든 발라지는 거 아냐!” 

드라마 '베토벤 바이러스'에서 나온
 강마에의 독설이다.

강마에 (MBC 홈페이지)


TV 드라마 속 캐릭터의 독설치고는 정곡을 찌르는 진실성이 있어, 보는 이들에게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한다. 특히 이 대사를 한 배우 김명민은 엊그제 TV에서 "제 이름이 아니라 캐릭터만 쭉 올라오는 배우가 됐으면 좋겠어요."라며 김명민이 아닌 드라마 속 인물을 기억해 주었으면 하는, 배우 본래의 정의를 상기시켜주는 인상적인 얘기를 했다.  '김명민은 없다'라는 프롤로그는 연기에 몰입하는 그의 프로성을 대변하고 있다.


'하얀거탑'에서 '장준혁'에 빠져들게 했던 김명민의 연기를 다시 보고자 한 나에게 '베토벤 바이러스'는 '강마에'를 접하게 해 주었다. 나는 이 대사를 들었을 때 진짜 '강마에'로부터 듣는 듯한 짜릿함을 느낄 수 있었고, 이 대사는 뇌리에 박힐 정도로 느낌이 강했다.


이 대사는 꿈을 추구하는데 머뭇거리는 젊은이를 나무라는 내용이다. 자신의 부모가 하라는 대로, 사회가 인정해 주는 대로 흔들거리는 젊은이들에게, 또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애써 피하려는 이들에게 꿈을 실현하기 위해 도전하라는 교훈적 메시지다. 그러나, 나는 드라마가 끝난 후 '꿈을 추구하지 못하는' 한국이라는 공동체가 떠오르는 것은 어떤 연유일까?

도전보다 편안함을, 창조보다 틀에 박힌 일에 숨고자 하는, 공돈이나 벌려고 여기저기 기웃거리는 최근의 모습은 한국민 고유의 특성인 역동성, 열정과 맞지 않는다.

제롬글렌 회장

그런데, 우리는 언제 부터인가 꿈도 별도 원하지 않는 닫힌 세계를 만들어가고 있다. 역사를 만들어갈 주역들에게 도전과 열정이 보상받을 수 있는 인센티브가 약하기 때문이다. 세계는 변하고 있는데 말이다.
 

우리는 역사적 변혁기에 살고 있다. 제롬 글렌 유엔포럼회장은 농경시대는 종교, 산업시대는 국민국가, 정보화시대는 기업, 후기정보화시대는 개인으로 권력이 이동한다고 내다 보았다. 소셜네트워크나 집단 지성의 시대로 가면서 국가, 정당, 언론과 같은 권력이 힘을 점차 잃게 된다는 그의 지적은 개연성이 높다.

오늘날 우리는 개인이 국가를 선택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그만큼 국가의 벽은 허물어지고 있다.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에게 공평한 기회가 주어지고, 인간다운 삶을 추구할 수 있고, 자녀 교육을 마음껏 시킬 수 있고, 안전을 지켜줄 수 있고, 건강을 지킬 수 있고, 세금을 적게 내는 국가를 개인이 선택해서 갈 수 있는 세상이다. 전세계 화제거리인 '기러기 아빠'는 실패한 교육 시스템에 대한 일종의 저항이다. 적어도 자식에게는 다른 삶을 경험하게 해 주고자 하는, 어쩔 수 없이 세계를 바라보며 살아야 하는 것이 이 시대를 사는 우리들의 모습이다. 
 

이렇게 현재 진행중인 변화와 미래에 대한 예측들이 혼란스럽기는 하지만, 그래도 미래를 꿈꾸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이는 우리의 삶의 방향을 선택하는 준거가 되기도 한다. 허나 미래의 결과가 어떻게 나타날지를 장담하기는 어렵다.

단지 확실한 것은 앞으로의 미래를 연결하는 중요한 틀이 글로벌 정보화 사회라는 점이다. 다시 말해서, IT 인프라와 정보 문화가 성숙되지 않은 곳은 그런 꿈을 꿀 자격도 없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우리의 준비 상태는 어떠한가?

 

수학과 과학, 기술이 천대받아서는 꿈을 꿀 자격이 없어..

