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가 필요한 인력, 대학과 산업 시각차는?

CEO 칼럼 2010.06.06 07:20

이 시대가 필요로 하는 인력은? - 대학과 산업의 시각차

‘IT
인력 양성 방안이라는 주제의 어떤 모임에 참석한 적이 있다. 대학교수, 기업임원, 정부관계자가 한 자리에 모였는데, 인력의 수요 공급의 시각차에 대한 논의가 주를 이루었다. 이런 형태의 모임이 한두 번이 아니었고, 논의가 진전되더라도 실행된 기억이 별로 없었기에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보통 발언 기회가 주어지면 한마디씩 하고 끝나는 분위기였기 때문이다

 

어느 대학교수의 볼멘 소리

그런데
, 그날 모임에서 어느 교수님의 말씀이 기억에 남는다. "기업에서 원하는 인력의 요건을 보면 현실성이 없어요. 수학과 과학에 충실해야 하고, 컴퓨터 프로그래밍 잘 해야 하고, 영어 잘해야 하고, 중국어나 다른 외국어 중 하나를 잘하면 좋겠고, 커뮤니케이션 스킬이 좋아야 하고, 창의력이 있고.. 여기에 더 나아가 요즈음은 인문학적 소양과 상상력을 요구합니다. 이런 인력 있습니까? 그런 교육을 모두 시킬만한 대학은 없습니다.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하기보다는 현실적인 방안을 찾아야 합니다."

 

고려대에서 강의하던 시절

얘기를 듣는 순간 "! 우리가 너무 일방적으로 요구만 했구나"라고 깨달으면서 한편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조금 더 시간을 가지고 생각해 보니 "바로 그런 교육 체계가 필요한 것 아닌가?" 라는 다소 엉뚱한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대학이 산업이 필요로 하는 인력을 배출하던 산업화 시대의 방식에 익숙하다
. 우리 나라의 비약적인 성장의 배경에는 지속적으로 배출되는 고급 인력이 있었다. 대학 졸업장은 좋은 직장에 취직해서 출세하기 위한 하나의 방편이었고, 그렇기에 입시 경쟁도 나날이 치열해졌다.

그러나, 정보화를 거쳐 지식 기반 사회로 가면서 상황은 바뀌고 있다. 기업의 변신이 다반사로 이루어지고 있고 사업 모델은 수시로 바뀐다. 잘 훈련된 조직 문화보다 개인의 창의력과 아이디어, 모티베이션(동기부여)이 개인의 기업에 대한 공헌에 커다란 영향을 끼친다. 경영학자 게리 해멀의 주장으로는 열정, 창의성, 추진력이 기업에 공헌하는 개인의 능력의 80%를 차지한다. 반면 지식과 근면함은 그다지 기업에 큰 가치를 주지 않는다. (http://ceo.ahnlab.com/103그렇기에 기업에서는 창의력있는 인력을 애타게 찾고 있지 않은가?

 

사회인을 양성한다는 관점에서의 대학 교육의 목표는 더 이상 스펙에 머무르면 안된다. 전공 지식과 우수한 성적, 자격증, 토익 점수가 반드시 기업이 원하는 인력이 된다는 보장은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대학이 단순히 기업이 필요로 하는 인력을 양성하는 곳도 아니지 않은가? 끊임없는 진리 탐구와 교육이 본연의 모습이다. 그런 점에서 스킬셋을 가르치는 사교육 컴퓨터 학원과는 엄연히 다르다.


기업이 원하는 인재는?
 

이 시대에 기업이 원하는 것은 답이 없는 문제를 풀 줄 아는 창의력과 진지하게 자신의 인생을 헤쳐나갈 수 있는 인격적 성숙함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러려면 기초에 충실하면서도 다방면을 섭렵할 수 있는 자유로움이 있어야 한다. 또한 자신의 탤런트와 강점을 발견해서 이를 바탕으로 인생을 설계해야 나가는 고민의 훈련을 해야 한다. 결국 어떤 과목을 선택해서 자신의 커리어를 만들어갈지에 대한 결정은 학생의 몫이어야 한다.

 

대학생기자들과 만나는 안철수교수

그렇다면 대학의 커리큘럼은 앞서 교수님이 지적한 '프로그램 잘 하고 수학 잘하고, 커뮤니케이션 잘 하고 등등'을 학생들이 발견할 수 있는 장을 제공해야 한다. 물론 한 사람이 그 모든 것을 잘 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러나, 대학에서 일단 다양한 프로그램이 제공되어야 학생들이 그 중에서 자기가 잘할 수 있고 재미있는 것을 발굴해서 찾아낼 수 있지 않겠는가?
 
또한 대학은 교수의 강의만으로 구성되어 있는 게 아니다. 대학 문화와 커뮤니티는 또 다른 배움의 장이다. 이를테면, 프로그래밍 같은 기초는 소프트웨어 전문가와 철저한 훈련의 장을 통해 더 효과적으로 배울 수 있다. 한편 이론적 틀은 전문 교수에 의해서만 제대로 갖출 수 있다. 창의력과 도전성을 갖춘 인력이 사회에 배출될 수 있는 방향으로 논의의 초점을 맞추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CEO가 트위터의 매력에 빠져든 이유는?

IT와 세상 2010.03.15 07:43

트위터에 대한 관심은 약 1년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어느 미국 회사에 방문해서 이런 저런 얘기를 하던 중 앞으로 트위터(Twitter)를 적극 활용하려는 마케팅 계획을 듣게 되었다.

 

미국 시장에서 톱 블로거의 지지(endorsement)가 중요하다는 것은 현지 전문가들을 통해 익히 알고 있었다. 신제품이나 신기술을 시장에 선보일 때 커뮤니케이션PR의 첫 번째 목표가 블로그 커뮤니티, 그 다음이 가트너와 같은 시장 분석기관이다. 전문지나 언론은 그 다음이다. 그래도 트위터(Twitter)는 아직 생소했다. 트위터에 대한 책도 사 보면서 개념을 깨우쳤지만 동조하는 이들이 주위에 적어서 직접 활동하지는 않았다.

100억 Tweet의 돌파 (2010. 3. 5)

최근 급증하는 트윗 숫자

 

한국에서도 언제부터인가 얼리어답터와 일부 언론인, 정치인들이 트위터를 사용한다는 뉴스를 접하게 되었다. 마침 나는 작년 초부터 시작한 개인 블로그에 한참 재미를 붙이고 있었다. 업무를 마친 밤 늦은 시간이나 새벽에 블로그를 하다 보니 별도로 시간을 낸다는 엄두가 나지 않았다. 게다가 한국에서 트위터는 일상적인 채팅이나 협소한 분야에 머무르는 것 같았다. 물론 그것도 의미가 있는 활동이지만, 그러기에는 시간이 너무 부족했다.

 

그러던 중 내부 보고 자료가 빠르고 정확하게 업데이트 되는 것을 보고 비결을 묻자 트위터 덕택이라고 하는 것 아닌가? 가벼운 메시지 위주로 시작하던 트위터가 전문 콘텐츠의 소통과 담론으로 분화되어 나가고 있었던 것이다. 전 세계의 수많은 자료가 빠른 속도로 공유되고 있었다.

 

아이폰 출시후 급성장한 트위터 사용자수

특히 스마트폰의 도입은 트위터 성장에 영향을 주었다. 10만 정도에서 소강 상태를 보이던 트위터 인구는 아이폰의 출시를 계기로 증가폭이 커졌다. 내 느낌으로는 이 통계 이상으로 영향이 있었을 것으로 생각한다.

시간과 장소에 제한없이 자투리 시간을 활용해서
, 혹은 순간순간 느꼈던 생각들을 알리기에는 트위터가 제격이다. 스마트폰으로 교체할 때 이미 나는 트위터를 염두에 두고 있었다.

