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가 공개한 의료 정보화의 고충 3가지

IT와 세상 2010.05.01 07:58

대학 병원에서 근무하는 어느 의대 교수와 대화할 기회가 있었다. 정보화가 잘 이루어진 의료계 현장에 대해 IT 인으로서 평소 뿌듯하게 느끼던 터라 정보화가 되니까 편하시지요? 업무 측면에서도 그렇고, 인터넷이 있으니까 병에 대한 상식도 늘고..”하고 가볍게 질문을 던졌다. 그러나, 의외로 불편한 점에 대해 조목조목 답변을 하는 것이 아닌가? 그 중 3가지는 충분히 공감이 가는 내용이었다.

 

의료 정보화 현장 (KoreaHealthlog.com)


첫째
, 환자들이 인터넷에서 검증되지 않은 정보나 극히 상식적인 내용에 의존해 의례 짐작하고 오는 경우가 많다
. 문제는 검색한 내용이 틀리거나 그 환자에게 맞지 않을 경우다. 인터넷에서 힘들게 찾은 정보에 대한 과신 때문에 설득하기 어렵다고 한다. 의사의 역할은 그 환자의 몸 상태, 유전자, 병력, 식성, 체질, 주변 환경 등 여러 요소를 고려해서 정확한 병을 진단해 내는 것이다. 한 마디로 일반화된 상식으로 판단할 수 없는, 특정 환자를 위한 진단을 해야 한다. 그렇기에 책임이 수반된다. 인터넷에서 건강 상식을 구하는 것은 좋으나, 너무 의존하면 낭패를 당하게 될 수 있다.

 

오히려 의사를 대면하는 시간이 부족하니 인터넷을 통해 의사와의 직접적인 소통이 이루어 진다면 발전적인 방향이다. 서울대학교 유방암센터 노동영 원장은 바쁜 중에도 손수 이메일로 답변을 해 주는 의사로 유명하다. 그러한 질문과 답변은 홈페이지에 축적되어 훗날 다른 환자들에게 큰 도움이 된다. 이와 같이 플러스의 방향으로 활용될 경우 인터넷은 추가적인 도움이 되지만, 환자가 일반적인 상식이나 검증되지 않은 정보에 빠지면 해가 될 수 있다.

 

둘째, 어떤 병에 좋다는 건강식품이나 음식에 대한 정보를 인터넷에서 무분별하게 흡수하고 있다. 이를테면 암 예방에 좋다는 음식은 정작 암에 걸려 치료에 들어갈 경우 피해야 하는 경우가 있다. 암 치료에 사용되는 약품은 간이나 기타 기관을 약화시킬 수 있는데. 소위 건강에 좋다는 한약이나 건강식품은 간에 부담을 주는 경우가 있다.

 

또한, 어떤 음식이 좋다고 하면 그것만 집중적으로 섭취하는 경향이 흔하다. 그래서, 의사들이 어떤 음식이 좋다고 추천하기를 꺼린다. 비록 그 음식 성분에 회복에 좋은 요소가 있다 하더라도, 매일 그것만 섭취할 경우 균형이 깨지게 되어 오히려 병을 악화시키게 된다. 건강에 대한 관심이 증대하면서 인터넷에서 음식에 대한 정보가 많다. 그러나, 편식을 피해야 한다고 의사들은 강조한다.

 

관심을 끈 대목은 마지막 지적이었다. 정보가 너무 많아 오히려 정확한 판단을 하는데 귀찮게 여겨진다. 각종 검사를 통해 올라온 모든 정보는 데이터베이스에 저장된다. 수많은 정보를 한눈에 본다는 장점은 있으나, 오히려 쓸데없는 정보가 너무 많아서 그것을

걸러내는데 꽤 많은 시간을 허비해야 한다. 의사가 컴퓨터를 보는 목적은 환자의 특정 질환에 관련한 정확한 요소를 집어내는 것인데, 정보를 필터링하는 과정이 너무 소모적일 수 있다.


과다한 정보는 이미 다른 분야에서도 문제점으로 제기되고 있다
. 이코노미스트에서도 '데이터 홍수 (Data Deluge)'라는 주제를 다루고 있다. 정보가 부족한(scarece) 상태에서 방대한 (superabundant) 상태가 되다보니 쓰레기에서 다이아몬드를 찾는 격이라고 묘사하고 있다. 