안타깝게도 우리의 현실은 비관적이다
. 창의력과 논리적 사고를 키우는 수학과 과학이 거추장스러운 과목이 되었다. 그러다 보니 과학 기술과 IT에 대한 관심은 급속도로 감소하고 있다. 우리가 자랑하는 IT 강국의 모습은 하드웨어 인프라에 머무르는 양상이다. 미래로 이끄는 연결 고리는 정보를 가치로 바꾸는 소프트웨어의 역할이지 중독성이 강한 저질 서비스나 반지성적 커뮤니티는 핵심이 될 수 없다.

그런데, 정작 소프트웨어 분야에 종사하는 이들은 3D로 전락한 자신들의 모습을 한탄하고 있다. 과학과 기술을 기피하는 현상은 국가적으로 깊이 반성해야 하고, 반드시 극복해야 할 위기 상황이다. 앞으로 누가 이 나라를 이끌 것인가? 번득이는 아이디어와 피땀흘린 노력이 대우받는 세상이 살기 좋은 나라다.



 
우리가 얼마나 준비되어 있고 노력하느냐에 따라 별이 꿈으로 바뀔 수 있다. 그러한 준비는 추상적인 구호나 미사여구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를 실현할 수 있는 기반이 실제로 얼마나 갖추어져 있는 가에 달려 있다.

바로 그 기반은 창의력을 갖추고 과학과 기술 마인드로 준비된 IT 전문 인력의 풍성함이다.

 

우리는 중국과 인도를 위협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정작 그들의 방대한 인구보다 두려운 것은 IT가 성공의 지름길이라고 인식하고 앞으로 질주하는 젊은이들의 열정이다. 또한 그러한 사회적 분위기다. 한때 우리도 기술입국이라는 국가적 어젠다에 이끌리어 젊은이들이 이공계로 진출했고, 그들은 한국의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그러나, 지금의 분위기가 전혀 다른 것은 자명하다.

 

그러한 동력이 무너지게 된 원인을 철저히 분석해서 흐름을 바꾸어야 한다. IT에 대한 기술적 기반과 지속적으로 공급되는 전문 인력, 소프트웨어 중심의 사고, 국민적 공감대가 없이는 미래 사회는 쳐다만 봐야 하는 별이 될 수 있다. 지금이라도 준비해야 미래를 계획이라도 세울 것이 아닌가? 편안함에 빠져드는 사회는 희망이 없다. 도전과 창조를 추구하는 국민들이 별을 꿈으로 만들 수 있다.


한국일보 컬럼 'IT 프리즘' 활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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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인 내가 '사농공상'을 싫어하는 이유

CEO 칼럼 2009.04.08 11:01

어떤 기자로부터 다음과 같은 질문을 받았다. “현재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을 하면서 가장 보람을 느끼는 것이 무엇입니까?” 기업의 CEO로서, 기업가(Entrepreneur)로서 어떤 의미의 삶을 사느냐는 질문으로 해석했다. 그 순간 내 입에서 튀어나온 말은회사를 성장시키는 보람에서’, ‘직원들과 동고동락하는 기쁨에서‘ ‘신기술을 개발해서 산업 발전에 이바지하기 위해서와 같은 상투적인 말이 아니었다.

"현실과 부대끼면서 사는 삶 그 자체이지요"


2, 3
초 생각할 틈도 없이 부지불식간에 튀어나온 말이었다. 나 자신을 그럴 듯하게 포장하기 위한 미사여구를 쓸 만도 하건만 반사적으로 나온 대답치고는 너무도 평범했다. 그러나, 돌이켜 보건대 이 표현은 내 마음 속에 내재되어 있던 현재의 내 심정이었다
.

누구든지 역사 속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면서 살아간다. 내가 사업을 하면서 보람이 있다면 현실 속에서 많은 사람을 만나면서, '사람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일까', '그 사람들에게 무엇을 어떻게 갖다 줄까' 끊임없이 탐구하면서 그들과 같이 살아가는 이 시간과 공간에서 기쁨을 누리는 삶 자체라고 생각한다
.

돈보다는 일하는 재미가 중요


이 모습이 역사 속에서 살아가는 나의 실체이고 의미다. 훗날 어느 누가 물어봐도 현재 주위에서 벌어지는 상황들, 내가 살았던 이 시대의 문화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폭 넓은 경험과 사실(fact)에 근거해서 자신있게 말할 수가 있다. 왜냐하면 나는 그들과 부대끼면서 살았기 때문이다.