트위터 세계로 들어간 과정

그러나
, 기업에서 4사분기 말과 1사분기 초는 가장 바쁜 기간이다. 사업 전략 및 계획 준비하랴, 전직원 교육하랴 정신 없는 기간을 보냈다. 그 후 더 미룰 수 없다는 생각에 2월 말에 조용히 트위터 세상에 발을 들여 놓았다 (@hongsunkim).

초반에는 트윗
(Tweet)을 보내지 않고 그냥 팔로우(follow)만 하려고 했다. 그런데 1시간이 채 되지 않아 평소 블로그로 알고 지내던 광파리(http://blog.hankyung.com/kim215) 님께서 내가 트위터에 들어온 것을 공표해 버렸다. 순간 수십 명의 팔로워가 붙어 당황스러웠다. 이렇게 된 이상 숨어 지낼 수 없어서 인사의 메시지를 트윗(Tweet)으로 날려 보았다. 그러자 반응이 오기 시작했고, 여러 지인들로부터 격려의 메시지가 쇄도했다. 예전에 알고 지냈던 이들, 옛 직원들도 팔로워로 들어 왔다. 소통의 스피드는 짜릿했다.

그렇게 나는 트위터 세상에 몸담게 되었다. 트위터는 블로그와는 다른 차원의, 그러면서도 보완적(complimentary)인 수단이다. 아직 나는 초보 단계다. 시간이 모자람도 절감한다. 왜 이리도 세상은 빨리 변하고 있는가? 지금 이 시간에도 온 세상 정보를 트위터와 블로그로 알리는 이들의 열정이 놀랍다. 그래서, 트위터의 매력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보게 되었다.

 

첫째, 글로벌 커뮤니티 속에서 입체적으로 커뮤니케이션이 이루어진다. 비록 140자 이내라는 짧은 글이지만, 오히려 단편의 문장 속에서 그 사람의 진정한 생각을 읽을 수 있다. 손정의 사장의 메시지를 어디에서 이렇게 생생하게 읽을 수 있겠는가? 사실 짧은 글 속에 중요한 요지가 더 함축되어 잘 담아질 수 있다. (아래 cartoon 참조)

The Evolution of Communication, Mike Keefe, The Denvor Post, March 27, 2009


둘째
, 타임라인(Timeline)
이라는 시간적 차원이 추가되었다. 정보는 더 이상 저장(store)되고 관리(manage)되는 정적인 요소에 그치니 않는다. 방대한 정보가 떠 돌아 다니며 타임라인이라는 시간축과 팔로워라는 소셜 네트워크 축을 통해 입체적으로 퍼져간다. 이 정보를 어떻게 잡아내어 자신의 가치(value)로 만드느냐가 열쇠다. 끊임없이 고급 정보는 역동적으로 생성되어 흘러가며, 이는 실시간(real-time)으로 소통되고 있다.

셋째, 트위터는 컨버전스 시대에 판단 기준을 삼을 수 있는 도구다. 각종 기술과 콘텐츠, 아이디어가 융합되어 가고 있다. 기존의 생각과 틀이 바뀌고 있고, 그 변화 속도는 너무나도 빠르다. 경험적이고 학구적인 이론이나 기존의 사업 모델이 적용되지도 않는다. 그럴 수록 전문가(Guru)의 통찰력과 감각이 절실하게 필요하다. 트위터에서 논의되는 전문가의 의견은 상식 수준의 정보와 차원이 다르고 맥을 잘 잡는다.

 

여러 장점 중에서 전문가의 역할이 중요해졌다는 점이 나에게는 큰 매력이다. 우리가 현재 경험하고 있는 변화는 패러다임 이동 수준이 아니다. 지축이 흔들리는 구조적 탈바꿈이다. 사업 모델의 충돌, 기술과 콘텐츠의 집합(aggregation), 여기에 소셜 미디어와 문화 코드의 복합성이 뒤엉켜 있다. 산업화 시대의 규율과 통제의 기업 문화와 훈련된 역량으로는 풀어갈 수가 없다.

 

창의력과 혁신성이 중요하고 적극적으로 소통하는 역량을 필요로 한다. 홍수처럼 떠돌아 다니는 정보와 지식의 구름 속에서 전문가와 리더의 생각을 읽는 것이야말로 아주 중요하다. 또한 스스로 전문가가 되어 세상과 소통하는 자세가 요구된다. 그런 시대에 트위터를 비롯한 소셜 미디어는 입체적으로 우리를 도와 주고 있다.

 

법학자가 쓴 세계화 재해석 '제국의 미래'와 민주주의는 관용에 달렸다

책으로 보는 세상 2009.06.06 12:17
관용의 정신으로 세계화 역사를 해석한 '제국의 미래'

두꺼운 책을 선택하기가 쉽지 않은 시대다. 인터넷을 통해 정보가 빠르게 소통되다 보니 지식의 깊이보다 폭이 선호되는 느낌이다. 그러나, 어떤 주제를 중심으로 많은 자료를 통해 이를 입증하는데 충실하다보면 두껍게 될 수 밖에 없다. 이런 책은 저자의 오랜 고민이 반영되어 있어 사고의 틀을 형성하는데 좋다. 그 관점에 동의하든지 안 하는 것은 각 개인의 문제일 뿐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법학자가 쓴 역사서, 제국의 미래

 

솔직히 제국의 미래(Day of Empire)’라는 책에 눈이 간 것은 ‘CEO가 휴가 때 읽을 책!’이라는 선전 문구였다. 그런 점에서 보면 이 책을 출판한 회사의 마케팅 효과는 적어도 나에게는 먹힌 셈이다. 또한 저자인 에이미 추아(Amy Chua)가 국제법 박사 학위 소지자라는 점도 호기심을 불러 일으켰다. 법학자가 역사서로 보이는 책을 저술했다고 하는데 어떤 시각으로 바라 보았을까? 저자가 내가 공부했던 대학 도시에서 자라났다는 것도 개인적으로 친밀감을 느끼는데 한몫 했다.

 

"제국의 미래" 책 표지

에이미 추아 (예일대 법대 교수)

책의 내용은 마침 내가 궁금했던 '제국이 형성되고 몰락되는 과정'을 저자의 시각으로 기술하고 있다. 중국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중국계 2세라는 점이 서양과 동양의 역사를 균형있게 바라 보는 관점을 형성하는데 도움이 된 것 같다. 미국인이 저술한 책 중에 당(), 몽고, () 등의 중국 국가를 로마, 영국, 미국 등과 동일한 잣대로, 또한 풍부한 사료(史料)를 바탕으로 설명한 책을 보기 힘들었다.

 

이 책의 키워드는 관용(寬容)’이다. 어떤 제국이든 관용을 보일 때 가장 융성했고, 관용이 사라질 때 몰락되어 갔다는 주장이다. 자체적으로 허물어지든지, 아니면 외부의 침입에 속절없이 무너지든지.. 이 책이 부시 대통령이 이라크 침공을 한 이후 미국이 늪에 빠져 헤메는 시점에 출간되어서인지, ‘관용이라는 단어는 미국의 권력 교체 시점과도 맞아 떨어졌다. 어쨌든, 저자는 관용이라는 공통 키워드를 추출해 내기까지 꽤 오랜 기간 동안 자료 수집과 분석을 수행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어린 시절부터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했었다는 저자의 사견도 적혀있다.

 

관용의 제국을 연 페르시아

 

보통 이런 종류의 역사서는 그리스 로마 시대로 시작한다. 왜냐 하면, 그리스 로마의 정신이 서구 문화의 뿌리이기 때문에, 서구 문명 중심으로 역사를 설명할 때 그 이전의 국가는 별로 도움이 안 된다. 그러나, 이 책은 페르시아를 첫 제국의 모델로 선정한다. 당시 페르시아의 지역적 팽창이나 영향력으로 볼 때에 페르시아가 패권 국가라는 사실은 명약관화하다.