특히 우리 나라에서는 정보와 자료를 소유하고 싶은 경향이 강하다
. 기업에서 어떤 품의를 올려서 결재를 받으려고 하면 백 데이터 가져와하는 관리자를 종종 보게 된다. 제대로 읽지도 않으면서 수북히 쌓인 정보와 자료가 있어야 마음이 놓이는 심리는 아닐까? 어쨌든, 정보도 다다익선(
多多益善)이라는 인식이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정보는 양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내가 필요한 것은 판단의 근거를 위한 지식이다. 지금까지의 정보화는 디지털화된 수많은 정보를 데이터베이스에 집어 넣는게 주류였다. 이제부터의 숙제는 그 정보 속에서 지식을 이끌어 내는 것이다. 정보화 시대의 제 2 막이자 진정한 지식 기반 사회로 가는 길목이다.

 

IT를 통해 쌩쌩 돌아가는 병원 현장을 바라보면서 우리 나라의 앞선 IT를 자랑스럽게 생각해 왔다. 미국이나 일본보다 충분히 앞서 있다. 그러나, 더욱 선진 환경으로 도약해서 세계가 부러워하는 시스템을 갖추려면 지식을 지능적으로 끄집어 내는 입체화된 구조를 갖추어야 한다. 정보화 1막이 하드웨어와 디지털 데이터에 의해 이루어졌다면 2막은 소프트웨어와 IT 마인드에 의해 좌우된다. 이는 병원에만 해당되는 문제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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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마케팅 시대 - IT와 콘텐츠의 결합

책으로 보는 세상 2009.06.29 08:31

해외 사업을 하다 보면 우리에 대해 가지고 있는 외국인들의 보편적 인식을 피부로 느낀다. 안랩의 해외 사업을 뛰다가 부딪히는 장벽을 몇 가지 정리해 보면 대략 다음과 같다.
 

-   한국에 대한 지식 (북한과 88올림픽 밖에 모르는 경우 힘이 빠진다)

-   한국에서는 IT가 발달했고, 실생활에 접목이 많이 되어 있다?

-   한국에는 정보 보안의 핵심기술이 있다?

-   안랩(AhnLab)은 누구이며, 무엇을 하는 회사인가?


물론 한국에 대해 아주 잘 아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생각했던 이상으로 인식의 벽은 두껍다. 이런 열악한 국가 이미지와 회사의 브랜드를 극복하고 안랩의 기술을 알리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러자면 우리의 걸어온 과정을 스토리로 설명하는게 효과적이다.

한국이 영세한 후진국에서 짧은 기간에 눈부신 발전을 하게 된 역사, 산업시대를 거쳐 빠르게 정보화 시대로 넘어간 과정, IMF 경제 위기를 극복하면서 벤처 산업이 나오게 된 배경, 생활속에 자리잡은 IT의 현황과  얼리 어답터(early adopter)의 문화, 인터넷 중심으로 가면서 정보 보안 기술을 가지게 된 이유 등등. 우리의 기술력이 뛰어난 이유를 스토리를 통해 설명해야 어느 정도 설득이 된다.

아마 해외 사업을 하는 중소기업 CEO, 또한 대기업들 마저도 비슷한 고민을 할 것이다. IT나 글로벌 사업만의 문제도 아니다. 국내에서도 신상품과 서비스를 전달할 때 멋있는 스토리로 고객의 마음을 잡으려고 애를 쓴다. 짧은 시간에 어필할 수 있는 스토리의 효과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스토리텔링 마케팅을 소개한 책 : 이야기가 세상을 바꾼다
 

어떻게 좋은
 스토리를 만들어야 할까 고민하던 차에 이야기가 세상을 바꾼다; Storytelling Marketing)”라는 책을 접하게 되었다. 홍사종 교수는 적자에 헤매던 정동극장을 완전히 탈바꿈시켜 새로운 문화 산업의 돌파구를 제시한 선구자다. ‘이야기 마케팅의 전도자(evangelist)이며, 기업과 기관, 학교에서 개혁적이고 창의적인 모델을 여러 모로 입증시킨바 있다. 평소 홍 교수의 소신과 자신감에 감복해 왔던 나로서는 이 책을 보자 무척 반가웠다.

이 책에서는 그가 평소에 주장하던 내용이 정연한 논리와 해박한 지식으로 정리되어 있다
. 그의 이야기론은 시대적 코드와 문화에 대한 통찰력을 엿보게 한다. 일단 책을 들면 단번에 읽어나갈 수 있을 정도로 쉽고 재미있게 구성되어 있다.