내가 사업을 시작할 때에 중소기업을 훌륭하게 경영하시던 사촌 형님이 내게 들려준 한 마디는 아직도 내 뇌리에 박혀있다. “절대로 돈을 벌려고 그것을 찾아 다니지 마라. 일을 하는 재미, 사업을 하는 그 자체에 기쁨을 느끼면 돈은 따라오게 되어 있어!”


그 당시는 교과서에 있는 당연한 이야기를 하신다고 대충 흘려 보냈지만, 사업을 하면서 아픔과 기쁨을 번갈아 경험하면서 터득한 진리다.

사실 사업에 있어서 돈은 피와 같다. 돈은 기업에 생명력을 불어 넣고 활동을 하게 하는 요소이고, 돈을 버는 자체가 기업의 존재 이유이다. 그러나, 결코 돈은 수단이고 결과적 이익이지 돈 자체가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 돈이 목적이 될 때에 기업은 사리사욕의 도구로 쓰여지고 그렇게 될 경우 기업은 생명력을 상실하게 된다. 기업은 현실 속에서 끊임없는 창조를 일으키는 존재가 됨으로써 생명력을 가지게 되고, 그 결과 돈도 벌 수가 있다. 그래야 기업이 사회적 의미를 지닌다
.

사농공상(士農工商)에 대한 거부감


내가 청소년 시절 혐오했던 개념이 사농공상(士農工商)이었다. 고교 시절 국어 선생님이우리 나라에서는 공부를 많이 한 사람이, 특히 문과 쪽을 해야 지도자가 될 수 있어. 이 세상을 봐라. 높은 분들 중에 이공계 출신이 어디 있니?”라고 얘기했을 때에 심한 거부감이 치밀어 올랐다. 그 분은 농담처럼 얘기했지만 그분의 마음 속에 있는 말이 부지불식간에 나왔다고 생각한다.

김홍도의 "타작" (출처 : http://commons.wikimedia.org/wiki/File:Danwon-Byeo.tajak.jpg)



인문 교육의 중요성을 무시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내가 혐오한 것은 위선적 삶이 우리의 역사 속에 점철되어 있다는 점이다. 겉으로는 심오한 이상을 추구하는 척하면서 실제로는 현실적인 이익을 챙기는 양반이라는 사람들. 나라의 저변을 구성하는 대다수 계층의 삶은 거들떠 보지도 않은 채 권력욕에 사로잡힌 상류 계층들. 그들과 왕실이 벌이는 유치한 행위가 부각이 되는 역사의 관점. 세계 모든 나라가 이런 과정을 거쳤지만, 특히 우리 나라는 아직도 권력 의존적인 경향을 보여왔다. 아직까지도 사농공상(
士農工商)은 아니더라도 적어도 사()가 상()과 공()보다는 상위 개념인 것 같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의식을 바꾸어야 한다고 한다. 그런데,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픈 게 당연한 사람의 심리 아닌가? 정체된 가운데 한정된 자원을 가지고 아귀다툼하는 제로섬 사회에서 이런 마음을 억지로 품지 말라는 것은 현실성이 없다.

 

발전과 성장이라는 것을 고려하지 않은 정체된 삶이 1960년 이전의 과거 역사다. 발전하고 뻗어 나가 더 큰 자원을 만들어 내고 얻을 생각은 하지 않고 주어진 것을 빼앗으려고 달려드는 우리의 모습에 실망했었다. 창조와 발전을 추구하는 상()과 공()이 철저하게 무시되는 사회에서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심리는 어쩔 수 없다. 그러니, 권력을 쟁취하기 위해, 부모의 유산을 많이 가지기 위해, 경영권을 빼앗기 위해 전쟁을 한다.

기업 속에는 현실 속의 잔잔한 즐거움이 있다. 20대 초반부터 50대에 이르는 직원들과 같은 공간에서 그들과 호흡을 같이 하면서, 각 개인의 기쁨과 애환을 느낄 수가 있다. 머리를 싸매고 고민하는 즐거움이 있고, 서로의 아이디어를 놓고 논쟁하는 긴장감도 있다.

 

▲ 현재 진행중인 V3배 사내 축구대회 A리그 개막 사진 


고객이든 주주이든
, 다양한 직업의 사람을 만나면서 한국이라는 공동체 속에서 공통 부분은 무엇이고 갈등 요소는 무엇인지 발견할 수가 있다. 여러 나라의 사람들과 접하면서 그들의 문화와 역사 속에서 서로 어울리는 부분들을 발견할 때에 그 누구도 가르쳐줄 수 없는 기쁨을 느낀다. 사업을 통해 내가 느끼는 현실적 삶이다
.