 

어떤 이들은 페르시아는 실제로 지배를 했다기 보다 영향력을 통해 그 지역 주민을 그냥 놓아 두었기 때문에, 이들을 직접 통치한 제국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얘기하기도 한다. 페르시아는 그 지역의 종교, 습속, 문화를 그대로 유지할 것을 존중했다. 구약에서도 페르시아의 키루스 왕(성경에서는 고레스왕으로 번역됨)은 이스라엘 백성을 바벨로니아 유수로부터 돌아오게 한 중요한 역사적 터닝 포인트를 만들었다. 저자는 이러한 다양성의 인정, 즉 관용의 철학이 페르시아를 제국의 위상으로 끌어 올렸으며, 그것이 사라지고 독선이 자리잡으면서 제국이 무너지게 되었다고 설명하고 있다.

당태종 이세민

 

세계화된 중국의 모습 당()나라

 

중국에서는 당나라가 중국 역사상 가장 화려한 국제적 위상을 갖추었음은 자명하다. 우리 나라 역사에서는 당나라가 그다지 좋은 이미지로 설명되지 않는 느낌이다. 요동 정벌로 고구려를 침공하고 신라와 손잡고 고구려를 멸망시킨 역사가 우리 피부에 와 닿기 때문일까? 그러나, 신라방의 예에서 본 것처럼 당나라는 국제적으로 가장 개방적인 시대를 열었다. 모든 길은 장안(長安)’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말은 결코 허세가 아니었다.

 

중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왕으로 불리우는 당태종 이세민은 그 유명한 정관지치(貞觀之治)의 시대를 열었다. 비록 자기 형과 동생을 죽이고 쿠데타를 일으킨 잔인한 권력 찬탈의 과정을 겪었지만, 이러한 콤플렉스를 이기기 위해서인지 황제로서 보여 준 그의 정치력은 놀라웠다. 무엇보다 인내를 가지고 반대파의 핵심인 위징을 포함한 많은 인물들을 정치의 현장으로 끌어들였다. 반대 의견을 귀담아 듣고 반영해서 백성 중심의 정치를 편 것은 모든 정치 지도자가 본받아야 할 정신이다. 백성들을 위하는 긍휼한 마음보다 권력 쟁취와 자기들만의 세계를 만든 뒤, 그에 따른 이익만을 추구하는 사악한 정치인들의 모습이 한심할 뿐이다.

 

당현종

암흑 시대인 측천무후 시대를 거쳐 정관지치의 국가적 틀을 국제적 개방화로 이끌어 낸 당 현종 시대(개원의치)의 당나라는 단연 세계의 중심이었다. 한국은 물론 아라비아, 유럽의 상품이 활발히 거래되고, 각종 종교와 문화가 받아들여졌다. 수천 년 중국 시사(詩史)에 있어서 가장 돋보인 당시(唐詩)의 대표격인 이백, 두보, 왕유가 모두 이 시대에 출현한 것은 문화적으로 융성했음을 보여준다.

 

반면에 명나라는 정화(鄭和)라는 인물을 통해 대형 선박 군단을 이끌고 아프리카까지 세계적 위상을 보여주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이후 철저하게 폐쇄적으로 바뀐다. 결국 만주족에 의해 멸망당한 후, 제국주의 시대에 속절없이 무너진 중국의 모습을 관용이 사라진 탓이라고 저자는 설명하고 있다.

 

비즈니스 마인드로 강대국이 된 네덜란드

 

네덜란드 동인도회사 (reciculous.textcube.com)

서구 국가 중에서는 네덜란드가 눈길을 끌었다. 암스테르담을 방문했을 때 개방적인 사고를 지닌 네덜란드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흔히 동성애와 개방적인 성문화로 표현된 네덜란드의 모습은 그 일편일 뿐이다. 그만큼 네덜란드는 개인주의가 당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문화를 가지고 있다. 특정 종교를 강요하는 국가로부터 도피한 사람들로 구성된 네덜란드는 비즈니스 마인드로 세계적으로 팽창한 독특한 케이스다. 바로 이런 점이 폐쇄적 국가 일본의 문을 열고 들어간 비결이기도 하다. 또한 미국이라는 신천지를 연 청교도 정신, 국제화 도시 뉴욕을 만들어 낸 원천이기도 하다.

 

물론 이 책에서는 로마, 대영제국, 몽고 등 대표적 제국들을 많은 비중을 가지고 분석하고 있다. 또한 진정한 제국으로 위상을 끌어올리지 못한 오스만, , 무굴, 또한 그릇된 편견과 착각으로 역사상 최악의 국가가 된 히틀러 시대의 독일과 2차 세계 대전의 원흉인 일본도 언급되어 있다. 저자는 관용이라는 잣대로 역사의 전반을 훑고 있으며, 세계화의 과정도 이를 통해 설명한다.

 

훌륭한 인재를 포용할 수 있는 환경이 강()함의 비결


훌륭한 인재가 중요시되는 세상이 강대국이 되는 덕목이라고 설명하는 저자의 관점에 나는 전적으로 동의한다
 

부를 창조하는 가장 큰 동력은 약탈과 몰수가 아니라 교역과 혁신이라는 것은 이미 입증된 사실이다. 또한 한 사회가 세계적으로 우수하고 똑똑한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정복이 아니라 이민으로 대체되면서, 전략적인 관용의 양상 역시 달라지고 있다. (책에서 인용)

 

알버트 아인슈타인

이를 가장 잘 실현한 예가 '이민자의 국가'인 미국이다. 미국이 지역 강국에서 세계적 강국으로 성장한 배경에는 첨단 기술과 과학이 자리잡고 있다. 과학의 비약적 발전은 아인슈타인과 같은 망명한 물리학자, 나치를 피해 미국으로 건너온 유진 클라이너가 건설한 실리콘밸리의 벤처자본주의가 자리잡고 있다. 그 외에도 헝가리 출신으로 인텔을 이끈 앤디 그로브, 러시아 출신으로 구글의 공동 창업자 세르게이 브린과 같은 이민자들이 수많은 미국인들과의 합력으로 정보 기술은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개인이 국가를 선정할 수 있는 시대에 있어서 좋은 인재를 확보하고 양성하는 것은 국가의 최우선과제다. 우물 안 개구리의 좁은 국가 의식으로는 강대국으로의 길은 꿈도 꿀 수가 없다. 기업이든 국가든 열린 마음으로 인재를 확보하고 좋은 조직을 만드는데 심혈을 기울여야 한다는 게 역사가 가르쳐주는 교훈이다.

 

법학자가 이렇게 역사서를 저술할 수 있는 자유로운 학문적 분위기도 인상적이다. 국제법이라는 전공을 확대해서 세계화의 과정을 조명할 수 있는 지적 포용성이 부럽다. 법학과 역사의 전문성이 결합되어 더욱 빛이 나는 느낌이다. 이 책에 대해 일부 비판적인 평가도 있지만 적어도 나에게는 역사적 사실을 통해 하나의 중요한 틀을 형성하게 해 주었다.

 

다양성과 창의력을 존중하는 기업을 구상하며...

 

이 책을 읽으면서 CEO로서 회사의 바람직한 모습을 여러 모로 생각해 보았다. 평소에 내가 생각하는 회사의 중요한 키워드는 다양성이다.

다양성은 창의력의 산실이다. 다양성이 없을 경우 그 회사는 윗사람의 지시에 따라 움직이는 단순한 조직이 될 뿐이다. 이런 조직은 규율과 통제, 분업과 숙련화와 같은 속성에 기인한 산업 시대의 산물이다. 그러나, 네트워크 경제에서는 개인의 공헌 가치가 극대화해야 하고, 창의력에 따라 가치의 척도가 달라진다. 농업이나 제조업이든 서비스업을 막론하고 현대 산업의 시대 정신이다.

