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성'에 해당되는 글 2

  1. 2012.10.12 창업자 안철수가 안랩을 떠나던 날 (10)
  2. 2009.11.15 미국에서 '어메이징' 한국 칭찬 받아보니 (13)

창업자 안철수가 안랩을 떠나던 날

CEO 칼럼 2012.10.12 07:00

자기가 만든 회사를 17년만에 떠나는 창업자

 

9월 20일 오후 안철수 창업자가 안랩과 작별을 고하기 위해 회사를 찾았다. 바로 그 전날 그는 18대 대통령 선거 출마’라는 어려운 결정을 발표했다. 오랜 기간 그를 알고 지냈던 사람의 하나로서 기자회견 광경을 지켜 보면서 “참으로 많은 고민을 하셨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 분의 손때가 묻어있는 이 회사의 직원들과 의미있는 마지막 만남을 주선하는 일이었다.

그가 어떤 과정을 거쳐 창업했는지, 어떤 꿈과 생각으로 이 회사를 일구어 왔는지 잘 알고 있다. “원칙대로 사업을 해서 성공을 할 수 있다는 것과 소프트웨어를 해서 이익을 남길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는 그의 도전은 성공으로 입증되었다. ‘영혼이 있는 기업’을 만들고자 했던 그의 의지는 안랩의 기업 문화 속에 스며들어 있다. 이제 그가 없이 우리 직원들이 그 목표를 이루어 내야 한다는 막중한 책임감을 느꼈다.

 

직원들의 환호 속에 나타난 안철수 창업자는 안랩과의 인연을 결연하게 끊었다. 자신이 창업해서 열정을 불살랐던 회사였다. 자기 인생의 줄기라고 할 수 있는 이 회사에 왜 애착이 없겠는가? 그러나, 그는 “이제 안랩은 제가 알고 있는 우리 나라의 수많은 좋은 회사 중의 하나일 뿐”이라며 스스로 선을 그었다. 그를 가까이서 본 사람들은 그가 냉정하게 결단을 내리는 성격이라는 것을 잘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작 그런 그의 행동을 보면서 아쉬움은 피할 길이 없다.

직원들과 작별 인사하며 초창기 직원과 포옹하며

전 직원의 환호와 박수 속에 간략한 환송연이 있었고, 안철수 박사는 회사를 모두 돌면서 직원 하나하나 악수하고, 포옹하고, 사진을 찍었다. 오늘만은 회사에서 마음껏 시간을 보내고 싶다며 다음 스케줄은 아예 잡지도 않았다. 환송연에서의 다채로운 풍경은 이미 안랩 블로그 (http://blog.ahnlab.com/ahnlab/1608)에 자세히 소개되어 있다.

 

친구와 같았던 나의 보스

 

개인적으로 안철수 박사를 15년 이상 알고 지냈다. 아무도 정보 보안에 관심이 없을 때 정보 보안의 중요성을 알리기 위해 같이 동분서주했다. 벤처, 소프트웨어, 정보 보안. 이 모두가 사회적으로 따돌림을 받던 시절이었기에, 서로를 격려해 가면서 미래의 비전과 당위성을 알리는 데 힘을 같이 했다. 당시 젊은 벤처 기업가와 기술자들은 동료 의식이 강했는데그 중심에는 안철수 박사의 존재감이 컸다. 탄탄하고 투명한 경영으로 기업을 성장시켜 가는 그의 모습을 보면서경영인으로서 존경심과 더불어 부러움을 느꼈었다.

 

내가 했던 사업을 안랩이 인수하면서, 우리 두 사람은 한 조직 내의 관계가 되었다. 그러나, 그와 경영 회의를 할 때 그가 하던 말이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나를 세상에서 생각하듯이 윗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그냥 경영적으로 같이 상의하는 사이로 생각해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서로가 다른 관점에서 봐야 회사를 위해 올바른 방향을 잡을 수 있겠지요.

 

그는 조직상 보스다. 그럼에도 그는 항상 이렇게 나를 대해 주었기에 마치 친구처럼 여러 아이디어를 폭넓게 상의할 수 있었다. 수평적 리더쉽이자 파트너쉽 경영이다.  (그는 본래 창업을 혼자보다 2-3명이 같이 하는 게 좋다는 지론을 가지고 있다. 위험을 줄이고 다양성을 추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안랩의 역사를 돌아보며..