창조적 파괴를 꿈꾸며


내가 더 감사하는 것은 우리가 혁명의 시대에 살고 있다는 점이다. IT산업에 종사하는 이들은 산업 시대에서 정보화 사회로 가는 길을 개척하는 선구자다. 온갖 기술적 패러다임이 수없이 생성하고 소멸하는 과정에서 생존해 나간다.

또한 우리가 만들어내는 창조적 개념들은 많은 구시대적 패러다임을 소멸시킨다. 그렇기에 혁명의 시기에는창조적 파괴 과정(Process of Creative Destruction)’이라는 자본주의의 고유 정의가 더 가슴에 와 닿는다. 내가 뛰어든 정보 보안 사업도 인류 역사상 손꼽을 만한 개념인 인터넷의 불길 속에서 탄생하였다
. 수많은 개인과 기업, 기관들이 신뢰받는 사회와 환경 속에서 살 수 있도록 하는 차원 높은 사명이 있기에,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더욱 애착을 가지게 된다.

대학을 가느라 사교육에 엄청난 돈이 들어 가고, 대학을 나와도 취직이 안 된다고 혼란스럽다. 그러나, 우리의 갈 길은 명확하다. 과학과 기술, IT가 오늘날 이 시대가 원하는 덕목이다. 글로벌 비즈니스는 것은 그런 요소를 실현화시키는 요체다. 이런 생활을 현실 속에 담아가는 것은 충분히 의미있는 삶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이 사업을 하는 CEO로서의 나의 모습이다.

"아이뉴스 컬럼 - CEO 스토리(1)" 활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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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이야기 담은 CEO블로그를 시작하며

IT와 세상 2009.03.30 14:44

 

나는 5월이 되면 결혼한지 23년이 되고 대학 다니는 두 아들을 둔 가장이다. 내가 태어난 1960년은 베이비 붐의 피크였다. 그래서인지 내가 대학을 가던 시기는 입시생은 가장 많고 대학 정원은 가장 적았던 시기로 묘사된다. 삼수생은 감점을 주는 희귀한 제도까지 등장했을 정도이니 얼마나 치열했는지 상상이 간다.

 

1960년에 1인당 GNP 79달러였으니 아프리카 국가보다도 가난했다고 한다. 그 후 2만불 시대, 11대 경제 교역국으로 발전한 한국의 경제 역사의 현장에 나도 서 있었다는 것이 자랑스럽다. 농경 시대에서 산업화 시대, 정보화 사회로 가는 압축 성장의 짜릿한 역사적 발전 과정에 나름대로 한 역할 할 수 있었던 것도 행운이었다.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 중 한 장면

 

한국적 민주주의라고 하는 암울한 유신 독재 시대에 청소년기를 보냈다.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70년대 말에 강남의 한 고등학교를 다닌 나를 깊은 향수에 빠져들게 했다. 흙 먼지 나는 강남의 도로길과 78번 버스, 후크를 채워야 하는 검정색 교복과 무서웠던 교련 선생님, 통기타와 춘천가는 기차. 이소룡의 쌍절곤에 반해 맹룡과강 3번 연달아 본 추억, 늦은 밤 진추아의 ‘One Summer Night’을 들으며 공부하던 시절. 나의 모습을 그 영화 속에 투영해 보면서 진한 몰입에 빠져들었었다


 

대학에 들어가서 서울의 봄을 경험했다. 아크로폴리스 광장에서 1만 명이 넘는 대학생들의 마음을 움직였던 학생회장과 복학생 대표(지금은 둘 다 국회의원이 되었다)의 스피치는 지금도 귓가에 남아 있다. 그러나, 꿈은 좌절했고 광주항쟁이라는 비극이 벌어지고, 5공이라는 또 다른 독재 시대에 소위 짭새들이 캠퍼스에 같이 지내면서 대학 생활을 보냈다. 6.29 항쟁, 88 올림픽 시절에는 미국에서 유학 시절을 보내고 있어서 한국에 없었지만, 민주화되어 가는 역사의 중심에서 나름대로 한 번도 투표를 거르지 않고 성실하게 권리를 수행하여 왔다.