 

그런 점에서, 자신의 잠재된 가치를 발휘할 수 있는 조직 문화가 필수적이다. 그러려면 다양성이 포용되고 존중되어야 한다. 다양한 의견이 활발히 제시될 수 있고 토론에 의해 합의점을 도달할 수 있는 문화가 성공하는 기업의 필요 조건이라고 생각한다. 국가나 사회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진정한 민주주의와 공정한 경쟁이 승리하는 것이 아닐까? 다양성이 인정되고 관용이 중심이 되는 공동체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경쟁력있다는 사실을 이 책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역사와 문화를 아는 교육이 기본이 되어야 : 사교육 논의를 바라보는 시각 (2)

CEO 칼럼 2009.05.05 16:43

콘텐츠가 중요한 시대라고 한다. 해리포터 시리즈 작가인 조앤 롤링이나 히트 영화의 제조기인 스티븐 스필버그의 예를 많이 든다. 소설과 영화, 드라마, 또한 음악과 같은 창조품의 위력은 익히 알고 있다. 한국도 한류 열풍으로 톡톡히 재미를 보고 있다. 언론에서 무형 자산을 자동차, 조선과 같은 대표적인 수출 품목과 비교하는 것도 종종 본다.

 

그런데, 과연 이런 콘텐츠는 어디에서 나오는가? 창의력을 바탕으로 한 탄탄한 스토리텔링(Storytelling)에서 나온다.


영화 제작사인 드림웍스
(DreamWorks)의 작가가 TV에서 인터뷰하는 것을 들었다. “특수 효과, 애니메이션, 음향, 그래픽, 이런 것은 누구라도 (장비와 돈과 인력이 있으면) 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가장 애타게 찾는 것은 스토리다. 창의적인 스토리(Creative Story)가 영화의 모든 것을 결정한다. 그래서, 전 세계를 누비면서 좋은 콘텐츠를 찾는데 혈안이 되어 있다”.

 
스토리의 힘은 어디에서 나오는가?


한때 디워
(D-War)가 논쟁의 대상이 된 적이 있었다. TV토론 프로에도 등장할 정도였다. 나는 디워를 본 적이 없다. 그러나, 내 주위에서 그 영화를 본 이들의 평가는 대체로 냉랭했다. 애들 등쌀에 보러 갔다가 애들이 나가자고 해서 생전 처음 영화 도중에 나왔다고 투덜대는 사람도 있었다. 볼 만 하다는 얘기도 들었지만, 전반적인 중론은 그래픽은 우수하나 스토리는 빈약하다였다. 진중권 씨는 스토리가 기본이 안 되어 있다며 신랄하게 공격했다.

 

어쨌든 이 논란은 스토리의 부족함으로 귀결된다. 아무리 특수 효과가 뛰어 나더라도 스토리가 약하면 사랑을 받기가 힘들다. 혹자는 디워반지의 제왕과 비교한다. 그러나, ‘반지의 제왕을 단순히 특수 효과가 뛰어난 판타지 영화로 이해했다면, 그 스토리의 깊이를 너무나도 과소평가한 것이다.

 

존 톨킨 교수(ko.wikipedia.org)

반지의 제왕은 오랜 기간 세계의 수많은 독자들에게 사랑받아온 판타지 소설이다. 작가인 존 로널드 루엘 톨킨(John Ronald Reuel Tolkien) 교수는 이 소설을 통해 자신이 상상하는 세계를 방대하게 설계했다. 이 소설을 위해 인공 언어를 만들었을 정도로 심혈을 기울였고, 심리적 갈등과 반전의 묘미가 심오한 작품이다. 그의 시대에는 상상의 한계를 뛰어넘는 묘사를 할 수 있는 도구가 소설로만 가능했다. 기술이 발전하면서 비로소 영상으로 표현하는게 가능해지자 치밀한 노력과 열정으로 그 내용을 실체화한 것이 피터 잭슨(Peter Jackson) 감독이 만든 3부작 영화다.

 

과연 우리의 교육 현장에서 이런 콘텐츠를 만들 수 있는 인력을 기르는 교육이 이루어지고 있는가? 대학 입시를 위해 정보를 얻고 유명 강사를 쫓아다니는 열정은 가히 세계 수준이다. 또한 그런 노력을 뭐라고 할 수 없는 교육 현실이다. 그러나, 과연 창의적인 스토리가 그런 환경에서 만들어질까? 오히려, 우리의 교육 커리큘럼은 그에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는 경향이 있다.


역사와 문화가 콘텐츠의 산실
 

좋은 이야기의 중요한 소재는 역사와 문화다
. 반지의 제왕은 북유럽 신화에 심취해 있던 작가에 의해 만들어졌다. 톨킨 교수는 ‘나니아연대기를 집필한 C.S. 루이스와 동시대 인물로서 교감을 같이했다니, 이런 자유로운 상상력의 교환이 뛰어난 콘텐츠를 만들어내는 힘이 되었을 것이다. 해리 포터와 같은 소설은 영국의 문화와 고성(古城), 구전되어온 이야기들이 축적되어 만들어진 역사와 환경의 산물이다. 단순히 작가의 천재적 영감만으로 이루어진게 아니다.

서구 문명의 뿌리를 이해하려면 그리스 로마 역사를 알아야 한다. 영화 '300'은 그리스의 조그마한 도시국가가 세계를 휩쓸던 페르시아를 상대로 대항한 더모필레 전쟁을 소재로 삼고 있다. 비록 장열한 전사를 했지만, 이를 계기로 그리스 도시국가들은 통합된 국가로 성장해서 오늘날 민주주의의 초석을 이루게 되었으니, 역사적으로 의미가 큰 사건이었다. (전제국가인 페르시아가 오랜 기간 호령했다면 민주주의의 싹이 틀 수 없었다는 지적도 있다).

또한 말도 안 되는 것처럼 보이는 그리스 로마 신화 이야기가 많은 서구 문학과 연극, 영화에서 인용되어 등장한다. 셰익스피어의 고전을 이해하려면 그리스 로마 신화를 꿰뚫고 있어야 한다. 그런 인문학적 연구와 고찰이 더 다양하고 깊이있는 콘텐츠를 만들어낼 수 있다.

 

우리 나라에서도 '공동경비구역 JSA'와 '웰컴 투 동막골'이 성공한 배경은 냉전 시대 속에서 한민족의 끈끈한 동질감을 절묘하게 작품 속에 담았기 때문이다. 이데올로기를 넘어 서서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인간 관계의 깊이를 훈훈한 이야기로 풀어냈다. 이와 같이 우리의 문화, 역사 속에서 차별화되고 재미있는 이야기는 만들어진다.


공동경비구역 JSA

웰컴 투 동막골

 

역사 공부를 등한시하는 부끄러운 우리의 모습

그런데
, 우리 나라 수능 시험에서 한국 역사, 즉 국사가 필수 과목이 아니다. 수능이 절대적 기준인 우리 나라에서 그 의미는 국사를 대충해도 대학가는데 지장이 없다는 얘기다. 자신의 역사를 제대로 모르면서 무슨 스토리를 만든다는 얘기인가이러다가는 허구가 가미된 TV 드라마 내용을 액면 그대로 역사로 인식하는 사람들이 더 많아질 수도 있다.

한때
국사는 모든 시험 과정에서 피할 수 없는 필수 과목이었다. 수능의 이전 모습이었던 예비고사 시절, 국사 과목은 50점이 배정되었던 국어, 영어, 수학 다음으로 많았던 30점이 배정된 전략 과목이었다. 고시는 물론 유학 시험, 국비 시험과 같이 국가가 관리하는 시험에서 국사는 필수였다. 왜 상황이 바뀌었는지 이해가 되지를 않는다. 개인적으로 역사적 관점이 다르고 논란이 많아서 그 중요성이 약화된 것인가?

 

물론 역사에 대한 관점은 사람마다 틀리고 시대에 따라 변한다. 그러나, 전반적인 틀을 가져갈 수 있어야 사회인으로 성장할 수 있다. 나는 한국적 민주주의가 최고의 가치라는 유신 헌법을 달달 외우면서 대학에 들어갔다. 대학에 들어가자 마자 교과서에 쓰여져 있던 지식은 완전히 부숴졌다. 지금 생각해 보면 허무한 시간 낭비였다.