우리는 경영적으로 많은 생각을 나누었다. 회사의 문화, 조직, 전략, 마케팅 등. 다행히 통하는 게 많았다. 현장에서 뛰는 사람을 좋아했고, 과감히 도전하는 것을 장려했고, R&D를 통한 원천 기술의 힘을 믿었다. 관료화를 혐오했고, 조직보다 사람을 우선시했다. 다양성이 있어야 창의력이 싹튼다는 그의 경영 철학은 회사 전반에 스며들어 있었기에 나는 일하기가 아주 편했다.  

 

그는 매사에 신중하지만 결정에 있어서는 아주 과단성이 있다. 내가 특정 사업에 대해 애착을 가지자, 그는 “김 사장님, 사업이 잘 안 될 때는 무언가 문제가 있는 겁니다. 경영자는 냉정해야 합니다. 특히 자기가 일군 것일수록 과감히 포기할 줄 알아야 합니다. 이를테면 V3 사업, 제가 직접 만든 것이지만, 만일 사업에 문제가 생긴다면 저는 접을 수 있습니다.”라고 조언했다. 실제로 그는 조용한 행동주의자다

 

진정성의 모습

 

나는 7월 초, 부친상을 치르게 되었다. 많은 조문객들이 다녀갔다. 안철수 박사도 첫날 저녁에 찾아왔다. 이미 언론에서 주목을 받는 분이어서 기자들도 많이 왔고, 그 날 아버님 조문을 온 것은 언론을 통해 알려졌다.

 

그러나, 그가 발인식에까지 왔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는 크리스찬도 아니다. 그럼에도 교회식으로 치러진 발인 예배에 참석해서, 뒷 자리에 조용히 앉아서 예배를 드리고 갔다. 당시 책을 집필하던 시기라 무척 바쁜 시기였던 것을 잘 알고 있다. 얼굴이 많이 푸석해 보였다. 그럼에도 우리 가족을 위로하기 위해, 아버님 발인에 참여하기 위해, 아무도 보지 않는 가운데 그는 조용히 다녀갔다. 그의 진정성을 보여주는 한 예다. 누구에게 보이기 위한 것이 아닌, 그의 진정한 모습에 우리 가족은 큰 위로를 받았다.

 

CLO(Chief Learning Officer)로서 안랩 직원과 간부들을 위한 그의 교육은 큰 자취를 남겼다. ‘전략’과 ‘마케팅’ 강의는 2년에 걸쳐 안랩에 스며들었다. 나도 사업을 17년 가까이 하다보니 많은 경영 서적을 읽으면서 공부를 했고, 실전에서 경험했다그러나, 그의 ‘전략’과 ‘마케팅’ 강의는 너무나도 쉽게 핵심을 파고들었다진정한 프로일수록 쉽게 설명하기 마련이다. 그의 실전 경험과 미국에서 철저하게 공부한 것이 결합되어 나온 노하우다.

직원들의 메모를 보며 직원들과 담소하는 안철수

 

미국에서 MBA를 받고 온 어느 임원은, “이렇게 쉽게 전략과 마케팅을 설명하는 것을 처음 보았다. 내가 몇 과목 들은 것보다 훨씬 실용적이다.”고 감탄했다. 지금 우리 회사의 제품 및 사업 기획은 모두 그가 만들어준 전략과 마케팅의 틀에서 운용된다. 특히 안철수 박사는 재무나 회계의 탄탄한 기반 위에 모든 경영적 요소를 설명한다. 엔지니어 출신 경영인인 나로서는 큰 도움을 받았다. 그야말로 나의 보스라기보다는 경영 멘토이자 동료로서 의미있는 시간을 함께 했다.

 

포스트 안철수 시대의 안랩

 

 “그 때 큰 소명, 우리나라에서 컴퓨터 바이러스를 퇴치하는 기술을 가지고 계속하는 사람이 저밖에 없었잖아요? 그래서 저에게는 정말로 맞는 직업을 버리고, 소명을 따라서 만든 회사가 안랩이구요. 그런데 지금 아이러니하게도 소명 때문에 안랩을 떠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이제 안철수 창업자는 뜻한 바가 있어 다른 길로 간다. 진정성과 문제의 본질에 충실하는 그의 자세는 어느 길로 가든지 변하지 않을 것이다. 또한 그는 회사와 명확한 선을 그어 나갈 것을 잘 안다.

