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문화와 통신혁명은 IT시대정신인가

보안 이야기 2009.04.15 06:46

 

발단(Trigger) II: 통신혁명 (1)

 

2007년 6월에 세미나 발표를 위해 인도네시아에 간 적이 있다. 호텔에 체크인하고 방에 들어가서 이메일을 보기 위해 노트북을 켠 순간 갑자기 당황스러웠다. 인터넷을 연결할 케이블이 보이지 않은 것이다. 정신을 가다듬고 호텔 방에 비치된 가이드 북을 꼼꼼히 살펴 보았다. 결국 인터넷을 연결하는 방법을 찾기는 했는데, 모뎀이라는 용어와 연결할 전화 번호가 있었다. 참으로 오랜만에 하는 용어이다 보니 한편 당혹스러우면서도 잠시 옛 추억에 잠겼다.

 

어떻게 했었지하면서 과거의 기억을 되살리려고 노력하다가 그제서야 아주 기본을 망각하고 있는 것을 깨달았다. 정작 모뎀을 연결할 소프트웨어도 없었고, 내 노트북은 아예 모뎀을 연결할 하드웨어가 없었던 것이다. 인도네시아 수도 자카르타에서 가장 최고급 호텔 방에서 인터넷을 연결할 방법이 없다는 것으로 결론짓고 나니 망연자실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과거 우리의 통신 환경에 대한 향수를 느꼈다.

 

다이얼업 모뎀(Dial-up Modem). 이 단어를 기억하는 분이 얼마나 있을까? 이것은 이미 세계적으로 공룡처럼 사라졌다고 나는 단정했었다. 그런데, 지구촌 한 곳에서는 버젓이 사용되고 있고, 내가 그것을 버린 지가 불과 몇 년 밖에 안 되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새로운 풍속도
게임방

 

IMF 이후 우리 나라에서 크게 바뀐 풍속도 중 하나가PC(게임방)’이다. 해외에서 인터넷 카페라고 불리는 모델이 우리 나라에 들어와서는 PC 온라인 게임이라는 킬러 서비스와 만나면서 그 사업자체가 서비스 이름으로 명명되었다. PC방은 선풍적인 인기 속에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PC방에 가는 사람들은 대부분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게임을 목적으로 가지만, 아울러 채팅과 인터넷을 즐기는 공간으로 그 용도가 확대되어 갔다.

 



우리 나라에서
형태의 사업 모델은 이것이 처음이 아니다. 문화의 대표격인 가라오케(노래방)라는 대중적 서비스로 우리의 생활 문화로 깊이 자리잡았다. 이후 노래방은 가전 제품이나 셋톱박스, PC 카드, PC 통신의 형태로도 가정으로 파고 들었다. 그러나, 아무래도 소음 때문에 어느 정도 한계가 있었다. 집단 거주 형태가 흔하고 인구 밀집도가 높은 우리 사회에서 이웃을 신경 쓰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PC방의 경우는 달랐다. 일단 소음이 적기도 하지만 이미 PC가 크게 보급되어 있었기 때문에 가정으로 진출하는데 큰 장애는 없는 상황이었다. 문제는 통신 수단이었다. 90년대에 인기가 높았던 PC 통신이나 인터넷을 가정에서 사용하려면 아날로그 전화에 모뎀을 연결한 방식으로 네트워크에 접속을 해야 했다.

이 방식은 기존의 전화선을 데이터 통신 형태로 확장한 것이라서 통신을 하는 중에는 전화기는 계속 통화 중 일수 밖에 없었다
(이 문제는 가족들간의 크고 작은 분쟁을 가지고 온 것으로 기억한다). 또한 최대 대역폭도 초당 56Kbps 수준에 머물러 지금과 같은 동영상 파일 다운로드나 실시간 스트리밍은 꿈꾸기도 힘들었다.
통신 사업자들이 ISDN(종합정보통신망)이라는 차세대 서비스로 전화와 데이터 라인을 동시에 사용할 수 있는 방식을 연구 개발하여 전세계적으로 시험하고 있었지만 이것은 전체 통신망을 다시 구축해야 하는 장기적인 과제였다.