 

그러나, 전혀 무의미하지는 않았다. 그런 혼란과 갈등 속에서 더 많은 고민과 독서를 하게 되었다. 속았다는 분노감에 정반대 개념의 책에 빠져든 적도 있었다. 그후 다양한 사회적 경험과 문화적 충격을 거치면서 역사를 바라보는 전체적 틀을 형성해 갈 수 있었다. 아마 누구나 비슷한 과정을 겪게 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면서 자신의 역사의식과 가치관이 만들어지게 된다. 어쨌든 역사와 문화에 대한 지적 탐구와 생각하는 훈련은 의미가 아주 크고, 그런 점에서 교육 과정에서 선택 옵션이 되어서는 안 된다.


역사의 현장에서 찾는 삶의 숨결 


상대적으로 역사가 짧은 미국에서도 중학교 수학여행지는 워싱턴
DC. 자랑스러운 독립의 과정과 헌법의 초석(Bill of Rights)을 만들어 낸 과정, 독립 선언서에 서명한 인물들, 내전(Civil War)을 극복하고 통합된 연방정부를 지켜낸 에이브러햄 링컨을 만나기 위해서다. 또한 독립전쟁과 남북전쟁의 역사의 숨결이 배어 있는 전쟁터와 유적지를 둘러 본다. 이것이 자유를 위해 건너온 이민자들이 민주 국가를 구성하게 된 미국의 역사요 정체성이기에,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 거의 의무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아쉬운 것은 이러한 역사의 현장을 너무 소홀히 관리하고 있다는 점이다. 오랜 건물을 허물고 깔끔하게 현대적 건축물을 올리는 것만이 능사일까? 온갖 먹거리와 볼거리와 같은 문화 상품을 개발하고 도로를 닦고 관광 사업을 전개하는데는 혈안이 되어 있으면서, 삶 속에서 역사의 숨결을 간직하는 노력, 또한 그런 정신이 이어질 수 있도록 하는 데에는 관심이 적다.

미국이나 유럽, 심지어는 이웃나라 일본의 대도시 한 복판에서 조그마한 유적도 그 당시 분위기로 잘 보전하는 것을 보고 부러웠다. (참조 블로그 '일본 호텔 욕조 옆에 붙은 그림을 생각하니',  http://ceo.ahnlab.com/19). 작은 도시에도 그 곳을 거쳐간 별로 유명하지도 않았던 인물들의 흔적을 남겨둔다.  그 속에서 삶의 숨결과 체취를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가공하지 않은 원본(Original) 그대로가 가장 갚진 것이다. 이런 것이 모두 스토리의 중요한 소재가 되기도 한다.

 

나는 남산 근처 후암동에서 태어나고 자라났기 때문에 어린 시절부터 남대문 주위를 항상 오갔다. 나에게 남대문은 너무나도 잘생긴 멋진 건축물이자 나의 친구였다. 남대문이 불타 버린 광경을 보면서 마음의 공허감과 분노는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국보 1호가 그렇게 허무하게 무너졌으니, 다른 유적지들은 어떠하겠는가?

남대문 전경(heritage.or.kr)

소실된 남대문 (dt.co.kr)



우리는 역사를 알아야 한다. 그 속에서 우리의 정신과 정체성을 발견할 수 있다. 역사는 수많은 값진 이야기를 만들 수 있도록 우리 조상들이 남겨 준 고귀한 자산이다. 창의력은 외딴 산 속에서 홀로 명상 속에서 나오는게 아니고, 우리의 생활 현장과 역사 속에서 발견할 수 있다. 자신의 역사와 문화를 아는 교육이 경쟁력있는 콘텐츠를 만드는 기본 자세다.

 

(다음 회에 '학벌 지상주의의 한계'를 이어서 합니다)

부와 권력이 세습되는 사회는 경쟁력없다 : 사교육 논의를 바라보는 시각 (1)

CEO 칼럼 2009.05.05 08:34

최근 사교육 문제를 놓고 시끄럽다. 공교육과 사교육의 불균형을 해소하는 방안에 대한 논의는 어제 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정부 내부에서도 서로의 영역 싸움과 갑론을박으로 요란하다.

 

어느 나라에서나 교육 문제는 또렷한 방안이 만들어지기 힘든 것 같다. 다양한 스펙트럼의 인력 수요에 맞추어 절대적인 교육 제도를 만드는 것이 어렵고, 교육 프로그램에 대한 결과가 워낙 주관적인 판단에 의해 좌우되기 때문이다. 민이라면 모두가 교육의 대상이라서

영어마을(pungnap.sev.go.kr)

교육자, 정치인, 관료 모두가 조심스럽게 마련이다. 특히 지식 기반 사회에서는 창의력과 전문성을 갖춘 인재가 절실하기에 산업 시대의 교육 체계가 적합하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또한 글로벌 사회가 되면서 교육은 국가에서만 관리되던 단계를 벗어났다. 기러기 아빠, 영어 마을, 연수 캠프와 같은 다양한 글로벌 교육 옵션은 부모의 재산과 정보력이 자식의 장래에 영향을 주는 요소임을 여실히 보여 준다. 이는 우리가 간직했던 습속과 문화에 영향을 줄 뿐더러 가정을 해체하는 위기의 상황마저 발생시키고 있다. 그런 점에서 교육은 사회적, 심리적, 산업적으로 가장 큰 충격을 주는 요소다.


공정한 경쟁과 실력이 보장되는 사회를 위해 


우리 나라의 사교육이 기형적이고 궁극적으로 학생들에게도 도움이 안 된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 무엇보다 공정한 경쟁을 방해하고 있다. 아이 둘의 엄마인 어느 직원이 아이가 좋은 학교를 가는 요건이, 첫째가 부모의 정보력, 둘째가 부모의 경제력, 그리고 나서 다음이 아이의 실력이라는 요즘 회자되는 얘기를 하면서 맞벌이를 하는 주부의 애환을 토로한 적이 있다.

 

개인의 실력과 노력보다 부모의 물질적 능력이 우선되는 우리의 사회 모습은 아주 심각하다. 교육이야말로 돈이 많고 적고를 막론하고 노력과 실력에 의해 공정한 기회를 보장하는 이 사회의 근간(根幹)이기 때문이다. 부와 권력이 세습되는 사회는 건강하지도 않고 경쟁력도 없다. 개인이 국가를 선택할 수 있는 현실에서 그러한 국가는 경직된 기득권층에 의해 성장 동력을 상실한 채 정체될 뿐이다. 한 마디로 희망이 없는 사회다.

 

그런 점에서 교육이 국가의 대계임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결국 사람이 있으면 모든 것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변변한 자원 하나 없는 대한민국의 자랑은 사람이다. 나는 국가 지도자들의 국정 최고 우선 순위는 교육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최근의 논의를 지켜 보면 정작 본질적인 문제는 제쳐 두고 지엽적 방법론에 대해서만 왈가왈부하는 느낌이다

 

donga.com

ohmynews.com



교육의 목표는 국민들이 이 시대에 적응해서 살아가기 위한 방편을 갖추도록 하는 것이다
.
적절한 전문 실력도 갖추어야 하지만, 사회의 구성원으로 살아가기 위한 인성과 능력, 지식을 양성해야 한다. 또 하나의 변수는 현재와 미래 사회의 변화 속도다. 그렇기에 미래 산업과 사회의 모습을 예측하고 그에 필요한 인력이 양성하는데 교육의 목표가 정조준되어야 한다.