직원들의 박수 속에 안랩을 떠나며 차에 타기 전에 마지막 인사


이제 이사회 의장뿐만 아니라 제가 가졌던 모든 마음과 추억까지도 모두 정리해야 할 것 같습니다.”

 

창업자는 떠났어도 안랩은 그가 직원들과 같이 만든 핵심가치의 기업 정신을 이어나갈 것이다. 이 사회에 도움이 되는, 좋은 기업이 되고자 하는 그의 철학은 안랩 속에 영원히 남아있을 것이다.

 

동영상 참조: http://www.youtube.com/watch?v=rZ-0LWnC9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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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어메이징' 한국 칭찬 받아보니

Global View 2009.11.15 09:52

필라델피아의 날씨는 을씨년스러웠다. 6년 전 왔을 때에도 그랬던 것 같다. 경기가 안 좋아서인지 거리의 표정도 밝지는 않아 보인다. 나의 지나친 느낌일까? 그래도 미국 역사의 시작이 이루어졌고 정가의 중심인 지역이라 그런지 정장을 한 사람들을 많이 보게 된다.

 

솔직히 이번 출장에는 기대보다는 걱정이 앞섰다. 비록 파트너 사와 오랜 기간 제품 평가에 이은 협상 과정을 진행하고 있었지만 미국이라는 시장이 그렇게 만만치 않다는 점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미국 기업 중에는 말만 앞서고 신뢰하지 못할 기업들도 많다.


IT 본고장에서의 조심스런 시장 접근
 

파트너 서명식 현장

8월에 미국에서 시장 진입을 발표하자 많은 이들이 우려를 표시했다. 우리가 어떻게 거대 업체들을 상대로 IT의 본고장에서 승부하려고 한다는 것인가? 당시 나는 틈새 시장(niche market)을  중심으로 조심스럽게 접근하겠다고 분명히 밝혔다. 이미 몇 개의 파트너 사와 심도 있는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그 중 하나는 캘리포니아를 기반으로 개인 고객 중심의 판매망을 가진 양판점으로 10월에 본격적인 영업 활동이 시작되었다.

또 다른 하나가 동부에서 공공 시장을 상대로 보안 서비스를 제공하는 전문 업체인 사이버소프트였다
. 이번 출장의 주요 목적은 이 회사와의 계약을 마무리하는 것이었다. 

경제적 불황기에는 정부가 가장 안정적인 고객이다. 특히 사이버 보안은 늦출 수 없는 분야라서 오바마 정부가 들어선 이후 예산이 늘었다고 한다. 부시 정부에서도 사이버 보안은 우선 순위가 높았지만 워낙 전쟁 비용에 돈이 많이 들어가다 보니 예산이 부족했다고 한다.


신뢰 구축은 글로벌 사업의 기반 


나는 글로벌 사업에서 터놓는 대화로 신뢰를 구축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 그래서, 비록 나로서는 처음 방문이었지만 이 회사를 더 잘 이해하기 위해 CEO 및 임원들과 저녁 늦게까지 하루 종일 대화를 나누었다. 사업적인 얘기부터 회사의 성장 과정, 사업 전략, 시장의 요구 사항은 물론 개인적인 얘기까지 오고 갔다. 20년 가까이 보안을 가지고 정부를 상대로 한 경험은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고객의 애로 사항과 원하는 것을 생생하게 들을 수 있었다.

 

실제의 사이버 위협 상황과 보안 업체들의 동향에 대한 정보도 값진 성과였다. 확실히 직접 필드를 뛰는 사람들의 얘기는 생생하다. 비록 작은 기업이지만 기술적 전문성과 보안에 대한 애착과 진지함을 가진 모습을 보면서 현란한 세일즈 언어로 무장한 전형적인 미국의 기업과는 다른 느낌을 가진다. 서로 간의 진정성과 철학이 비슷함을 공감할 수 있었다.