 

한국의 지난 50년의 압축 성장은 서구에서 몇 백 년에 걸쳐 진행된 역사다. 한국인의 급하고 과격하며 불합리한 모습을 우리 스스로 반성하곤 한다. 그런데, 프랑스의 어떤 학자는 이런 급격한 사회 변화를 이룩한 한국인들의 정신 구조와 심리 상태가 혼란스러운것은 지극히 당연하다고 한다. 과거의 규범과 습속, 문화가 역동적으로 변해 왔기 때문이다. 간단한 예로 우리 시대에는 남자가 부엌에 들어가는 것이 금기시되었다. 그러나, 지금은 요리 잘하는 남자가 사랑받는 시대다. 지독하게 못 살았던 친구들의 모습과 하이테크, 럭셔리한 현재의 사회가 머리 속에 공존하니 내 머리가 얼마나 복잡하겠는가?

 

수학이 좋아 이과를 선택했던 나는 아무런 거리낌없이 공대를 지망했다. ‘기술입국이라는 표어가 너무나도 멋있었고, 사명감에 불타기까지 했다. 이런 강력한 시대적 메시지가 있었기에 70-80년대에 공학은 가장 인기가 좋았다. 전자공학, 소프트웨어를 전공하면서 IT 전문가로서 커리어를 차근차근 밟아 나갔다. 나는 과학 기술이 역사를 발전시키고, 우리의 삶을 풍족하게 하고, 우리 나라를 선진국으로 발전시킨다고 철석같이 믿는다. 그래서, 백성을 긍휼히 여겨 과학 기술을 중흥시킨 세종대왕을 존경한다.

 

나는 ‘IMF 경제 위기로 인한 대기업의 무너짐과 ‘IT’벤처의 태동과 성장, 또한 버블과 몰락의 중심에 위치해 있었다. 젊은 나이에 촉망받는 리더로서 분에 넘치는 찬사를 받아서 우쭐한 적도 있었고, 처절한 실패의 나락을 경험하기도 했다. 다행히 재기에 성공해서 현재는 안랩의 CEO를 맡고 있다. 나는 실패의 경험에서 책이나 주변 친지에게서 간접적으로 얻을 수 없는 깨달음을 수십배, 수백배 얻을 수 있었다. 삶에 있어서 겸손함과 진지함이 얼마나 중요한지 몸소 체험했다. 엘리트 코스를 걸어왔다고 스스로 자부하던 자신의 머리를 해머로 얻어맞은 듯한 충격은 내가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지를 알게끔 해 주는 계기였다.

 

CEO로서 바쁜 나날을 보내면서, 마음 한 구석에서 갈증을 느껴왔다. 나름대로 치열하게 살아왔던 삶의 경험, 전문가로서 이 사회를 바라보는 시각, 한국이 더 좋게 변했으면 하는 애정, 턱없이 부족한 전문 경영인의 한 사람으로서의 답답함, 이런 생각들을 나눌 수는 없을까?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의 시간은 훗날 후배들과 후손에게 역사가 될 것이다. 그들에게 김홍선은 몇 단어로 설명될 뿐이다. 그렇다면 나는 그 역사 속에서 어떤 모습으로 비쳐질까?

 

이제 한국 나이로 50에 들어서면서 나의 생각들을 나눌 의미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나의 주장을 말할 책임도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우리 나라가 전문가들이 우대받고 과학과 기술이 성장 동력이 되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고 확신한다. 또한 글로벌 시대에 한국이 더욱 적극적으로 나아가야야 한다고 생각한다. 탁상공론이 아닌 실용주의에 입각한 행동(action)이 중요하고, 추상적 논의가 아닌 실체적이고 Hands-On(실제 체험의) 경험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IT 전문가로서의 20년 가까운 세월, 15년이 넘는 경영인으로서의 삶 속에서 경험한 것들과 나의 생각을 나누고자 블로그를 오픈한다. 농경 사회에서 산업 사회, 정보화 사회를 거쳐 글로벌 사회가 머리 속에 가득한 가운데, 부대끼던 삶 속의 상념을 누구와 얘기하고 싶었다.

 

누구나 견해는 다를 수 있다. 내가 던지는 자그마한 이야기가 비판과 공명을 통해 완성되어 가기를 희망한다. 혹 그러한 이야기가 담론이 되어 이 사회를 더욱 살만한 공간으로 만들어가는데 일조할 수 있다면 더 없는 영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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