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엔지니어는 나이 들면 못하는 직업인가?

CEO 칼럼 2010.10.13 06:41

내가 16년전 다녔던 미국 회사의 연구소장(R&D director)은 컴퓨터 업계에서 유명했던 사람으로, 유닉스(Unix) 시스템 일부 소프트웨어의 저자(author)이기도 하다. 어느 날 수염이 덥수룩한 도사 차림의 방문객이 있었다. 알고 보니 그는 소프트웨어 업계의 전설적 인물로 GNU 관련 일을 열정적으로 같이 했던 친구라고 한다. 불혹의 나이에 기술적 식견을 나누면서 우정을 이어가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마침 그와 바로 옆 사무실을 사용하게 되어 가까이 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우선 그는 엔지니어들의 진정한 멘토가 되었다. 기획과 설계를 주도하고 개발 도구의 선정, 업무 배분, 스케줄링 등. 특히 40대 중반을 넘은 나이에도 직접 프로그램을 만들고 같이 검토했다. 당시 한국 대기업에서는 과장만 되어도 직접적인 개발 업무에서 멀어지면서 관리형 간부로 바뀌는 경우가 흔했기에, 나이가 들어서도 열정을 이어가는 그의 모습이 신선했다. 10대부터 프로그래밍을 했다니 무려 30년이 넘는 경험이 녹아있지 않는가?

 

하루는 그가 아주 늦은 시간에 퇴근하지 않고 컴퓨터에 빠져 있어 무엇을 하고 있느냐고 물으니 “Smalltalk”이라는 언어가 이번 프로젝트에 적합할 것 같아 몇 가지 모듈을 직접 배워서 만들어 보고 있다고 한다. 그러면서, “아주 재미있는데. 당신도 여유 시간(spare time)이 있다면 한번 배워보지 그래?” 하는 것이었다.

Smalltalk의 설계자 Alan Kay

Xerox Parc (실리콘밸리)

 

Smalltalk 80년대 유학시절 컴퓨터 잘하는 미국 친구들이 입에 침이 마르게 칭찬해서 익히 알고 있었다. 실리콘 밸리에서 수많은 발명품을 만들어낸 Xerox Parc의 또다른 작품으로서 당시 부각하고 있던 객체지향 사상을 충실히 반영한 프로그래밍 언어라서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들에게 인기가 높았다. Smalltalk 기반의 개발 도구를 만드는 ParcPlace같은 회사는 나스닥에 상장될 정도였다. 어쨌든 소프트웨어에 빠져들어 있을 때 마치 어린 아이처럼 즐거워하던 그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백발이 성성해도 엔지니어의 길을 원하는 이들

최근 우리 회사에
시니어급 경력자가 문을 두드리는 것을 많이 보게 된다. 우리 회사를 찾는 이유를 물어 보면, “백발이 성성해도 엔지니어로서 일하고 싶다. 관리로 빠지고 싶지 않다. 웬지 안철수연구소에서는 그것이 가능할 것 같아 지원하게 되었다. 그렇지 않나요?라며 오히려 역질문을 해 오기도 한다. 그러면 나의 대답은 명확하다. “물론입니다. 원한다면, 그리고 실력을 보여준다면 나이와 상관없습니다” 
 

이공계를 기피하는 이유 중의 하나가 젊었을 때만 할 수 있다는 인식이다. 그런데, 과연 그런가? 물론 기술이 급변하니 계속 쫓아가는게 쉽지 않다. 그러나, 정확한 개념과 경험을 가졌다면 그러한 기술의 변화에 당황해하지 않고 오히려 즐기면서 주도해가는 모습을 많이 본다. 한때 습득한 기술에 의존해서 평생 살겠다는 것은 너무 안이한 생각이 아닌가? 그만큼 끊임없는 노력이 전제되어야 한다.

흔히 보상도 적고 직업 수명도 짧다는 이유로 엔지니어를 기피하는 것을 보게 된다. 그러면서 변호사나 의사, 증권업계를 비교한다. 물론 그쪽 업종의 전반적 급여나 보상은 높다. 그러나, 그 속에는 도태된 사람도 수없이 많다. 성공한 일부 스타급 인재만 보고 꿈을 꾸는 것은 아닌 것 같다. 또한 돈만 보고 사는 것은 서글프지 않은가?