 

그러나, 정작 미래의 우리 사회의 미래 모습에 대해서는 아직 공감대가 이루어지지 않은 것 같다. 설사 목표가 있더라도 추상적이고 선언적이라서, 목표에 도달하기 위한 구체적 방안은 없이 구호적인 탁상공론에 그치는 양상이다. 그래서인지 현실성을 느낄 수가 없고 구성원들이 확신을 가지기 어렵다. 그러니, 교육 프로그램은 필요한 인력을 어떻게, 얼마나 양성해야 할 지 대한 본질적 고민은 빠진 채, 기존 제도와 규제에 대한 논의에 머무르고 있다. 그러니, 인력의 수요 공급에 관한 한 산업과 학교의 괴리는 깊어만 간다.

 

핵심이 빠진 미래 산업에 대한 논의

이를 테면
, BT(Biotechnology), NT(Nacotechnology), IT(Information Technology)가 융합을 이루는 산업이 미래의 성장 엔진이라고 한다. 다양한 사업 모델과 일자리가 창출될 것이라고 한다. 산업의 트렌드를 볼 때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런데, 이런 융합을 만드는 근본적 요소에 대한 진지한 성찰은 찾기가 힘들다. 결국 모든 것이 사람이 하는 일인데, 정작 일을 수행할 사람이 없다면 이 목표는 그림의 떡일 뿐이다.

 

그러면 그 융합의 원천은 무엇인가? 이 세 단어에 공통적으로 들어간 ‘T’, Technology(테크놀러지)는 과학과 기술, 그리고 탄탄한 엔지니어링을 의미한다. 3가지를 담을 그릇은 다양한 사업 모델이지만, 이들의 결합을 가능하게 하고 부가 가치를 창출해 내는 핵심 요소는 기술(Technology)이다. 투자 자금, , 규제, 사업 모델은 기술을 만들 사람이 있고 나서의 문제다.



그런데, 오늘날 공교육, 사교육을 막론하고 과학과 기술은 소외되고 있다. 숫자 측면에서도 과학과 기술을 전공하겠다는 소위 이과(理科) 인력이 법대, 경영대, 인문계열과 같은 문과(文科) 인력보다 적다. 어떤 이는 이과, 문과의 구분이 적절하지 않다고 한다. 그러나, 그것은 광범위한 역량을 갖추어야 한다는 것이지, 개인의 전공적 자질과 적성을 무시해도 된다는 것은 전혀 아니다. 오히려 제너럴리스트(Generalist)보다 전문가(Specialist)가 이 시대가 필요로 하는 덕목이다.

 

오늘날 기술(Technology)과 실력을 갖추지 못하면 제대로 대접받지 못한다. 아예 대화에 끼지도 못하는 수모를 당하기도 한다.


그런데
, 우리는 시대를 역행하고 있다. 사농공상(
士農工商)의 망령이 살아나서 공(工)과 상(商)이 무시되는 사회 분위기다.

이 시대의 선수는 과학과 기술 전문가

www.hiddink.com

우리가 직면한 여러 가지 문제를 극복하고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내는 선수들은 과학과 기술에 종사하는 전문가들이다. 변호사, 의사, 공무원은 모두 스태프다. 운동 경기에서 감독과 스태프의 영향력은 중요하다. 그러나, 정작 풍부한 선수 자원이 갖추어지지 않으면 게임 자체가 되지를 않는다.

히딩크 감독이 첼시에서 좋은 성적을 내는 배경에는 그의 출중한 능력도 있지만
, 세계 각지에서 뽑은 탄탄한 선수층이 있기에 가능하다. 그의 강점이라는 용병술(
用兵術)은 일단 선수들이 있을 때 가능한 용어다.

 

또한, 훌륭한 감독과 스태프도 선수 출신들이 많다. 비록 선수로서 성공할 수는 없었더라도 명장(名將)이 된 이들을 많이 본다. 그러나, 선수 생활을 전혀 해 보지 않은 명장을 보기는 힘들다. 왜냐 하면, 선수들과 같이 호흡해 보았어야 그들의 고민과 생각을 이해할 수 있고 다룰 수 있기 때문이다.

요컨대 과학과 기술을 잘 아는 선수들이 좋은 지도자나 스태프도 될 수 있다는 얘기다. 기술을 알아야 기업, 정부, 학계 각 분야에서 휼륭한 지도자가 될 수 있다. 그래서,
교육의 목표는 선수들의 저변을 확대하는데 초점이 맞추어져야 한다.


과학 기술의 저변 확대가 교육의 초점이 되어야

BT, NT, IT
산업은 공히 기초 과학과 광범위한 R&D가 든든하게 받쳐 주어야 한다. 그런데, 장미빛 그림과 장대한 기획 속에서 기술 인력, 즉 선수들을 양성할 방안에 대해서는 정작 심각하게 고민하는 흔적을 보기 어렵다
. 전략적으로 인재를 양성하는 국가적인 어젠다와 컨센서스가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똑 같은 대학입시 제도에 지식을 습득하는 교육 콘텐츠에만 매달리고 있다.

 

수능 과목을 위해 필요한 수학은 아주 기초적인 내용일 뿐이다. 단순히 답을 산출해 내는 정보력에 의존한 수학/과학 교육으로는, 어른이 되어서 창의적 돌파구를 찾아낼 수 없다. 공대 교수들이 하소연하는 말이, “요즘 들어오는 학생들은 미적분과 초월함수를 결합하면 전혀 손을 못 대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한다. 전자공학, 기계공학, 재료공학과 같은 공학에서 고급 수학은 전공을 하기 위한 기초중의 기초다. 평소에 수학과 과학 문제를 푸는 것을 즐기고 탐구하는 지적 호기심이 바팅이 되어야 과학 기술을 궤도에 올릴 수 있다.

 

구글(Google)의 뛰어난 검색 엔진은 뛰어난 수학과 알고리즘 덕분이다. 하이테크 기업들이 수학과 과학자를 스카우트하는 배경을 주목해야 한다. 실리콘 밸리에서는 차별있는 기술과 아이디어가 없으면 아예 만나 주지도 않는다. 우리 회사(안철수연구소)에서도 기술(Technology)이 모든 논의의 중심이다. 좋은 아이디어와 기회가 있더라도 이를 실현하는 Enabler의 역할은 기술(Technology)이 담당하기 때문이다. 경쟁력있는 기업의 CEO들은 기술에 대한 아쉬움과 중요성을 누구보다 잘 안다.


어느 시점부터 공대를 나온 우수 인력들이 고시를 봐서 변호사나 공무원이 되려고 하고
, 순수 과학을 전공하더라도 의대나 한의대로 가려고 한다. 물론 그것이 자신의 적성에 맞을 수도 있고 그런 전문가도 많이 필요하다. 그러나, 그것은 두터운 선수층을 형성된 차후의 문제다. 기술이 많아야 특허 전문 변호사도 많이 필요할 거고, 생명 과학이 발전해야 새로운 의료 기술을 의사들이 적용하지 않겠는가?

선수들 없이는 그 팀이 경기장에 아예 들어설 수도 없다. 감독과 스태프 없이 경기를 할 수 있어도, 선수들 없이는 경기가 이루어지지 않는다. 선수들도 충분히 예비 인력까지 갖추어야 한다. 선수보다 코치가 많으면 비정상이다.
교육 전문가들은 이런 현실을 모르는 것인가 아니면 무시하는 것인가?


(다음 회에 "창의력과 콘텐츠"에 대한 논의를 중심으로 이어서 합니다.)

중소기업과 상생없이 한국의 미래는 없다

경영 이야기 2009.04.04 13:54

"공정한 시장과 산업의 생태계" 

역사적으로 급격한 사회 발전의 기폭제가 되고 국민에게 혜택을 극대화한 견인차는 혁신의 정신이었다. 그리고, 항상 이러한 혁신의 중심에는 뛰어난 지도자가 있었다. 조선왕조 500년 동안 세종 대왕이 이룩한 업적이 나머지 왕들의 치세를 합친 것보다 위대하다. 세계적으로 가장 과학적이라고 인정 받는 문자를 창제하고 각종 과학 기술을 발전시킨 것은 백성을 긍휼히 생각하는 세종 대왕의 인간성과 천재성이 만들어 낸 작품이다.