냉장고의 개념을 바꾼 대기업 간의 마케팅 전쟁 이야기가 나오는데, 냉장고 광고 카피가 어떻게 진화해서 꿈을 파는 스토리로 업그레이드 되었는가를 단계별로 설명하고 있다. 


소리가 나지 않는다…. 소리가 나지 않는 냉장고

남자들은 모른다. 주부가 갖고 싶은 냉장고 oo ‘

‘oo은 사랑입니다

여자라서 행복하다

 

마케팅에서는 제품을 Feature-Benefit-Value로 구분하여 분석하는 기초 개념이 있다. 쉽게 말해서 마케팅은 기능(feature)으로 갖추어진 제품을 어떻게 고객 관점의 가치(value)로 타겟팅하여 전달할 수 있는 가에 달려있다.

위의 광고 카피를 보게 되면, 냉장고의 기능(feature)에 머물렀던 하드웨어 광고가 어떻게 가치(value)전달의 수준을 넘어서 스토리를 통해 꿈을 팔게된 변천 과정을 한눈에 알 수 있다. 냉장고라는 기계가 주부들의 감성을 건드려서 가정의 생활 문화로서 자리잡았다. 제품에 문화가 결합해서 설득력을 갖는 이른바 컬덕트(CULture+proDUCT)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냉장고 광고의 변천


최근 해외 백화점에 가 보면 한국의 가전 제품들이 인기가 높다. LCD TV, 휴대폰은 말할 것도 없고, 냉장고, 세탁기 등도 한국 제품이 진열대 앞에 나와 있다. 세탁기와 건조기(dryer)의 시장을 연 미국의 업체들은 내구성과 튼튼함으로 오랜 기간 사업을 영위해 왔다. 그러나, 이제는 품질과 견고함은 기본이지 그 자체만으로 좋은 평가를 받던 시대는 지났다.

그 자리를 예쁘고 아늑한 이미지의 우리 제품이
차지하기 시작했다. 한때 한국에서 가전산업은 일본 제품보다 디자인이나 품질이 떨어지고 수익성도 나쁜 사업으로 밀려나고 있었다. 그러나, 스토리를 통해 화려하게 거듭나며 고부가 생활 공간의 필수품으로 자리잡았다. 물론 대기업 위주의 사업으로 인해 중소기업이 압박을 크게 받는 현실도 개선해야 하지만, 적어도 마케팅적인 성공은 인정해야 한다.

글로벌한 이야기 전쟁 

 

하얀거탑 (한국/일본판) a-bori.com/blog/

또한 이 책에서는 영화, 연극, 오페라, 소설 등 다양한 분야에서 벌어지는 이야기 전쟁 시대를 실감있게 묘사하고 있다. 유대인들로 장악된 헐리우드의 예에서 보듯이 문화의 침투력은 엄청나다. 그런데, 이런 상황을 비난만 할 이유가 없다. 오히려 이럴수록 우리의 무구한 역사와 재미있는 스토리들을 풀어낼 수 있는 기회가 되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 있는 창의력이다.

 한편 스토리가 글로벌하게 하이브리드(hybrid)화되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우리의 이야기인 <시월애>, <엽기적인 그녀>, <괴물>과 같은 이야기가 헐리우드에 팔려 나갔다. <미녀는 괴로워>, <올드보이> 영화는 거꾸로 우리가 원작을 사와서 성공한 경우다. 화제가 되었던 드라마 <꽃보다 남자>는 일본 만화이고, <결혼 못하는 남자>, <하얀 거탑>은 일본 드라마와 소설이 원작이다. 드라마를 더 잘 만들어 일본으로 역수출하는 것도 활발하다. 이야기와 콘텐츠의 창의성과 질이 중요하지, 원작이나 시장의 국경은 허물어지기 시작했다. 

이런 현상에 대한 홍사종 교수의 제언은 상당히 현실적이다.


'우리끼리만 통하는 문화적 DNA글로벌 모드로 바꾸어나가는 일을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남의 나라 이야기에도 빨대를 꽂는 열린 마음이 필요하다.