 



브로드밴드(Broadband)
통신의 탄생

 

이 느린 전송률로 웹을 검색하고 게임을 하려면 인내심을 가져야 했다. 당연히 홈페이지가 텍스트 위주에서 영상이나 멀티미디어를 표현하는데 최대의 장애물이 대역폭(Bandwidth)이었다. 이 때에 ADSL이라는 통신기술이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1989년에 개발된 ADSL 기술은 본래 VOD(Video On Demand)를 기존 전화망에서 가능하게 하기 위한 목적으로 개발되었다. 왜 그런 서비스가 필요했을까? 이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당시의 영화 문화를 이해해야 한다.

 

1980년 대에 영화 산업은 극장 위주에서 가정에서 즐기는 형태로 패러다임이 변화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비디오(VCR)가 보편화되어 TV와 더불어 필수 제품으로 자리 잡았고, 이를 발판으로 비디오 대여 사업이 크게 각광을 받았다. 미국에서는 블록버스터(Blockbuster)와 같은 대형 렌털 업체가 시장을 주도했고, 케이블이 각 가정에 들어가면서 영화만 24시간 방영하는 HBO, Cinemax와 같은 전문 채널들이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한국에서도 80년대 중반부터 동네마다 비디오 대여 가게가 생겨나서 90년대 초에는 피크를 이루었다.

 

전화 통신 사업자들은 이에 대응하기 위해 자신들의 통신망을 활용한 비디오 서비스를 생각해 내었다. ADSL A는 비대칭이라는 의미인 Asymmetric의 약자로서 콘텐츠를 가정에 공급하는 다운스트림(down-stream) 대역폭이 그 반대 방향의 대역폭(up-stream)보다 훨씬 크게 설계되었다. 각 가정에서 기존 전화선을 통해 대용량 비디오를 다운로드 받는 서비스를 염두에 두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생각보다 ADSL 기술은 꽃을 피우지 못했다. 기존 비디오 대여나 케이블 업체들이 홈 비디오 시장에서 주도권을 쥐고 있었고, 경기도 좋지 않은 상황에서 통신 사업자가 주관하는 VOD는 탄력을 받기 힘들었다.

 

그런데, ADSL 90년대 후반에 들어 가면서 더 막강한 서비스를 만나게 되었다. 바로 인터넷의 폭발적 보급이다. 가정에서 인터넷을 사용하는 데 인내로 버티던 많은 이들에게 ADSL은 희소식이 아닐 수 없었다. ADSL은 기존의 전화망을 그대로 사용하면서 기존의 속도보다 10배 이상의 빠른 서비스를 보장했다. 제 남은 것은 통신 사업자의 의지였다. 결국 통신사업자는 ISDN을 통해 단계적으로 업그레이드하려던 계획을 전면 수정하기에 이르렀다.

 

이것이 소위 브로드밴드(Broadband) 통신이라는 개념이 탄생하게 된 배경이다. 브로드밴드는 초당 56킬로비트 (56Kbps)밖에 전송하지 못하는 다이얼업 방식 대비 수 배에서 수십 배의 대역폭을 보장하는 통신 방식을 일컫는다. FCC(연방통신위원회)는 브로드밴드는 적어도 200Kbps이상의 대역폭을 보유해야 하고 상시접속(Always-on)이 되어야 한다고 규정한다. 브로드밴드의 영역에 들어가는 DSL, 케이블통신, 광통신, 전력선, 무선랜 등의 기술은 이 개념에 충실함을 알 수 있다.

 

브로드밴드는 가정과 중소 기업에 불어 온 통신 혁명의 서곡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지만, 브로드밴드가 제시한 명확한 특성은 통신의 개념을 근본적으로 바꾼 역사적 의미가 있다.

 

첫째, 초고속 통신의 제공이다. 각 가입자가 받을 수 있는 대역폭(bandwidth)이 획기적으로 커졌고, 이로 인해 멀티미디어 정보의 교환과 쌍방향 통신의 시대가 열리게 되었다. 이러한 한계 속도의 돌파는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 통신과 방송, 미디어의 융합의 패러다임은 초고속 통신의 초석에서 시작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둘째, 상시접속(Always-on) 개념의 도입이다. Dial-up 방식의 모뎀을 접속하고하는 전화 연결음을 들어야 하는 시대가 있었다. 브로드밴드는 개인과 개인을 시그널링(signaling)에 의해 연결하는 전화의 개념에서 항상 연결해두는 접속의 형태로 바꾸었다. 네트워킹에서 접속 과정을 생각해야 하는 과정에서 자유로워지게 된 것이다.