비록 현재 미국 자동차 산업의 불꽃이 꺼져가는 형국이지만, 100년 전부터 전설적인 기업가들이 미국을 자동차 강국으로 만들었다.

헨리 포드는
T 모델을 통해 자동차의 보편화를 실현했고, 알프레드 슬론(Alfred Sloan)은 다양한 가격대의 제품 구성과 고객 중심 경영(그는 회사로 가기 전  대리점으로 직접 출근해서 그곳에서 업무를 지시한 것으로 유명하다. 고객의 목소리를 회사 내로 전파하는 소위 '현장경영'을 몸소 실천한 것이다)으로 포드를 꺾고 70GM 왕국을 열었다. 혁신을 게을리한 현 경영진 때문에 이러한 선구자들의 업적을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

 


또한 한국을 대표하는 세계적 기업의 창업자들은 근면함과 열정으로 굴지의 기업으로 키웠다
. 모두가 기업가 정신에 투철했고 불굴의 정신으로 아프리카보다 인정을 못 받던 나라를 세계에서 존경 받는 국가로 만드는데 크게 기여했다. 그 외에도 많은 선각자들이 곳곳에서 공헌한 덕택에 압축 성장이라는 키워드로 상징되는 한국의 산업화는 성공했다.

IT와 벤처 모델은 미국에서 직수입

정보화 시대에 들어서면서 중소 벤처 기업이 이런 정신을 이어 받는 것처럼 보였다
. 한국의 역동적인 기질에 힘을 받아 IT 강국이라는 한국 브랜드가 탄생하는데 기여했다. 한국의 재벌 구조는 일본의 게레츠(
系列)와 맥을 같이 하지만, 벤처 기업은 미국에서 직수입한 모델이다. 마치 전통 산업은 일본의 기술과 노하우 덕을 보았지만, 정보화 시대를 이끄는 IT는 미국에서 직접 들여온 것처럼 우리는 패러다임 변화를 능동적으로 수용했다.


그러나
, 불행히도 오늘날 중소 벤처 기업은 한국에서 정착하지 못하고 있다. 중소기업이라는 측면에서는 일본이나 대만에 비해 층이 두텁지 못하고, 벤처 라는 관점에서는 미국의 성공 모델이 자리잡지 못하고 있다. 그 이유는 벤처 기업의 경쟁력에도 문제가 있지만, 본질적으로 기업의 생태계가 형성되지 못한 원인이 크다.

새로운 아이디어와 기술로 탄생한 벤처 기업이 성공으로 마무리되는 길은 크게 두 가지다. 증권 시장에 상장하는 것과 M&A가 되는 경우다. 물론 꿈을 이루지 못하고 좌절하는 경우는 더 많다. 이러한 벤처 기업의 생명 주기를 통해 벤처 캐피탈은 투자 자금을 회수하고 연구한 기술은 더 크게 사회에 공헌하는 계기를 가진다. 특히 패러다임이 급변하는 IT 산업은 M&A를 통해 불연속적인 성장의 모멘텀을 마련해 왔다. 수십 개의 기업을 사 들인 시스코를 비롯한, IBM, HP, 구글 등 IT 리더들에게 있어서 M&A는 중요한 성장 전략이다.

그러나, 우리 나라에서는 중소 벤처 기업이 발전적 흡수가 되는 경우를 발견하기 어렵다. 대기업이 중소기업을 M&A한 사례가 몇 개나 되는가? 그러면 벤처 기업들이 그렇게도 실력이 없거나 시장이 매력이 없어서 그랬는가? 그렇다고만 볼 수 없는 것이 벤처 기업이 형성한 시장에 대기업이 뛰어든 것을 우리는 많이 목격한다. 결국 생태계가 형성되지 않고 있는 것을 반증한다.


산업 생태계에 대한 아쉬움

아쉬운 것은 벤처 열풍이 꺼진 후 대기업과 중소기업은 더욱 수직적 관계로 심화되었다는 점이다
. 수직적 관계에서 상생이니 시너지란 말은 추상적 구호일 뿐이다. 대기업의 영업 이익의 확대는 바로 협력사인 중소 기업의 이익 감소로 나타날 수 밖에 없는 제로섬 게임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글로벌한 옵션이 많이 생긴 대기업에 있어서 인정과 사명만으로 사업을 할 수는 없는 현실이다.

자원 동원 능력 측면에서 대기업과 중소 기업은 엄연히 격차가 존재한다. 계약 과정에서의 협상력, 법적 대응 능력, 금력, 고급 인력을 끌어들이는 매력 측면에서 중소기업은 허약할 수 밖에 없다.

역사적으로 돌이켜 보면 혁신적으로 성장한 주도 세력이 나타나고 이들이 공정 거래를 유지하는 가를 감시하기 위해 강자를 견제하는 과정의 반복이었다. 예를 들어, 미국의 데오도르 루스벨트 대통령은 세계 최고의 부자인 록펠러의 독점 체제를 무너뜨렸다. 마이크로소프트에 대한 IT 업체들의 견제도 이와 맥을 같이 한다. 이들은 모두 뛰어난 기업가 정신으로 성공의 상징이었지만 시장의 공정성을 원하는 미국의 법 정신은 균형과 견제를 이루는 잣대가 되었다.


전문기술과 사업적 집중력을 가진 중소기업 없이 우리 나라의 미래는 없다
. 특성상 창의력과 도전 정신이 가장 활발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다나카와 같은 노벨상 수상자가 일본의 중소기업에서 나왔다는 것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90년 대에 대기업들이 구조 조정을 벌일 때에 클린턴 대통령은 소기업 창업 프로그램을 통해서 산업 구조를 재편했다.

공정한 시장 경쟁이 생태계를 만드는 필요조건

중소 기업에 대한 다양한 지원 정책이 논의되고 있다
. 그러나, 정책이 효과가 있으려면 건강하고 투명한 시장 질서를 만드는 것이 우선 되어야 한다. 부채만 더해 주는 지원보다 R&D가 수익으로 연결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어야 한다. 공정한 시장 경쟁이 보장되는 것이 생태계를 만들어 가는 필요조건이다.

게다가 지금은 개방성에 기반한 네트워크 경제 체제이다. 다시 말해 전문성에 기반을 둔 수평적 관계가 세계적 추세다. 창의력과 혁신의 정신을 갖춘 전문 중소기업이 더욱 절실하며, 공정한 시장 환경 속에 기업가 정신은 살아날 수 있다.


코리아 브랜드를 높이는 세가지 고려사항

Global View 2009.04.02 11:33

외국에서 길 가는 사람을 붙잡고 한국하면 떠오르는 것을 물어보면 어떻게 대답할까? 얼마 전 유럽 출장을 가서 여러 사람을 만나면서 이런 실험을 해 보았다. 예상한 대로 북한’88 올림픽 1, 2위를 차지했다.


▲ 88 올림픽 개막식(사진출처 : 국제올림픽조직위원회)


 

월드컵을 주최했으니 축구를 좋아하는 유럽에서는 잘 알겠지 하고 생각한 것도 착각이었다. 실제로 월드컵 효과는 어느 정도 있었다. 그러나, 필자가 만났던 기업인들은 축구보다 요트, 음악 등 다양한 취미에 더 관심이 있었다. 그 순간 서구 사회는 개성과 개인주의가 중요한 나라라는 것을, 그래서 우리처럼 온 국민이 들썩거리는 문화와 다르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한국을 너무 모르는 외국인


많은 사람들이 코리아 브랜드의 가치를 제고해야 한다고 한다
. 전적으로 공감한다. 장사를 하러 가서 국가에 대해 설명하는 데 많은 시간을 쏟아야 한다면 그만큼 목적을 달성하는 데 어려움을 겪기 마련이다. 그러나, 브랜드는 우리의 입장이 아닌 상대방의 시각에서 바라보아야 한다. 이를테면, 우리가 IT 강국이라고 하지만 우리를 배우러 온 후진국을 제외하고는 그 실체를 잘 모르는 게
현실이다.