정보통신과 문화의 시너지는 이야기로 꽃을 피운다

 

특히 인터넷과 전자상거래, IT 산업으로 형성된 디지털경제로의 패러다임 변화로 인한 인간소외감을 두 가지 측면에서 지적하고 있다. 하나는 급진적, 단절적 시대변화에 불안감을 느끼며 살아가면서 자연과의 분리와 디지털 혁명으로 인한 피로감이다. 그 다음은 정보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해나가지 못하는 이들의 소외감과 이로 인한 양극화 현상이다. 이를 해결하는 방안으로 문화적 복지, 일탈문화의 제공, 카타르시스 제공을 통한 사회적 갈등해소를 제안하고 있다. 오히려 지금이 정보기술과 문화의 결합이 중요한 시점임을 강조한다.

"디지털 경제환경을 거꾸로 읽으면 지금이야말로 정보산업 경쟁력과 더불어 사회적 일탈욕구와 소외문제를 풀어줄 건강한 이야기산업의 육성을 위한 중요한 시점임을 알 수 있다."


홍사종 교수의 정동극장 이야기

 

홍사종 교수

그는 잊혀져 가던 정동극장의 극장장이 되면서 틈새 시장을 개척했다. 책에도 설명되어 있듯이 극장의 입장에서 상품을 만들고 판매하는 전략이 아니라 거꾸로 수요를 만들고 이를 자극해서 극장 안으로 끌어들이는 방법이었다.”

국악 장터
, 돌담길 추억이 있는 음악회, 동창회나 친목회를 위해 커스터마이즈 해 주는 공연 등 다채로운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또한 젊은 직장인들을 대상으로 점심 시간을 이용한 공연은 공연은 밤에 한다는 인식을 깨뜨리고, 공연 관점에서 죽은 시간인 낮 시간을 적극 활용했다.

이런 판단에는 다음과 같은 그의 소신이 반영되었다.

"기능과 품질은 산업화 패러다임의 덕목이다. 정보화, 감성화 패러다임에서는 기능과 품질이라는 기본위에 이야기라는 궁극의 덕목을 의식적으로 추가해야 한다."

 
우리 회사의 마케팅 참조 도서

마침 이 책을 읽고 마케팅을 담당하는 간부에게 주었더니
, 이미 제품기획, 인터넷 마케팅 부서에서 다음 주제로 선정해서 읽고 있다고 한다. 이제 안랩과 같은 기술 회사도 기술 제품과 서비스를 스토리로 전개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이미 형성되어 있었던 터라 나와 거의 동시에 책을 선택하게 된 것 같다.

 

기술과 아이디어가 범람하는 시대에 설득력있는 스토리는 수많은 정보의 범람으로 혼란스러운 고객의 마음을 정조준 할 수 있다. 아울러 문화와 콘텐츠는 IT의 바탕 위에 꿈을 파는 가치로 업그레이드될 수 있다. 이 책은 나에게는 그런 확신을 가지게 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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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벌과 간판보다 기본 소양이 중요한 이유 : 사교육 논의를 바라보는 시각(3)

CEO 칼럼 2009.05.21 06:35

자식이 잘 되기를 바라는 부모의 마음은 누구나 똑같다. 자식이 좋은 학교에 가는게 잘 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에 사교육 열풍이 부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자식을 진정으로 위한 것인지, 자식을 통해 부모로서의 자신의 성공 여부를 인정받고 싶어서인지는 엄밀히 구분해야 한다. 이나미 정신과전문의의 지적(칼럼)은 자뭇 통렬하다.

 

벌써부터 기업체에서는 부모의 재산이 많고 강남 출신이거나, 전적이 불확실한 유학생들은 채용을 꺼리는 분위기다. 매뉴얼 달라면서 과외 받으러 착각해 시키는 일이나 간신히 하는, 학벌은 좋은데 추진력이 부족한 부잣집 자제들 때문에 상사들은 골치가 아프다. (중략) 학벌은 좋은데 혼자 생각은 애초에 없는 젊은이가 너무 많다.

 

이나미 정신과전문의 (article.joins.com)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녀를 좋은 대학에 입학시킨 부모들을 성공적 인물로 미화하는 매스컴도 우습다. 자녀를 좋은 대학에 보낸 어머니들에 대한 찬사 뒤에는, 학벌이 앞으로의 자녀 인생을 좌우할 것이고 자녀 인생은 어머니가 결정한다는 집단 최면이 숨어 있다. 곱게 자라 좋은 간판 자녀들이 사회에 적응 못하고 부모를 함부로 대하는 뒷얘기들을 정말 그리 모르는지.”