 

셋째, 통신 요금에도 변화를 가져왔다. 만일 전화 요금처럼 인터넷을 사용하는 시간에 비례해서 통신 비용이 부과되었다면 인터넷의무료개념은 크게 퇴색되었을 것이다. 월정액 기준으로 무한 사용의 시대가 열리면서 통신 업체의 사업 모델도 큰 변화를 가져왔다. 게다가 가입자를 잡기 위한 치열한 경쟁으로 통신 비용은 급격하게 떨어졌다. 통신 요금은 앞으로도 서비스의 발전과 무한경쟁 구도하에서 지속적으로 인하 될 것이다. 통신업체가 사업 모델을 바꾸지 않으면 생존이 안 되는 시대로 바꾼 터닝 포인트가 된 것이다.

 

IT가 대한민국의 시대 정신으로

 

브로드밴드는 한국을 최고의 IT 강국으로 도약하게 한 주춧돌이기도 하다. 1999년도부터 고개를 내밀기 시작한 브로드밴드 도입은 2000년부터 비약적으로 발전해서 전 세계에서 최대 인터넷 사용자 보유 비율을 자랑하는 국가가 되었다. 다이얼업에서 ADSL로 그리고 VDSL을 거쳐 광랜이라 불리는 FTTP FTTH로 발전할 수 있었던 배경은 아래와 같다.

 

정부에서는 IMF 이후 IT를 국가 성장 동력으로 규정하면서 초고속통신망 인프라 구축에 박차를 가했다. 각 개인들도 온라인게임, 인터넷뱅킹, 온라인주식거래, 홈쇼핑 등 새로운 사이버 문화에 빠르게 적응해 갔다.

 

그러나, 무엇보다 광활한 지역에 집들이 떨어져 있는 미국과 달리 아파트 단지 형태로 조밀하게 모여 사는 한국의 주거 문화는 통신 인프라의 업그레이드가 용이한 면이 있었다. 일본도 한국과 비슷한 문화이기는 하지만, 집까지 연결하는 통신 구간을 업그레이드하는 과정에서 일본은 주춤했다. ISDN에 누구보다 투자를 많이 했던 NTT로서는 초고속 인터넷의 욕구에 대해 소극적으로 대응한 면이 없지 않다. 반면 한국은 KT하나로 통신의 치열한 경쟁 속에 브로드밴드의 보급불이 붙었다. 2000년대 초반 인터넷과 IT는 한국 사회를 이끌어간 시대정신이었다.

인터넷의 개방성, 정보보안의 영원한 숙제

보안 이야기 2009.04.11 08:02

발단(Trigger) I: 인터넷 보급, 그것이 시작이다 (3)

PC 통신으로 네트워크에 눈을 뜨다


한편 이렇게 구입한
PC를 어떻게 활용할지 고민하던 사용자들에게 ‘PC 통신이라는 서비스가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하이텔, 천리안으로 대표되는 PC통신은 통신업체가 아닌 삼성도 유니텔을 오픈할 정도로 인기가 놓았다. 해외에서 AOL, Prodigy, CompuServe는 대표적인 PC 통신업체였고, 마이크로소프트도 막대한 투자로 서비스를 준비하고 있었다. (인터넷 열풍으로 마이크로소프트는 전략을 후에 수정했다).

하이텔 텔넷 서비스 화면



PC 통신에서는 뉴스, 게임, 오락과 같은 콘텐츠(contents)를 온라인으로 볼 수 있고 가까운 이들과 전자 메일을 주고 받으면서 차츰차츰네트워크에 눈을 뜨게 되었다. 이렇게 PC와 네트워크의 만남이 보편화되면서 인터넷 시대는 다가오고 있었던 것이다.


개인용 컴퓨터인 PC와 네트워크의 개념을 가진 PC통신으로 형성된 분위기에 불을 붙인 것이 웹(Web)이다. 오픈 플랫폼인 PC의 보급과 웹 브라우저의 결합은 폭발을 일으켰다. 누구나가 손쉽게 구입해서 사용할 수 있는 PC를 이용해 인터넷 상에서의 정보를 URL 주소만으로 찾아갈 수 있게 되었다. 컴퓨터 전문성, 조직이나 국가적 제한성과 같은 정보 접근의 벽이 허물어졌다고 할 수 있다. 더 나아가 인터넷 사용은 공짜다. 