 

코리아 브랜드 인지도를 높이는 것은 세계 속에서 한국이라는 국가의 문화와 정체성을 자리매김하는 것이다. 그것은 거창한 캐치프레이즈보다 실제로 접하고 느끼고 소통하는 환경 속에서 가능하다. 따라서, 우리를 일방적으로 알리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눈높이에 맞추어야 한다. 그런 측면에서 글로벌 사회에 임하는 기본 자세부터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첫째, 스토리가 있어야 한다. 6.25 전쟁 이후 한국의 발전 과정은 확실히 감동적이고 역동적이다. 국민소득 100불 이하의 후진국에서 산업사회를 거쳐 정보화시대를 앞장 선 글로벌 국가! 5000년 전통의 강한 문화와 하이테크가 어우러진 나라! 세계가 찬사를 보낸 김연아의 예술과 테크닉의 조화는 우리의 스토리를 상징한다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이런 내용을 다양한 사업 모델과 이야기로 담아낼 수 있어야 한다. 창의력과 꿈을 만들어 내는 것이 중요한 덕목인 시대다.



▲한국전쟁 당시 한강 다리의 모습과 현재의 서울 모습(사진출처 : 왼쪽- http://www.rt66.com/~korteng / 오른쪽 - 다이나믹코리아



둘째, 글로벌 표준과 궤를 같이 해야 한다. 소프트웨어와 콘텐츠, 디자인과 같은 무형의 자산을 훨씬 높게 가치를 평가해 주는 게 글로벌 인식이다. 규모와 양으로만 판단하는 하드웨어적 마인드는 시대착오적이다. 또한 글로벌 플랫폼이 되도록 전력을 다하든지, 아니면 그런 표준을 따르는 게 현명한 방안이다. 전세계 스마트폰의 75% 이상을 차지하는 심비안, 블랙베리, 아이폰은 우리 나라에서는 사용되지 않는다. 개인적으로나 업무적으로 활발히 소통되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가 우리 나라에는 거의 없다. 우리 고유의 가치를 보유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서로 소통하고 대화할 수 있지 않으면 고립되기 마련이다.


Genealist보다 Specialist가 대접을 받는 사회 


셋째
, 전문가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 해외에서 높은 연구 실적을 보인 학자들이 한국에 안 들어오는 이유 중의 하나가 연구에 집중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경제 규모에 비해 한국에 전문가 집단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지적을 우리는 깊이 반성해야 한다. R&D가 위축되는 분위기와 기술을 잘 아는 전문 경영인이 부족한 산업계는 적신호다. 금융 허브를 한다면서 이를 제어할 실력이 없으면 탐욕만 추구하는 펀드 전문가들의 먹잇감이 될 뿐이다. 글로벌 사회에서 대접받는 것은 어리숙한 제너럴리스트(Generalist)가 아니라 실력과 책임을 겸비한 전문가(Specialist)이다.


 



이런 원칙들을 바탕으로 실제 업무를 수행하는
사람들 간에 직접적 교류가 활발해져야 한다. 바로 이웃 나라인 일본 대기업의 임원들을 만나 보면 의외로 한국에 안 와 본 사람이 많다. 설사 방문하였다 해도 2, 30년 전의 한국의 모습을 기억하는 경우가 많다. 하물며 멀리 있는 미국이나 유럽은 어떠하겠는가? 다양한 스펙트럼의 소통이 이루어져야 입체화된 브랜드가 만들어진다.

 

일단 그들이 한국에 오면 우리가 얼마나 다양하고 기발한 아이디어로 재미있는 사회를 형성하고 있는지를 보고 감탄한다. 특히 그들에게 강한 인상을 주는 것은 정보화 사회를 이룬 IT의 적응력이다. 우리가 차별화된 무언가를 보여줄 수 있다는 게 얼마나 브랜드 측면에서 강점인가? 바로 여기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IT를 기반으로 기술력과 창의력이 무한히 뻗어갈 수 있도록 분위기를 형성하는 것이 바람직한 브랜드 실행 전략이라고 생각한다.

전자신문 (미래포럼) - 4월 2일

일본에서 본 이모바일 열풍과 노트북 공짜시대?

Global View 2009.04.01 08:25


소프트웨어의 가치

일본 아키하바라에 가보면 최근 열풍을 일으키는 ‘이모바일’이라는 통신 상품을 대대적으로 홍보하는 현장을 목격할 수 있다. 이것은 USB 형태의 디바이스로서 노트북에 연결하면 어디서든지 인터넷에 바로 연결할 수 있도록 해준다. 하도 요란해서 들여다보니 2년 약정을 하면 노트북을 1엔에 준다는 캠페인이다. 한 마디로 인터넷 서비스를 신청하면 노트북이 그냥 생기는 거다.


이제 노트북도 휴대폰처럼 공짜 시대가 오는가 보다. 그런데, 여기에서 나온 노트북들이 모두 일류 브랜드 제품이다. 물론 성능과 브랜드에 따라 약간의 가격이 더해지기는 하지만 그래도 파격적이다. 흥미로운 것은 바로 그 옆에서 바이러스 백신 제품을 정가대로 판매하고 있다는 점이다.

일본 사업을 하시는 어떤 분에 따르면 일본에서는 하드웨어를 무상으로 주고 소프트웨어와 콘텐츠를 판매하는 모델을 계속 연구하고 있다고 한다. 결국 고객들이 돈을 지불하는 것은 소프트웨어이지 하드웨어는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는 얘기다. 반면에 바로 이웃 나라인 우리는 어떠한가? 하드웨어는 제 값 주고 사면서 소프트웨어는 무료로 얻거나 불법적으로 사용하기를 주저하지 않는 우리의 모습은 후진적이지 않은가?



최근 IT의 뚜렷한 동향은 통신비와 하드웨어 단가가 급속도로 떨어진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서, 통신과 하드웨어에 기반한 사업만으로는 생존하기 어렵다. 따라서, 창의적인 소프트웨어와 서비스로 얼마나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느냐가 점점 중요해지고 있다. 역사적으로 소프트웨어 산업이 제대로 정착하지 못한 우리에게는 어려운 도전이 될 수밖에 없다.

또한 일반인이 무료로 이용하는 검색, 메일, 웹 플랫폼은 전반적인 산업에 혁명적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 기업 환경이 얼마나 IT와 접목될 수 있느냐가 사업의 성패를 좌우하게 된다. 여기에서도 정보화와 산업 그리고 사회를 연결하는 고리 역할은 소프트웨어의 몫이다.

그런데, 소프트웨어를 IT 기술자들만의 영역이라고 생각한다면 그 본질을 모르는 것이다. 소프트웨어는 인간 사회에서 정보가 소통되게 하고, 나아가 문화와 규범, 소통 방식, 업무 환경과도 밀접하게 연결된다. 자동화와 생산성으로 대표되던 소프트웨어의 특성이 창의력과 지능적 판단으로 확장되는 배경도 여기에 있다.

소프트웨어 - 다양성과 개성이 존중되는 문화가 있어야

안타까운 것은 우리가 하드웨어적 사고에 기반해 이룩한 과거의 성장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민주화 과정이 그러했고, 산업적 성장도 그러하다. 분명 이것은 한국인이 만들어 낸 자랑스런 역사다. 그러나, 앞으로는 단결과 일체감을 넘어서 소프트웨어적 사고를 기반으로 유연성과 합리성이 존중되는 사회를 만들어야 하지 않겠는가?

선진국이 되는 기준은 소프트웨어의 가치를 우리 삶 속에 자리잡게 하느냐의 여부에 달려 있다. 그리고 소프트웨어는 다양성과 개성이 존중되는 문화 속에서 꽃을 피울 수 있다.

 한국일보 칼럼 3월 18일 - [김홍선의 IT 프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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