 

자식에 대한 부모의 교육열은 비단 우리 나라만의 현상이 아니다. 한국 부모들이 유난을 떤다고 비하할 일은 아니다. 오히려 소 팔아서 대학 보내는 교육에 대한 열정이 이 나라를 발전시킨 원동력이기도 했으니까. 미국에서도 중국인, 베트남인들의 교육열은 한국 부모보다 더 열성적이다. 미국인 부모들도 결코 뒤지지 않는다. 

 

미국의 텍사스 주에서 연구원으로 있을 당시였다. 우리 가족이 살던 곳은 백인들이 주로 거주하던 동네였다. 그런데, 근처 유치원 (Kindergarten)이 유명하다고 들었다. 그래서인지 내년도 입학생을 선착순으로 뽑는다고 하니까 백인 부모들이 밤새 밖에서 진을 치고 줄 서 있는 것이 아닌가? 아예 비치(Beach) 의자를 놓고 온 가족이 자는 것도 보았다. 우리 아이는 적령기가 아니어서 이 광경을 방관자의 입장에서만 보았지만, 미국 백인 사회에서도 자식 교육에 대한 열정이 결코 약하지 않다는 것을 내 눈으로 처음 확인했다.

 

교육이 지향하는 최종 목적은

이와 같이 자식이 좋은 삶을 살기를 원하는 부모의 마음은 세계 어느 곳이나 똑같다
. 그러나, 교육열이 지향하는 최종 목적에 대해서는 차이가 있다. 자식의 장래를 진정으로 생각하는 것인지, 부모의 어깨를 으쓱하게 해 주는 자식의 간판 즉 학벌을 원하느냐 하는 것인지다. 자식이 자신의 적성을 찾아서 노동의 즐거움을 느끼게 해 주고, 자신의 공헌을 통해 보람을 느끼게 하고, 이 사회에 즐겁게 적응해 가는 게 옳다는 것은 평범한 진리다. 이를 알면서도 자식의 간판에 대한 미련을 쉽게 버리지 못한다.

 

현재의 부모 세대는 스스로 대학 입시라는 과정을 경험해 보았다. 그것이 어떤 결과이었든 간에 마치 이제 2세들을 통해 2차전을 진행하고 있는 것과 같다. 1차전과 다른 점은 이미 스스로 경험해 보았기에, 자식들을 더 효율적으로 몰아 부치는 방법을 안다. 1차전에서 우리 부모 세대가 이해하지 못했던 것 (예를 들면 어떻게 공부하는 척하면서 다른 짓을 하는지) 을 경험적으로 잘 알고 있기에, 우리의 아이들은 더욱 숨이 막힌다.

 

대학은 삶의 과정일 뿐, 그 자체가 목적이 될 수는 없다. 더욱이 글로벌 지식 기반 사회에서 4년이라는 짧은 대학 생활에서 배운 지식으로 인생이 결정된다면 그건 정상적인 사회가 아니다. 이러한 내용을 인정하면서도 오늘도 대입이라는 전쟁에 말려들고 있다. 간판이 아직도 우선시되고, 일을 하는 것보다 일을 시키는 사람이 존경받는 전근대적인 한국 사회의 풍토도 한몫 한다.

 

우리 나라의 입시 제도를 들여다 보면 일류 대학 위주다. 새로운 입시 제도에 대한 갑론을박도 SKY 대학의 총장이나 사무총장의 목소리가 우선적으로 매스컴을 장식한다. 또한 6-70년대에는 대학별로 어느 정도 특성과 차별점이 있었는데, 언제부터인가 전공에 관계 없이 모든 대학이 서열화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자기만의 색깔이 크게 퇴색했다. 건물은 현대화되고 강의장은 최신 시설이 되었지만, 다양성과 개성, 전통이 없어진 대학의 모습은 무미건조한(dry) 느낌이다.


대학 입시 설명회 사진(출처 : 연합뉴스)


인력의 전반적 포트폴리오에 대해 우선 고민해야 

일부 뛰어난 리더(leader) 10000명을 먹여 살린다라고 엘리트 교육을 강조한다. 전혀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적어도 이 시대와 사회가 필요로 하는 인력의 포트폴리오에 대해 먼저 고민해 보아야 하지 않을까?