 

사업의 결과에 대해서 속단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좋은 팀웍으로 재미있게 같이 일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의지가 있어야 설사 어려움에 부닥치더라도 같이 극복해 갈 수 있기 때문이다. 


로펌에서의 조촐한 서명 행사
 

계약서 서명 행사는 법률 사무소(law firm)에서 이루어졌다. 나는 공증이 필요해서 다운타운까지 가야 하나 보다 했다. 그런데, 법률 사무소에 들어서니 우리를 위한 조촐한 파티가 준비되어 있었다. 나름대로 지역의 유력 지도자들이 모여 들었다. 이런 모임이 우리의 파트너쉽을 공표하면서 인지도를 높이기 위한 효율적 수단이라고 귀띔한다.


VIP와 함께

리셉션에서 환담하는 모습


참석한 사람 중에는 주 상원의원(Anthony Williams), 대표 변호사들, 언론사 오너, 기업 CEO, 대기업 임원, 정치인 참모, 대학 교수 등 다양했다. 적은 인원이지만 오피니언 리더와 지역의 유지, 잠재 고객이 모두 어우러져 네트워킹이 되는 자리다. 서로 간에는 이미 오래 알고 지낸 사이로 보였다.

이날의 주인공은 단연 우리였고 주 상원의원의 축사에 이어 나도 스피치를 요청받았다. 무엇을 얘기할까 고민하던 중 보안은 신뢰와 관계를 바탕으로 합니다. 안철수연구소는 단순히 제품을 팔고 돈을 받아가는 벤더가 아닙니다. 15년 간 고객과의 소통하는 채널이 우리의 사업의 존재 근거이고 고객의 신뢰가 우리 사업의 철학입니다. 미국에서도 그런 정신을 이어갈 겁니다라는 주제로 몇 마디 얘기했다.


연설을 경청하는 모습

주 상원의원의 축사

연설하는 모습


한국을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들

여러 사람들과 얘기를 하면서 한국 업체에 대한 불신이 별로 없고 오히려 기대하는 모습을 느낄 수 있었다. 단순히 내가 한국인이기 때문에 치켜 세우는 것은 아니었다. 법률 사무소의 대표 변호사 중의 한 분은(Harris Baum) 한국을 광적으로 좋아한다. 그의 사무실에 들어가니 한국 국기가 놓여 있었다. 한국인들의 밝고 친절한 모습이 너무나도 좋다고 한다. 50대의 나이에 태권도 검은 벨트를 땄다

정치의 본고장답게 펜실베니아를 중심으로 한 이곳 지역에서 80만부 가량이 배포되는 'The Public Record'라는 정치 전문 신문이 있다.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며 정치적 영향력이 크다고 한다. 이 언론사의
 회장은 자신이 6.25 당시 직접 목격한 한국의 모습을 얘기하면서 한국의 발전상이 “어메이징(Amazing)”하다면서 방문할 때마다 놀라고 자랑스럽다고 한다. (이 신문은 우리 기사를 1면에 다루어서 우리에게도 큰 홍보 효과가 되었다.)

'The Public Record' 1면에 실린 모습

양사의 협력을 기대하는 기사


IT를 통해 빠르게 도약한 한국에서 배워야 한다는 분위기도 있었다. 오히려 말로만 고객을 위한다고 하면서 이익만 추구하는 미국의 IT 기업들에 대해서 실망해 하는 얘기들도 나왔다. 몇 년 전에는 전혀 인정하지 않던 한국의 IT가 이제는 미국에서도 호기심으로 바라보고 있다. 서비스 품질(quality of service)이 관건이라는 점에는 의견이 일치했다.

한국의 음식에 대해서도 모두들 잘 알고 있었고 문화와 역사에 대해서도 많은 질문을 받았다. 한편 나는 미국 역사가 시작한 필라델피아와 동부의 지역 문화 및 역사에 대해 들을 수 있었다. 글로벌 사업의 묘미는 이런 재미에 있다. 서로 간의 다른 문화와 성격을 깨달으면서 이해해 가야 진정한 사업이 이루어지기 마련이다.

 

2010년은 이번 파트너쉽의 시험대가 될 것이다. 무거운 숙제를 안고 오면서 부담감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그러나, 새로운 사업 개척에 대한 즐거움 속에 피곤함이 힘들지만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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