사실 미국에서 가장 빨리 은퇴하는 곳이 월스트리트다. 한국인으로 월스트리트에서 성공했던 스토리를 담은 "지혜로운 킬러"에 보면 얼마나 스트레스 속에 초를 다투는 전쟁 속에 지내야 하는지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정글 속에서 지내는데 얼마나 버틸 수 있겠는가? 

소프트웨어 인력에 대한 편견과 인식

IT를 잘 모르는 분들은 영화에 등장하는 일부 해커들의 모습으로만 IT 개발자를 상상하는 경향이 있다. 어떤 분이 소프트웨어는 20대만 되어도 퇴물(?)이 된다는 아주 잘못된 편견을 지니고 있어 적지 않게 놀란 적이 있다. 정작 아주 중요한 프로젝트의 열쇠는 농익은 경험과 기술에 대한 통찰력을 지닌 전문가에 의해서 주도되기 마련이다. 

문제는 자신의 직업에 대한 확신이라고 생각한다. 엔지니어는 "자신이 만든 것을 다른 사람이 사용하는 것을 볼 때의 기쁨"을 특권으로 가지고 있다. 자신의 기술적 호기심을 풀어가는 자세로 즐길 줄 안다면, 결코 조기에 관두어야 하는 직업이 아니다. 문제는 스스로의 실력이다. 물론 기술적 전문성과 깊이가 진정한 경쟁력이라는 기업의 인식과 사회적 공감대가 필요하다. 역사적으로 경제 발전과 사회 발전의 전환점을 마련하고 디딤돌을 놓은 것은 항상 과학 기술자의 꿈과 열정이었다.


신고

CEO가 취업을 준비하는 젊은이들에게(4) - 갑 vs 을 시대착오적 세태

CEO 칼럼 2009.10.05 12:36

먼저 두 가지 사례를 들어 보겠다.

 

사례 1

대기업 부장이었던 분이 있었는데, 어느 날 독립했다고 연락이 왔다. 그 동안 닦아 놓은 인맥을 바탕으로 사업을 하려고, 마침 명예퇴직 프로그램이 좋아서 퇴직금 두둑하게 챙겨 나왔다고 한다.

 

그를 잘 아는 이들은 어리둥절했다. 그 분은 을 괴롭히는 전형적인 인물이었다. 항상 의 요구에 무조건 응하도록 압력을 가하고, 계약을 차일피일 미루고, 그러면서 심한 접대 요구는 유명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회사에서도 그를 좋게 평가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데, 그는 그렇게 알게 된 기업들이 자신을 도와줄 것이라고 착각했던 것이다. ‘슈퍼 갑앞에서 잘 보이는 것 이외에 의 옵션이 얼마나 있겠는가? 그러나, 회사를 나온 그에 대한 예우는 이전과 달라질 수 밖에 없다. 결국 모두가 냉랭하게 대했고 그 후 소식은 잘 모른다.

 

사례 2

공무원을 오래 하시다가 도중에 모 회사의 임원으로 가신 분이 있다. 그가 한참 잘 나갈 때에는 업체들이 눈 밖에 나지(?) 않으려고 눈도장을 찍느라 바빴다. 그가 행사할 수 있는 예산과 결정권은 막강했다. 전문가가 적던 시절이어서 그의 발언권은 아주 컸고, 이에 힘입어 그는 승승장구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고 전문가들이 많아지면서 그의 실력은 한계를 드러냈고, 내부에서도 견제의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그나마 늦기 전에 회사로 옮긴 것은 괜찮은 결정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이 분이 회사에 가서도 목에 힘을 빼지 못하고 지냈다. 고객의 목소리를 겸허히 듣는 것이 익숙하지 않았고, 그러다 보니 접대를 나가서도 훈계조로 얘기하거나 자신이 주도하려는 모습을 보였다. 결국 적응을 하지 못하고 회사를 관두었다.

 

갑과 을의 관계는?

갑과 을은 평등한 관계인가?

직장을 선택하면 업무의 형태가 의 어느 한쪽에 속하게 마련이다. 이를테면 회사 자체가 의 역할, 즉 제품이나 서비스를 구매하는 역할이 큰 업종일 수 있다. 아니면 의 역할을 담당하는 부서에서 근무하게 될 수 있. 모두가 그 회사를 위해서는 중요한 일이기에 어디서든지 성실하게 임한다면 전문가로서 중요한 커리어를 쌓을 수 있다.