 

천리안 메직콜 광고 포스터


본래 정보에 대한 욕구는 인간 본성에 자리잡고 있다. 정보가 힘이고 돈인 것은 역사가 주는 교훈이다. 아울러 지식에 대한 추구, 이로 인한 즐거움은 우리의 문화다. 인터넷은 정보 접근의 공식을 새로 만들었으며, 이에 따라 우리 생활에 혁명적 변화를 일으킨 주역으로 자리잡았다.

치명적인 유혹, 인터넷

 

그러나, 인터넷과 PC가 가져다 준 엄청난 혜택의 뒤에는 근본적인 문제가 내재되어 있었다. PC와 인터넷이 추구하는 오픈성과 개방성은 생태적으로보안에 대한 고민이 결여되어 있는 것이다. 정보보안은 개방성과는 대치되는 개념이기에 우리에게 영원한 숙제로 자리잡게 된 것이다.

 

우선 오픈 플랫폼인 PC를 보자.

PC
를 통해 전문가에 의해 관리되던 컴퓨터가 일반인이 사용하는 시대로 바뀌게 되었다. 업무용 환경에서 많이 사용되던 미니컴퓨터나 워크스테이션은 여러 사용자가 공유하는 구조라서 시스템과 사용자의 영역이 철저하게 구분되어 있다. 전문가나 전문가에 준하는 지식과 경험이 없이는 시스템 내부의 접근 자체가 허락이 되지를 않았다. 메인 프레임은 철저히 훈련된 관리자들에게만 권한이 주어졌다. 그러나, PC용 운영체제인 DOS의 경우 개인용이라서 구태여 관리자와 사용자의 역할을 구분할 필요성이 약했다. 결국 시스템이 보호해야 할 영역인 파일 삭제나 복사, 특정 영역의 접근이 상대적으로 용이했고, 이것이 악성코드인 바이러스에 취약하게 된 원인이 되었다.

 

인터넷의 경우는 더 치명적이다.

본래 인터넷은 어느 정도 한정된 그룹인 과학자들이 정보를 쉽게 네트워크로 교환하기 위해 만들어 졌고, 실제로 그렇게 운영되고 있었다. 그러나, 웹에 의해 대중화된 인터넷은 본래의 의도와는 완전히 다른 용도로 확대되었다. 불특정 다수를 겨냥한 정보 제공, 인터넷을 통한 상거래, 기업간의 비밀 정보 교류 등은 인터넷의 설계자들이 고려하지 않았던 요소였다. 인터넷의 설계자들은 원활한 정보 소통을 위한 프레임워크(framework)를 만든 것이지, 특정 서비스나 컴퓨터에 맞는 체계를 거부하고 있었다.


한 마디로 책임을 질 사람도, 관리를 할 사람도 없는 게 인터넷이다. 그러다 보니, 인터넷을 통해 책임 있는 서비스가 이루어지려면 정보보안이 필수불가결하다.


그런데 이런 정보보안을 각 사용자들이 알아서 챙겨야 한다는 큰 문제가 존재한다
.
예를 들어, 기업의 네트워크에 인터넷을 도입하려면 관문에 방화벽(Firewall)이 필요하게 되었고, 기밀 정보가 노출되지 않게 하기 위해 암호 기술이 적용되었다. 인증과 접근 제어, 침입에 대한 방어, 정보의 무결성과 기밀성, 이런 보안의 개념들은 필요에 따라 기업이나 개인들이 갖추어야 할 덕목이 된 것이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오픈 플랫폼인 PC와 개방성을 사상으로 가지고 있는 인터넷. 각자 지켜야 할 것은 직접 챙겨야 하는 책임의 분산. 이러한 특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 정보보안이 특정 분야에 속한 사람들의 국한된 문제에서 우리의 업무와 일상 생활로 퍼져 나오게 된 배경이다. 악성 코드가 범람하게 되었고 인터넷은 신뢰할 수 있는 정보가 소통되기 위한 인프라가 필수적으로 요구되었다. 이 인프라의 근본은 정보보안이다. 그런 점에서 웹과 PC가 대중화된 1995년이야 말로 정보보안이 보편적인 문제로 일반화되기 시작한 역사적인 기점이다. 수요가 발생하니 산업도 본격적인 모습을 갖추기 시작했고, 그런 점에서 1995년을 정보보안 산업의 태동기로 보는게 적합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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