 

첫째, 뛰어난 리더가 누구인지를 명확하게 정의해야 한다. 리더가 일류 학교를 나온, 수능 시험에서 거의 만점을 맞은 사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외국어만 잘하면 엘리트인가? 외국어를 잘 하는 것은 리더의 요건이 아니라 기본 소양일 뿐이다.

리더는 창의력과 실력, 그리고 자기 원칙에 충실한 마음가짐에서 나온다. 아무리 머리가 좋아도 제대로 된 인격이 형성이 안 되어 있을 경우, 또는 그런 의지가 약할 경우 10,000명을 먹여 살릴 지도력은 나오지 않는다.

 

또한 우리 교육 제도의 맹점은 주어진 정답을 잘 풀어가는데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는 점이다. 한 문제라도 실수하면 급전직하하는 교육 시스템으로는 창의적인 인물이 발굴되기는 힘들다. 풀리지 않는 수학 문제 하나를 가지고 밤새 씨름도 해 보고, 책을 통해 여러 선인들의 지혜와 고민을 자기 입장해서 반문하는 고민의 훈련 과정이 리더를 만든다. 또한 삶의 현장 속에서의 진정한 체험, 도전과 좌절을 격려하는 문화 속에서 진정한 리더가 나온다. 역사상 위대한 지도자들은 좋은 교육을 받은 양가집 환경보다 고뇌하는 치열한 삶을 살은 사람들, 특히 좌절을 겪었던 이들 속에서 탄생했다. 


둘째
, 뛰어난 한 사람보다 훨씬 중요한 것은 나머지 인력들의 역량이다.
적어도 교육 정책의 관심사는 뛰어난 천재 1명보다 나머지 9999명의 교육에 맞추어져야 하는 것 아닌가? 설사 몇 명의 실력있는 천재가 양성되었다고 하자. 그런데, 그 사람이 다른 나라 일류 기업에 스카우트 되어가면 이를 위해 희생한 나머지 인력은 무엇인가? 오히려 천재는 수입해올 수 있지만 이 사회의 기반이 되는 저변 인력을 탄탄하게 갖추는게 국가의 우선 순위가 아닐까?

 

관점을 바꾸어 생각하면 리더가 나머지 인력과 환경의 도움없이 혼자서 나올 수 있을까? 수많은 과학 기술은 주어진 환경과 조력자, 같이 고민하는 분위기 속에서 탄생했다. 그래서, 오히려 몇 명의 리더, 그것도 간판만 원하는 기능적 우등생보다 사회 전반적인 인력의 실력과 소양이 업그레이드 되는데 초점이 맞추어져야 한다. 초중등 교육이 밑바탕이 되어야 이 사회의 기반이 되기 때문이다.

 

미국의 유명한 Junior college (www.buyusa.gov)

미국 사회의 저력은 얼마든지 무료로 다닐 수 있는 전문대학(Junior College)에 있다. 여기에는 부족한 기술을 보충하려는 직장인, 커리어를 바꾸어 보려는 사람, 또한 자신의 적성을 찾기 위해 다양한 분야를 섭렵하는 젊은이, 혹은 대학에 갈 등록금이 없어서 다니는 사람 등 다양한 부류가 있다. 심지어는 종합대학에 다니다가 몇 과목을 보강하기 위해서 전문 대학에서 학점을 이수하기도 한다.


일류대학 출신 금융 엘리트들이 망가뜨린 미국을 지탱하는 것은 이렇게 전문대학에서 필요한 기술을 배워서 열심히 노력하는 보통 사람들에게 있다. 바로 이 순간에도 자신의 가족을 위해
, 자신의 즐거움을 위해, 무엇보다 먹고 살기 위해 새로운 교육을 받고, 산업 현장에 뛰어드는 소시민들이 국가의 중요한 바탕이다. 

 

학벌 위주의 사고는 우리 사회를 위해 바람직한 인력 포트폴리오의 방향을 왜곡시킨다. 일류 대학보다 중요한 것은 이 사회가 필요로 하는 기본 소양과 전문 기술을 지속적으로 훈련시킬 탄탄한 중등 교육 기관이다. 우리 나라 대다수 국민들을 대상으로 한 양질의 교육에 더 많은 신경과 예산이 배정되어야 한다. 보통 사람들을 충실히 재교육할 수 있는 환경이 갖추어져야, 양질의 일자리도 역동적으로 만들어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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