그런데
, 우리 나라는 의 불평등이 심각한 문화라는 점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어느 나라나 물건을 사는 쪽보다 판매하려고 하는 입장이 항상 아쉬운 법이다. 특별히 공급이 부족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구매자가 비즈니스의 열쇠를 쥐게 된다.

그렇지만, 입장을 바꾸어 생각하면 좋은 제품과 서비스를 해 주기 바란다는 갑의 마음도 있을 수 있다. 거래는 상품과 용역을 재화로 교환하는 공정한 개념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한쪽으로 치우쳤을 때의 불투명성과 불합리성의 문제다.

 

왜 유독 우리 나라에서는 의 권한이 강할까? 
필자의 생각에는 과거에 장사를 하는 사람들을 낮추어 보는 사농공상(
士農工商)’의 전통과 유교적 문화가 잠재적 원인중의 하나인 것 같다. ‘상도(商道)’라는 소설과 드라마를 보면 겉으로는 고상한 척하면서 뒤로는 상인들의 이문(利文)을 갈취하는 양반들의 위선적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상인을 이기적이고 돈만 밝히는 장사치로 간주하는 가운데, ‘내가 당신의 물건을 사 준다’, ‘베풀어준다라는 우월적 인식이 자리잡지 않았을까? 이런 인식이 현대 산업 사회로 오면서 투명한 거래로 진화했어야 하는데, 불행히도 정부와 대기업 위주의 경제 성장 속에서 그런 문화의 형성은 미루어져 왔다. 시간이 가면서 나아지고는 있지만, 여전히 불평등은 심각하다.



그런 상황에서 직장에 취직해서 어떤 종류의 업무를 맡느냐는 나중에 그의 커리어에도 영향을 미치는 것을 많이 목격했다. 이를테면 만일 의 업무로 몇 년을 지내고 나면, 훗날 직장을 옮기거나 업무가 바뀌어서 의 입장에 처했을 때 잘 적응을 못 하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된다. 앞의 사례에서 보듯이 사회에서의 자신의 위상을 완전히 착각하기도 한다.

20년이 넘도록 편안하게 직장을 다니신 분이 있다. 연봉도 다른 업종의 친구들보다 높은 편이었고 시간적 여유도 많았다.억세게도 운이 좋구나라는 생각에 부러움이 들었다. 본인 스스로도 운이 좋아서 편하게 지낸다고 자랑하곤 했다. 그러나, 그 조직도 구조조정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고 그는 커리어의 전환점에 서게 되었다. 그는 내가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지?”하고 심각한 무력감을 느끼게 되었다고 한다. 자신의 가치는 그 조직이 만들어 준 것이지 자신이 만든 것이 거의 없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조직 속의 내가 아니라, 진정한 나의 가치가 필요
 
'
일을 시키는 입장일을 직접 수행하는 자세의 차이는 엄연히 존재한다. 물론 일을 시키면서도 철저히 분석해서 전문가가 될 수는 있다. 그러나, 겉에서 보고 판단하는 것과 실제로 부딪히면서 경험하는 것은 천지차이다. 안철수 박사가 직접 숙제도 하고 시험도 보면서 해야 자기 것이 된다라며 CEO를 관 두고 고행의 MBA 프로그램에 들어간 이유와 일맥상통한다.

 

사실 '갑'과 '을'을 단순히 수직적 관계로 보는 발상은 시대착오적이다. ‘’의 역할은 큰 목표를 실현해 가는 과정에서 '을' 즉 파트너의 도움을 필요로 할 뿐이다. '을'의 상품을 사 주거나 일거리를 주는게 아니다. 그런데, 이러한 파트너쉽을 자신의 파워(power)로 착각하고 즐기려는 이들이 있다.

은 항상 아쉽고, 머리 조아려야 하고, 고객이 부르면 달려가야 한다. 허나 ’로 오랜 경험을 쌓을 경우 자기 독립심이 강해지고, 자신의 역량에 대해 냉정하게 판단할 수 있다. 조직에 의해 내가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만의 현실적 가치를 보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이냐 이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사회에서의 삶을 태하는 진지한 자세가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보통 사회생활에 임하는 자세는 초기 몇 년의 직장 생활에서 자리잡히기 때문에 커리어에 있어서 중대한 기로다. 초반에 자신을 연단하는데 더 투자한다는 자세로, 직접 일을 수행하는 경험을 많이 쌓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 경험을 통해 업무에 대한 통찰력이 생기게 되고, 그것이 진정한 자신의 실력이 된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